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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양영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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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g짜리 작고 하얀 탁구공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탁구선수 양영자씨(35).그녀는 지금 ‘몽골 선교사’로 불린다.남편 이영철씨(38),두딸 반재(6) 윤재(5)와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양씨는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도 재빠른 몸놀림으로 한치의 오류도 용납하지 않던 다부진 모습 그대로였다.선수 시절부터 믿음이 좋기로 소문이 났던 양씨에게는 선교사로서의 활동이 그다지 갑작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단지 달라진 것이라면 탁구를 통해 전도를 하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교에만 전념하게 됐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고 감격스럽게 다가온다.양씨 부부는 97년 4월 몽골에 왔다.그들은 최근 2년 동안의 언어훈련 과정을 마친 뒤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남편이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개척할 교회에서 양씨는 교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탁구를 가르치게 된다.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15년 동안의 탁구선수 생활을 마감한 양씨는 사랑의교회 청년부에서 남편 이씨를 만나 92년 5월 결혼했다.결혼 전부터 선교사의 비전을 갖고 있던 이씨는 결혼 이후 연합통신 기자직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했다.부부가 선교훈련을 함께 받으면서 선교지를 선택하던 중 남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몽골에 오게 됐다.“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선교사가 될 생각은 하지 못 했어요.탁구가 달란트라고 여기고 경기나 훈련 때 전도를 병행하겠다고만 생각했죠.하지만 남편과 함께 선교에 전념하기로 한 이상 탁구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습니다.탁구선수로서 이룰 것은 모두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지금은 탁구를 도구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사랑의교회(옥한흠목사) 파송선교사로 국제선교단체 ‘웩(WEC) 인터내셔널’에 소속돼 있는 양씨부부는 몽골선교에 세가지 비전을 갖고 있다.제자훈련과 문서선교와 스포츠선교다.몽골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람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는 한편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사역을 하겠다는 것이다.특히 남편 이씨는 성경을 몽골어로 번역하는 일이나 몽골 선교사 또는 크리스천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사역에 큰 뜻을 품고 있다.그는 현재 몽골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의 감수를 맡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세계명작애니매이션(웅진출판사)을 몽골어로 번역,출간하기도 했다.앞으로는 몽골인들에게 맞는 신구약 주석성경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몽골은 아시아 최초의 복음주의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나라입니다.몽골을 선교지로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이 때묻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대로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죠”남편 이씨는 몽골사람들을 사랑한다.음식이 입에 맞고 사역도 보람돼 몽골에 뼈를 묻고 싶다고까지 말할 정도다.양씨도 처음엔 문화적인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적응을 한 상태여서 생활하기에 조금의 불편도 없다고 한다.오히려 고생을 각오하고 처음 몽골에 들어섰을 때의 다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몽골에 오기 전 야채가 별로 없고 겨울이 무척 춥다고 얘기를 들었어요.하지만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갖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며 몽골에 왔죠.몽골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의미에서는 선교지지만 생활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 고생하시는 선교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에요”양씨부부는 단기적으로 2천8년까지를 1차선교 기간으로 잡아놓았다.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몽골에서 선교하기를 바라고 있다.비록 현재는 몽골의 크리스천이 전체 인구의 1%도 안될 정도로 적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뿌듯하기 때문이다.물론 고국이 그리울 때도 있다.양씨는 98년 한국을 방문할 당시 굉장히 설레었다.이국에서 IMF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한국이 어떻게 변했을까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이국에서 처음 고국을 방문할 때의 감격은 대단한 것이었다.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하지만 지금은몽골에서 몽골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어쩌다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현정화씨 등 동료들의 소식이 궁금할 뿐이다.몽골 선교를 결심했을 때 서운해하던 시부모도 지금은 든단한 후원자가 됐다.단지 지난해 한국을 다녀온 아이들만이 모국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몽골은 이질감이 별로 없고 낯선 땅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지금까지 선교를 하며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몽골어로 처음 설교한 때였습니다.몽골인들과 동화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이 보람되고 기쁩니다.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선교 잘 할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해 주세요” 이영철 양영자선교사의 당부다.<현정화씨가 본 양영자씨>양영자씨와 명콤비를 이루며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현정화씨(31).그는 요즈음 양씨와 호흡을 맞추며 한국 탁구를 정상에 올려놓았던 지난날을 자주 떠올린다.후배들의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탁구가 인기없는 종목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때문이다.“언니와 저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언니의 기술이 뛰어난데다 훈련도 둘이서 정말 많이 했거든요.무엇보다도 같은 방을 쓰며 함께 나눈 신앙 이야기가 우리를 하나로 묶는 큰 힘으로 작용했죠”양씨와 현씨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95년9월.둘은 같은 방을 쓰며 함께 훈련에 임했다.그때 현씨의 나이 17세.신인인 현씨에게 양씨는 한국 탁구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까마득한 선배였다.너무 어릴 때 양씨와 만나 처음엔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언니는 탁구나 신앙면에서 모두 제 모델이었어요.탁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신앙도 아주 강했어요.전 언니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한국 탁구를 정상에 올려놓은 88년 양씨는 은퇴했다.현씨는 양씨의 갑작스런 은퇴에 무척 놀라고 당황했다.혼자서 한국의 탁구를 짊어져야 한다니….“언니는 저에게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어요.언니가 결혼을 하고 몽골에서 선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타국에서 고생은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니 걱정하지는 않아요”94년 국가선수대표를 은퇴하고 지난해 결혼한 현씨는 현재 마사회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그는 양씨와 만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고 한다.“언니,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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