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도록 풍부하리라 (슥1:14-17)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로 생활을 하게된 원인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여호와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을 멀리 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열조를 본받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권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정복 하였던 열국들을 심판 하시며 대신에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회복 시켜 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열국들은 왜 하나님의 지노를 받았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은 왜 풍성한 축복을 받았는 지를 살펴서 넘치도록 풍부해 지는 역사가 여러분의 삶속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열국들에게 진노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이스라엘을 지나치게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슥1:15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구인 열국이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것보다 이스라엘을 괴롭하고 멸절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47:6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손에 붙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우리는 다른 사람이 고난 받을 때 고소해 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안일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일은 하나님의 섭리 학심 가운데 이루어 집니다. 이사야47:7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우리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하여 더욱더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함으로 망하였는데 같이 그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 하면서 신앙의 축복 받은자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생활 하면서 그 축복을 나도 사모할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이스라엘을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하나님께서 열국에 대하여 진노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을 사랑 하셔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연단 시키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의 백성을 언제나 사랑 하십니다.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슥13: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처럼 열국들에 대하여는 진노 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서 바벧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과업은 무너진 성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귀한 사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여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어데게 축복하여 주셨습니까.
1).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 민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벧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유다 포로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힘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바벧론은 세계 최대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8년 바벧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사건을 스가랴 1:16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 주었을 때와 내가 해낼 수없는 일을 도와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해방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바벧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두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싸워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둘째는 바벧론 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벧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도 받았고,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2). 그들은 돌아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돌아온것은 할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 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식낳고 7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 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날 받았던 은혜라든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 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아 있으며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돈벌고 잘 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70년 동안 유다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이유도 보다 더 높고 신령한 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합니다. 왜 삽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일합니까 왜 공부를 합니까 왜 자식을 낳습니까 왜 사업을 합니까 그것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 가운데 정 명훈씨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인이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면 언젠가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돈과 명예와 인기와 행복등 모든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음악을 사랑하지않고 그 음악이 가져다 줄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따위 등을 사랑하게 되면 음악은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음악인은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인기,행복 따위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다면 하나님도 그 부산물도 나를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봅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일을 잘 감당 하여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삶 속에서 은혜를 갈망합시다. 우리의 삶을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는 준비한 만큼 받는 법입니다. 축복은 자기 그릇대로 받는 법입니다.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둡시다. 은혜 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 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 하여 주시는 구한 백성으로서 차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첫째. 하나님께서 열국들에게 진노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이스라엘을 지나치게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슥1:15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구인 열국이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것보다 이스라엘을 괴롭하고 멸절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47:6 전에 내가 내 백성을 노함으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손에 붙였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우리는 다른 사람이 고난 받을 때 고소해 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안일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일은 하나님의 섭리 학심 가운데 이루어 집니다. 이사야47:7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우리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하여 더욱더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함으로 망하였는데 같이 그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 하면서 신앙의 축복 받은자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생활 하면서 그 축복을 나도 사모할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이스라엘을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하나님께서 열국에 대하여 진노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을 사랑 하셔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연단 시키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의 백성을 언제나 사랑 하십니다.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슥13: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처럼 열국들에 대하여는 진노 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서 바벧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과업은 무너진 성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귀한 사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여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어데게 축복하여 주셨습니까.
1).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 민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벧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유다 포로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힘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바벧론은 세계 최대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8년 바벧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사건을 스가랴 1:16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 주었을 때와 내가 해낼 수없는 일을 도와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해방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바벧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두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싸워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둘째는 바벧론 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벧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도 받았고,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2). 그들은 돌아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돌아온것은 할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이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 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식낳고 7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 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날 받았던 은혜라든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 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아 있으며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돈벌고 잘 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70년 동안 유다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이유도 보다 더 높고 신령한 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합니다. 왜 삽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일합니까 왜 공부를 합니까 왜 자식을 낳습니까 왜 사업을 합니까 그것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 가운데 정 명훈씨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인이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면 언젠가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돈과 명예와 인기와 행복등 모든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음악을 사랑하지않고 그 음악이 가져다 줄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따위 등을 사랑하게 되면 음악은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음악인은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인기,행복 따위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다면 하나님도 그 부산물도 나를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봅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일을 잘 감당 하여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삶 속에서 은혜를 갈망합시다. 우리의 삶을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는 준비한 만큼 받는 법입니다. 축복은 자기 그릇대로 받는 법입니다.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둡시다. 은혜 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 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 하여 주시는 구한 백성으로서 차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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