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조선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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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의 소각에 항의하여 미국 동양함대가 출동한 것은 1871년 신미년의 일이다. 미국 육전대는 강화도 광성포대에 상륙 백병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맨처음 이 포대에 기어올라온 장교가 바로 매키 중위였다.포대에 올라서자마자 이를 겨냥하고 있던 한 용감한 조선 병사의 창을 맞고 전사했다. 이 조선 병사는 뒤이어 넘어오는 실리 소령에게 달려 들었으나 소령의 옷소매를 찢고 찰과상을 입혔을 뿐이요쓰러져 쏜 소령의 권총에 이 용감한 조선 병사는 죽고만다. 실리는 그후 미-스페인 전쟁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앨버트 가스텔의 이 한-미소전쟁 전말기록에 이렇게 씌어 있다.[조선군은 용감히 저항했다.그들은 항복이란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자들은 돌과 흙을 던지며 대어들었다. 전세가 결정적으로 불리해지자 살아남은 조선군 1백여명은 성벽을 넘어가 강물에 투신하고 더러는에 의해 내려지고 조선땅에 최초로 성조기가 올랐다. 48시간의 백병전에서 조선군은 2백43명이 전사하고 미군은 매키 중위외 3명이 전사했다.신미년의 이 한-미전쟁에서 최초로 전사한 용감한 조선 병사는 강계 포수 출신의 명사수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누가 누군지 이름도 남기지못했는데 그 전쟁에서 최초로 전사한 미국 병사는 이름도 알려지고 지금도 미 해군의 우러름속에 영생하고 있다.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교회에 가보면 좌우 벽면에 영웅적으로 싸우다 죽은 해군 장교들 추모패가 촘촘히 박혀있는데 그중 강단 오른편 가장 상석에 눈에 띄게 박혀있는 것이 이 매키 중위의 추모패다. 그리고 당시 광성포대에서 노획한 수자기와 포등 전리품은 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매키 중위에 대한 추모는 그로써 그치지 않았다.이 신미양요의 전리품 가운데 일부를 당시 켄터키에 살고 있던 매키 중위 어머니에게 기증하여 자식잃은 설움을 위로했던 것 같다.그후 어머니는 이 전리품을 가 이를 입수 고국에 기증하기로 했다 한다. 그 전리품은 당시에 조선병사들의 군화였던기름으로 방수된 진신과 대나무로 만들어 옻칠한 군용베개 그리고 [금고] 라 씌인 군기다. 금고는 징과 북이란 뜻으로서 북을 치면 진격을, 징을 치면 진격을 멈추라는 신호기다. 이 세상 샅샅이 뒤지면 이처럼 알게 모르게 흘러가 숨겨져있는 전통문물이 하나 둘이 아닐것이다.그것을 훑는 저인망 문화작업을 정부차원에서 시도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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