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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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에 헤론이라는 의사가 있다. 헤론은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수재로서 그 대학의 교수회가 수련을 마친 후 교수로 남아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한국의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는 한국의 선교사로 처음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언더우드보다 두 달 늦은 1885년 6월에 내한하여 알렌의 제중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알렌이 선교사직을 물러난 후에 그는 제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밤낮 없이 헌신했다.
한국에 온 지 5년 뒤인 1890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을 때,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의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지만 그는 폭염 속에서도 서울까지의 먼 거리를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자신도 이질에 걸려 3주간을 앓다가 7월 16일 이역만리 낯선 땅에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놓고 순직함으로써 그의 짧은 생을 선교지 한국에서 마쳤다. 그의 시신은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에 최초로 묻혀 자신의 생을 밑거름으로 성장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에 온 지 5년 뒤인 1890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을 때,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의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지만 그는 폭염 속에서도 서울까지의 먼 거리를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자신도 이질에 걸려 3주간을 앓다가 7월 16일 이역만리 낯선 땅에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놓고 순직함으로써 그의 짧은 생을 선교지 한국에서 마쳤다. 그의 시신은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에 최초로 묻혀 자신의 생을 밑거름으로 성장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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