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질문 (막10:17-22)
본문
시편 8편에서 인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 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 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 셨나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참 어려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타고라스라고 하는 우리가 잘 아는 철인(스)은 그의 저서 가운데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홍미롭게 기록을 했습니다. '사람은 배우는 것, 사랑하는 것, 일하는 것, 싸우는 것, 서로 대화 하는 것. 생각하는 것, 갈고 닦는 것. 모아 놓는 것, 즐기는 것, 만나는 것 인생이라고 하는 길을 함께 가는 것,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 덕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홍미 있게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우리들이 각각 주어진 삶을 혹은 이렇게 혹은 저떻게 살아 왔는데 사람이 무엇입니까 하는 물음을 철학적인 입장에서는 위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월 듀단이라는 사회학자는 자기가 키우는 개를 자세히 주목 해서 본 다음에 글을 발표했는데 개와 사람이 공통점이 아주 많더 라는 겁니다. 그렀면서 그가 하는 말이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사람을 연구할 수 없으니까 동물을 사람 배신으로 의학적인 실험을 하는 까닭이 사람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라고 발표를 해서 흥밋거 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을 동물로 본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은 하나의 물질이다'라고 하는 시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물이 얼마나 나오고, 철 분이 얼마가 있고, 염분이 얼마가 나오고, 석회질이 얼마나 나오고 소금이 얼마가 나오고, 이렇게 사람을 물질로 계산한다고 하면 2달 러가 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분명히 하나의 물질입니다, 유물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의 도구입니다. 필요하 면 먹이고, 필요하면 간수하고, 가르치지만 필요가 없을 땐 죽이기도 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이게 하니섬 없이 사는 유물론자들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행하는 말로 인간상실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람이 사람됨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인간 상실을 가장 분명하게 잘 보 여준 성경구절이 있는데 마가복음 5장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거라 사라는 지방에 어떤 귀신 들린 남자 하나를 소개로 시작합니다. 그는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주검과 주검 사이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는 대체로 무덤이 집에서 떨어져 있지 만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교회뜰이 대체로 무덤입니다. 유럽쪽 특히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곳은 예배당이 전부가 무덤입니다. 문자 그대로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산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얼마나 광포한지 '어떤 쇠사슬로도 매일 수가 없다'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현대인의 광포한 모습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법이나 윤리와 도덕으로도 매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죄를 지으면 물리적인 힘으로 너의 생명을 빼앗아 간 다고 해도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죄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은 자기 몸을 스스로 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기 몸을해치면서도 자기가 스스로 해친다 라는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해치는데 요즘 현대 사람들을 보세요 마약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기 몸 을 해치고, 술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기 몸을 해치고, 가령 담배라고하는 것으로 자기 몸을 해치고, 또 음란한 일 때문에 자기 몸을 해 치고 이게 얼마나 자기 몸을 해치고 나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 이 사람은 의미 없는 소리를 높이 외칩니다. 현대는 소 음의 세계입니다. 좋은 말 덕이 되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그저 기는 말, 한때 즐기는 말을 하면 좋아하며 모여들 고 음악도 화음이 이루어지는 음악보다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즐깁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상실의 마지막 모습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 이 있습니까' 그럽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는 무신적인 생활 태도입니다. 예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인간상실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이 인간상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형으로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인간변화, 인간회복이라는 말을 회개라고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물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할 때는 지혜로운 어린아이 보통 어린이들은 대체로 학교 가기까지 5만 번 가량을 묻는답니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차근차근 대답을 잘 해 주지만 좀 지혜롭지 못한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시끄럽다. 그런 것 New Page 을 알아서 해.' 한마디로 무시를 해버린답니다. 이렇게 많이 묻는 아이일수록 지혜로운 아이요, 또 잘 자라는 건강한 아이들이랍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니섬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상실의 본보기와 같은 죄인된 처지지만 많은 것을 묻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우리 나라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될 것입니까 우리 가정은 어떻게 하면 복된 가정이 됩니까우리들이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묻고 싶 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 상실의 현장에서부터 인간회복을 가져 오려고 하면 이렇게 역사적인 여러 물음들에 요서 나 자신을 한번 물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 앞에 어떤 젊은이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이사람 에게는 네 가지 장점이 있습너다. 오늘날 현대인이 가지고자 하는 장점입니다. 그 하나가 젊음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재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선한 선생님이여'하자 예수님이 어찌해서 나에게 선한 선생이라고 하느냐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 하니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했습니다. 이 말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윤리적입니다. 셋째는 성경 말씀에 보면 다른 복음에는 관원이라고 했는데 이 것은 높은 관리를 의미합니다. 권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네 번 째는 이 젊은이는 돈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네 가지를 다 가졌습니다. 젊음, 돈, 윤리성,흑은 권세, 좋은 것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인간상실의 좋은 본보기 입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다 급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장점들을 가졌음에도 무엇인가 허전 New Page 함이 있었습니다. 이 공허감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 겠습니까'라고 묻는 겁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우리들은 이 시간 에 네가지로 나누어서 물어보기로 합시다 첫번째는 '내가 누구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제한적인 인생을 사는 겁니다. 내가 누굽니까 하는 것은 참 놀라운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나 됨을 묻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을 증거하면서 그가 고백하는 것이 나의 나됨 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는데 이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고 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나 됨을 안다고 하는 것처럼 귀한 것 이 없습니다. 내가 나로서 만족하시는 분 계십니까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리스 신화에 스핑크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베라고 하는 골짜기에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사자의 몸을 가진 어떤 괴물 하나가 나타납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문제를 맞추면 너를 이 유명한 테베의 통치자가 되게 해주 =K다는 겁니다. 그는 묻습니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둘, 저녁 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뭐냐고 묻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단 한 사람 오직스라고 하는 젊은이가 '그건 나다'라고 대답 합니다. 인간이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그는 옛 테베의 시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고 하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의미가 깊습니다. 나를 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나 됨을 포기할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 대학생임을 거절하는 대학생들이 종종 있는 것 같 아서 마음 상합니다. 교수가 한국 교수임을 거절하고 국회의원도 한국 국회의원임을 거절하고 크리스찬도 목사님도 빕렇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머니 됨을 잊어 New Page 버리고, 아버지 됨을 이탈하고, 자식 됨을 거절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거절하고 산다고 하면 얼마나 심각한 얘기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인데 그 형상을 상실한 다음에 인간을 잊어버리고 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다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 쓰여있지 않습니까여기서 부터 나의 나됨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위치를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을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까,라는 물음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할 때 아무에게나 향해서 '당신이 영생을 줄 수 있습니까' 라고 우리들이 물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당신만이 나의 구주신데 당신은 저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물음입니다. 고 백적인 물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천년 전에 예수라고 하는 유대 젊은이를 오늘 사는 우리가 '우리 구주시다'라고 고백하는 일은 지성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님으로가 아니면 예수를 구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이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로 군인 백부장에게 네 믿음이 크다고 하셨거든_9_ 그러나 마태복 6장 8장, 14, 16장에 보면 '네 믿음이 적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J 배 J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다',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다., 걱정하느냐 믿음이 적다', '왜 의논하느냐 믿음이 적다,라고 New Page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아흡 제자 들을 향해 '믿음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죽지 않습니다. 또 하나, 믿음이 없으면 천국 갈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처럼 믿음이 좋은 백성이 없습니다. 바로 전 주간에 서울 시내에 있는 어떤 교회에 산상접회를 인도 하러 갔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새벽 4시에 새벽 기도회가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면 버스 10대로 자기 교회로 또 옮겨갑니다. 그런 다음 아침 9시가 되면 또 버스를 동원해서 기도원으로 옵니다. L2시가 되면 점심을 나누어 먹고 저녁 s시가 되면 또 다시 교회로 모여듭니다.
3-4천 명의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아름다운 고백적인 믿음이 있는데 왜 한국 교회가 혼미한가 어찌해서 나라가 흔들리는가 어찌해서 우리에게 수많은 아픔들이 있는가' 대답은 한마디입니다. 믿음은 좋 지만 그 믿음에 대한 지식들이 아직 부족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S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 라'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자라야 하지만 지식도 자라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서울에 왔는데 제가 낮 집회를 하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그래요 '이번 오늘 낮 집회는 잘 안될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그래요 왜 그러느냐 그랬더니 '오늘 무슨 l0년 만에 오는 그저 제일 복많이 받는 날이라고 해서 전부 결혼식을 한다는데 아 마 우리 주변, 우리 교회에도 오늘 결흔하는 사람이 퍽 많을 겁니다.' 알고 보니까 그 날이 몇 해만에 오는 제일 좋은 날이랍니다.
그런데 무슨 보는 기준이 있는가 봐요. 사람이 전부 그날이 좋은 날이라고 해서 결혼식마다 아침 8시부터 결혼식을 25분만에 하나씩 결혼식장마다 하는데 무슨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부부를 새 가 정을 찍어내는데 25분마다 한번씩 밤늦은 시간까지 결흔식을 했다 New Page 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까지 그걸 꼭 했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은 좋다고 하면서도. 믿음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니까 결국 은 어디 가서 물어야 하고, 이름도 어디 가서 지어야 하고 좋은 날 나쁜 날을 가려야 하고, 방향도 가려야 되고 이게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현장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들의 완전한 소망이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지식이 없는 믿음 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믿음은 좋은데 지식은 없어요 이럴 때 '내 구원은 당신밖에 없습니다.'라는 이런 분명한 고백 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주님만이 나의 구주십니다.'
셋째,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하는 믈음 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위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구원받은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내 기정을 위해 할 일이 있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 의하면 사람의 몸이 제일 그리기 좋은 피사 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 가운데 제일 그리기 힘든 부분이 하나가 있어요. 제일 밉고 그리기 힘든 부분이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무릎이랍니다. 왜 무릎이 그렇게 미우냐 왜 무릎이 그리기가 힘드냐 대답은 간단합니다. 무릎이 그리기 힘든 까닭은 무릎마다 상처가 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상처 없는 무릎은 하나도 없다고 New Page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저도 슬그머니 바지를 올리고 나도 상처가 있는가 봤더니, 무릎 양쪽에 상처가 다 있었습니다. 왜 상처가 납니까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상처가 나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상처는 안 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가만 히 있을 수는 없는 겹니다. 무엇을 하기 위하여 상처를 받는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사랑을베풀어야 합니다.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다 운 교회로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이따금 교회가 상처를 입는 까닭 이 여기에 있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인간 구원을 위한 아름다 운 경영을 하기 위해서 교회가 상처를 받습니다만은 상처가 두려워 서 우리는 일을 안할 순 없습니다. 과연 내게 주어진 건강을 가지 고 내게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물질을 가지고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 한번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을 하여야 이 세상에서 사람된 삶을. 사람 구실을 하는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하는 물음을 스스로 물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와 복음을 위해서 일하세요. 일할 때 여러분은 만족한 은혜와 큰 기쁨과 보람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 지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남에게 유익되고 나에게 보람있을 때 인 생이지 내게 보람도 없고 남에게 유익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면서 적어도 무언가 남기는 게 있어야 하 지 않습니까.
흥미로운 것 일본에 후지 TV라고 하는 회사에서 한 5-6년 전 세계에서 제 을 방송했어_9_ l년에 한번 기네스 북에 오르는 사람. 한 기인들을 모아다 놓고 쇼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제일 무거운 사람, 제일 키가 큰 사람, 세계에서 제일 기억력이 좋은 사람, 물구나무를 세계에서 제일 오래 선 사람, 이런 사람이 다 모 이는 것입니다 한국의 김모라고 하는 젊은이도 물구나무서기 신기록을 했어요 50m를 뛰는데 세계 신기록을 냈어요. 그 외에 아주 인상깊은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미국 사람인데 나이가 50이 넘은 51 살인가 52살인가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 은 얼굴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마음대로 수축을 하는 거지_9_
그런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보통 얼굴을 가 진 백인인데 얼굴을 구길 때면 여러분이 마시다가 구겨 버리는 콜 라 깡통처럼 구기는 것이었어요. 턱과 코도 완전히 이마에 닿습니다. 얼굴이 주먹만해져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사람이 저렇게 할 수가 있는가 놀랍습니다. 얼마나 했는가 했더니 33년을 했대요 그런 인생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이 나왔는데 40이 조금 넘은 사람입니다. 필름통과 같 은 플라스틱 통을 먼저 먹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얘기해서 젊은 이들이 이떻게 할까 두렵습니다만은 바늘을 먹는데 바늘을 수없이 상킵니다. 맨 나증에는 뚜껑을 먹습니다. 그런 후 마지막에 토해 내는데 그 뚜껑은 닫혔고 그 안에 바늘이 꽉 들어찼어요. 세상에 이런재주 있는 사람도 있어요 또 하나는 구슬을 먹는 사람입니다. 빨강. 노랑, 파랑 구슬을 다먹게 합니다. 그런 후 사회보는 아나운서가 파란 구슬 꺼내라 하니 까 한참 배를 움직이더니 파란 구슬이 나와-9_ 얼마 했느냐 물으니 lS-4여년을 했답니다. 별난 인생 다 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저렇 게 사는 데 얼굴 구기는 재주로 남에게 무얼 줄겁니까. 무엇을 남길것입니까. 한평생 매만 맞는 어떤 미국 영화배우가 얼마 전에 자살을 해서 죽었습니다. 나는 내 평생을 매만 맞는 대역 노릇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의 마지막 유언이 나는 나의 인생을 네 뜻대로 못살았다 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길지 않습니다. 그 인생을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 복음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남에게 어떤 유익을 끼칠 것인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내 인생이 끝난 다음에 묘비를 세운다고 하면 이 사람은 보람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남긴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는 들을 정도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물음의 대답은 바로 그것입니다.
넷째, '게 주어진 삶은 언제까지입니까' 라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제한된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떻습니다. 나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모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 언제 오실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가 주님의 제림 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에 마귀가 이 말을 증거했습니다 1992년 1o월 X X날 주가 재림한다. 온 한국 교회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몸살을 많이 았고. 교인들이 얼마나 큰 상처들을 입었고 얼마나 영흔들이 많은 아픔들을 가지고 이 날을 대처했습니까 영생을 묻는 우리 마지막 물음 앞에 주님은 물으십니다. '등을 준비했느냐 기름까지 준비해라 하십니다. 기름의 분량이 어떠십니 까. 그냥 길을 떠나려고 할 때도 준비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멀지 않다고 하면 영생을 묻는 마지막 물음에 '준비 잘 하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지금 네가지 물음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당신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하니님의 자녀요 히니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녀요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을 사람입니다. 당신은 믿음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할 것입니까 하는 물음이 여러분이 주님 앞에 가실 때까지 온전한 물음이 되고 여러분의 신앙이 윤택해지고 여러분들의 교회생활 이 복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 월 듀단이라는 사회학자는 자기가 키우는 개를 자세히 주목 해서 본 다음에 글을 발표했는데 개와 사람이 공통점이 아주 많더 라는 겁니다. 그렀면서 그가 하는 말이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사람을 연구할 수 없으니까 동물을 사람 배신으로 의학적인 실험을 하는 까닭이 사람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라고 발표를 해서 흥밋거 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을 동물로 본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은 하나의 물질이다'라고 하는 시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물이 얼마나 나오고, 철 분이 얼마가 있고, 염분이 얼마가 나오고, 석회질이 얼마나 나오고 소금이 얼마가 나오고, 이렇게 사람을 물질로 계산한다고 하면 2달 러가 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분명히 하나의 물질입니다, 유물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의 도구입니다. 필요하 면 먹이고, 필요하면 간수하고, 가르치지만 필요가 없을 땐 죽이기도 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이게 하니섬 없이 사는 유물론자들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행하는 말로 인간상실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람이 사람됨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인간 상실을 가장 분명하게 잘 보 여준 성경구절이 있는데 마가복음 5장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거라 사라는 지방에 어떤 귀신 들린 남자 하나를 소개로 시작합니다. 그는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주검과 주검 사이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는 대체로 무덤이 집에서 떨어져 있지 만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교회뜰이 대체로 무덤입니다. 유럽쪽 특히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곳은 예배당이 전부가 무덤입니다. 문자 그대로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산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얼마나 광포한지 '어떤 쇠사슬로도 매일 수가 없다'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현대인의 광포한 모습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법이나 윤리와 도덕으로도 매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죄를 지으면 물리적인 힘으로 너의 생명을 빼앗아 간 다고 해도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죄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은 자기 몸을 스스로 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기 몸을해치면서도 자기가 스스로 해친다 라는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해치는데 요즘 현대 사람들을 보세요 마약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기 몸 을 해치고, 술이라고 하는 것으로 자기 몸을 해치고, 가령 담배라고하는 것으로 자기 몸을 해치고, 또 음란한 일 때문에 자기 몸을 해 치고 이게 얼마나 자기 몸을 해치고 나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 이 사람은 의미 없는 소리를 높이 외칩니다. 현대는 소 음의 세계입니다. 좋은 말 덕이 되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그저 기는 말, 한때 즐기는 말을 하면 좋아하며 모여들 고 음악도 화음이 이루어지는 음악보다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즐깁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상실의 마지막 모습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 이 있습니까' 그럽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는 무신적인 생활 태도입니다. 예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인간상실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이 인간상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형으로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인간변화, 인간회복이라는 말을 회개라고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물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할 때는 지혜로운 어린아이 보통 어린이들은 대체로 학교 가기까지 5만 번 가량을 묻는답니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차근차근 대답을 잘 해 주지만 좀 지혜롭지 못한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시끄럽다. 그런 것 New Page 을 알아서 해.' 한마디로 무시를 해버린답니다. 이렇게 많이 묻는 아이일수록 지혜로운 아이요, 또 잘 자라는 건강한 아이들이랍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니섬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상실의 본보기와 같은 죄인된 처지지만 많은 것을 묻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우리 나라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될 것입니까 우리 가정은 어떻게 하면 복된 가정이 됩니까우리들이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묻고 싶 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 상실의 현장에서부터 인간회복을 가져 오려고 하면 이렇게 역사적인 여러 물음들에 요서 나 자신을 한번 물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 앞에 어떤 젊은이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이사람 에게는 네 가지 장점이 있습너다. 오늘날 현대인이 가지고자 하는 장점입니다. 그 하나가 젊음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재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선한 선생님이여'하자 예수님이 어찌해서 나에게 선한 선생이라고 하느냐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 하니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했습니다. 이 말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윤리적입니다. 셋째는 성경 말씀에 보면 다른 복음에는 관원이라고 했는데 이 것은 높은 관리를 의미합니다. 권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네 번 째는 이 젊은이는 돈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네 가지를 다 가졌습니다. 젊음, 돈, 윤리성,흑은 권세, 좋은 것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인간상실의 좋은 본보기 입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다 급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장점들을 가졌음에도 무엇인가 허전 New Page 함이 있었습니다. 이 공허감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 겠습니까'라고 묻는 겁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우리들은 이 시간 에 네가지로 나누어서 물어보기로 합시다 첫번째는 '내가 누구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제한적인 인생을 사는 겁니다. 내가 누굽니까 하는 것은 참 놀라운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나 됨을 묻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을 증거하면서 그가 고백하는 것이 나의 나됨 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는데 이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고 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나 됨을 안다고 하는 것처럼 귀한 것 이 없습니다. 내가 나로서 만족하시는 분 계십니까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리스 신화에 스핑크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베라고 하는 골짜기에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사자의 몸을 가진 어떤 괴물 하나가 나타납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문제를 맞추면 너를 이 유명한 테베의 통치자가 되게 해주 =K다는 겁니다. 그는 묻습니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둘, 저녁 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뭐냐고 묻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단 한 사람 오직스라고 하는 젊은이가 '그건 나다'라고 대답 합니다. 인간이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그는 옛 테베의 시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고 하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의미가 깊습니다. 나를 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나 됨을 포기할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 대학생임을 거절하는 대학생들이 종종 있는 것 같 아서 마음 상합니다. 교수가 한국 교수임을 거절하고 국회의원도 한국 국회의원임을 거절하고 크리스찬도 목사님도 빕렇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머니 됨을 잊어 New Page 버리고, 아버지 됨을 이탈하고, 자식 됨을 거절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거절하고 산다고 하면 얼마나 심각한 얘기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인데 그 형상을 상실한 다음에 인간을 잊어버리고 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다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 쓰여있지 않습니까여기서 부터 나의 나됨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위치를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을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까,라는 물음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할 때 아무에게나 향해서 '당신이 영생을 줄 수 있습니까' 라고 우리들이 물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당신만이 나의 구주신데 당신은 저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물음입니다. 고 백적인 물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천년 전에 예수라고 하는 유대 젊은이를 오늘 사는 우리가 '우리 구주시다'라고 고백하는 일은 지성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님으로가 아니면 예수를 구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이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로 군인 백부장에게 네 믿음이 크다고 하셨거든_9_ 그러나 마태복 6장 8장, 14, 16장에 보면 '네 믿음이 적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J 배 J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다',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다., 걱정하느냐 믿음이 적다', '왜 의논하느냐 믿음이 적다,라고 New Page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아흡 제자 들을 향해 '믿음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죽지 않습니다. 또 하나, 믿음이 없으면 천국 갈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처럼 믿음이 좋은 백성이 없습니다. 바로 전 주간에 서울 시내에 있는 어떤 교회에 산상접회를 인도 하러 갔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가 하면 새벽 4시에 새벽 기도회가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면 버스 10대로 자기 교회로 또 옮겨갑니다. 그런 다음 아침 9시가 되면 또 버스를 동원해서 기도원으로 옵니다. L2시가 되면 점심을 나누어 먹고 저녁 s시가 되면 또 다시 교회로 모여듭니다.
3-4천 명의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아름다운 고백적인 믿음이 있는데 왜 한국 교회가 혼미한가 어찌해서 나라가 흔들리는가 어찌해서 우리에게 수많은 아픔들이 있는가' 대답은 한마디입니다. 믿음은 좋 지만 그 믿음에 대한 지식들이 아직 부족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S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 라'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자라야 하지만 지식도 자라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서울에 왔는데 제가 낮 집회를 하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그래요 '이번 오늘 낮 집회는 잘 안될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그래요 왜 그러느냐 그랬더니 '오늘 무슨 l0년 만에 오는 그저 제일 복많이 받는 날이라고 해서 전부 결혼식을 한다는데 아 마 우리 주변, 우리 교회에도 오늘 결흔하는 사람이 퍽 많을 겁니다.' 알고 보니까 그 날이 몇 해만에 오는 제일 좋은 날이랍니다.
그런데 무슨 보는 기준이 있는가 봐요. 사람이 전부 그날이 좋은 날이라고 해서 결혼식마다 아침 8시부터 결혼식을 25분만에 하나씩 결혼식장마다 하는데 무슨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부부를 새 가 정을 찍어내는데 25분마다 한번씩 밤늦은 시간까지 결흔식을 했다 New Page 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까지 그걸 꼭 했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은 좋다고 하면서도. 믿음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니까 결국 은 어디 가서 물어야 하고, 이름도 어디 가서 지어야 하고 좋은 날 나쁜 날을 가려야 하고, 방향도 가려야 되고 이게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현장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들의 완전한 소망이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 지식이 없는 믿음 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믿음은 좋은데 지식은 없어요 이럴 때 '내 구원은 당신밖에 없습니다.'라는 이런 분명한 고백 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주님만이 나의 구주십니다.'
셋째,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하는 믈음 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위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구원받은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내 기정을 위해 할 일이 있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 의하면 사람의 몸이 제일 그리기 좋은 피사 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 가운데 제일 그리기 힘든 부분이 하나가 있어요. 제일 밉고 그리기 힘든 부분이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무릎이랍니다. 왜 무릎이 그렇게 미우냐 왜 무릎이 그리기가 힘드냐 대답은 간단합니다. 무릎이 그리기 힘든 까닭은 무릎마다 상처가 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상처 없는 무릎은 하나도 없다고 New Page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저도 슬그머니 바지를 올리고 나도 상처가 있는가 봤더니, 무릎 양쪽에 상처가 다 있었습니다. 왜 상처가 납니까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상처가 나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상처는 안 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가만 히 있을 수는 없는 겹니다. 무엇을 하기 위하여 상처를 받는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사랑을베풀어야 합니다.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다 운 교회로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이따금 교회가 상처를 입는 까닭 이 여기에 있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인간 구원을 위한 아름다 운 경영을 하기 위해서 교회가 상처를 받습니다만은 상처가 두려워 서 우리는 일을 안할 순 없습니다. 과연 내게 주어진 건강을 가지 고 내게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물질을 가지고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 한번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을 하여야 이 세상에서 사람된 삶을. 사람 구실을 하는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하는 물음을 스스로 물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와 복음을 위해서 일하세요. 일할 때 여러분은 만족한 은혜와 큰 기쁨과 보람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 지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남에게 유익되고 나에게 보람있을 때 인 생이지 내게 보람도 없고 남에게 유익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면서 적어도 무언가 남기는 게 있어야 하 지 않습니까.
흥미로운 것 일본에 후지 TV라고 하는 회사에서 한 5-6년 전 세계에서 제 을 방송했어_9_ l년에 한번 기네스 북에 오르는 사람. 한 기인들을 모아다 놓고 쇼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제일 무거운 사람, 제일 키가 큰 사람, 세계에서 제일 기억력이 좋은 사람, 물구나무를 세계에서 제일 오래 선 사람, 이런 사람이 다 모 이는 것입니다 한국의 김모라고 하는 젊은이도 물구나무서기 신기록을 했어요 50m를 뛰는데 세계 신기록을 냈어요. 그 외에 아주 인상깊은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미국 사람인데 나이가 50이 넘은 51 살인가 52살인가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 은 얼굴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마음대로 수축을 하는 거지_9_
그런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보통 얼굴을 가 진 백인인데 얼굴을 구길 때면 여러분이 마시다가 구겨 버리는 콜 라 깡통처럼 구기는 것이었어요. 턱과 코도 완전히 이마에 닿습니다. 얼굴이 주먹만해져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사람이 저렇게 할 수가 있는가 놀랍습니다. 얼마나 했는가 했더니 33년을 했대요 그런 인생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이 나왔는데 40이 조금 넘은 사람입니다. 필름통과 같 은 플라스틱 통을 먼저 먹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얘기해서 젊은 이들이 이떻게 할까 두렵습니다만은 바늘을 먹는데 바늘을 수없이 상킵니다. 맨 나증에는 뚜껑을 먹습니다. 그런 후 마지막에 토해 내는데 그 뚜껑은 닫혔고 그 안에 바늘이 꽉 들어찼어요. 세상에 이런재주 있는 사람도 있어요 또 하나는 구슬을 먹는 사람입니다. 빨강. 노랑, 파랑 구슬을 다먹게 합니다. 그런 후 사회보는 아나운서가 파란 구슬 꺼내라 하니 까 한참 배를 움직이더니 파란 구슬이 나와-9_ 얼마 했느냐 물으니 lS-4여년을 했답니다. 별난 인생 다 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저렇 게 사는 데 얼굴 구기는 재주로 남에게 무얼 줄겁니까. 무엇을 남길것입니까. 한평생 매만 맞는 어떤 미국 영화배우가 얼마 전에 자살을 해서 죽었습니다. 나는 내 평생을 매만 맞는 대역 노릇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의 마지막 유언이 나는 나의 인생을 네 뜻대로 못살았다 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길지 않습니다. 그 인생을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 복음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남에게 어떤 유익을 끼칠 것인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내 인생이 끝난 다음에 묘비를 세운다고 하면 이 사람은 보람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남긴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는 들을 정도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물음의 대답은 바로 그것입니다.
넷째, '게 주어진 삶은 언제까지입니까' 라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제한된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떻습니다. 나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모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 언제 오실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가 주님의 제림 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에 마귀가 이 말을 증거했습니다 1992년 1o월 X X날 주가 재림한다. 온 한국 교회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몸살을 많이 았고. 교인들이 얼마나 큰 상처들을 입었고 얼마나 영흔들이 많은 아픔들을 가지고 이 날을 대처했습니까 영생을 묻는 우리 마지막 물음 앞에 주님은 물으십니다. '등을 준비했느냐 기름까지 준비해라 하십니다. 기름의 분량이 어떠십니 까. 그냥 길을 떠나려고 할 때도 준비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멀지 않다고 하면 영생을 묻는 마지막 물음에 '준비 잘 하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지금 네가지 물음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당신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하니님의 자녀요 히니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녀요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을 사람입니다. 당신은 믿음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할 것입니까 하는 물음이 여러분이 주님 앞에 가실 때까지 온전한 물음이 되고 여러분의 신앙이 윤택해지고 여러분들의 교회생활 이 복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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