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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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9월5일.조선과 한사코 교역을 원하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변 한사정 근처에서 뜻하지 않게 좌초했다.이 배의 선원들은 침략선이라고 판단한 조선병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이었다.배에는 선교를 위해 조선에 입국하고자 하는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타고 있었다.조선군은 솔가지와 땔나무를 여러 척의 배에 가득 싣고 셔먼호에 다가가 불을 붙여 일제히 배 안으로 집어던졌다.이 불이 화약에 옮겨 붙으면서 배안은 순식간에 불길로 휩싸였다.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던 선원들은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의 창에 찔려 죽고 곤봉에 맞아 숨져 강물이 금방 피빛으로 변했다.그 와중에 배 위에서 백기를 들고 화염 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강쪽으로 사력을 다해 책들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토머스선교사였다.죽음을 직감한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육지쪽으로 성경책을 던졌다.한권이라도 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일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그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을 품 속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어 헤엄쳤다.육지에 다다른 토머스는 기진맥진한 채 조선군에 생포됐다.그는 같이 헤엄쳐나온 선장 페이지와 두사람의 중국인 선원과 함께 포승에 묶인 채 평양거리를 휘돌아 감영으로 끌려갔다.“듣거라,너희들은 국법이 양선의 출입을 금하는 나라에 중무장한 상선을 끌고 침입했으니 그 목적이 무엇인지 소상히 아뢰어라”평안도 감찰사 박규수의 심문은 추상과 같았다.“우리가 조선에 온 목적은 첫째 예수교를 전파하려 함이요,둘째는 백미 홍삼 소가죽 등 교역을 하려 함이요,세째는 각처의 누각이나 정자를 구경하려 함이다”(吾等來意 一則傳播聖敎也 二則文易白米紅參牛皮也 三則玩賞 各樓臺也)이흥권(李興權)이 쓴 패강록(浿江錄)은 토머스가 짧은 조선말로 이같이 대답했다고 전한다.“이 자들은 이 나라에 불법으로 침입해 백성들을 살해하고 국법으로 금 한 사교를 전하였으니 끌고나가 목을 베도록 하라”토머스의 답변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박규수가 동지사로 베이징에 갔을 때 그에게 “조선에 오면 잘 보살펴주겠다”고 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포졸들은 그를 끌고 대동문을 지나 대동강 하류 한사정 윗편 모래톱에 다다랐다.선원들을 처단하는 일을 지휘한 조선군의 박춘권은 토머스를 꿇어 앉힌 후 그의 목을 치려고 칼을 뽑아 들었다.이때 토머스는 급히 자기 품에 지녔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면서 그에게 내밀었다.그러면서 하늘을 향해 외쳤다.“지저스 크라이스트” 그리곤 그는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오! 하나님,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내 영혼을 받아주소서…”엉겁결에 성경책을 받아든 박춘권은 순간 마음이 이상한 감정으로 일렁거렸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칼을 들어 힘껏 내리쳤다.잘려진 목에서는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몸통은 순간 꿈틀거리다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그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하늘을 향해 있었다.토머스가 계획한 제2차 조선선교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그때 그의 나이 27세.젊디 젊은 나이였다.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 했던가.이날 토머스목사의 목을 친 박춘권은 훗날 회개해 1899년 세례를 받고 평양 초대교인이 됐다.또한 평양은 그후 복음부흥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 한국의 예루살렘이 됐고 조선교회의 중심지가 됐다.그는 왜 자신의 조국 영국을 떠나 머나먼 이역땅 조선에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을까.1839년 9월7일 영국 웨일즈 라노드주 라야더에서 목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토머스는 런던대학 신학과정에 입학하면서 중국 선교사를 자원했다.1863년 12월,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꿈에 그리던 중국에 도착했으나 그에게 닥친 불행과 좌절은 한때 선교사역을 포기하게 했다.부인의 죽음,선임 선교사와의 갈등 등으로 세관의 통역일을 하던 토머스는 1865년 7월, 우연히 만난 조선 천주교 신자 김자평과 최선일을 통해 새로운 선교의욕이 일어났고 조선선교를 결행하게 된다.다시금 복음사역의 열정에 사로잡힌 토머스목사는 그해 9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면서 구세주 예수를 소개했다.새로운 선교지에 대한 기대와 소명에 들떠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그는 런던으로부터 정식으로 조선선교를 허락받고 면밀한 준비에 들어갔다.재입국 배편을 찾던 그 앞에 나타난 것이 제너럴 셔먼호였다.그는 조선 선교의 꿈에 부풀어 이 배를 탔고,그리고 조선 땅에서 순교했다.제너럴 셔먼호사건으로 미국의 압력을 받은 조선은 외국에 나라의 문을 연다.미국과의 통상수호조약에서 외국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특히 선교사의 활동은 무제한적으로 허용하게 된다.그로 인해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고,이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수많은 복음의 일꾼들이 이 땅을 밟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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