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택수 목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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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03:15)이라고 했다.중국 시인 소동파도 ‘삶은 봄날의 꿈과 같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며 그 허무함을 이야기했다.크리스천에게 죽음인들 두렵겠는가 마는 아침 이슬과 같이 짧은 생은 복음 사역에 너무도 짧은 것일 수 있다.‘목사가 되고 싶은 인민군,그는 사선을 넘었다’를 쓴 전택수 목사(70·필동교회 원로목사)를 대하면서 ‘젊은 나’는 무궁한 바위라도 되는 양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중강진이 고향으로 모태 신앙인 전 목사는 19세에 싸리문 밖에서 손을 흔들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6·25 전쟁의 격랑 속에 휩싸였다.인천상륙작전에 맞서 인민군 총알받이가 된 그는 바지 주머니를 뚫고 나가는 총탄과 한 발자국 뗄 떼마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그리고 포로가 되어 거제포로수용소 생활을 해야했고,국군으로 복무하며 20대를 살았다.구두를 삶아 허기를 채우는 배고픔과 이산의 고통…오직 신앙만이 힘이었다.“제겐 드라마처럼 들립니다”라고 철없이 말하자 “그게 어찌 제 삶이었겠습니까.하나님의 공사(公事)였지요.저는 축복 받은 겁니다”라며 편안한 웃음으로 답한다.그는 이 복음의 역정을 칠순에 이르도록 언급치 아니하다가 최근에 북의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공사의 수본(手本)을 마무리했다.그 수본을 컴퓨터로 정리하던 30대의 딸은 묵상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역의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손을 잡고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흘렸다.진정으로,‘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편 89:47)하는 물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어머니의 기도로 목회자가 된 그는 이제 아들과 사위도 목회자로 제단에 바쳐 신앙의 대물림을 했다.생이 사라지는 것은 ‘생물’이지 신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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