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우리끼리만

본문

우리네 문화 속에서 타민족과 우리를 구별하는 특성을 찾아보자면 많은 것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언어적인 습관 속에서 우리만의 특징적인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이 '우리'라는 말의 남용()을 지적할것입니다.우리는 정말 '우리'라고 하는 말을 많이도 사용합니다. 하루중 우리들 사회 속에서 쓰여지는 '우리'라는 말을 셈한다면 엄청난 치수 개념을 도입해도 모자를 것입니다. 물론 다른 민족들도'우리'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리'와우리들의 '우리'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어에서 우리란말은 'We'라고 표시합니다. 이것은 일인칭 단수 'I'의 복수형입니다. 독일어에서는 'Wir'라는 말이 우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 역시 'Ich'라고 하는 일인칭 단수의 복수형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우리'는 이들 서구인들의 개념처럼 단순히'나'의 여럿 모인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누라','우리 엄마', '우리 남편', '우리 아들' 등등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우리의 '우리'는 단순히 '나'의 복합체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로 연결되어진 유기적인 집합체를의미합니다. 운명 공동체라고도 할까요 '우리'라는 것은 돼지우리, 소 우리, 말 우리, 닭 우리 등과 같이 일정한 공동체 내의 집단을 말할 때 사용되어지는 언어입니다. 돼지우리 내의 돼지들은똑같은 운명 하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일을 보고, 함께 뒹굴며, 그리고 함께 잠을 잡니다.이처럼 '우리'라는 언어가 함주하고 있는 의미는 끊을래 끊을 수 없는, 서로가 깊은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운명공동체적인 결속감입니다. 즉 우리라고 칭하는 부류 속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우리라는 공동체의 성원들 중 단 하나라도잃게 된다면 자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버린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 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중 하나의 기쁨은 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우리는 마치 세포와도 같은 모임입니다.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상호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세포처럼 우리네 우리는 피보다 더 진한 동일한 운명 아래 모여있다는 심각한 확신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요즈음 이 우리가 점점 흩어져 '나'라고 하는 개인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몹쓸 것만 전해 주는 서양 놈들의 덕분인지 우리 사회 내에 서서히 이 '우리'라는 의식이 소외되고 있습니다.'우리 집만 잘살면 돼!','우리가 손해 보는 게 없는데 뭐!','우리 교회만…','우리 목사만','우리 부만','우리 자식 놈만','우리 장사만....'강력한 운명 공동체로서 자신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계 속에서 '나'를 생각하던 우리네 '우리'는 양놈들의 개인주의, 실용주의에 밀려 철저한 이기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 친구의 넋두리가 생각납니다."참,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지난 추수 감사절이었거든... 교회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웬 거지 하나가 기웃기웃하더라. 내가 보기엔 한 열흘 정도는 굶었겠더라. 움푹 파인 광대뼈에다 거슴푸레한 누더기 한 장 걸치고 눈에는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듯한 물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끝내 배고픔을 이길 수 없었던지 주방 쪽으로 가 밥 좀 달라는 시늉을 하는 거였어. 그땐 가뜩이나 많은 신자들이 들끓어 주방일 하는 분들의 손길도 바빴고짜증도 무진장 쏟아질 판이었지. 그래도... 아휴, 주방 담당하는집사님 한 분이 힐끈 그 거지 양반을 쳐다보더니 코를 씰룩거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눈쌀을 찌푸리더라. 그러더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비닐 봉지 하나 주어다가 밥 몇 덩어리와 김치 한가지를 섞어 거지 양반 쪽으로 휙 집어던지더라. 귀찮으니까 빨리 꺼지라는 투로... 그리곤 고고하게 주방일 을 계속하는 거였어.젠장 나 같으면 한방 쥐어박고 싶었을 텐데... 더 기가 찬 일은개밥 주듯이 내 팽개친 그 비닐 봉지 속의 밥 덩어리를 정성스레받아 쥔 그 아저씨는 공손히 몇 번이고 절을 하는 거였어.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니까 이번엔 그 집사님이 여기가 어딘데 그런 차림으로 밥을 먹으려고 하느냐고 꽥 소리를지르는 거야. 이번엔 그 아저씨보다 내가 먼저 튀어나갔지. 제기랄, 더러워서.... 이런게 사랑을 주는 교회의 모습이라니...."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던 그 친구의 눈에도 적잖은 물기가 보였습니다.어쩌면 지금의 교회도 이 변질된 '우리'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에수님의 방문도 과감히 걷어찰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라는 이름으로....오늘따라 바람이 무척 차게만 느껴집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8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