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 나는 하나님의 축복과 풍요 (시36:5-10)
본문
신앙 생활은 어떠한 고백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분명한 고백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시련이 와도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고백이 있는 사람만이 어려움의 때도 이길 수 있으며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던 신실한 신앙의 선배들은 그들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들이 입은 도움과 은혜에 대해 놀라운 신앙 고백들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의 가장 최대의 위기였던 이삭을 제물로 바친 시험을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여호와 이레)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 그런가 하면 사무엘은 어려운 전쟁이 마쳐지고 나서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에벤에셀)는 고백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위대한 신앙 고백과 함께 위대한 신앙의 흔적을 남겼다. 올 한 해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되게 되어 있는 형통의 축복을 보장받았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그 근거를 발견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한 새 것이기에 인생과 역사를 젊게하고 기운차게 만들며 신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자신을 갖게 만들기에 낡은 것과 옛 것을 잊고 새 부대에 담기만 하면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통이 보장된 원인을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 주고 계십니까
1. 무엇을 받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원천이 되시며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세상의 악인들은 가진 것과 지식으로 자랑하지만, 시인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도움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환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도우심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선언해 준다. 나의 나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은 시인이 고백하는 진리를 깨달아 안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해 주시며, 그안에 있는 자가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특하신 성품을 통해서 얻게 된다. 즉 인자하심과 영원 무궁하신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되었다. 시인은 이 놀라운 은혜를 받고 그것이 얼마나 보배로운가라고 외친다.
2. 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은혜를 받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났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대단한 가치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로 여김을 받게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는 존재가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는가 그것은 아무리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은혜이다.
3. 어떻게 허락하시는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에는 한 점의 오차나 실수가 있을 수 없으며,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는 사실이다. “실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시인의 고백(시 121, 127편)은 이러한 속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가난 혼인 잔치의 기적도 그렇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는 놀라운 풍요로움이 있다.
4.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는 택하신 자들을 싫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보호하신다.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끝날까지 보호하신다. 인간 편에서 문제가 생겨질 뿐이지 하나님의 은혜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겨질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끝날까지 보호하시며, 그 보호하심은 철저하다. 그 보호하심은 “주의 날개”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안에는 편안이 있고 안식이 있다. 그날개 아래 있는 주의 백성들을 해할 준재는 이 땅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5. 하나님은 살진 것으로 풍족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돌아온 탕자를 먹이시는 아버지, 푸른 초장으로 양떼를 이끌고 나가 먹이시는 목자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준다. 그분은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도 풍성하게 먹이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내는 동안에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풍성하게 먹이셨다. 당신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과 영의 양식으로 풍성하게 먹이시는 분이시다. “살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채우심이 얼마나 풍성하며 넉넉한가를 시사하는 말이다.
6. 하나님은 복락의 강수로 먹이신다고 말씀하신다. 목마르지 않도록 먹이시는 하나님,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마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메마른 사막 지대인 중동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도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목마름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약속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마실수록 목마를 수밖에 없는 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복락의 생수로 먹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목마른 인생들을 언제나 말씀 앞으로 초대하여 기갈을 면케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사55:1)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칠 것을 약속하십니다.(요4:14, 7:37-38)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계7:17) 생수가 강같이 넘쳐 흐름은 말씀 충만, 은혜 충만, 성령님 충만한 생활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결코 그 심령에 마름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가리킵니다. 이런 복락의 강수가 믿는 내 마음 중심에서부터 터져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시기에 형통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7. 그로 인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이러한 풍성하신 은혜와 돌보심으로 인해 우리는 어두움의 삶이 아니라 빛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시인은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빛을 얻게 되었고,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빛 가운데 살 수 있게 된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풍요로 채워지게 되었다. 생수가 마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마름이 없는 넉넉한 생수의 강을 허락해 주셨음에도 그 샘이 말라드는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코 풍성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복락의 강수가 말라드는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1) 하나님 앞에 인색할 때 그러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합당한 감사가 따르지 않고 인색할 때 강수는 말라듭니다. 인간이 자기 꾀에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전7:29)
2) 은혜 받고 말씀받는데 게으를 때 그러합니다. 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잘 그려져 있기에 언제나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선이 단절되지 않을 때 강수는 마르지 않습니다.
3) 전도하지 않을 때 그러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외면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도 거두워지고 결과 샘은 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4) 교만할 때 그러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약4:6) 따라서 겸손할 때 하나님은 복락의 강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강퍅하고 온유치 못하면 땅은 메마르고 고갈되어 비를 흡수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국은 사막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5) 기도생활이 없을 때 그러합니다. 기도 생활이 짧아지고 횟수가 줄어들고 관심이 적어지면 심령은 메마릅니다. 마음은 강퍅해지고 과거의 은혜, 감사거리를 들춰내기에만 급급합니다.
6) 성령님의 기름이 마를 때 그러합니다. 교회 생활은 마치 돌아가는 기계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이 있으면 소리나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가지만 기름이 마르면 삐그덕 거리고 소음으로 시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열이 나고 기계는 타서 결국은 갉아먹는 결과만을 초래케 될 따름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은혜의 강물이 고갈된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불량배, 무신론자로 아비의 얼굴을 더럽혔습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정과 나라 전체가 이상이 없는 암흑의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삼상 3:1) 한나는 복락의 강수가 터진 대표적 인물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하는 여자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간절히 매달려 땀과 눈물과 피로서 진액을 짜면서 기도한 유일한 산 자가 한나였습니다. 이 한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샘물과 복락의 강수가 터져 흐름으로써 마침내 나라 전체가 대각성 운동을 맞는 계기를 허락받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복락의 생수가 고갈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사무엘 선지자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내가 결단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삼상12:23)는 위대한 고백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구원 섭리의 줄기가 기도하는 한나로 인해 발생했음을 기억하면서 복락의 강수를 잉태하는 기도의 산실을 언제나 준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욕망대로 사는 자의 복락의 강수는 결코 말라들지 않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이 정도면'이 가장 위험한 태도입니다. 자만심에 눈이 멀면 모든 일을 방심하게 됩니다. 결과 구멍이 뚫어지고 맙니다.(계3:14-17) 힘써 사랑할 때 복락의 강수는 샘솟아 오릅니다. 찬송의 곡조도 복락의 강수의 샘물을 솟구치게 합니다. 올 한 해 이 모든 승리의 조건들을 총동원해서 심령에 갈함이 없이 늘 넉넉한 은혜와 복락의 강수 속에서 목마름이 없는 형통의 헤엄을 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무엇을 받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원천이 되시며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세상의 악인들은 가진 것과 지식으로 자랑하지만, 시인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도움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환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도우심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선언해 준다. 나의 나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은 시인이 고백하는 진리를 깨달아 안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해 주시며, 그안에 있는 자가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특하신 성품을 통해서 얻게 된다. 즉 인자하심과 영원 무궁하신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되었다. 시인은 이 놀라운 은혜를 받고 그것이 얼마나 보배로운가라고 외친다.
2. 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은혜를 받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났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대단한 가치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로 여김을 받게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는 존재가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는가 그것은 아무리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은혜이다.
3. 어떻게 허락하시는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에는 한 점의 오차나 실수가 있을 수 없으며,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는 사실이다. “실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시인의 고백(시 121, 127편)은 이러한 속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가난 혼인 잔치의 기적도 그렇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는 놀라운 풍요로움이 있다.
4.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는 택하신 자들을 싫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보호하신다.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끝날까지 보호하신다. 인간 편에서 문제가 생겨질 뿐이지 하나님의 은혜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겨질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끝날까지 보호하시며, 그 보호하심은 철저하다. 그 보호하심은 “주의 날개”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안에는 편안이 있고 안식이 있다. 그날개 아래 있는 주의 백성들을 해할 준재는 이 땅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5. 하나님은 살진 것으로 풍족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돌아온 탕자를 먹이시는 아버지, 푸른 초장으로 양떼를 이끌고 나가 먹이시는 목자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준다. 그분은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도 풍성하게 먹이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내는 동안에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풍성하게 먹이셨다. 당신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과 영의 양식으로 풍성하게 먹이시는 분이시다. “살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채우심이 얼마나 풍성하며 넉넉한가를 시사하는 말이다.
6. 하나님은 복락의 강수로 먹이신다고 말씀하신다. 목마르지 않도록 먹이시는 하나님,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마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메마른 사막 지대인 중동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도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목마름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약속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마실수록 목마를 수밖에 없는 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복락의 생수로 먹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목마른 인생들을 언제나 말씀 앞으로 초대하여 기갈을 면케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사55:1)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칠 것을 약속하십니다.(요4:14, 7:37-38)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계7:17) 생수가 강같이 넘쳐 흐름은 말씀 충만, 은혜 충만, 성령님 충만한 생활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결코 그 심령에 마름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가리킵니다. 이런 복락의 강수가 믿는 내 마음 중심에서부터 터져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시기에 형통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7. 그로 인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이러한 풍성하신 은혜와 돌보심으로 인해 우리는 어두움의 삶이 아니라 빛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시인은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빛을 얻게 되었고,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빛 가운데 살 수 있게 된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풍요로 채워지게 되었다. 생수가 마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마름이 없는 넉넉한 생수의 강을 허락해 주셨음에도 그 샘이 말라드는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코 풍성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복락의 강수가 말라드는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1) 하나님 앞에 인색할 때 그러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합당한 감사가 따르지 않고 인색할 때 강수는 말라듭니다. 인간이 자기 꾀에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전7:29)
2) 은혜 받고 말씀받는데 게으를 때 그러합니다. 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잘 그려져 있기에 언제나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선이 단절되지 않을 때 강수는 마르지 않습니다.
3) 전도하지 않을 때 그러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외면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도 거두워지고 결과 샘은 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4) 교만할 때 그러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약4:6) 따라서 겸손할 때 하나님은 복락의 강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강퍅하고 온유치 못하면 땅은 메마르고 고갈되어 비를 흡수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국은 사막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5) 기도생활이 없을 때 그러합니다. 기도 생활이 짧아지고 횟수가 줄어들고 관심이 적어지면 심령은 메마릅니다. 마음은 강퍅해지고 과거의 은혜, 감사거리를 들춰내기에만 급급합니다.
6) 성령님의 기름이 마를 때 그러합니다. 교회 생활은 마치 돌아가는 기계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이 있으면 소리나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가지만 기름이 마르면 삐그덕 거리고 소음으로 시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열이 나고 기계는 타서 결국은 갉아먹는 결과만을 초래케 될 따름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은혜의 강물이 고갈된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불량배, 무신론자로 아비의 얼굴을 더럽혔습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정과 나라 전체가 이상이 없는 암흑의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삼상 3:1) 한나는 복락의 강수가 터진 대표적 인물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하는 여자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간절히 매달려 땀과 눈물과 피로서 진액을 짜면서 기도한 유일한 산 자가 한나였습니다. 이 한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샘물과 복락의 강수가 터져 흐름으로써 마침내 나라 전체가 대각성 운동을 맞는 계기를 허락받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복락의 생수가 고갈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사무엘 선지자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내가 결단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삼상12:23)는 위대한 고백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구원 섭리의 줄기가 기도하는 한나로 인해 발생했음을 기억하면서 복락의 강수를 잉태하는 기도의 산실을 언제나 준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욕망대로 사는 자의 복락의 강수는 결코 말라들지 않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이 정도면'이 가장 위험한 태도입니다. 자만심에 눈이 멀면 모든 일을 방심하게 됩니다. 결과 구멍이 뚫어지고 맙니다.(계3:14-17) 힘써 사랑할 때 복락의 강수는 샘솟아 오릅니다. 찬송의 곡조도 복락의 강수의 샘물을 솟구치게 합니다. 올 한 해 이 모든 승리의 조건들을 총동원해서 심령에 갈함이 없이 늘 넉넉한 은혜와 복락의 강수 속에서 목마름이 없는 형통의 헤엄을 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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