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을 받았느냐? 성령을 받았느냐? (고전2:11-12)
본문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분명히 이 세상에는 세상의 영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이 있는데 사람은 어느 영이든지 하나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영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요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말세라는 시대입니다. 말세라는 말은 시기적으로 볼 때 가을이라는 말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추수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에 속하든지 아니면 세상의 영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결단을 내려 성령의 지배권 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합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고 잘 사는 것 같고 만족한 듯이 보이지만 생의 깊이를 파헤치고 보면 아마 만족이나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야 어찌 당신들의 생이 만족하고 행복하고 염려와 고통과 번민과 불안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마귀에게 붙들려 있기에 그들에게는 참 만족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영에게 받고 있는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회개입니다. 오늘까지 인간들이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는다면 결단코 용서함을 받지 못할 것이며 불의 심판을 틀림없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경북 청암사에는 허리가 굽은 중이 있었는데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그 눈먼 중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최근 어느 목사가 이 중을 만나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중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눈먼 노승의 과거는 대강 이러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마차를 부리는 마부로서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추운 겨울 날 마차에 짐을 가득히 싣고 산마루 높은 고갯길을 넘어가는 데 짐은 무겁고 길은 미끄러워서 말과 마부가 온 힘을 다해 겨우 이 언덕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날은 저물어가고 갈 길은 멀어 젊은 마부는 조급한 마음으로 채찍을 내리쳐가며 말을 모는데 말의 앞발이 눈이 미끄러워 넘어져 그만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마부는 말을 일으키기 위하여 채찍으로 말을 후려갈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은 지쳐서 헐떡거리기만 했지 아무리 채찍으로 때려도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마부는 화가 치밀어 사정없이 채찍으로 잔등과 머리와 앞발을 마구 후려갈겼으나 말은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고 두 눈만 크게 뜨고 껌벅이고 있습니다. 마부는 화가 더욱 치밀어 껌벅거리고 있는 말의 눈을 채찍 손잡이로 쑤셔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 말은 고삐를 끊고 크게 울부짖으며 흰눈 위에 붉은 피를 쏟으며 어디론가 미친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이 마부는 자나 깨나 눈 위에 피를 쏟으며 아픔에 울부짖던 그 말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움을 당하던 중 마부의 두 눈이 자책의 고통에 못이겨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괴로움과 자책을 덜어버리기 위해 이 산에 들어왔으나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 눈 위의 말의 붉은 피와 슬피 울부짖는 말의 울음소리가 늙어가는 이 눈 먼 중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등 교인들 중에도 주의 종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고 쫓아 버리는 못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의 종을 괴롭힐 바에야 세상에 나가서 먹고 마시며 살다가 저주받음이 그들에게는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기왕 믿을 바에야 성령받고 충성하고 진실하고 착하게 봉사하여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신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악령을 받으면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있어야 할 것이 있으면 부흥합니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목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기도하면 보다 먼저 주님께서 안수해 주십니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성도에게 안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목숨걸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에게 안수하십니다. 못자국 있는 손으로 안수하십니다. 피묻은 손으로 안수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목사가 안수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고쳐 주심으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10절 말씀에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알 수가 없으나 성령을 내 마음에 모시게 되면 1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못받는 자가 있다고 14절에 말씀했습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이하학적인 인간에게는 성령받는 일이 미련하게 보일 것이며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교우는 이웃에 사는 어느 집에 돈을 많이 저 주었는데 몇 달이 되어도 이자는 커녕 본전도 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먹을 것을 먹지도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푼푼히 모아 꾸어준 돈인데 못받을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여 만일 그 친구가 못 갚는다고 하면 죽이리라 생각하고 그 집에 갔다는 것입니다. 가서 그 집 동정을 보는데 마침 저녁식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어린아이가 “엄마 밥좀 줘. 죽은 이젠 더 이상 먹기 싫어. 죽만 먹으니까 기운이 없고 어지러워”하더랍니다. 그 때 그 아버지의 대답이 “그래도 조금만 참아라. 건너 마을 아무게 교인의 빚을 못 갚는데 어떻게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겠니. 빚좀 갚아놓고 쌀밥을 먹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눈물겨운 이야기가 오가는 광경을 보고는 빚을 받으러 간 그 사람은 뛰어들어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몇 푼의 돈마저도 다 털어주고 빚은 천천히 갚아도 좋다고 말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빚을 받으러 가던 길은 악령의 지배를 받고 살인하려던 길이었지만 지금 돌아오는 길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천사들이 수종드는 교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악령을 받았는지 성령을 받았는지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에 속하든지 아니면 세상의 영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결단을 내려 성령의 지배권 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합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고 잘 사는 것 같고 만족한 듯이 보이지만 생의 깊이를 파헤치고 보면 아마 만족이나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야 어찌 당신들의 생이 만족하고 행복하고 염려와 고통과 번민과 불안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마귀에게 붙들려 있기에 그들에게는 참 만족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영에게 받고 있는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회개입니다. 오늘까지 인간들이 죄의 댓가를 치루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는다면 결단코 용서함을 받지 못할 것이며 불의 심판을 틀림없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경북 청암사에는 허리가 굽은 중이 있었는데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그 눈먼 중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최근 어느 목사가 이 중을 만나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중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눈먼 노승의 과거는 대강 이러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마차를 부리는 마부로서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추운 겨울 날 마차에 짐을 가득히 싣고 산마루 높은 고갯길을 넘어가는 데 짐은 무겁고 길은 미끄러워서 말과 마부가 온 힘을 다해 겨우 이 언덕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날은 저물어가고 갈 길은 멀어 젊은 마부는 조급한 마음으로 채찍을 내리쳐가며 말을 모는데 말의 앞발이 눈이 미끄러워 넘어져 그만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마부는 말을 일으키기 위하여 채찍으로 말을 후려갈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은 지쳐서 헐떡거리기만 했지 아무리 채찍으로 때려도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마부는 화가 치밀어 사정없이 채찍으로 잔등과 머리와 앞발을 마구 후려갈겼으나 말은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고 두 눈만 크게 뜨고 껌벅이고 있습니다. 마부는 화가 더욱 치밀어 껌벅거리고 있는 말의 눈을 채찍 손잡이로 쑤셔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 말은 고삐를 끊고 크게 울부짖으며 흰눈 위에 붉은 피를 쏟으며 어디론가 미친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이 마부는 자나 깨나 눈 위에 피를 쏟으며 아픔에 울부짖던 그 말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움을 당하던 중 마부의 두 눈이 자책의 고통에 못이겨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괴로움과 자책을 덜어버리기 위해 이 산에 들어왔으나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 눈 위의 말의 붉은 피와 슬피 울부짖는 말의 울음소리가 늙어가는 이 눈 먼 중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등 교인들 중에도 주의 종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고 쫓아 버리는 못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의 종을 괴롭힐 바에야 세상에 나가서 먹고 마시며 살다가 저주받음이 그들에게는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기왕 믿을 바에야 성령받고 충성하고 진실하고 착하게 봉사하여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신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악령을 받으면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있어야 할 것이 있으면 부흥합니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목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기도하면 보다 먼저 주님께서 안수해 주십니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성도에게 안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목숨걸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에게 안수하십니다. 못자국 있는 손으로 안수하십니다. 피묻은 손으로 안수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목사가 안수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고쳐 주심으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10절 말씀에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알 수가 없으나 성령을 내 마음에 모시게 되면 1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못받는 자가 있다고 14절에 말씀했습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이하학적인 인간에게는 성령받는 일이 미련하게 보일 것이며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교우는 이웃에 사는 어느 집에 돈을 많이 저 주었는데 몇 달이 되어도 이자는 커녕 본전도 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먹을 것을 먹지도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푼푼히 모아 꾸어준 돈인데 못받을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여 만일 그 친구가 못 갚는다고 하면 죽이리라 생각하고 그 집에 갔다는 것입니다. 가서 그 집 동정을 보는데 마침 저녁식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어린아이가 “엄마 밥좀 줘. 죽은 이젠 더 이상 먹기 싫어. 죽만 먹으니까 기운이 없고 어지러워”하더랍니다. 그 때 그 아버지의 대답이 “그래도 조금만 참아라. 건너 마을 아무게 교인의 빚을 못 갚는데 어떻게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겠니. 빚좀 갚아놓고 쌀밥을 먹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눈물겨운 이야기가 오가는 광경을 보고는 빚을 받으러 간 그 사람은 뛰어들어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몇 푼의 돈마저도 다 털어주고 빚은 천천히 갚아도 좋다고 말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빚을 받으러 가던 길은 악령의 지배를 받고 살인하려던 길이었지만 지금 돌아오는 길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천사들이 수종드는 교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악령을 받았는지 성령을 받았는지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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