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밭인 교회 (고전3:3-9)
본문
우리가 계속해서 주일 오전에 고린도교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웠고, 아볼로가 그때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어떤 인간적인 지혜, 능력이나, 은사면에는 모자람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바울은 어린아이 같이 젖이나 먹는 유치한 교회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이 교회의 책망받은 근본된 이유는 인간 중심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함보다 인간의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자랑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이기 보다는 그들의 지도자를 중심하는-인본주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계속적인 시기와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이 교회가 세속화 되고 있는 것을 염려한 사도바울이 이를 고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를 보낸 것입니다. 교회관을 말할 때에 아주 알기 쉽고, 기억하기 쉽도록 가르친 말씀이 있습니다. (엡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절의 말씀을 바로 깨달을 때에 교회관을 바로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사신 교회라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십니다.지금도 교회를 주관하십니다. 교회의 주관자는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는 제일 높은 분입니다. 지금 교회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교회는 누구의 몸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어디에 연결, 연합해 있습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의 뜻대로 움직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누구를 위하여 있습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를 가르칩니까 그리스도십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렇게 우리 신일교회가 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절 말씀을 보면,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이 교회를 세웠던 바울에게 속한 자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지금 교역자인 아볼로에게 나는 속했다” 또,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께 바로 연결된 자다”-이렇게 서로 나뉘고, 시기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이를 유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행하는 어린 아이 같은 육신적인 일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했습니다. 너희들이 사람이요, 그들도, 사람이 아니더냐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든든히 하는 중요한 일을 했을지라도 그들도 사람입니다. 바울은 무엇이며 아볼로는 무엇이냐이들은 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 그래서 너희에게로 보낸 사역자, 곧 일군에 불과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도 있고, 또 말씀으로 잘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분이고, 우리들은 그 분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한 분이지 그 어떤 사람이 아닌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 보고서 신앙생활하면 안된다는 말을 우리가 곧 잘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떤 한 인간이 어떻게 유력하고, 영적으로 뛰어나도 그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큰 일 납니다. 교회사에 이런 일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행위에 실망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그리스도요, 사람이 아닙니다.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 유한한 인생을 의지하지도 말고, 인생의 겉 모습 보고 따르다가 실망하는 일도 가지면 인됩니다. 이를 인본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 하나님 본위의 신본주의의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사역자와 교인들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목회자, 사역자, 또 교인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큰 교회가 많습니다. 큰 교회를 욕을 하고, 비난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꼭 작아야하는가 꼭 대형교회가 되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앞서서 모델로 삼는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부흥을 시켜주신 것인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인한 부흥인가 하는 것을 살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부흥하게 하시면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대개 큰 교회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로서 부흥된 경우가 많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적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일수록 조심해야하는 것은 그 부흥을 시킨 것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잡고서 역사하신 것인데, 자신은 단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역자 곧 일꾼으로 여겨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신이 교회의 머리되고, 대우받고, 자기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고, 자기 제자를 만드는 일을 하는 이런 일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작은 교회든지 큰 교회든지 사역자들은 자기의 위치와 책임을 바로 알고 처신을 해야합니다. 또 교인들은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대하여 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존중히 여기고 순종해야합니다. 먼저 사역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첫째, 사역자들은 겸손해야합니다. 자신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심부름하는 사환으로서-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하여 버리면 사역자들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았고, 아볼로는 지금 목회자입니다. 밭 농사에서 씨를 뿌리고 심는 일은 중요합니다. 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귀한 일입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일년 농사를 다 짓고서 가을하고난 다음에 곡식들을 팔 때에 자기들이 수고한 수고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러나 쌀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도 88번의 농부의 손이 가야한다고하니 곡식을 팔아서 나온 모든 수입이 자기 수고의 대가로서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농사하나 짓는 데도 농부의 수고로서 되는 것입니까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곡식한 낱의 열매를 맺겠습니까 씨를 뿌린 것, 심는 것이 농사되게 합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심어도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이면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생명을 주시고, 보존케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됩니다. 물을 준 농부의 수고가 큽니까 아닙니다. 그 물을 주신이가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는 농부입니다. 제 수고와 땀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힘도, 수고할 기운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은 그 밭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 씨를 뿌리거나 심고, 물을 주었다고 곡식이 열매를 맺습니까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조건들. 햇볕, 공기, 영양, 수분, 모든 것이 다 골고루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입어 있어지게 될 때에 한 알의 씨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한 수입을 다 제 노력의 대가로 알고 감사치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고기 잡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농사짓는 자연도 그러한데, 더 영원하고, 신령하고 크고, 중한 인간영원한 구원의 농사는 어떠하겠습니까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고린도교회가 세웠습니다. 또 아볼로가 지금 맡아서 가꾸는 목회를 합니다. 이러니다른 교회는 몰라도 고린도 교회에서야 자신들이 대우 받을 만하고, 자신들을 높일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관을 바로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생각할 때에 진실로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압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을 분이십니다. 씨와 물까지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씨를 심도록 물을 주도록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해서 사역자들을 세우시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인간의 모든 노력이 다 실패로 돌아가게 될 뿐입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께 수종드는 것,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을 맡아 쓰임을 받는 일꾼 된 것만도 감사하며, 무익한 종이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종이라 종이 하여야 할 것을 한 것 뿐입니다. 해야 마땅한 자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밭인 교회의 사역은 다양하나 같은 것을 알아야합니다. (고전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교회 사역에서 은사를 따라-심는 이도 있고, 잘 자라도록 물을 주는 일도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라도록 하시는데, 이 사역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사역과 은사를 인정하고, 협력해야합니다. 심는 자가 있습니다. 또 물 주는 이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한 사람이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각 지체를 세워 교회를 돌아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역자들은 다른 사역자들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해야합니다. 또 이 사역자들은 다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단일한 목적을 세워 놓고 협력하며 나갔습니다. 은사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기억해야합니다. 자기만 하나님의 일 해야하는 것 아닙니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해야합니다.
셋째로. 사역자들은 (고전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
사역자들은 세상에서 교인들에게 상 받고, 대우 받고 하려하면 안됩니다. 사역자들은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신의 상을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입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충성된 종아! 잘하였다는 주님의 알아주심과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 보면서 사역하여야지 썩어질 면류관, 인간의 대우를 바라보면서 사역해서는 안됩니다.
넷째로, 사역자는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일군이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인식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사도는 여기서 엄청난 말씀을 합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저는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비록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이 말씀은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라는 뜻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동업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어떻게 교회의 사역자들을 상대해야합니까
교인들은-
첫째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은혜기관으로 사역자들을 세웠음을 인식해야합니다. 사역자들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 아닙니다. 사역자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 아닙니다. 사역자들을 밥 먹이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연보하고 하는 것 아닙니다. 지나치게 사람을 중심해서 분파를 짓거나 사람을 숭배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합니다.
둘째로,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고 교인들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상대해서는 안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사역자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역자 자신들이 그렇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역자들이 자기 일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것을 합니다. 누가 이 일을 함께 합니까 바울과 아볼로가 동역자인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동역자 되셔서 같이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잘되어도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이고, 못되어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인들은 이 사역자의 인간의 어떤 점보다는 그 하는 일들로 인하여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그의 하는 일이 어떠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동업하는 일을 포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손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동역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저도 선한 목자, 목자장이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결단코 실패케 하시지 않습니다. 사역자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일이 귀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직분자들입니다. 존경할 자로 알아서 존경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사역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 놓고 숭배하는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아주 가치 없는 자로 대우해서도 안됩니다. 은혜의 기관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바로 서지 못하면 그에게 속한 모든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절단이 납니다. 제자가 스승 같으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자들과 막힌 담이 없도록 노력하고, 조심해야합니다. 인간 중심으로 뭉쳐서 편당을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연결, 연합된 몸이라고 했습니다. 사역자들은 세가지를 명심해야합니다.
첫째로, 겸손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일꾼된 자가 하는 것 아닙니다
둘째로, 사역은 혼자서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한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밭인 교회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은사와 사역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인정해야합니다.
셋째로, 상 받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각각 받을 줄 알고 일해야합니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교인들은
첫째로, 사역자를 섬겨서 안됩니다. 신앙의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나 사역자들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 또 하나님이 함께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우하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순종해야 은혜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사신 교회라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십니다.지금도 교회를 주관하십니다. 교회의 주관자는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는 제일 높은 분입니다. 지금 교회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교회는 누구의 몸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어디에 연결, 연합해 있습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의 뜻대로 움직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누구를 위하여 있습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까 그리스도십니다. 교회는 누구를 가르칩니까 그리스도십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렇게 우리 신일교회가 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절 말씀을 보면,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이 교회를 세웠던 바울에게 속한 자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지금 교역자인 아볼로에게 나는 속했다” 또,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께 바로 연결된 자다”-이렇게 서로 나뉘고, 시기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이를 유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행하는 어린 아이 같은 육신적인 일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했습니다. 너희들이 사람이요, 그들도, 사람이 아니더냐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든든히 하는 중요한 일을 했을지라도 그들도 사람입니다. 바울은 무엇이며 아볼로는 무엇이냐이들은 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 그래서 너희에게로 보낸 사역자, 곧 일군에 불과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도 있고, 또 말씀으로 잘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분이고, 우리들은 그 분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한 분이지 그 어떤 사람이 아닌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 보고서 신앙생활하면 안된다는 말을 우리가 곧 잘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떤 한 인간이 어떻게 유력하고, 영적으로 뛰어나도 그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큰 일 납니다. 교회사에 이런 일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행위에 실망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그리스도요, 사람이 아닙니다.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 유한한 인생을 의지하지도 말고, 인생의 겉 모습 보고 따르다가 실망하는 일도 가지면 인됩니다. 이를 인본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 하나님 본위의 신본주의의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사역자와 교인들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목회자, 사역자, 또 교인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큰 교회가 많습니다. 큰 교회를 욕을 하고, 비난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꼭 작아야하는가 꼭 대형교회가 되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앞서서 모델로 삼는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부흥을 시켜주신 것인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인한 부흥인가 하는 것을 살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부흥하게 하시면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대개 큰 교회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로서 부흥된 경우가 많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적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일수록 조심해야하는 것은 그 부흥을 시킨 것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잡고서 역사하신 것인데, 자신은 단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역자 곧 일꾼으로 여겨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신이 교회의 머리되고, 대우받고, 자기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고, 자기 제자를 만드는 일을 하는 이런 일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작은 교회든지 큰 교회든지 사역자들은 자기의 위치와 책임을 바로 알고 처신을 해야합니다. 또 교인들은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대하여 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존중히 여기고 순종해야합니다. 먼저 사역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첫째, 사역자들은 겸손해야합니다. 자신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심부름하는 사환으로서-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하여 버리면 사역자들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았고, 아볼로는 지금 목회자입니다. 밭 농사에서 씨를 뿌리고 심는 일은 중요합니다. 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귀한 일입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일년 농사를 다 짓고서 가을하고난 다음에 곡식들을 팔 때에 자기들이 수고한 수고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러나 쌀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도 88번의 농부의 손이 가야한다고하니 곡식을 팔아서 나온 모든 수입이 자기 수고의 대가로서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농사하나 짓는 데도 농부의 수고로서 되는 것입니까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곡식한 낱의 열매를 맺겠습니까 씨를 뿌린 것, 심는 것이 농사되게 합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심어도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이면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생명을 주시고, 보존케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됩니다. 물을 준 농부의 수고가 큽니까 아닙니다. 그 물을 주신이가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는 농부입니다. 제 수고와 땀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힘도, 수고할 기운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은 그 밭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 씨를 뿌리거나 심고, 물을 주었다고 곡식이 열매를 맺습니까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조건들. 햇볕, 공기, 영양, 수분, 모든 것이 다 골고루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입어 있어지게 될 때에 한 알의 씨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한 수입을 다 제 노력의 대가로 알고 감사치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고기 잡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농사짓는 자연도 그러한데, 더 영원하고, 신령하고 크고, 중한 인간영원한 구원의 농사는 어떠하겠습니까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고린도교회가 세웠습니다. 또 아볼로가 지금 맡아서 가꾸는 목회를 합니다. 이러니다른 교회는 몰라도 고린도 교회에서야 자신들이 대우 받을 만하고, 자신들을 높일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관을 바로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생각할 때에 진실로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압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을 분이십니다. 씨와 물까지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씨를 심도록 물을 주도록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해서 사역자들을 세우시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인간의 모든 노력이 다 실패로 돌아가게 될 뿐입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께 수종드는 것,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을 맡아 쓰임을 받는 일꾼 된 것만도 감사하며, 무익한 종이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종이라 종이 하여야 할 것을 한 것 뿐입니다. 해야 마땅한 자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밭인 교회의 사역은 다양하나 같은 것을 알아야합니다. (고전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교회 사역에서 은사를 따라-심는 이도 있고, 잘 자라도록 물을 주는 일도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라도록 하시는데, 이 사역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사역과 은사를 인정하고, 협력해야합니다. 심는 자가 있습니다. 또 물 주는 이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한 사람이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각 지체를 세워 교회를 돌아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역자들은 다른 사역자들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해야합니다. 또 이 사역자들은 다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단일한 목적을 세워 놓고 협력하며 나갔습니다. 은사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기억해야합니다. 자기만 하나님의 일 해야하는 것 아닙니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해야합니다.
셋째로. 사역자들은 (고전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
사역자들은 세상에서 교인들에게 상 받고, 대우 받고 하려하면 안됩니다. 사역자들은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신의 상을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입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충성된 종아! 잘하였다는 주님의 알아주심과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 보면서 사역하여야지 썩어질 면류관, 인간의 대우를 바라보면서 사역해서는 안됩니다.
넷째로, 사역자는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일군이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인식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사도는 여기서 엄청난 말씀을 합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저는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비록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이 말씀은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라는 뜻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동업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어떻게 교회의 사역자들을 상대해야합니까
교인들은-
첫째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은혜기관으로 사역자들을 세웠음을 인식해야합니다. 사역자들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 아닙니다. 사역자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 아닙니다. 사역자들을 밥 먹이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연보하고 하는 것 아닙니다. 지나치게 사람을 중심해서 분파를 짓거나 사람을 숭배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합니다.
둘째로,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고 교인들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상대해서는 안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사역자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역자 자신들이 그렇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역자들이 자기 일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것을 합니다. 누가 이 일을 함께 합니까 바울과 아볼로가 동역자인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동역자 되셔서 같이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잘되어도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이고, 못되어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인들은 이 사역자의 인간의 어떤 점보다는 그 하는 일들로 인하여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그의 하는 일이 어떠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동업하는 일을 포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손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동역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저도 선한 목자, 목자장이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결단코 실패케 하시지 않습니다. 사역자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일이 귀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직분자들입니다. 존경할 자로 알아서 존경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사역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 놓고 숭배하는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아주 가치 없는 자로 대우해서도 안됩니다. 은혜의 기관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바로 서지 못하면 그에게 속한 모든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절단이 납니다. 제자가 스승 같으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자들과 막힌 담이 없도록 노력하고, 조심해야합니다. 인간 중심으로 뭉쳐서 편당을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연결, 연합된 몸이라고 했습니다. 사역자들은 세가지를 명심해야합니다.
첫째로, 겸손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일꾼된 자가 하는 것 아닙니다
둘째로, 사역은 혼자서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한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밭인 교회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은사와 사역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인정해야합니다.
셋째로, 상 받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각각 받을 줄 알고 일해야합니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교인들은
첫째로, 사역자를 섬겨서 안됩니다. 신앙의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나 사역자들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 또 하나님이 함께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우하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순종해야 은혜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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