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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와 비둘기의 번제 (레1:10-17)

본문

하나님은 제사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십니다. 만일 아무리 귀한 제물을 제단에 바친다해도 그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가증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번제자체보다는 오히려 그 번제를 통해 나타나는 순종의 마음을 보시길 원합니다. 예레미아를 통해 하나님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와 희생에 대하여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 7:21-23)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담은 제사를 원하십니다. 제물의 내용이 아니라 제물의 정성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정성을 담을 제물들을 형편에 따라 제시해 주었습니다. 제물이 많은 사람은 소를 번제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은 양이나 염소를 번제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도 더욱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새로써 번제물을 삼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특별히 양이나 염소, 그리고 새를 번제물로 삼는 제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양과 염소와 새를 번제물로 사용하는 제사의 규례와 그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제사의 규례
(1) 양이나 염소의 번제 양이나 염소를 번제물로 삼을 경우의 번제의 규례는 소를 번제로 삼을 때와 매우 유사합니다. 먼저 그것들은 흠 없는 수컷으로 성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피는 제사장에 의해 제단의 사면에 뿌려집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기름을 제거하고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은후 불로 태웁니다. 이렇게 온전히 태운 제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집니다.
(2) 새의 번제 새 종류를 번제로 드릴 경우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여야 합니다. 다만 집비둘기일 경우에는 반드시 새끼여야 합니다. 그것을 제단에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살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피는 단 곁에 흘려야 했고 깃털과 찌꺼기는 제단 동편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습니다. 또한 그 날개 자리 곧 가슴을 열어 젖히고 제사장이 그것을 가져다가 단 위에서 불살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정성어린 제사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었습니다.
2. 양과 염소, 새의 번제가 갖는 영적 의미
(1) 다 같이 유순한 짐승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은 유순한 짐승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물이 되고자 하는 짐승은 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제사의 대상에게 맡길 수 있 을만큼 유순해야 합니다. 만일 제물이 자기 자신의 생명을 주장하고 자기 권리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제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유순한 짐승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제사의 본질이 순종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제사보다 좋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제사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저 유순한 짐승들과 같이 순종의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삼상 15:22)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 전체가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마치 유순한 짐승들과 같이 그분 자신을 잠잠히 하나님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 모습이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임을 안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산 제물이 되셨을까요 제물은 제물을 갖다 바치는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그의 죄를 대신하고 그의 불순종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한 우리의 부패함을 대신하기 위해 몸소 제물 이 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나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제물로 삼음으로 그 사망의 몸에서 벗 어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 입니다.
(2) 새의 번제는 제사장들이 행해야 하는 가장 수고로운 예식중의 하나입니다. 새의 번제는 가난한 이들의 제사입니다. 여기에 제사장들이 많은 수고를 해야 함은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제사장은 부자들의 구원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두 구원받아야 할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여러가지로 제시해 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특별합니다. 부자는 현재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제물로 인해 위로받고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사회에서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부자들의 제물이나 가난한 자의 제물이나 다 같이 정성으로 드릴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물의 종류를 탓하지 않으시듯이 제사장도 그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가난한 자들이 드린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들도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드리는 정성이요 정직성입니다. 정성과 정직성이 담긴 예물은 소이건 양이나 염소이건 새이든 하나님은 동일하게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다섯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명의 장정을 먹인 이 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보잘것 없는 다섯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어린 아이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정성된 마음으로 내어 놓았을 때 예수님은 축사하여 주웠고 마침내 그것은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 풍성한 것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기가 되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을 산 제물로 내어 놓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삶을 본받아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내어놓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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