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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불길한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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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역사상 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성비가 매우 불균형한 상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13세기 십자군 전쟁, 18세기 유럽의 30년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때 남자인구가 여자인구를 크게 앞섰다는 것이 결과론적인 분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마빈 해리스의말을 거꾸로 얘기하면 성비가 불균형할 때 인류는 재앙을 눈앞에 두고있다는 말이 된다.그렇다면 성비의 파괴는 왜 일어날까. 인구학자들은 전쟁으로 인한 남성의 부족을 우선적으로 든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이른바 '여초'(女超) 현상은 그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분석이다. 에스키모나 유목민의 예가 이를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에스키모의 성비는 여성 1백명당 최하 남성이 75명까지 되는 곳도 있었다. 의사들은 에스키모들이 채식을 거의 하지않는 식생활로 인해 체질이 산성화돼 여아의 출산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분석했다. 에스키모 사회의 여성초과는 일부다처제의 풍습과 함께 손님에게 아내와의 잠자리를 갖도록 하는 것과 같은 기이한 성풍속을 낳았다.약탈경제로 생활하는 유목민의 경우는 잦은 전쟁으로 인한 남자의 사망 때문에 항상 여성의 수가 많았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는 이런 성비왜곡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유목민의 경우도 여성초과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여성초과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으로 인한 남성부족은 한 세대가 지나면 메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전쟁 뒤에는 평시보다 남성이 태어나는 비율이 높아 성비의 정상적인회복이 빨리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도 6·25전쟁 뒤에 경험한 것이다.6·25전쟁이 끝난 뒤 53년부터 3년여 동안 우리는 베이비 붐을 맞았다.이들이 성장해 결혼적령기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의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여자의경우 자신들과 결혼해야 할 50년 전후에 태어난 남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30대 초중반의 연령층에 노처녀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란분석도 있다. 그러나 역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반대의 경우다. 인류학자들은 원시부족의 예를 들어 여자의 숫자가 줄어들면 남자들이 포악해져 사회가 불안해지고 전쟁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마존강 유역의 야노마모족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인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남초현상의 원인은 남아선호 사상 때문이다. 동서양을 떠나 남아선호사상의 뿌리는매우 깊다. 고대 때부터 사람들은 아들을 낳는 방법에 관심이 높았다.이리스토텔레스는 침대를 남북방향으로 놓고 자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탈무드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있다. 또 고대 그리스도 철학자아낙사고라스는 성행위 때 오른쪽으로 누우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말하기도 했다.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로 태아성감별과 낙태가 가능하기까지 전쟁을제외하면 인간의 선택에 따른 성비파괴는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대신 사회적 구조인 문제로 인한 성비불균형이 존재했다. 특정 계층의 여성독점에 따른 것이다. 중세유럽 때 지배계층의 남성들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외형상으로는 일부다처제를 지키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러 명의 여성을 거느리고 있었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됐던 중국은 이보다 더욱 심했다. 그 결과 하층계급은 언제나 여자가 부족했다.가난한 많은 남자들은 노총각으로 평생을 지내야했다. 당시 매춘이 성행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살해되고 버려지는 중국의 여아들미국도 한 때 남성초과가 사회 문제화한 적이 있었다. 서부개척 때 남자들은 여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동부에서 신부를 사왔다. "서부로 간 여인들"(Westward the Women)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내용을 다뤘다. 이 영화에는 우편으로 자신을 구입한 남편을 만나러 가는 여자를가득 태운 역마차가 등장한다.미국의 경우도 인위적인 성비파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인도에서 낙태를 통해 이뤄지는 남성초과는 멀지않아 전지구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특히 중국과 인도는 남자아이를 얻기 위해 여아살해 마저 서슴지 않고있다. 중국에서는 젊은 남자가 결혼을 위해 몇 년치 월급에 해당되는 돈이나 가축을 지참금으로 내놓고 있다. 신부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반면에 한편에서는 미래의 신부인 여아를 외면하고 있다. 94년 세계전체의 성비는 여아 1백명당 남아 101.5명으로 엄청나게 높다. 이 추세대로라면 20년 뒤 신부의 수가 1백명가량 모자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통계에는 남아의 비율이 105.5로 나온다. 결국 12%에 해당되는 1백70만여 명의 여아들이 매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사라진 여아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가장 많은 수는 출생신고를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다. 혹자로 불리는 아이들이다. 두번째로 많은 경우는 버려지는 아이들이다. 중국 남부 대도시 변두리의철길 주변에는 일자리를 얻으러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이 버리고간 여아들이 많이 발견된다. 끝으로 그 수는 많지는 않지만 살해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인구억제를 위해 70년대부터 시행해 온 1가구 1자녀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인도의 여아 인공유산률 45%나인도의 상황도 심각하다. 인도에서는 여자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갖고가야 한다. 다른 말로하면 남자 아이는 장래에 확실한 소득이 보장되는재산이라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아를 낙태시키고 있다. 인도의 경우 인공유산 비율은 남아 25%에 비해 여아는 45%에 달한다. 날마다 3천명에 이르는 여아가 유산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태아의성감별이 금지되기 전까지 "지금 5백루피를 들여 나중에 들 50만루피를절약하세요"라는 게 산부인과의 선전문구였다. 시집보낼 때 지불해야하는 천문학적인 지참금 대신 낙태를 하라는 말이다. 가난한 시골 농부들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이밖에 여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죽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아 살해나 유기까지는 가지 않지만 우리도 태아성감별과 낙태를 통해인위적으로 성비를 파괴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도전. 전문가들은지금부터라도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큰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1996. 7. 4 한겨례 21 / 아들.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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