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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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쭉 짜놓았다.하늘보다 새파란 호수.구름 걸린 기암절벽 속에 호수는청록색 비취처럼 빛났다.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한 곳.민족의 영지 백두 천지연이다.대학생 등 일행 13명은 백두의 장엄함에 모두 말을 잃었다.‘봉사로 복음의 열정을키워보겠다’며 자원한 선교여행.지난달 5일 서울을 출발,중국 창춘(長春)을 거쳐훠룽(火龍) 동평농장에서 1박을 한 뒤 새벽 5시 30분부터 무려 6시간이나덜커덩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쌓였던 피로도 순간 사라졌다.“주여,천지의 물이 장백폭포로 쏟아져 만주와 백두대간을 적시듯 복음의 샘이 넘쳐만주벌판과 북녁의 땅에 퍼져 민족이 하나되고 세계속에 그 영광의 역사를 이루게하소서”학생들의 기도소리가 절벽에 부딪쳐 울려퍼졌다.출발전부터 지금까지 막막하기만했던 중국선교의 의미가 되살아났다.학생들은 출발전부터 외국인의 종교활동이 엄히 제한되는 중국에서 말도,행동도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창춘에 도착,첫인상도 마찬가지였다.면적 960㎢로 남한의 96배,12억인구 중국은 국내 60년대말 사회 모습을연상시켰다.개발의 혼란속에 자유경제주의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만 모든 가치를돈에 묶어 놓았다.중국은 하루 추산 5만명이 기아로 숨지면서도 중국판 오렌지족관타오(官倒)가 판치는 기형의 사회였다.시원스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장백폭포를 뒤로한 학생들의 눈은 막막함 대신결연함으로 빛났다.오후 3시쯤 백두산을 출발,흙먼지 가득한 도로를 따라옌지(延吉)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이었다.현지 선교사의 안내로 학생들은 옌지 명물양고기 꼬치 ‘뀀’을 맛보고 피곤한 몸을 쉴 수 있었다.아파트 5층 선교사 집은 TV장농 등 필요한 가구만 있어 단출했다.주말인 이튿날 학생들은 옌지의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연변과기대 등 대규모시설부터 소규모 탁아시설까지 선교사들은 곳곳에서 사랑실천의 모범을 보이고있었다.“이곳의 선교활동은 007작전 같습니다” 한 선교사의 말은 현지의 어려움을대변했다.하지만 바위를 뚫는 낙수처럼 그들의 노력은 날이 갈수록 빛나고 있었다.병원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는 어느날 머리가 깨지는 사고를 당한채 길에 방치됐던사람을 치료해 줬더니 온 동네에 소문이나 마을사람들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고백했다.예배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착한 사람들의 일이니 따라한다는 그들의모습에서 ‘신앙의 실천이 가장 훌륭한 선교’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했다.모든선교사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옌지에서 놀라운 일중 하나는 현지 교회의 성장이었다.현재 중국에는 당의 허가를받은 삼자교회가 1천2백만 곳,비공인 가정교회가 4천5백만 곳으로추산된다.학생들이 주일예배를 위해 찾아간 ‘연길시기독교회’(류두봉목사)는 총1만여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교회.보통 매주 4백∼5백여명의 교인들이예배에 참석한다.담임목사의 설교도 열정적이었지만 오랜 사회주의 치하에서도 변치않았던 교인들의 기도도 뜨거웠다.훠룽시에서 차로 4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농장은 학생들의 여행 기착지였다.주일예배를 마치고 농장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주변 산들에 파묻혀 있는 농장은 강원도산골의 어느 마을같았다.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낸 때문인지농장의 풍경은 더욱 친밀하게 느껴졌다.훠룽 동평농장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유기농법 등 첨단 농업기술을 전수,현지영농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비전으로 설립했다.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중국은 최근 급격한 식량소비 증가속에 옛농법만으로는 소비량을 맞추기 어려워화학비료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2000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는 계획아래기아대책기구는 자본뿐 아니라 많은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현지 행정당국도 이런이유에서 농장에 거는 기대가 컸다.학생들은 1주일간 농장에 머물며 축사와 유기비료창 건물의 토대를 닦으며 사역을벌였다.따가운 땡볕 하루 6시간 이상의 중노동이었다.그나마 예수전도단에서선교여행을 온 일행 15명이 먼저 와 있어 다행스러웠다.그들은 허리까지 자란 풀을뽑았고 땅을 팠다.도구도 없어 손으로만 해야하는 탓에 풀뽑기만 온종일이걸렸다.이어 비료창 토대 닦기.1m 깊이 땅을 파야 했지만 온통 자갈로 가득찬 땅은삽이 들어가질 않았다.예수전도단을 통해 온 일반인들은 축사 건축에 매달렸다.농장 식사는 옥수수 50%이상의 잡곡밥과 채소반찬이 전부.하지만 온종일 노동으로 땀을 흘린 사람들에겐모든게 꿀맛이었다.이틀,사흘이 지나면서 축사가 제법 그럴듯해졌다.학생들이작업했던 토대 쌓기 작업도 땅파기를 끝냈다.일이 진척되면서 학생들의 오전 큐티와저녁 예배도 뜨거워졌다.“하나님.그동안 교회의 따뜻한 품에 머무르며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생각했습니다.오늘 너무 부끄럽기만 합니다”“오늘 중보기도의 의미를 새롭게깨달았습니다.이웃과 민족,인류를 위한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됐습니다”한 학생의 통회의 기도가 끝나자 다른 학생의 목매인 기도가 이어졌다.저녁 예배는신앙고백의 자리가 됐다.학생들은 지난달 13일 모든 선교여행의 일정을 마치고 옌지를 통해 창춘에도착했다.후아롱에서 옌지 사이 해란강과 일송정으로 유명한 룽징(龍井)을 지나야했다.과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해란강변을 달리던 선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이제이곳에는 복음의 선구자들이 비전을 다지고 있다.과거 말달리던 모습이 아니라자갈섞인 박토를 옥토로 바꾸는 새로운 선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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