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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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는 말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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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言語)를 정지당해 보아야 비로소 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저는 지금 잠시 언어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가장 먼저 전해야 하는 내용이 제 입에다 오른 손 끝을 대고는 그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라는 의사입니다. 그 표현이상대방에게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로 전달되든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로 전달되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분명한 것은 제가 말을해선 안된다는 사실 뿐입니다. 이미 저를 알고 계셨던 분은 눈이 휘둥그레 지며 "도대체 어쩌다가 그래요"라며 되묻습니다. 그래도 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모르는 이들은 제가 농아인줄 압니다. 그래도 저는 어쩔수가없습니다.벌써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목이 아프고 따가왔지만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주일에 4일 이상 집회나 강의가 잡혀있습니다. 그중 최소한 두번은 두시간을 혼자 진행해야 하고 나머지 집회도 제 위주로 프로그램이 잡혀있어 저는시종 혼자 떠들게 되어있습니다. 2월에 다섯번의 강의가 있었는데 찬양강의는쉬는시간 없이 두세시간씩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떤 곳은 음향시설이 너무나빠 차라리 육성으로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두 세시간을 마이크 없이 강의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또 집회입니다. 1월 2월에도 목이 아프고 따가왔지만 하루하루 무심코 넘겼습니다. 2월에만 20여회 개인 혹은 팀 사역이 있었고 2월말엔 3박4일동안 꼬박 찬양을 인도해야 하는 끔찍한책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지경에 그 다음 이틀 잇달아 구룡포 월요집회가 계속되었습니다. 도망갈수도 피할수도 없는 상황들입니다. 드디어… 목의 상태가 심각하게되었습니다."그렇게 좋은 약을 드렸는데도 소용이 없다구요" 약사선생님이 고함을 지르셨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절대 목을 쓰면 안된다"고 했는데 이틀후 목요찬양집회 두시간을 또 진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저는 이틀후대전에서 두시간 반 강의를 또 하고 주일에 잇달아 찬미팀 집회까지 인도해야했습니다. 자살행위였습니다. 물론 목이 쉬어서 쇳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다만 목이 따갑고 몹시 쓰리다는 것만으로 동료들에게 엄살을 떨 수도 없었고, 이미 오래전에 잡혀있는 일정이라 펑크낼 수도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대전 집회를 다녀온 다음날만 해도 월요집회인데다 계명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강의가 잡혀있었습니다. 월요집회는 다른 단원에게 진행을 맡겼지만 계명대 강의는 펑크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경에 '멀쩡한 것 처럼' 30분강의까지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공식적 언어였습니다.의사선생님과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바가지, 세숫대야로 뒤집어 썼습니다. "죽고싶어서 그래요 이거 나중에 심각하게 돼!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구! 왜 그렇게 말을 안들어" "아유! 아유! 미련 - 미련!!"그래서 3월 둘째주 드디어 최종 선고가 내려졌습니다."명령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쓰고 치료를 해도... 당신 계속 그런 식으로목 쓰면... 소용없어요. 지금부터 일체 - 말하면 안돼요! 아시겠어요" "...네!""말하지 말라니깐" "...(끄덕끄덕)" "상황을 두고봅시다."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와는 우리끼리 통화는 수화가 유일한 대화수다이 되었습니다. 찬미식구들에겐 손짓 발짓에다 글씨로 의사전달을 해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을 못하니 사람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입니다.찬미의 성숙이는 제가 농아인줄 착각하고는 자기도 막 글씨를 써서 내밉니다. 바보! 멍청이! 저는 온갖 인상을 쓰며 제 귀를 가리키며 손으로 OK신호를 마구 내 흔듭니다. 시내에 나가면 서점이나 가게 사람들이 다 저를 벙어리+귀머거리로 대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대접을 얌전하게 수용하는 것 뿐입니다. 집안에서는 아내의 계속되는 수 많은 질문들과 제가내 뱉는 유일한 소리인 '휘파람'만이 들릴 따름입니다. 아내가 이것 저것 물으면 저는 'Yes'나 'No'의 신호만 응답할 뿐입니다. 저에게는 '...할 것 같아' 따위의 추측이나 '만약...한다면'같은 가정(假定)의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육체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유아 2∼3세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말을 하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시적이긴 해도 벌써 열흘 째 언어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찬일입니까 이건 취미생활도 아닙니다. 이건 무슨 연습이나 훈련도 아닙니다.현실입니다.저에게는 이 새로운 경험()이 천금보다도 값진 교훈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매우 높습니다. 이미 열흘가까이를 통해 저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닫고 있습니다. 제 생에에 잃어나는 작은 일 하나라도 제겐 무의미한 것이 없고 그것이기쁨이든 고통이든 다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 된다는 사실이 이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이번 경험은 저에게, 인간에게 주어진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그리고경이로운 하나님의 축복인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간사함의표적이기도 합니다. 꼭 뭐가 없어져봐야 그것의 소중함과 그것에 대한 감사를깨닫게 되는 우리의 속성 말입니다. '언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침팬지나 돌고래들과 같은 동물들에게도 수십가지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인간에게 주어진 '언어'에 비하면 그건 언어도 아닙니다. 제가 지금하고 있는수준이 아마도 고릴라정도 될까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런 몸짓은 '말'이 아닙니다. 목청과 이상한 근육질의 혀와 입안의 공간, 그리고 이빨들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려졌을때 나오는 그 기이한 수천 수만가지의 소리들... 그것들이 어떤 질서에 따라 조합되어졌을때 이루는 '내용' 그리고 그것의 '능력'들....오 - '말'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사람들에게 '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말을 정지당해 보아야 말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축복도 어떤 이에겐 축복으로 남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겐 저주거리가 될 수도있습니다. 그것의 참 가치를 망각했을때입니다.독일의 어느 병원에서 혀암으로 혀 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 젊은이가 수술실앞에서 마취 직전, 의사로부터 받은 이 질문은 우리는 심각히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 이제 당신은... 말을 못하게 됩니다. 영원히!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을 하십시오."이 땅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이 기회앞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있는 말들을내뱉으며 살아야 할까요 독일 청년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침묵하다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조용하고도 분명히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눈을 감고 마취의에게 몸을 맡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이 많은 세상에, 값지고 소중한 말들이 제 입에서 몇마디나 나왔던가를생각하는 일은 차라리 고통입니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주님께서 저에게서 '언어'를 영원히 제거해 버리신다면 저는 미쳐버릴 것입니다. 부모님과 아내와 형제들에게, 내 주위의 믿음의 가족들에게 ... 못다 전한 말들이 너무너무 많기때문입니다. 그날이 오기전에... 사랑의 말, 감사의 말, 온유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말, 위로와 격려의 말,... 이 소중한 말들을 강물처럼 내 입에서 흘러나오게하리라 오늘 저는 다짐해 봅니다.주님을 만난 이후, 제 입에서 더러운 욕설은 결코 나오지 않게 하리라 결심했었던 저였지만, 욕지거리보다 더 가증스럽고 무섭고 더러운 수 많은 언어들이제 입에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모함, 쑥덕거림, 비난, 정죄, 불평, 원망, 거짓, 증오, 저주의 그 무수했던 언어들...공연히, 이 지경이 되었다고 '농아'들의 심정을 좀 알 것 같다는 따위의 말은하고싶진 않습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완전한 '농아'가 되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혀 들을 수도 없고 전혀 말할 수도 없는이들입니다. 저의 처지는 그들에 비하면 사치입니다. 호사스러움 입니다.엊그제 아침 성경을 읽는데, 마태복음 12장 36절의 주님의 말씀이 커다랗게확대되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어느 교회 바닥에서 주워 애지중지보관하고 있던 시 한편이 생각납니다.낡은 종이에 복사되어 있는 이 시는 지은이가 표시되지 않는 '말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저는 그것을 꺼내 조용히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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