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의를 (창30:1-2)
본문
1945년 8월 15일 정오는 전 일본 국민에게 사상 미중유의 큰 충격을 준 시간입니다. 일본인들이 현대신으로 받들고 있는 천황 폐하가 UN군에게 항복한다는 육성이 직접 방송그로 중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신이 인간에게 항복하다니…… 방송을 듣고 있던 저들 국민 중에 분통이 터져 할복자살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소화 천황은 얼마 후 자기는 결코 신이 아니라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웃지 못할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챨스 다윈은 사람은 단순한 진화를 하는 동물로 보았습니다. 칼막스는 인간은 오직 경제적 수단으로만 보았습니다. 시그몬드 프로이드는 심층 심리학자로서 사람의 의식 작용과 행동을 성 “ Sex ”와 결부시켜 문제를 풀어 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로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연구한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사람들이 어떤 특징인을 신으로 숭배한 일일 종종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상대방의 인격과 능력과 업적이 비범한 경우로써 예를 들면 선천적인 앉은뱅이를 말 한 마디로 일으켜 세운 바울을 루스드라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려고 한 것은 여기에 속하며(행 16:8-13),
(2) 특정인의 정치적 야욕과 흉께 때문이니 로마의 도미틱한 황제가 자신의 무능을 은폐할 목적으로 황제를 신격화하여 황제 예배를 강요한 것과 일본의 군국주의 자들이 집권키 위해 천황을 신격화시킨 것들입니다.
(3) 대중의 아부 근성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 왕를 신과 같이 추겨 올린 것은 여기에 속합니다(행 12:22).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게된 동기야 어찌되든지 그 동기는 하난 같이 불순했고 그 결과는 예외없이 비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 누구도 신으로 만들지 말고 또 신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지극히 사랑한 아내였습니다. 이 여인 하나를 위해 14년이나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한 번 야곱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 크게 노를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헬이 야곱에게 신이 되기를 종용했기 때문입니다. 레아의 다산과 라헬의 무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었습닏. 그러하거늘 라헬은 이 책임을 마치 야곱에게 있다는 듯이 야곱에게 항의와 불평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 그대로 잉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고 했습니다. 이것은 “ 나는 신이 아니다 ” 라는 뜻으로 야곱의 인간 선언인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나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또 하나님의 권한과 임무를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하나님일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능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만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또 자기가 무소불능한 자처럼 망동하는 것도 무지입니다. 한 사람이 다방면에 능하다는 말은 어느 한 가지에도 전문이 못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수심은 얕아지기 마련입니다. 또 인간은 완전한 자가 아닙니다. 악인이란 50%에 5%의 악이 더 많은 사람, 선인이라 50%에 %%의 선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키고, 성자란 50%에 선질이 20%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자라고 해서 100% 선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며느리에게 신통술을 기대하는 가정일수록 고부간의 사이가 불화한 법이며 목사를 천사로 생각하는 교회일수록 목사에 대한 환멸이 큰 법입니다. 인간은 인간이지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2. 사람은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부단히 엄습해 오는 두 가지 유홀 중의 하나는 인간이 신이 되려는 망상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이 동물이 되려는 치몽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삶의 목적과 구성 요인과 존재의 방식이 동물과 다릅니다. 동물은 땅만 내려다 보는 횡생체인데 반하여 인간은 밑과 옆과 위를 다 볼 수 있는 종생체로 된 것 부터가 이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食)과 색(色)의 본능대로 사는 동물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고, 아니 동물만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포수의 화살에 급소를 맞아 죽은 새끼 사슴을 옆에서 본 어미 사슴이 펄펄 뛰다가 죽었습니다. 까닭을 알기 위해 해부해 본즉 창자가 아홉 토막이나 끊겨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심려를 단장의 비애라고 말해 오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어머니의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 자란후에는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임으로 반포지조(反哺之鳥)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없어서 더러운 것을 먹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정결한 것만 먹습니다. 이리는 좀처럼 성행위 장면을 노출시키지 않으며 만일 이것을 엿본 침입자가 있으면 짐승이고 사람이고 간에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아 남의 집 문전에 버리는 부모는 사슴만도 못한 인생이며,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은 자녀는 까마귀만도 못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부정축재를 일삼는 자는 비둘기만도 못한 인간이며 성도덕이 문란한 자는 이리만도 못한 인간이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요셉의 인간 선언을 듣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동물적인 유혹이 요셉에게 닥칠 때 요셉은 이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쳤던 것입니다. 주님의 설교 중 탕자의 비유에서 인간 선언의 고백을 듣습니다. 탕자는 훗날 돼지의 쥐염열매로 연명하려 했으나 생각해 볼 때 인간이 쥐염열매로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 나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 ” 고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들어도, 가져도, 주려도, 먹이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이 공허는 쥐염열매로써가 아니라 아버지의 양식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b '3.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최고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문 참 가치를 나타내고 본질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인간이 됩니다.
둘째, 이웃과의 관계성에서 인간이 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며 이웃을 사랑하는 중에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만물로 더불어 삽니다. 물질을 우상화하지도 아니하고 또한 물질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잘 관리하는 삶을 가질 때 인간은 인간이 되어서 생의 의의와 보람과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이상이 될 생각도 말고, 사람 이하가 될 생각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인간임을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사람들이 어떤 특징인을 신으로 숭배한 일일 종종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상대방의 인격과 능력과 업적이 비범한 경우로써 예를 들면 선천적인 앉은뱅이를 말 한 마디로 일으켜 세운 바울을 루스드라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려고 한 것은 여기에 속하며(행 16:8-13),
(2) 특정인의 정치적 야욕과 흉께 때문이니 로마의 도미틱한 황제가 자신의 무능을 은폐할 목적으로 황제를 신격화하여 황제 예배를 강요한 것과 일본의 군국주의 자들이 집권키 위해 천황을 신격화시킨 것들입니다.
(3) 대중의 아부 근성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 왕를 신과 같이 추겨 올린 것은 여기에 속합니다(행 12:22).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게된 동기야 어찌되든지 그 동기는 하난 같이 불순했고 그 결과는 예외없이 비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 누구도 신으로 만들지 말고 또 신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지극히 사랑한 아내였습니다. 이 여인 하나를 위해 14년이나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한 번 야곱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 크게 노를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헬이 야곱에게 신이 되기를 종용했기 때문입니다. 레아의 다산과 라헬의 무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었습닏. 그러하거늘 라헬은 이 책임을 마치 야곱에게 있다는 듯이 야곱에게 항의와 불평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 그대로 잉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고 했습니다. 이것은 “ 나는 신이 아니다 ” 라는 뜻으로 야곱의 인간 선언인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나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또 하나님의 권한과 임무를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하나님일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능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만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또 자기가 무소불능한 자처럼 망동하는 것도 무지입니다. 한 사람이 다방면에 능하다는 말은 어느 한 가지에도 전문이 못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수심은 얕아지기 마련입니다. 또 인간은 완전한 자가 아닙니다. 악인이란 50%에 5%의 악이 더 많은 사람, 선인이라 50%에 %%의 선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키고, 성자란 50%에 선질이 20%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자라고 해서 100% 선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며느리에게 신통술을 기대하는 가정일수록 고부간의 사이가 불화한 법이며 목사를 천사로 생각하는 교회일수록 목사에 대한 환멸이 큰 법입니다. 인간은 인간이지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2. 사람은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부단히 엄습해 오는 두 가지 유홀 중의 하나는 인간이 신이 되려는 망상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이 동물이 되려는 치몽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삶의 목적과 구성 요인과 존재의 방식이 동물과 다릅니다. 동물은 땅만 내려다 보는 횡생체인데 반하여 인간은 밑과 옆과 위를 다 볼 수 있는 종생체로 된 것 부터가 이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食)과 색(色)의 본능대로 사는 동물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고, 아니 동물만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포수의 화살에 급소를 맞아 죽은 새끼 사슴을 옆에서 본 어미 사슴이 펄펄 뛰다가 죽었습니다. 까닭을 알기 위해 해부해 본즉 창자가 아홉 토막이나 끊겨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심려를 단장의 비애라고 말해 오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어머니의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 자란후에는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임으로 반포지조(反哺之鳥)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없어서 더러운 것을 먹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정결한 것만 먹습니다. 이리는 좀처럼 성행위 장면을 노출시키지 않으며 만일 이것을 엿본 침입자가 있으면 짐승이고 사람이고 간에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아 남의 집 문전에 버리는 부모는 사슴만도 못한 인생이며,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은 자녀는 까마귀만도 못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부정축재를 일삼는 자는 비둘기만도 못한 인간이며 성도덕이 문란한 자는 이리만도 못한 인간이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요셉의 인간 선언을 듣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동물적인 유혹이 요셉에게 닥칠 때 요셉은 이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쳤던 것입니다. 주님의 설교 중 탕자의 비유에서 인간 선언의 고백을 듣습니다. 탕자는 훗날 돼지의 쥐염열매로 연명하려 했으나 생각해 볼 때 인간이 쥐염열매로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 나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 ” 고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들어도, 가져도, 주려도, 먹이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이 공허는 쥐염열매로써가 아니라 아버지의 양식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b '3.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최고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문 참 가치를 나타내고 본질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인간이 됩니다.
둘째, 이웃과의 관계성에서 인간이 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며 이웃을 사랑하는 중에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만물로 더불어 삽니다. 물질을 우상화하지도 아니하고 또한 물질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잘 관리하는 삶을 가질 때 인간은 인간이 되어서 생의 의의와 보람과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이상이 될 생각도 말고, 사람 이하가 될 생각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인간임을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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