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그물 (눅5:1-11)
본문
새해 첫 주일 아침입니다. 새해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신앙 생활로서 보다 많은 성숙을 가져오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6가지의 원칙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무리가 예수를 옹위하여 말씀을 들을새.”(1절)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을 구속시키는 말씀이고 그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쪼개고 수술하는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교육하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복음은 “무리가 옹위하여 들음”으로써 전파되었고 펴져 나갔습니다. 무리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음으로써 전도가 시작되었고 변화가 시작되었고 인생관이 바뀌었고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성숙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중심을 이룬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2.둘째는 순종의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순종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부족됨을 고백ㅎ고, 그의 뜻 앞에 나를 복종시킬 줄 알고, 순종해 나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아주 기가막힐 정도의 철두철미한 순종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 일행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날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온 밤을 지새워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허기지고 지친 그들은 고기잡는 일을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곳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 이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눅5:5)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말을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을 새겨 보면 굉장한 순종의 대답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그는 고기 잡는데 전문가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는 그 날의 풍향과 일기와 물결을 보고서도 고기떼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전문적인 어부입니다. 더구나 밤을 새워 그물을 던져 본 사람이 얕은 곳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보지 않았겠습니까 오른쪽 왼쪽, 수도 없이 던져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그 곳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는 데는 문의한입니다. 경험도, 기술도, 전무한 분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깊은 데로 가서 한번 더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내벹듯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습니다. “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다 해 보았습니다. ”라든지 “안 됩니다. 밤새 다 해 보았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안 됩니다.”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신앙 용어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꾸만 “안 됩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 정신이 은연중에 우리들의 의식 자체를 부정적인 의식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은 기적을 수반할 수 있는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의지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이것이 순종의 원동력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살고, 그 곳에 나를 복족시키고,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금년에는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셋째는 체험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체험이 중요합니다. 매일 듣기만 하고, 구경만 하고, 따라만 다니는 신앙에는 더 이상의 깊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실수투성이의 사람입니다. 겁이 많습니다. 즉흥적입니다. 다혈질입니다. 그가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동행하면서 동고 동락하였던 예수님의 측근이었으면서도 그는 예수님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오늘의 베드로가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인생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그는 나가서 전하였고, 외쳤고, 증거했고, 자신 있게 청중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체험이 주는 힘입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이 같은 용기가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에게 있어서 실력이고 무기이고 자질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던진 결과 그물 가득히 물고기가 잡혀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직접 체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두고두고 베드로로 하여금 무게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준 동기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4.넷째는 협동입니다. 신앙의 생활은 화음의 삶입니다. 이를테면 협동의 생활입니다. 균형있는 삶은 언제나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지식인과 무지자가,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고 조화가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한번 더 던진 그물에는 고기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뒷처리하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7절). 이것이 협동입니다. 내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으니 흥분하고 즐거워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것이니, 나만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동무를 불러” 함께 건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입니까 신앙 생활을 잘하면 이렇게 함께 즐겁게 되고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협동의 신앙 생활입니다. 협동이 잘 이루어지면 모두가 즐겁고 모두가 용기를 얻고 모두가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선이 있는 곳에는 화음이 깨지고 조화가 깨집니다. 싸움이 시작되고 다툼과 시기가 생겨 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불화를 끼치게 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같은 베드로의 협동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결과 허기지고 지쳐 있던 모두에게 기쁨과 소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잘 조화된 화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5. 다섯째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갑자기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아 낙심하고 허기졌던 터에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기적같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흥분하였습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죄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수고를 했어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던 자신인데, 말씀 한 마디에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히도록 하시는 주님의 모습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본 그는 철저하리 만큼 죄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고백 하였습니다. “(눅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을 만나 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 같은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왜 교만이 나오고 왜 불순종이 나옵니까 그것은 주님을 만나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비추어진 자신의 남루하고 무능한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그 앞에 비추어진 나 자신을 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용서의 마음이 주어지고, 베푸는 마음이 생겨나고, 양보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순종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인 동시에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있어야만 우리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6. 여섯째는 사명 부여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입입니다.” 이 고백은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그런 고백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입입니다.”하고 고백하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님은 엎드려 있는 베드로를 격려하시며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명 부여입니다. 베드로는 그 날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이렇게 해서 그는 하루 아침에 바닷가의 어부가 세계의 전도자로, 시골의 청년이 전 세계의 사도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십니까 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그물을 가득하게 채워 주십니까 그것은 매사를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킬 만한 순종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는 자요, 함께, 더불어, 협동할 줄 아는 사람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 죄인됨을 발견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새해에는 주님에게 붙잡혀 살고, 그물 가득히 채워지는 소망스런 삶을 살고, 모두에게 희망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 줄 수 있는 협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써 나갑시다. 주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어 넘치는 그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1,
첫째는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무리가 예수를 옹위하여 말씀을 들을새.”(1절)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을 구속시키는 말씀이고 그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쪼개고 수술하는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교육하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복음은 “무리가 옹위하여 들음”으로써 전파되었고 펴져 나갔습니다. 무리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음으로써 전도가 시작되었고 변화가 시작되었고 인생관이 바뀌었고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성숙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중심을 이룬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2.둘째는 순종의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순종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부족됨을 고백ㅎ고, 그의 뜻 앞에 나를 복종시킬 줄 알고, 순종해 나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아주 기가막힐 정도의 철두철미한 순종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 일행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날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온 밤을 지새워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허기지고 지친 그들은 고기잡는 일을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곳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 이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눅5:5)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말을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을 새겨 보면 굉장한 순종의 대답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그는 고기 잡는데 전문가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는 그 날의 풍향과 일기와 물결을 보고서도 고기떼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전문적인 어부입니다. 더구나 밤을 새워 그물을 던져 본 사람이 얕은 곳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보지 않았겠습니까 오른쪽 왼쪽, 수도 없이 던져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그 곳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는 데는 문의한입니다. 경험도, 기술도, 전무한 분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깊은 데로 가서 한번 더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내벹듯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습니다. “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다 해 보았습니다. ”라든지 “안 됩니다. 밤새 다 해 보았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안 됩니다.”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신앙 용어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꾸만 “안 됩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면 좋지 않습니다. 이 정신이 은연중에 우리들의 의식 자체를 부정적인 의식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은 기적을 수반할 수 있는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의지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이것이 순종의 원동력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살고, 그 곳에 나를 복족시키고,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금년에는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셋째는 체험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체험이 중요합니다. 매일 듣기만 하고, 구경만 하고, 따라만 다니는 신앙에는 더 이상의 깊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실수투성이의 사람입니다. 겁이 많습니다. 즉흥적입니다. 다혈질입니다. 그가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동행하면서 동고 동락하였던 예수님의 측근이었으면서도 그는 예수님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오늘의 베드로가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인생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그는 나가서 전하였고, 외쳤고, 증거했고, 자신 있게 청중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체험이 주는 힘입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이 같은 용기가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에게 있어서 실력이고 무기이고 자질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던진 결과 그물 가득히 물고기가 잡혀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직접 체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두고두고 베드로로 하여금 무게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준 동기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4.넷째는 협동입니다. 신앙의 생활은 화음의 삶입니다. 이를테면 협동의 생활입니다. 균형있는 삶은 언제나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지식인과 무지자가,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고 조화가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한번 더 던진 그물에는 고기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뒷처리하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7절). 이것이 협동입니다. 내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으니 흥분하고 즐거워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것이니, 나만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동무를 불러” 함께 건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입니까 신앙 생활을 잘하면 이렇게 함께 즐겁게 되고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협동의 신앙 생활입니다. 협동이 잘 이루어지면 모두가 즐겁고 모두가 용기를 얻고 모두가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선이 있는 곳에는 화음이 깨지고 조화가 깨집니다. 싸움이 시작되고 다툼과 시기가 생겨 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불화를 끼치게 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같은 베드로의 협동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결과 허기지고 지쳐 있던 모두에게 기쁨과 소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잘 조화된 화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5. 다섯째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갑자기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아 낙심하고 허기졌던 터에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기적같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흥분하였습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죄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수고를 했어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던 자신인데, 말씀 한 마디에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히도록 하시는 주님의 모습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본 그는 철저하리 만큼 죄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고백 하였습니다. “(눅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을 만나 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 같은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왜 교만이 나오고 왜 불순종이 나옵니까 그것은 주님을 만나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비추어진 자신의 남루하고 무능한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그 앞에 비추어진 나 자신을 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용서의 마음이 주어지고, 베푸는 마음이 생겨나고, 양보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순종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인 동시에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있어야만 우리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6. 여섯째는 사명 부여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입입니다.” 이 고백은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그런 고백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입입니다.”하고 고백하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님은 엎드려 있는 베드로를 격려하시며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명 부여입니다. 베드로는 그 날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이렇게 해서 그는 하루 아침에 바닷가의 어부가 세계의 전도자로, 시골의 청년이 전 세계의 사도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십니까 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그물을 가득하게 채워 주십니까 그것은 매사를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킬 만한 순종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는 자요, 함께, 더불어, 협동할 줄 아는 사람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 죄인됨을 발견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새해에는 주님에게 붙잡혀 살고, 그물 가득히 채워지는 소망스런 삶을 살고, 모두에게 희망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 줄 수 있는 협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써 나갑시다. 주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어 넘치는 그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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