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유대의 해방을 예언하시고 실행하심 (사48:1-11)
본문
이사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유대는 자유함을 잃을 것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의 역사를 실행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선민 거룩한 이스라엘 1-2절에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대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백성이라 칭하며‥‥‥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들옳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 민족의 근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는 자랑스러운 조상을 가졌습니다. “야곱의 집”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특별한 축복을 받은 이름입니다.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말은 앞으로 바벨론에 잡혀갈 유대 민족을 이를테니 장차 메시야가 나실 족속의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2. 강팍해진 이스라엘 백성(2-4절) 유대 민족은 이런 자랑스러운 이름은 가졌으나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진리대로 산지 않는 저희의 병통입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높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집이라고 했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약속에 속해 있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기도와 찬미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되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칭했습니다. 이 신앙 고백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그들은 위선적인 마음을 소유하므로써 이 모든 것이 다 헛되이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고백이 성실하고 의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리면 그것은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훌륭한 조상을 가진 유대가 왜 이토록 강퍅해졌습니까 조상은 훌 륭했으나 생활이 성실치 못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성실치 못했고, 게을러 서 성실치 못했고, 죄악이 습관이 되어 성실치 못했습니다. 감사가 없어 성실치 못했습니다. 의로움이 없고, 형식은 각추었으나 실행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선민 이스라엘은 강퍅한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집을 부립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 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의 말씀을 많이 듣고, 이적을 많이 보고도 고집 만 세운다는 말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을 보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고집만 내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줄 모릅니다. 4절에 “너는 완악하여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했습니다. 목이 곧고 교만하여 겸손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마는 놋이 되어 죄를 범 하고도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책임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고 권리만 행사하려고 하니 이마가 놋쇠 같다는 것입니다. 유대 백성은 이름은 선민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은 이런 강퍅한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유대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면(5-8절) 5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 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은밀한 새 일을 이루시겠다고 했습니다. 6절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노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해방하신 사실에 대하여 예언하신 후(40장) 그 들더러 이 기쁜 소식을 자세히 상고하여 그것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통하여 유대 민족을 구원할 뿐 아니라 장차 고레 스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람은 새 일을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새 일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선 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하시고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2) 신령한 눈이 열리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 입니다. 8절에 “네가 과연 듣지도 뭇하엿고 알지도 못하였으되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일을 듣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은 신령의 귀가 열 리지 못하여서 영음을 들을 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면 영의 눈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4. 하나님의 경륜은 공의와 사랑으로 행하십니다(9-11절)
1) 유대 백성을 연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행하십니다.
1) 10절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이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유대는 훌륭한 조상을 가지기는 했지만, 성실하지 못하고 의로움이 없고 믿음의 절개도 없고 죄와 타협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줄 모릅니다. 고집 부립니다. 교만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패역한 유대를 당장 멸망시켜야 하지만 그러나 사랑하시어 연단시킴으로 더 훌륭한 하나님의 선민을 만들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기까지 연단시키신 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 앞에서 남을 사람은 아 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운대가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게 학대받은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이방인에게 멸시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유대를 연단시킨 후 반드시 구하여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죄를 생각하면 모두 멸망시켜야 하겠지만 그들로 큰 민족을 이루시기 위해 연단만 시키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채 유대에게 공의와 사랑을 겸하여 행 하셨습니다.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해방됨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 의 공로였던 것임은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을 통해서 영광을 거두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이름이 유대 민족에게 걸려있으니만큼, 이제 바벨론에서 그들을 구원하시어 그 영광을 찾으시겠다고 하 십니다. 만일 택한 백성이 우상 섬기는 자들에게 멸망을 당하고 만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조롱당하고 우상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의 영예가 이방인의 승리감에 의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이스라엘을 구원시키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명예에 큰 배려를 기울이시며,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그를 찬미하도 록 하신 정도 이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찌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예를 확고히 해 두시리라는 위로가 됩니다. 그 영예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을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난 유대 백성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지금까지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성실한 자가 되어 책임에 충성하고 의로운 자가 되어 절개를 지키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선민 거룩한 이스라엘 1-2절에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대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백성이라 칭하며‥‥‥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들옳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 민족의 근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는 자랑스러운 조상을 가졌습니다. “야곱의 집”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특별한 축복을 받은 이름입니다.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말은 앞으로 바벨론에 잡혀갈 유대 민족을 이를테니 장차 메시야가 나실 족속의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2. 강팍해진 이스라엘 백성(2-4절) 유대 민족은 이런 자랑스러운 이름은 가졌으나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진리대로 산지 않는 저희의 병통입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높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집이라고 했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약속에 속해 있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기도와 찬미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되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칭했습니다. 이 신앙 고백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그들은 위선적인 마음을 소유하므로써 이 모든 것이 다 헛되이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고백이 성실하고 의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리면 그것은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훌륭한 조상을 가진 유대가 왜 이토록 강퍅해졌습니까 조상은 훌 륭했으나 생활이 성실치 못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성실치 못했고, 게을러 서 성실치 못했고, 죄악이 습관이 되어 성실치 못했습니다. 감사가 없어 성실치 못했습니다. 의로움이 없고, 형식은 각추었으나 실행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선민 이스라엘은 강퍅한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집을 부립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 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의 말씀을 많이 듣고, 이적을 많이 보고도 고집 만 세운다는 말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을 보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고집만 내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줄 모릅니다. 4절에 “너는 완악하여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했습니다. 목이 곧고 교만하여 겸손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마는 놋이 되어 죄를 범 하고도 뻔뻔스럽고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책임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고 권리만 행사하려고 하니 이마가 놋쇠 같다는 것입니다. 유대 백성은 이름은 선민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은 이런 강퍅한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유대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면(5-8절) 5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 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은밀한 새 일을 이루시겠다고 했습니다. 6절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노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해방하신 사실에 대하여 예언하신 후(40장) 그 들더러 이 기쁜 소식을 자세히 상고하여 그것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통하여 유대 민족을 구원할 뿐 아니라 장차 고레 스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람은 새 일을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새 일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선 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하시고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2) 신령한 눈이 열리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 입니다. 8절에 “네가 과연 듣지도 뭇하엿고 알지도 못하였으되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일을 듣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은 신령의 귀가 열 리지 못하여서 영음을 들을 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면 영의 눈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4. 하나님의 경륜은 공의와 사랑으로 행하십니다(9-11절)
1) 유대 백성을 연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행하십니다.
1) 10절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이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유대는 훌륭한 조상을 가지기는 했지만, 성실하지 못하고 의로움이 없고 믿음의 절개도 없고 죄와 타협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줄 모릅니다. 고집 부립니다. 교만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패역한 유대를 당장 멸망시켜야 하지만 그러나 사랑하시어 연단시킴으로 더 훌륭한 하나님의 선민을 만들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기까지 연단시키신 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 앞에서 남을 사람은 아 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운대가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게 학대받은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이방인에게 멸시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유대를 연단시킨 후 반드시 구하여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죄를 생각하면 모두 멸망시켜야 하겠지만 그들로 큰 민족을 이루시기 위해 연단만 시키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채 유대에게 공의와 사랑을 겸하여 행 하셨습니다.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해방됨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 의 공로였던 것임은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을 통해서 영광을 거두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이름이 유대 민족에게 걸려있으니만큼, 이제 바벨론에서 그들을 구원하시어 그 영광을 찾으시겠다고 하 십니다. 만일 택한 백성이 우상 섬기는 자들에게 멸망을 당하고 만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조롱당하고 우상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의 영예가 이방인의 승리감에 의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이스라엘을 구원시키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명예에 큰 배려를 기울이시며,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그를 찬미하도 록 하신 정도 이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찌되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예를 확고히 해 두시리라는 위로가 됩니다. 그 영예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을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난 유대 백성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지금까지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성실한 자가 되어 책임에 충성하고 의로운 자가 되어 절개를 지키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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