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교회를 질타하는 본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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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T. S. 엘리어트가 노래한 그 4월이 되었다. 4월에는 고난절과 부활절 그리고 4.19가있다. 그래서 4월은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한반도의 천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명상하고, 어떻게 절망적인 현실에 부활신앙을 가지고 희망 속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할 것인가를 묻게된다. 이러한 때에 기억해야 할 신앙인이 디트리히 본회퍼이다. 본회퍼야말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어떻게 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여준 신앙인이었다.4월 9일은 독일의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39 세 때인 1945년 히틀러 정권에 의하여 처형 된지 56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순교자적 죽음은 오늘도 신앙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고자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고 있다. 군사정권시절 불의한 세력과 싸워 감옥에 갇힌 젊은이들에게 본회퍼의 옥중서간은 얼마나 많은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가.본회퍼는 그의 사후 새로운 신학을 만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으며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였고 평화신학과 기독교 평화운동의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세계교회운동의 주제가 되고 있는 ‘정의,평화 그리고 창조질서의 보존’ 운동의 시발도 1934년 본회퍼가 덴마크 파뇌에서 제안 한 ‘평화를 위한 세계교회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스라우에서 태어나 튀빙엔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21세 때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가리켜 후일 칼 바르트는 신학적 기적이라고 하였다.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도 하였고 목회도 하였다. 독일의 히틀러 나치정권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의 양심적 지식인과 신앙인은 저항하였고 그들은 감옥으로,집단수용소로,교수대로,총살형의 형장으로 끌려갔다. 본회퍼 역시 연구실에서 편안하게 연구에 집중하고 가르칠 수만 없었다. 그는 교회를 향해 박해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면서 “유대인을 위하여 소리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안 찬가를 부를 수 있다”고 갈파하였다. 그 자신도 마침내 히틀러를 제거하는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고 이 일로 체포돼 2 년간의 감옥 생활을 한 후 종전 직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러한 본회퍼의 일생은 모세의 ‘십계’처럼 영화화돼 지난해 구미 각국의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본회퍼는 십자가와 연관시켜 고난의 의미, 순종하는 신앙, 참된 제자의 길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었다. 본회퍼는 당시 독일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태도를 비판했다. 독일교회는 행위없는 믿음, 순종없는 신앙, 십자가 없는 은혜를 가진 교회이며 이것을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지닌 교회라고 질타한 것이다. 본회퍼는 기독교의 은혜는 본래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라고 강조했다. 값비싼 은혜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부름에 순종하는 신앙,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 고난에 동참하는 제자의 길을 가는 삶, 십자가 아래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별된 것은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구별하는 시금석이다. 기독교의 축복은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라 기복을 강조하는 샤머니즘일 뿐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십자가를 통해 얻어지는 부활 고난을 통해 얻어지는 영광이다.21세기 첫 번째 고난절과 부활절을 맞아 그리스도의 부름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부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제자의 길임을 깨닫는 기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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