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제물
본문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참으로 차원이 높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참 중요한 말씀이다. 벧후1,5-6도 그렇다.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는 절제, 절제 다음에는 사랑 - 이것을 공급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좋은 것이로되 믿음만 고집하고 있는 동안에 독선에 빠지기 쉽다. 역시 믿음에 덕이 필요하다. 또 지식이라는 것은 교만하게 하기 쉽다. 자기 주관에 빠져들어가니까. 그러므로 지식에는 절제가 따라야 하고 또 사랑이 따라가야 한다. 쉽게 말해서 사랑 없는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고전13,1-). 우리가 비판도하고 주장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옳다고 할 것이지만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안된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매도 대고 교훈을 한다. 그러나 꼭 잊지 말 것은 거기에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교훈을 받는 입장에서도 부모가 나를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신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사랑을 놓지면 안된다. 부모가 "너를 위해 하는 얘기"라고 하지만 그게 나를 위한 얘기라고 들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개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나는 너를 미워한다"하면 개는 좋다고 꼬리를 친다. 그러나 "나는 널 사랑한다"하고 꽥 소리지르면 개는 확 덤비고 문다.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했으냐 비워한다고 했으냐가 문제 아니다. 목소리가 높았느냐, 눈빛이 사랑스러웠느냐 사나웠느냐가 문제인 것이다.모름지기 사랑이 있고 지식과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아직은 미숙한 형제이면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이게 사랑이다. 내일은 굳게 설 것이니 그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중요한 결론을 내린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드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즉 내 자유함이 약한 자에게 거리끼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덕을 세워야지, 사랑이라는 그 큰 법, 그 규범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지식은 좋은 것이로되 사랑안에 있어야 하고, 자유가 좋은 것이로되 덕을 세울 수 있는, 그러한 자유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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