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시23:1-6)
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답고,위로가 넘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시는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의 나머지 다섯절은 이 말씀을 해설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을 믿음의 시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한줄 한줄 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인한 평화와 행복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양이라는 것입니다. 그 양에 대하여 여호와가 목자가 될 때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것 입니다. 이 선언은 무제한 적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양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목자 되신다는 신앙고백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같은 비유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양에 관하여 함께 알아봄으로 이같은 신앙고백의 근거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로 16종이나 되는 양에 대한 다른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양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양이 신자라 면 신자들도 많은 류의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양이라고 하셨을까요 물론 이것은 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낯익은 가축이고,그들이 양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을 양이라고 말씀 하신데는 깊은 뜻이 있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양에 대하여 공부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께서는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더욱 그 의미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양은 소(우)과에 속하는 가축으로 학명은 면양(Ovisaries)입니다. 대체로 회백색이고, 뿔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습니다. 얼굴은 나출하고, 몸은 섬세한 털로 싸여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살며, 건조지에 적합한 동물로 초식이고, 소화력이 아주 강해서 먹는 것은 무엇이든 거의 다 소화 시킵니다. 또 수태한지 5개월 만에 한두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양의 종류는 채모용과 육용이 있으며, 지역에 따라 그 특성에 맞는 종류가 수십여종이나 됩니다. 그 종류와 특성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며, 성경에 나오는 양을 이스라엘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대체적인 양의 습성과 특징을 살핌으로 하나님께서 왜 인생을 양이라 하시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 했는지 알아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어려서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성하여서는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왕의 직분을 수행한 자입니다. 그가 이같은 고백을 한 것에는 그의 놀라운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은 아주 소심한 짐승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배고픔에서 해방 되어야만 누워서 안식합니다. 뿐만 아니라 겁이 아주 많아서 조그만 들토끼가 목장을 가로질러 달려가도 모든 양들이 놀라서 같이 뜁니다. 한마리 양이 놀라서 달아나면 영문을 모르는 다른 양들도 따라가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인생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다 아십니다. 인생은 어리석은 양과 같아서 모든 근심,걱정거리를 다 해결한 후에야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이 세상에서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디든지 근심과 걱정이 없는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조그만한 어려움에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한 성도가 조그마한 시험에 들어도 자신도 함께 시험에 들어 하나님께로 부터 떠나며, 돌아오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양들은 잘 넘어집니다. 넘어진 양은 혼자 일어나지 못합니다. 뒤로 넘어진 양은 다리가 짧기 때문에 ,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기진해서 죽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열사는 버둥거리는 양의 뱃속에 가스를 차게 합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또 뒤로 넘어진 양은 독수리나, 늑대, 승냥이, 자칼같은 맹수의 손쉬운 먹이가 됩니다. 목자의 일으킴이 없는 양은 뒤로 넘어져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중에 낙심하여 뒤로 쳐진 사람은 뒤로 넘어진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의 형제나,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삼킬바를 찾고 있는 마귀의 손쉬운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족한 형제자매들을 서로 심방 하시기 바랍니다. 심방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일으켜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신자가 항상 넘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도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넘어져서, 고향에 돌아가 이전에 하던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가셔서 그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던 사람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를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양과 같아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아래서 선한 목자의 일으킴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양은 매우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자기가 갔던 길로 되돌아 오지도 못합니다. 길눈이 너무나 어둡습니다. 금방 자기가 풀을 뜯던 곳 조차 알지 못합니다. 또 맹수가 있는 곳에 가서도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도대체 무서운 곳을 알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을 삼키려는 마귀가 뒤에서 ,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감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스스로 돌아 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은 길을 인도하는 자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가 어렵 습니다. 우리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살찐 양은 느리고, 둔하며, 쉽게 넘어집니다. 목자가 바라는 좋은 양은 느리고, 살찐 양이 아니라, 날래고 민첩 한 양입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양은 먼길을 가기도 곤란하고, 강인한 양이 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양들이 좋은 물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여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고, 둔하고, 넘어지기를 잘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애로가 많습니다.
물질적인 성공을 거두어 비대해진 사람은, 나태한 정신을 가지기 쉽고, 인간적인 생각만으로 정신세계가 비대해진 사람은 영적인 여행에서 넘어지기 쉽고, 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습은 민첩하게 목자의 뒤를 따라가는 양과 같은 것입니다. 양들은 서로 밀고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자주 머리를 맞대고 싸움으로 서로 기운을 뺍니다. 그래서 목자는 그 머리에 기름을 발라 줍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 양들은 서로 밀고, 싸울 때 자꾸 미끄러지기 때문에 싸움이 잘 안되고, 곧 지쳐서 싸움을 그만둡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천국은 낮아지는자가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툼이 있습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 합니다. 마치 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싸우듯이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를 않습니다. 자기만을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머리에 성령님의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 그래서 싸움이 그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유능한 목자는 여름철에 양들을 이끌고 먼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은 힘들고 지루하지만, 천천히 풀을 뜯기면서 이동합니다. 그러나 산간 목장에는 싱싱한 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들은 그곳에서 새힘을 얻고, 여름내내 맛좋은 풀로 배를 불리고, 겨울 첫눈이 오면 산 아래로 내려 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길고 지루한 여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간목장에 있는 은혜의 꼴을 먹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신앙의 여행이 길고 지루하다고 해서 포기하면 그는 싱싱한 은혜의 꼴을 먹을 수 없고,홀로 떨어져 그 영혼이 죽게되고 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중에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지루하고, 긴 신앙의 여행을 하는 것은 새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돌봄아래 있는 양들은 모든것이 풍성하고, 잘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필요를 잘 알아서, 쉴곳과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양들의 요구를 압니다. 그래서 양들의 요구를 적절하게 들어주어 양들이 만족할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의 돌봄 아래 있는 신자는 모든것이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이 양이 목자를 의뢰하는 것처럼, 그를 의지하기만 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마치 양이 목자를 떠나 제멋대로 행할 때에 길을 잃고, 굶주리며 생명을 위협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털이 많이 자란 양은 쉽게 넘어집니다. 털이 자란 양은 털에 많은 오물이 붙어 몸무게를 늘이기 때문에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고, 따라서 행동도 둔해집니다. 좋은 목자는 이러한 양의 털을 제때에 깎아줍니다. 양들은 털을 깎는것을 매우 싫어해서 달아나려 하지만,목자는 이러한 양들을 붙들어서 시원스럽게 털을 깎아 줍니다. 그러면 양들은 활기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마음을 많이 두는 사람은 털이 많이 자란 양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잡다한 세상일이 그를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마치 털 깎는 목자 처럼 우리의 모든 잡다한 일들을 떨쳐 버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일에서 관심을 멀리하는 그 일을 매우 싫어해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그러한 우리를 주님은 붙들어서 세상일과 죄악으로 부터 자유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요. 양은 부드럽고 쉬기 좋은 장소를 찾으려는 의식이 있습니다. 눕기에 편하고 조금 움푹한 곳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는 번번이 넘어지고 나자빠지기 쉽습니다. 이런곳이 우선 쉬기는 좋지만,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될수있는대로 편하게 예수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편함을 구하는 자는 쉽게 넘어지고,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우묵하고, 편한곳이 양들의 마음을 끌지만, 잘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쉽게 신앙생활 하려는 유혹이 사람들을 사로잡지만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파멸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때로 불평을 합니다. 좀 편하게 예수 믿으면 안되나. 서양 사람들이 편하게 예수 믿다가 모두 넘어졌습니다. 미국이 망해가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Satan Church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미군 영내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신앙생활 하는 중에 고달픈 일이 있어도 감사 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때로 우리를 볶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양무리들 가운데 염소를 몇마리 씩 풀어서 함께 기릅니다. 그러나 염소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을 잘 기르기 위해서 입니다. 양들은 저희들끼리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을 좋아하여, 잘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때로 이동할 때도 몸을 붙여 이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저희들끼리 밟혀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양들의 성질을 잘 아는 목자는 그런 양무리 가운데,성질 고약한 염소를 두는 것입니다. 염소는 잘 들이받고, 심술이 많기 때문에 양들의 옆구리를 잘 들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몇마리만 양 무리 가운데 풀어도 ,염소를 피하려는 양들 을 적당히 흩어 놓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교회 안에도 염소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불평 합니다. 염소가 양을 받으면 괴롭듯이, 염소와 같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어서 괴롭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을 건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경천 교회는 염소가 없어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황소 처럼 억센 뿔도 없고, 독수리 같이 억센 발톱도 없습니다. 사자처럼 힘센 앞발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습니다.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은 오직 도망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다리가 짧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사나운 짐승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마음놓고, 풀을 뜯을 수가 없으며, 사나운 짐승을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 보다 힘이 세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양을 지키고 보호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사나운 마귀도 두렵지 않습니다. 양은 전적으로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다른 짐승들은 들에 나가도 얼마간 기간을 지나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 스스로 먹이를 구하며, 살 수 있지만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자기를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얼마 안가 죽거나 다른 짐승에게 먹히고 맙니다.
그러므로 길잃은 양은 목자가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양과 같아서 스스로 영의 양식을 섭취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탄으로 부터 지킬 능력도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 신자가 얼마 가지 않아 세상길로 가는 것은 이 때문 입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가 한주일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다음주에는 더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결석하는 교인을 오래 그냥 두면 안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양은 코파리를 제일 싫어합니다. 양의 축축한 점막에 코파리를 알을 쓸려고 하기 때문에, 이 코파리를 피하려고 양들은 필사적으로 목장을 뛰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기진해서 쓰러지는 양도 있고, 일단 코파리가 양의 코의 점막에 알을 쓸기만 하면 2일 안으로 구더기가 생겨 콧구멍을 거쳐 뇌로 들어가 양을 죽이기도 합니다. 또 살속으로 들어간 코파리알의 유충은 심한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 양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바위나 나무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양을 죽이는 것입니다. 양을 잘 아는 목자는 이러한 양들을 고통 가운데서 구해 주기 위하여 그 코에 아마유를 발라 줍니다, 그러면 코파리도 달라들지 않고, 양들은 두려움도 불안도 없이 조용히 풀을 뜯으며 , 쉴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러한 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파리떼와 같은 사소한 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성령님의 기름 바름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주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괴로움이 그를 엄습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도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이 양이 목자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과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 제멋대로 행할 때, 길을 잃고, 굶주리며, 생명을 위협받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모든것이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9요10;14-15)' 선한 목자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자질은 양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입니다. 그래야만 그 양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신촌교회에 있을 때 1년동안 시가서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시편23편을 강의 하면서 오늘과 같이 양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강의가 끝난 후 신현덕 장로님이 나오셔서, 아주 좋은 말씀을 들었다면서 ,제게 잠깐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족같지만 조금 첨언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일제 때 개마고원에 양들을 많이 길렀는데,웬일인지 양들이 자구 죽어가서 그 목장에서는 계속해서 만주에 가서 양새끼를 사오고, 양들을 보충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아하게 생각한 양을 파는 목장에 계시는 한 노인이 왜 그리 양을 많이 사 가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잘 모르고 죽어가기 때문에,자구 사러 온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노인이 어떻게 야들을 치며 ,목장의 직원들이 어떻게 근무하는 가를 소상히 묻고, 자기가 가서 한 일년간 목장을 돌봐주면 양들이 한마리도 안 죽을 것이고,월 50원의 급료를 약속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제의를 해서 그를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이 개마고원의 양목장에 와서는 양들과 숙식을 같이 합니다. 목장의 모든 직원들은 퇴근하지마는, 그 노인은 야우리 곁에서 단단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 매일 선잠을 자고, 아침일찍 해가 뜨기 전에 양들을 우리 밖으로 내 몰고, 저녁 해가 지면 양들을 우리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렇게하자 노인이 온 후로는 한마리의 양들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양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풀을 뜯고, 땅거미가 질 때쯤 풀을 뜯기 때문에, 이전에 목장직원들만 있을 때는 양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홉시가 넘어야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양들의 식사시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양들을 보살피는 정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 인생을 돌보시는 선한 목자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들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방어할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좋은 목자는 양들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양떼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추신 좋은 목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삶 가운데 지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영혼의 소생이란 침체하고, 지쳐있는 영혼을 되살리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여! 이 말씀을 통하여 위로와 활력을 공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주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병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시며 소생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이 말씀은 고통속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쪼ㅈ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마하나임에 있을 때 길르앗 사람 바실래가 음식을 가지고 찾아와 그를 돕고자 했습니다(삼하17:27)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되시면 이와같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하는 삶을 사십시요. 그러면 잔이 넘치는 복을 모두가 누리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는 고백을 하며 살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며, 긍휼과 자비가 한 없으신 우리 하나님의 높으신 이름을 찬양 합니다. 길잃은 양과 같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사,우리의 선한 목자 되어 주시고, 오늘도 우리의 삶을 지켜 보시고, 인도 하심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의 삶이 온전히 여호와는 나의 목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 로다라고 고백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을 생활 가운데서 확인하며 사는 순종하는 양들이 되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양에 대하여 공부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께서는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더욱 그 의미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양은 소(우)과에 속하는 가축으로 학명은 면양(Ovisaries)입니다. 대체로 회백색이고, 뿔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습니다. 얼굴은 나출하고, 몸은 섬세한 털로 싸여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살며, 건조지에 적합한 동물로 초식이고, 소화력이 아주 강해서 먹는 것은 무엇이든 거의 다 소화 시킵니다. 또 수태한지 5개월 만에 한두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양의 종류는 채모용과 육용이 있으며, 지역에 따라 그 특성에 맞는 종류가 수십여종이나 됩니다. 그 종류와 특성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며, 성경에 나오는 양을 이스라엘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대체적인 양의 습성과 특징을 살핌으로 하나님께서 왜 인생을 양이라 하시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 했는지 알아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어려서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성하여서는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왕의 직분을 수행한 자입니다. 그가 이같은 고백을 한 것에는 그의 놀라운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은 아주 소심한 짐승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배고픔에서 해방 되어야만 누워서 안식합니다. 뿐만 아니라 겁이 아주 많아서 조그만 들토끼가 목장을 가로질러 달려가도 모든 양들이 놀라서 같이 뜁니다. 한마리 양이 놀라서 달아나면 영문을 모르는 다른 양들도 따라가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인생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다 아십니다. 인생은 어리석은 양과 같아서 모든 근심,걱정거리를 다 해결한 후에야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이 세상에서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디든지 근심과 걱정이 없는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조그만한 어려움에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한 성도가 조그마한 시험에 들어도 자신도 함께 시험에 들어 하나님께로 부터 떠나며, 돌아오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양들은 잘 넘어집니다. 넘어진 양은 혼자 일어나지 못합니다. 뒤로 넘어진 양은 다리가 짧기 때문에 ,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기진해서 죽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열사는 버둥거리는 양의 뱃속에 가스를 차게 합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또 뒤로 넘어진 양은 독수리나, 늑대, 승냥이, 자칼같은 맹수의 손쉬운 먹이가 됩니다. 목자의 일으킴이 없는 양은 뒤로 넘어져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중에 낙심하여 뒤로 쳐진 사람은 뒤로 넘어진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의 형제나,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삼킬바를 찾고 있는 마귀의 손쉬운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족한 형제자매들을 서로 심방 하시기 바랍니다. 심방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일으켜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신자가 항상 넘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도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넘어져서, 고향에 돌아가 이전에 하던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가셔서 그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던 사람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를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양과 같아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아래서 선한 목자의 일으킴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양은 매우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자기가 갔던 길로 되돌아 오지도 못합니다. 길눈이 너무나 어둡습니다. 금방 자기가 풀을 뜯던 곳 조차 알지 못합니다. 또 맹수가 있는 곳에 가서도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도대체 무서운 곳을 알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을 삼키려는 마귀가 뒤에서 ,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감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스스로 돌아 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은 길을 인도하는 자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가 어렵 습니다. 우리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살찐 양은 느리고, 둔하며, 쉽게 넘어집니다. 목자가 바라는 좋은 양은 느리고, 살찐 양이 아니라, 날래고 민첩 한 양입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양은 먼길을 가기도 곤란하고, 강인한 양이 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양들이 좋은 물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여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고, 둔하고, 넘어지기를 잘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애로가 많습니다.
물질적인 성공을 거두어 비대해진 사람은, 나태한 정신을 가지기 쉽고, 인간적인 생각만으로 정신세계가 비대해진 사람은 영적인 여행에서 넘어지기 쉽고, 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습은 민첩하게 목자의 뒤를 따라가는 양과 같은 것입니다. 양들은 서로 밀고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자주 머리를 맞대고 싸움으로 서로 기운을 뺍니다. 그래서 목자는 그 머리에 기름을 발라 줍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 양들은 서로 밀고, 싸울 때 자꾸 미끄러지기 때문에 싸움이 잘 안되고, 곧 지쳐서 싸움을 그만둡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천국은 낮아지는자가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툼이 있습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 합니다. 마치 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싸우듯이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를 않습니다. 자기만을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머리에 성령님의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 그래서 싸움이 그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유능한 목자는 여름철에 양들을 이끌고 먼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은 힘들고 지루하지만, 천천히 풀을 뜯기면서 이동합니다. 그러나 산간 목장에는 싱싱한 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들은 그곳에서 새힘을 얻고, 여름내내 맛좋은 풀로 배를 불리고, 겨울 첫눈이 오면 산 아래로 내려 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길고 지루한 여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간목장에 있는 은혜의 꼴을 먹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신앙의 여행이 길고 지루하다고 해서 포기하면 그는 싱싱한 은혜의 꼴을 먹을 수 없고,홀로 떨어져 그 영혼이 죽게되고 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중에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지루하고, 긴 신앙의 여행을 하는 것은 새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돌봄아래 있는 양들은 모든것이 풍성하고, 잘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필요를 잘 알아서, 쉴곳과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양들의 요구를 압니다. 그래서 양들의 요구를 적절하게 들어주어 양들이 만족할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의 돌봄 아래 있는 신자는 모든것이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이 양이 목자를 의뢰하는 것처럼, 그를 의지하기만 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마치 양이 목자를 떠나 제멋대로 행할 때에 길을 잃고, 굶주리며 생명을 위협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털이 많이 자란 양은 쉽게 넘어집니다. 털이 자란 양은 털에 많은 오물이 붙어 몸무게를 늘이기 때문에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고, 따라서 행동도 둔해집니다. 좋은 목자는 이러한 양의 털을 제때에 깎아줍니다. 양들은 털을 깎는것을 매우 싫어해서 달아나려 하지만,목자는 이러한 양들을 붙들어서 시원스럽게 털을 깎아 줍니다. 그러면 양들은 활기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마음을 많이 두는 사람은 털이 많이 자란 양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잡다한 세상일이 그를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마치 털 깎는 목자 처럼 우리의 모든 잡다한 일들을 떨쳐 버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일에서 관심을 멀리하는 그 일을 매우 싫어해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그러한 우리를 주님은 붙들어서 세상일과 죄악으로 부터 자유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요. 양은 부드럽고 쉬기 좋은 장소를 찾으려는 의식이 있습니다. 눕기에 편하고 조금 움푹한 곳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는 번번이 넘어지고 나자빠지기 쉽습니다. 이런곳이 우선 쉬기는 좋지만,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될수있는대로 편하게 예수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편함을 구하는 자는 쉽게 넘어지고,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우묵하고, 편한곳이 양들의 마음을 끌지만, 잘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쉽게 신앙생활 하려는 유혹이 사람들을 사로잡지만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파멸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때로 불평을 합니다. 좀 편하게 예수 믿으면 안되나. 서양 사람들이 편하게 예수 믿다가 모두 넘어졌습니다. 미국이 망해가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Satan Church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미군 영내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신앙생활 하는 중에 고달픈 일이 있어도 감사 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때로 우리를 볶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양무리들 가운데 염소를 몇마리 씩 풀어서 함께 기릅니다. 그러나 염소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을 잘 기르기 위해서 입니다. 양들은 저희들끼리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을 좋아하여, 잘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때로 이동할 때도 몸을 붙여 이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저희들끼리 밟혀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양들의 성질을 잘 아는 목자는 그런 양무리 가운데,성질 고약한 염소를 두는 것입니다. 염소는 잘 들이받고, 심술이 많기 때문에 양들의 옆구리를 잘 들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몇마리만 양 무리 가운데 풀어도 ,염소를 피하려는 양들 을 적당히 흩어 놓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교회 안에도 염소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불평 합니다. 염소가 양을 받으면 괴롭듯이, 염소와 같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어서 괴롭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을 건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경천 교회는 염소가 없어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황소 처럼 억센 뿔도 없고, 독수리 같이 억센 발톱도 없습니다. 사자처럼 힘센 앞발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습니다.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은 오직 도망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다리가 짧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사나운 짐승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마음놓고, 풀을 뜯을 수가 없으며, 사나운 짐승을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 보다 힘이 세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양을 지키고 보호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사나운 마귀도 두렵지 않습니다. 양은 전적으로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다른 짐승들은 들에 나가도 얼마간 기간을 지나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 스스로 먹이를 구하며, 살 수 있지만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자기를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얼마 안가 죽거나 다른 짐승에게 먹히고 맙니다.
그러므로 길잃은 양은 목자가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양과 같아서 스스로 영의 양식을 섭취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탄으로 부터 지킬 능력도 없습니다, 교회를 떠난 신자가 얼마 가지 않아 세상길로 가는 것은 이 때문 입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가 한주일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다음주에는 더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결석하는 교인을 오래 그냥 두면 안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양은 코파리를 제일 싫어합니다. 양의 축축한 점막에 코파리를 알을 쓸려고 하기 때문에, 이 코파리를 피하려고 양들은 필사적으로 목장을 뛰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기진해서 쓰러지는 양도 있고, 일단 코파리가 양의 코의 점막에 알을 쓸기만 하면 2일 안으로 구더기가 생겨 콧구멍을 거쳐 뇌로 들어가 양을 죽이기도 합니다. 또 살속으로 들어간 코파리알의 유충은 심한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 양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바위나 나무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양을 죽이는 것입니다. 양을 잘 아는 목자는 이러한 양들을 고통 가운데서 구해 주기 위하여 그 코에 아마유를 발라 줍니다, 그러면 코파리도 달라들지 않고, 양들은 두려움도 불안도 없이 조용히 풀을 뜯으며 , 쉴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러한 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파리떼와 같은 사소한 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성령님의 기름 바름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는 주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괴로움이 그를 엄습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 보다도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이 양이 목자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과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 제멋대로 행할 때, 길을 잃고, 굶주리며, 생명을 위협받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모든것이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9요10;14-15)' 선한 목자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자질은 양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입니다. 그래야만 그 양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신촌교회에 있을 때 1년동안 시가서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시편23편을 강의 하면서 오늘과 같이 양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강의가 끝난 후 신현덕 장로님이 나오셔서, 아주 좋은 말씀을 들었다면서 ,제게 잠깐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족같지만 조금 첨언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일제 때 개마고원에 양들을 많이 길렀는데,웬일인지 양들이 자구 죽어가서 그 목장에서는 계속해서 만주에 가서 양새끼를 사오고, 양들을 보충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아하게 생각한 양을 파는 목장에 계시는 한 노인이 왜 그리 양을 많이 사 가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잘 모르고 죽어가기 때문에,자구 사러 온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노인이 어떻게 야들을 치며 ,목장의 직원들이 어떻게 근무하는 가를 소상히 묻고, 자기가 가서 한 일년간 목장을 돌봐주면 양들이 한마리도 안 죽을 것이고,월 50원의 급료를 약속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제의를 해서 그를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이 개마고원의 양목장에 와서는 양들과 숙식을 같이 합니다. 목장의 모든 직원들은 퇴근하지마는, 그 노인은 야우리 곁에서 단단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 매일 선잠을 자고, 아침일찍 해가 뜨기 전에 양들을 우리 밖으로 내 몰고, 저녁 해가 지면 양들을 우리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렇게하자 노인이 온 후로는 한마리의 양들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양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풀을 뜯고, 땅거미가 질 때쯤 풀을 뜯기 때문에, 이전에 목장직원들만 있을 때는 양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홉시가 넘어야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양들의 식사시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양들을 보살피는 정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 인생을 돌보시는 선한 목자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들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방어할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좋은 목자는 양들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양떼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추신 좋은 목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삶 가운데 지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영혼의 소생이란 침체하고, 지쳐있는 영혼을 되살리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여! 이 말씀을 통하여 위로와 활력을 공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주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병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시며 소생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이 말씀은 고통속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쪼ㅈ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마하나임에 있을 때 길르앗 사람 바실래가 음식을 가지고 찾아와 그를 돕고자 했습니다(삼하17:27)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되시면 이와같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하는 삶을 사십시요. 그러면 잔이 넘치는 복을 모두가 누리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는 고백을 하며 살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며, 긍휼과 자비가 한 없으신 우리 하나님의 높으신 이름을 찬양 합니다. 길잃은 양과 같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사,우리의 선한 목자 되어 주시고, 오늘도 우리의 삶을 지켜 보시고, 인도 하심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의 삶이 온전히 여호와는 나의 목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 로다라고 고백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을 생활 가운데서 확인하며 사는 순종하는 양들이 되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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