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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농운동과 복음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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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목사가 밝히는 ‘선한 농부마을’의 사업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먼저 회원 농가들이 신앙적 양심에 기반해 청결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돕는 일이다.후영 1리의 토질과 환경에 맞는 농산물을 연구 보급하고 있는 선한 농부마을은 현재 정기 생산품목인 고추 배추 등을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고 있으며 콩나물 숙주나물 등은 철저히 무농약으로 재배,출하한다.먹거리는 바로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에서다.둘째는 농산물 직거래의 활성화를 통한 농촌경제의 부흥에 힘쓰고 있다.김목사가 직접 나서 도시교회를 방문해 소비자 확보에 힘쓰고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도시소비자들의 주문을 받고 있다.또 판로가 결정되면 공동판매망을 구축,회원농가에 공평하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돕고 있다.농가간에 비교심리로 인해 잡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셋째는 깨끗하고 편리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개발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일이다.예를 들어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 등이 알맞게 들어있는 편리한 1회용 콩나물국 재료 포장제품은 이러한 획기적 아이디어의 반영으로 부가가치를 높인 상품이다.또 노령화되고 있는 농촌사회에 적합하게 적은 노동력으로 고가의 작물을 재배하도록 돕고 있다.넷째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부농운동을 통한 지역 복음화다.총회와 도·농·교회 간의 적극적인 교류로 농가를 살려 복음이 있는 곳에 소득증대가 있다는 믿음을 농민들이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이로써 개개인의 영혼구원은 물론 지역 복음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김목사는 “농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윤택하게 하고 교인들이 서로 섬기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2000.11.03, 1척박한 땅서 복음 일군 농부 목회자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영 1리.몇 채의 가옥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하지만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여느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시름과 한숨이 없다.오히려 포대 가득 담긴 실한 고추와 배추를 나르는 이들의 함박웃음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졌다.바로 부농의 꿈을 알차게 가꾸고 있는 ‘선한 농부마을’ 사람들이다.오늘의 이 마을이 있기까지는 92년 부임한 후영순복음교회 김경준 목사(37·당시 전도사)의 노력이 있었다.당시 젊음과 복음에의 열정만으로 이 곳에 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난과 3명의 교인뿐이었다.교단 지방회에서도 폐쇄가 검토될 정도로 목회 자원자가 없었던 열악한 곳이었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그는 주민들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어느 집이나 수천만원씩의 부채를 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들이 빚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지요”김목사는 먼저 이 마을의 절망적 분위기를 일신했다.한숨만 짓던 주민들에게 잘살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해주기 시작했다.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복음만을 전할 수는 없는 법.떡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다.밤새 그물을 던지고도 허탕을 쳐 실의에 빠져 있던 베드로에게 한배 가득 고기를 잡게 해준 예수 그리스도,영의 양식만이 아니라 육의 양식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전했다.교인들이 먼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힘을 얻은 그는 수년에 걸쳐 정리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바로 이 지역 농산물을 도시에 직접 판매해 농가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그래서 김목사는 96년 후영교회 부농회(현 선한 농부마을)를 조직해 이웃 농가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농민과 도시인들로부터 동시에 만족을 얻어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의 상품 생산과 직판을 추진했다.당시 주력 생산품은 이 지역의 특산물인 고추를 깨끗한 상태로 재배,건조 후 포장한 청결고추였다.판로는 김목사가 직접 개척하기로 하고 청결고추 생산을 위해 빚을 내어 기계도 구입했다.더이상 가난해질 것도 없는 마을 주민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들떴다.고추가 출하되고 정성껏 말린 후 포장까지 마쳤을 때 김목사는 부인과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도시지역 교회들을 찾아다녔다.그러나 의외로 반응들은 냉담했고 목사가 왜 장사꾼처럼 나서는가 하는 눈치들이었다.젊은 농촌목회자에게 도시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결국 그해 농사는 교인들과 주민들의 원망 속에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하지만 이듬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 다시 일어섰다.그리고 이번에는 좀더 체계적으로 판로개척에 나섰다.우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를 통해 상품의 특성과 가치를 홍보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 및 강남교회 등 대형교회의 농어촌선교회에 호소,도움을 얻어낼 수 있었다.여전히 일부교회에서는 그를 불신하고 상품을 반품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3년 동안 올릴 농가수익을 불과 한해만에 얻을 수 있었던 것.98,99년에는 그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이제 후영 1리에 부채있는 농가는 없다.지긋지긋한 가난을 털어낸 주민들은 주택을 현대식으로 개량하는가 하면 아예 새로 집을 짓고 있다.군청에서는 작물 집하장을 무료로 지어줬고 교회도 부흥돼 현재 교인수가 40명에 이른다.주민들 대부분이 교회에 나오는 셈이다.재배하는 작물은 청결고추에서 김장용 절임 배추,버섯 등으로 늘어났고 최근에는 가재 및 토종개구리도 양식해 보급하고 있다.또 ‘선한 농부마을’로 인터넷 홈페이지(user.chollian.net/∼sdsk1004/home.html)를 개설하자 인터넷을 통한 주문도 급속히 늘고 있다.“선한 농부마을은 복음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공동체운동”이라는 김목사는 “농민들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채워줄 때 마을 전체의 복음화도 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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