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농군학교 가업
본문
"땡땡.땡땡땡.땡"새벽 5시.여명이 시작되는 시간.포탄피로 만들어져 유난히 날카로운 종소리가 37년째 경기도 하남시 가나안농군학교의 하루 시작을 알린다."하나/둘/하나/둘/우리는/할 수 있다"곧이어 학생들의 구호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새벽기도를 마친 청년학생들이 운동장을 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학생들은 공무원 근로자 농어민후계자 회사원 등 다양하다.이들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농군학교의 정신아래 오전에 체력단련과 정신교육,오후에 땅을 파며 노동의 신성함을 익힌다.이 학교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김평일씨(58.가나안교회 장로)와 그 가족들.설립자인 부친 김용기 장로(88년 소천)의 대를 이어 2대째 선친의 신앙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김용기 장로는 지난 62년 이 학교를 세운 뒤 `한손엔 성경,한 손엔 삽'을 들고 노동을 통한 정신계몽과 선교활동에 몸을 바쳤다.그동안 거쳐간 연수생만 55만5천여명.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끈 인재양성에 큰 역할을 해왔다.부친에 이어 가나안농군학교 제1교의 교장이 된 김평일 장로는 연수생들을 교육시키는 일외에도 부친을 존경하고 따르면 서 자연스럽게 익힌 `효정신'을 국내외에 알리기에 여념없다.경제발전과 함께 점차 잊혀져 가는 우리만의 효정신을 되찾아 서구와 다른 우리만의 가정문화를 가꾸자는 것."부친과 함께 일을 하면서 `효'란 신앙생활속의 `올바른 섬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자식이 부모를 섬기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입니다"김장로는 그러한 부친을 그리며 3권의 책을 썼다.`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이렇게 살면 모두가 산다' `올리 효도 내리 사랑'.이 책들은 김용기 장로가 몸소 실천했던 검소와 근면 그리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담고 있다평생 농군학교의 노동복과 고무신으로 유명했던 김용기 장로는 1908년 경기도 능내리 봉안촌에서 태어났다.일제시대 청년기를 보내면서 그는 이미 23세 때 고향에서 농촌이상향 건립을 추진했던 농촌운동가이자 이를 통해 독립까지 이루려했던 독립운동가였다.60~70년대 김용기 장로는 가난에 찌들었던 우리사회에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자립의 소중함을 전파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66년 막사이사이상수상을 비롯해 크고 작은 상만 5백여개를 수상했다.그리고 88년 8월 김용기 장로의 소천 이후,그 유지는 자녀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장남 김종일 목사(70.가나안교회),차남 김범일 장로(64),삼남 김평일 장로(58) 삼형제 모두가 평생 가나안농군학교 이념전파에 온몸을 바치고 있다.이들의 노력으로 하남시 가나안농군학교 제1교외에도 강원도 원주에 제2교를 개교했으며 태국,방글라데시 등에 해외분교도 설립했다.현재 김종일 목사는 학교재단 이사장으로,차남 김범일 장로는 원주 2교 교장으로,삼남 김평일 장로는 1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형제들 중에서도 김평일 장로 가족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이념을 대를 이어 재확대시켜왔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80년대 중반이후 김장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가나안농군학교의 계몽주의적인 이념에 효정신을 접목,가나안농군학교를 동양적 정신무장의 장으로 거듭나게 했다.과거 산업역군의 육성이 아니라 선진 한국속에 건실한 도덕적 시민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여기에 부인 이화평 권사(54)의 일조는 빼놓을 수 없다.이권사는 현대가정속에 동양의 전통적 가치들을 실천하고 강연을 통해 이를 전해왔다.70년대 당시 이대를 수석졸업한 신여성이었던 이권사는 김장로와 결혼하면서 하루에도 서너번씩 분뇨통을 나르고 순종으로 김장로를 섬기며 익힌 전통적인 가정주부의 덕은 당시 연수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딸인 김낙원씨(28)와 아들 천명씨(27)도 어린시절부터 이런 교육을 받고 김장로를 따랐다.특히 아들 천명씨는 지난해 6월 결혼과 함께 "전공인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이를 가나안농군학교에 접목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캐나다 유학을 떠났다.김장로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3대째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의 결심이 고맙고 대견스럽지만 애써 감정을 감춘다.아직 은 말뿐인 아들의 진로에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이기 때문이다.근면한 노동과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1대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정신'.이것을 계승 발전시킨 2대 김평일장로의 `효정신'.3대인 김천명씨가 유학에서 돌아와 가나안농군학교 정신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관심이 모아진다.<가나안 농군학교의 역사.교육이념>가나안농군학교의 뿌리는 지난 54년 김용기 장로가 `농촌이상향'을 꿈꾸며 하남시 황산의 거친 땅을 일궈 가꾼 가나안농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있다.김용기 장로는 가나안농원을 통해 `기독공동체의 이상향'을 실현하려했고 이와 함께 고통받는 민족을 `복민주의'의 정신으로 치유하려 했다.여기에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이념이 나타난다.1930년대 일제의 가혹한탄압에 맞서 농촌청년들의 항일운동에서 시작된 복민주의는 이후 빈곤에 대항한 개척정신으로 발전하였고 김용기 장로를 통해 가나안 땅을 일궈 기독공동체를 실현하자는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이념이 되었다.농군학교의 모든 교육프로그램은 이 교육이념 속에 연수생들에게 자립의용기와 억압에 대항할 용기,그리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농군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가나안 정규과정과 특별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가나안정규과정은 영농후계자들을 대상으로 농업기술과 정신교육,농촌지도교육을 실시한다.1~3개월씩의 코스가 있으면 과정에서 실습위주의 교육 때문에 신청자들의 연령을 남자의 경우 23세 이상 40세 미만,여자의 경우 20세 이상 40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특별과정은 회사원 공무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교육과정으로 보통 1주일 단위로 이뤄진다.오전 정신교육과 오후에는 가벼운 노동을 통한신체적 훈련도 포함되어 있다.최근엔 유명한 김평일 장로의 효강의도 들을수 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이밖에도 가나안농군학교는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가정교육과정과 농촌선교 사역의 일꾼을 위한 농업선교사 양성과정 등이 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