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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날개 (시551-8)

본문

사람들은 인생 행로가 평탄하기를 원합니다. 순풍에 을 달고 항해하는 것처럼 무사 안일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인생고의 답답한 일들이 우리 앞에 가로막을 때가 많이 있읍니다. 이런 때 답답한 환경 가운데서 새처럼 훌훌 날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읽은 이 시편은 다이 지은 시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 아 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원수들의 모함과 번역이 그를 괴롭힐 때 그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마 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사망의 위 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시55:l-5)
이 시편에서 답답한 환경 속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그의 심 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쇳은 이런 환경에서 자유할 수 있는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성도들이 날개 있는 비둘기 처럼 이 험악한 인생 광야를 날아가서 편히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말 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가운데 마음이 근심으로 편치 못합니까탄식과 한숨이 있습니까 답답한 일들로 둘러 싸여 있습니까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정 생활이 답답합니까웬지 마음이 공허하며 인생이 무의미하여 집니까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으며 하늘의 참 평화를 얻는 시간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물의 세계를 보면 세 종류를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땅 속에는 미생믈과 곤층이 살고 있습니다 땅 위에는 동믈들이 살고 있음니다 공증에는 하늘을 날으는 새들이 있음니다 인간들의 삶을 보면 땅 속에서 사는 미생물처럼 땅의 것으로 만족 하며 땅만 바라보며 사는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 들은 하늘을 날으는 새 처럼 살아가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공중 나는 새를 보라U하셨습니다. 인생 길을 걷는 나그네 길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보면, 걸어 가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뛰는 사람도 있고, 날으며 사는 사람들 도 있습니다. 불신자의 생활은 땅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인들은 창공을 날아가는 사람들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교통 수단의 발달을 보면 도보로 걷는 시대에서, 자동차 를 타고 달리는 시대로, 그리고 오늘의 시대는 비행기를 타고 날으는 시대로 발달했습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은 인생을 날아다니는 삶의 방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걷거나 달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새들이 수천 마일을 날을 수 있으니 이는 이들이 몸에 날개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노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걸어도 뛰어도 달려도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위대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들에게 '신앙이란 날개'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 보잘 것 없는 많 은 사람들이 신앙의 날개를 달고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세계를 산 넘고 강을 건너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달아주신 날개요,은총의 선믈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28-5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 우라. 그러면 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가벼움이 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약속하고, 초청하셨 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멍에를 메고 배우라. 그리하면 쉽을 얻는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을 초청 하십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 거운 짐을 지고 인생길을 걷고 있는 고달픈 우리들에게 신앙의 날 개를 달아 주시며 날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놀라운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나는 생활을 곤충의 일생과 비교해 볼 수있읍니다. 보잘 것 없는 곤충은 땅 속을 뒤지며 더러운 것을 먹고 살면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치 속에저 잠을 자고 허물을 벗어 날개를 달고 나와 옛날 을 잊은듯 하늘을 날으며 날개 달린 천사처럼 향기로운 꽃에서 꽃 으로 날아 다닙니다. 그리고 매미처럼 하늘 높이 날으면서 노래부 르며 사는 차원높은 천사같은 존재로 변화하여 삽니다. 이것은 신 앙인들의 영광스런 삶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벌레같은 인간들(시22:2) 에게 허물을 벗게 하고 (지난 날 모든 죄악의 허물) 믿음의 날개를 붙이고 땅에서 더러운 것을 먹는 존재가 아니요, 하늘에 신령한 것을 먹으며 살 수 있는 찬송하는 하늘 시민으료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날개를 주셨는데, 이 날개를 움직여 날 을 줄 오르고 날개를 붙이고 땅에 걸어 다니려는 자가 있습니다. 날 개를 붙이고 걷는 것은 날개 없는 것만 못합니다. 오히려, 거추장스 런 짐이 될 뿐입니다. 신앙의 날개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 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믿을의 날개를 움직일 때 날개 (신앙)는 쉽고 짐(생활)은 가벼운 것이 될 것입니다.
첫째, 날개 (믿음)를 움직이는 능력이 무엇일까요 기도의 움직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날으며 살 수 있는 신앙의 날개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날개를 달고 걸어 다니는 새와 같습니다. 하 늘이 준 이 엄청난 믿음의 날개를 기도로 움직이세요. 활용할수 없는 신앙은 더 거추장스럽습니다. 날지 못하는 날개는 더 고통스러 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의 불안과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유 일한 방법이 날개를 움직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말을 타고 도망 치듯 현실을 도피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 타고 도망을 쳐야 구원함을 받는 것처럼 이 환경에서 저 환경으로 수 없이 변화를 시켜도 인간의 노력은 허사요, 괴로움은 더 할 뿐입니다. (사so:ls)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을 날 으는 새처럼 기도합으로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원수 들이 그를 둘러싸고 죽음의 문빗장이 그의 앞을 가로막을 때 창문 을 열고 기도로 답답한 현실에서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 라는 빌럽보 감방에서 기도로 답답한 환경에서 나를 수가 있었읍니다. .
신앙의 날개는 주믐 섬김으로 나믈 수가 있음니다. 우리는 주께 봉사하므로 새로운 힘을 얻어 독수리 같이 날개로 날을 것이요, 달려도 피곤하지 않고 걸어도 고단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좋은 자세는 섬김에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 다가 이상한 진리에 들어가 이단이 된 자가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다가 신비주의에 빠져 탈선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주님의 일 을 섬기는 종으로 죽도록 충성하다가 탈선하거나 이단이 된 일은 없 습니다. 성도들은 임 없이 섬기는 종으로 신앙 생활을 하십시오. 무익한 종으로 섬기십시오. 그러면 더욱 큰 보람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e신뢰와 순종으로 날개믐 움직이십시요 온전히 주께 순종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는 세상의 근심 과 슬픔이 우리를 괴롭힐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높은 곳 으로 독수리처럼 날게 될 것입니다. 철저한 신뢰가 없이는 날배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께 우리 자신을 위탁시키지 못할 때, 염려가 우리 심령을 지배하게 만듭니다. 염려 없는 생활은 신뢰로 날개를 움직이는 새와 같이 저 하늘 높이 하늘을 날게 될 것입니다. 들째. 신앙의 날개가 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까요 '신앙의 날개를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이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 성장하 려면 믿으려고 해야 합니다. 의심하고 따지려고만 하지 말고 믿으 려고 하여야 합니다. 어떤 철학 교수가 성경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도 불신하였습니다. 여름철 수양회에 학생들과 같이 바닷가로 가 게 되었습니다. 크리스 학생은 바닷가 한쪽에서 웅덩이를 파 놓 고 바가지를 가지고 바닷물을 퍼 부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수가 무엇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학생이 대답하기를 바닷물이 몇 바가지 나 되나 세어보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수는 학생을 어리석은 자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그때 학생은 말하기를 '교수님 !바닷물을 이 바가지로 셀 수 없는 것처럼 이 바다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지 으신 그 광대하신 하나님을 바가지만한 우리 머리로 어떻게 따지고 알겠습니까'하였더니 그 교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날개가 퇴화하면 날지 못합니다 날개는 쓰지 않으면 퇴화 합니다. 몸에 살이 찌면 날을 수가 없습니다. 덴마아크의 철학자 키엘케골의 들오리 일화가 있습니다. 이른 봄 들오리가 지중해에저 여름살이 하러 놀웨이 근해로 날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오리가 쉬어가라고 유흑하기에 내려와 서 집오리들의 풍성한 대접을 받으며 여러 날을 지냈습니다.하루는 들오리가 고향으로 날으는 소리를 듣고 함께 날으려 하나 살찐 탓 으로 처마까지도 오를 수 없었습니다. 봄이 와서 친구들이 공중을 날으는 소리를 듣고 쳐다보면서도 날기를 애쓰나 영영 날지 못한채 집오리 사이에서 끼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집오리가 죽을 때 함께 눈물을 홀리며 죽어갔습니다. 교회 안에는 신앙의 날개가 이처럼 퇴색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또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죄악의 살이 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영 굳어지기 전에 빨리 움직이며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거미즐에 걸리면 날아갈 수 없음니다. 우리는 처마 밑이나 숲 속에서 거미줄에 걸려 있는 곤층이나 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거미줄에 걸릴까요 먹을 것을 탐하여 함 부로 날다가 거미줄에 걸려 죽습니다. 으슥한 어두움의 곳을 헤매 이다가 거미줄에 걸럽니다. 성도는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발 걸음을 조심하지 않으면 유흑의 줄에 매이고 죄악의 줄에 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수가 없고 결국은 죽게 됩니다. e새 덫에 걸리지 아니해야 함니다. 새를 잡기 위하여 새가 나르는 곳에 새 덫을 둡니다. 새 덫에 걸 리면 날 수 없게 되고 잡혀 죽습니다. 이 세상 허탄한 덫에 걸려서 무의식 중에 죽어가는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땅히 날아가야 할 새가 날개에 이상이 있어 날지 못하면 아이들 손에 장난감이 되어 죽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가 마땅히 신령한 세계를 날으는 비둘기 처럼 되지 못하면 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신앙의 날개를 움직여 잘 날아갈 수 있도록 두가지 면에서 섭리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날개가 바람을 타고 움직이듯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감 동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말씀으로 역사 하십니다. 로마서 8장2s 절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 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오늘 이시간 도 우리들의 신앙의 날개가 움직이도록 성령님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보다 잘 날 수 있도륵 보금자리틈 흔드십니다 비둘기는 예리한 발톱이나 독 있는 침을 갖지 않으며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어도 날개의 힘으로 그는 안전한 곳으로 날아감으호 승 리를 얻숩니다. 신명기 22장 10절-11절에 보면,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그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흘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하였습니다.어미 독수리가 그의 새끼들에게 날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보금자리를 흔들어 불안하게 만들고 새끼들이 그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하 여 낮선 공중에 자기를 맡기고 날개를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깨서는 우리 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뒤혼드시고 우리를 보금자리 밖으로 밀어 내 셔서 우리가 떨어져 죽지 않도록 우리의 날개를 사용하지않을 수 없 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고의 시련이 나로 하여금 신앙의 날개를 움직이도록 하시는 것을 종종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시련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날개 가 강하고 크게 자라서 높이 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한 부인은 매우 선하고 착한 분이었는데 잔인하고 부도덕하며 술취한 남편으로 인해 항상 피로하였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실망한 나머지 그녀는 오직 신앙의 날개를 사용하여 하나님께로 날아가지 않으면 아니되었습니다. 그 시련 이 오래 계속되는 동안에 그녀의 날개는 대단히 강해져서 드디어 이 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시련이 극도에 달하였을 때에 하나님을 신 뢰하고 오직 그분에게만 의존하였을 때에 나의 영흔이 그 시련 위를 넘어 아름다운 무지개 위에 가서 평화로운 휴식처에 가 있는 느'=I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끝으로 날개를 단 영흔은 이 세상을 정복합니다 영어로 정복한다는 말을overcome이라 합니다. 그 뜻은'위에서온 다'는 뜻으로 아래에서 짓눌러 부셔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날개를 단 영흔은 세상 위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위를 날습니다. 날개를 단 영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를 잡아 맬 힘이 없으며 이를 꺾을 수도 없으니 정복자 이상의 것으로 됩니다. 날개를 단 영흔은 죄와 불행과 속박이라는 낮은 닻의 세계에서 벗어나 단연코 승리를 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의 삶이 이 날개를 달았기에 이렇게 승리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 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 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 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 4:7-9)"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곤충이나 새들에게만이 노래가 있듯이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향하는 영혼은 찬송이 있습니다. 어떤 역경과 슬픔과 곤 고함이 있을 지라도 반드시 평화의 노래가 있게 됩니다. 보금자리 박차고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종달새는 하나님만 믿는다 고 소리높여 노래하네. 짙은 구름 하늘을 가리어도 복되고 즐겁게 노래만 부르네. 곳간도 없고 심지도 않아도 노래만 부르며 염려하지 아니하며 흐린 난에 식량이 부족해도 노래만 불러서 결핍을 염려 하여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잊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네. 믿는 마음은 영원히 노래하며 날개를 가지듯이 가볍게 느끼니 평화의 샘 이 솟아 오르네. 좋은 것이 오건 나쁜 것이 오건 오늘이나 내일이나 무엇을 가져오건 이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로다. 신앙의 날개를 달고 영혼의 자유함과 행복한 노래를 부르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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