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신16:13-17)
본문
희랍의 철인 플라톤은 네 가지 감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첫째는 동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즉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둘째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문명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문명의 도시 아덴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세째는 사람으로 태어나되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더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째는 플라톤은 유명한 철인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겠으며, 기독교가 왕성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감사절을 지키게 되는 것은 이 해에 받은 은혜를 함께 감사하며 감사하는 것을 평상 생활에 옮겨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감사절을 지킴으로 우리 생활에 감사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1) 감사는 사회를 명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모두 너무 무뚝뚝합니다. 옛날에는 인심이 좋았다 하는데 이것조차 차차 거칠어지고 메말라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을 위해서 감사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번집니다. 우선 내 마음에 번집니다. 불평하면 불평이 자꾸 생깁니다. 감사하면 또 감사가 생깁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감사를 받고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회가 명랑해집니다.
(2) 감사는 윤리의 기본이 됩니다. 감사는 고마움을 아는 데서 생깁니다.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모든 덕의 근원이 됩니다. 부모의 고마움을 알면 그것이 효를 낳고, 나라의 고마움을 알면 그것이 충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윤리를 바로 잡으려면 먼저 감사할 줄 알게 해야 합니다.
(3) 감사는 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잘하는 나라와 잘하지 않은 나라 중에 어느 나라가 더 잘 삽니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미국, 독일, 영국 등은 모두 기독교 국가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생활을 하는 국민은 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식을 길러본 부모는 다 체험했습니다만, 부모에게 순종하고 감사하는 자식에게 더 애정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더 받게 됩니다. 감사는 복받는 비결입니다.
2.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유익한 감사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1) 우리가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온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전혀 없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적어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남같이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시지 않고 1달란트만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달란트도 내가 가지고 온 것이 아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2) 우리가 근본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치 않은 이를 보면 왜 나를 알아주지 않으냐고 불평합니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주제에 당연히 우대를 받아야 할 공로자가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내 뜻보다 나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지 못함으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 가지 원인은 모두가 그 바탕이 하나님과 관계가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윤리문제가 아니요, 종교문제이며 신앙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감사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감사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1) 도시 교회는 농촌 교회보다 더 감사하며 감사절을 지켜야겠습니다. 이유는 도시인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아니해도 농부들이 땀흘려 수고한 결실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여러 가지 일을 하나님께서 잘 지켜 주셔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로, 근대공업 국가로 발전 부흥하고 민주국가로 터를 날마다 굳게 세우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광야같은 어려움에서 한해 동안 무사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 수 있게 됨을 감사 드려야 합니다.
(2) 범사에 감사합시다. 사도 바울의 감사는 모범 감사인데, 즉 범사에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불우하고 불행의 여건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어 하나님께 여러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입니다.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고 하지 않기 위해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드러나면 그리스도가 가리워집니다. 자기가 낮아짐으로 그리스도가 더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로 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3) 바울은 매사에 감사부터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신약 성경의 14권입니다. 그 어느 편지에도 처음 문안 다음에 감사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같은 데서는 문안말 다음에 “
첫째는”하고 감사를 하고 있는데, 그 다음에 “
둘째는”하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일을 감사부터 해 놓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권면을 주고 책망을 하려고 그 편지를 쓰면서도 그들에게 있는 장점을 찾아내어서 감사부터 하였습니다. 이점은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때 배워야 할 점인 줄 압니다. 잘못한 점을 벌 주기 위하여 채찍을 드는 데도, 그 잘한 것을 칭찬해 주면서 이것은 잘했지만 저것은 잘못됐지 않느냐 하면서 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받기 싫은 벌도 잘 받습니다. 잘못한 것만 나무라며 벌 주면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하며 반항심으로 벌을 받게 됩니다. 억울하게만 생각하니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감사부터 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심은대로 걷습니다. 감사를 심으면 감사를 거두고, 불평을 심으면 불평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금년에도 감사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헤아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동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즉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둘째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문명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문명의 도시 아덴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세째는 사람으로 태어나되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더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째는 플라톤은 유명한 철인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겠으며, 기독교가 왕성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감사절을 지키게 되는 것은 이 해에 받은 은혜를 함께 감사하며 감사하는 것을 평상 생활에 옮겨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감사절을 지킴으로 우리 생활에 감사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1) 감사는 사회를 명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모두 너무 무뚝뚝합니다. 옛날에는 인심이 좋았다 하는데 이것조차 차차 거칠어지고 메말라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을 위해서 감사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번집니다. 우선 내 마음에 번집니다. 불평하면 불평이 자꾸 생깁니다. 감사하면 또 감사가 생깁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감사를 받고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회가 명랑해집니다.
(2) 감사는 윤리의 기본이 됩니다. 감사는 고마움을 아는 데서 생깁니다.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모든 덕의 근원이 됩니다. 부모의 고마움을 알면 그것이 효를 낳고, 나라의 고마움을 알면 그것이 충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윤리를 바로 잡으려면 먼저 감사할 줄 알게 해야 합니다.
(3) 감사는 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잘하는 나라와 잘하지 않은 나라 중에 어느 나라가 더 잘 삽니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미국, 독일, 영국 등은 모두 기독교 국가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생활을 하는 국민은 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식을 길러본 부모는 다 체험했습니다만, 부모에게 순종하고 감사하는 자식에게 더 애정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더 받게 됩니다. 감사는 복받는 비결입니다.
2.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유익한 감사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1) 우리가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온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전혀 없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적어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남같이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시지 않고 1달란트만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달란트도 내가 가지고 온 것이 아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2) 우리가 근본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치 않은 이를 보면 왜 나를 알아주지 않으냐고 불평합니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주제에 당연히 우대를 받아야 할 공로자가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내 뜻보다 나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지 못함으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 가지 원인은 모두가 그 바탕이 하나님과 관계가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윤리문제가 아니요, 종교문제이며 신앙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감사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감사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1) 도시 교회는 농촌 교회보다 더 감사하며 감사절을 지켜야겠습니다. 이유는 도시인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아니해도 농부들이 땀흘려 수고한 결실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여러 가지 일을 하나님께서 잘 지켜 주셔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로, 근대공업 국가로 발전 부흥하고 민주국가로 터를 날마다 굳게 세우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광야같은 어려움에서 한해 동안 무사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 수 있게 됨을 감사 드려야 합니다.
(2) 범사에 감사합시다. 사도 바울의 감사는 모범 감사인데, 즉 범사에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불우하고 불행의 여건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어 하나님께 여러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입니다.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고 하지 않기 위해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드러나면 그리스도가 가리워집니다. 자기가 낮아짐으로 그리스도가 더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로 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3) 바울은 매사에 감사부터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신약 성경의 14권입니다. 그 어느 편지에도 처음 문안 다음에 감사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같은 데서는 문안말 다음에 “
첫째는”하고 감사를 하고 있는데, 그 다음에 “
둘째는”하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일을 감사부터 해 놓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권면을 주고 책망을 하려고 그 편지를 쓰면서도 그들에게 있는 장점을 찾아내어서 감사부터 하였습니다. 이점은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때 배워야 할 점인 줄 압니다. 잘못한 점을 벌 주기 위하여 채찍을 드는 데도, 그 잘한 것을 칭찬해 주면서 이것은 잘했지만 저것은 잘못됐지 않느냐 하면서 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받기 싫은 벌도 잘 받습니다. 잘못한 것만 나무라며 벌 주면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하며 반항심으로 벌을 받게 됩니다. 억울하게만 생각하니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감사부터 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심은대로 걷습니다. 감사를 심으면 감사를 거두고, 불평을 심으면 불평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금년에도 감사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헤아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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