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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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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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하! 그 사람의 마지막 유언은 '오직 예수'였습니다.한 때는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었던, 그도 죽이고 나 또한 죽어 버리자 수 없이 작정했던 그 사람이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유언으로 남긴 말이 '오직 예수'였습니다.저는 고아였읍니다. 고아원에서 고교 3년을 졸업하고 조그만 건설회사에 취직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같은 회사에 김태호란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어찌나 신실했던지 총각이지만 직원들은 모두 그를 총각집사라고 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고아라서였는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고아로 자라면서 상처받았던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기도로 치료해 주려고 애썼고 저 또한 그에게는 무슨 말이고 다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한번도 사는 게 힘들다는 애기를 하는 적이 없었고 누구도 나쁘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는 한없이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제 마음이 평안했고 기뻤습니다. 우린 자주 만났고 '아, 이게 사랑인가보다'라는 감정까지 갖게 되었습니다.그럴 즈음 우연찮게 친구를 따라갔다가 중심가에 번듯한 싸롱을 경영하고 있는 젊은 사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박제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외모도 뛰어나게 잘 생기고 매너가 세련된 신사였습니다. 태호씨와의 데이트는 고작 전철을 타고 여기저기 달리는 것이었고 커피 한 잔값 아끼려고 자동판매기의 커피 한잔을 뽑아서 몇 모금씩 나눠 먹는 데이트였지만 그 사람과의 데이트는 제 처지에 황홀하기만 한 것이었습니다.내가 한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호텔 라운제에서의 데이트는 가난한 밑바닥 사랑의 비참함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했을 뿐 아니라 태호씨를 잊어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박제하의 선물 공세는 신데렐라가 부럽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어느날 밤, 저는 계획된 일처럼 그에게 강제로 능욕당했고 그의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차츰 변해 갔습니다.무섭게 딴 판의 얼굴로 변해 갔습니다. 배신도 아닌 '비참한 버림받음'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원했기에 직장도 그만 두었던 저는 갈 곳도 없었습니다.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제 앞에 태호씨가 나타났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태호씨는 전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저를 대해 주었습니다. 그이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지우려는 저를 말렸습니다. 저는 천사와 악마를 두사람에게서 동시에 보는 듯했습니다.진정 태호씨의 사랑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그는 박제하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주변에 알리고 저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받아서 4년이라는 세월을 아빠가 되어 길러 주었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청렴하게 일했던 그이는 사장님의 신임을 얻어 계속 승진했고 우리 사는 형편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저 사이에 아기도 잉태하게 해주셨습니다.우리가 모든 걸 잊고 행복하게 살기 시작할 때 우리 앞에 박제하가 나타났습니다. 인생의 실패자가 된 그 사람은 아들을 내놓던가 사업자금을 내놓던가 하라고 우리를 협박했습니다. 짐승이나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의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저와 달랐습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방 두칸의 전세금을 한 칸으로 줄여서 그가 요구하는 액수를 건네 주고 예수님을 믿어야 새사람이 되어서 잘 살 수 있다고 복음까지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짐승과 같이 변한 그 사람은 그 후에도 계속 찾아와서 저와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남편은 그때마다 제가 모르게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습니다. 박제하를 미워하는 마음은 옛날보다 더 불일 듯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지 오랜 제가 말입니다.지난 해 봄, 시립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박제하의 연락을 받고 남편이 달려갔을 때 그는 이미 불치의 간질환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그는 마지막으로 저와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가 아버지로 밝혀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자는 강제로 남편의 손에 이끌려 그 사람 앞에 가야 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남편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사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그렇게 때문에 저란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까스로 울음을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런 저와 그 사람을 번갈아 보던 아이가 그 사람에게 '아저씬 누구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아이를 눈 속에 새길 듯 오랫 동안 지켜보다가 세상에서 너를 제일 좋아하는 친척 아저씨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사 그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미움의 불길이 서서히 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그리고 남편은 나를 용서했으나 나 자신이 용서할 수 없었던 깊은 상처까지도 뜨겁게 뜨겁게 치유되는 것을 느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남편은 짧지 않은 그의 병원 입원비 마련을 위하여 또 한번 전세 보증금을 줄여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월곡동 산동네로 이사하던 그날,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박제하 그 사람은 '오직 예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그날 남편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삶 다 살고 떠나는 날 박제하 그 사람처럼 '오직 예수' 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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