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생명수 (겔47:1-12)
본문
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환경오염 때문이다. 수돗물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정마다 생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 생수의 가격이 보통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름값과 맞먹는 실정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생수도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하에서 뽑아올린 즉시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세균에 의해 오염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영원한 생수가 있다. 오염의 염려가 없다. 가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무료다. 어떤 생수인가
1. 큰 강을 이루었다(1-5).
그것은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였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문지방이란 문틀을 말한다. 이 물은 줄기를 이루어 제단의 오른쪽을 지나서부터 계속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흐르던 이 물줄기가 바깥 동문의 오른쪽에서 또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물줄기에서 1천자(300M)되는 곳의 깊이를 재어보니 사람의 발목까지 잠기고 있었다. 2천자 되는 곳은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3천자가 되는 지점의 깊이는 사람의 허리에까지 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4천자 되는 지점의 깊이는 헤엄을 쳐야지만 될 정도로 깊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아주 미미하게 시작이 되었다. 그야말로 미약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는 세계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세를 확장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물줄기가 한국강산을 삼키고 있다. 홍수가 되어 수마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복음으로 강산을 뒤덮고 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고 힘이다. 강물이 대지를 적시고 잠구듯이 복음도 앞으로 뻗어간다.
그런데 강물은 반드시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른다는 점이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복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곳으로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높은 곳으로는 흐를 수가 없다. 반드시 낮은 곳이어야 한다. 내가 낮아지고 복음을 사모하면 주님은 나를 잠그어 주신다.
2. 생명을 공급하였다(6-12).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변화가 일어났다. 강 언덕에는 수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이었다.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사해바다에 까지 이르렀다. 사해바다는 모든 물을 받기만 하고 밖으로 보내지를 못해서 소금이 되는 곳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소금농도가 짖은 바다가 사해다.
그런데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가 들어가니까 소금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물이 변하니까 생명이 살기 시작하였다. 물고기가 살게되니 자연히 물고기를 잡으려는 어부들이 모여들었다. 황폐한 산업의 부흥이 왔다는 말이다. 다른 바다와 비교해서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바다로 변하였다. 그러나 생수가 흘러 들어가지 못하는 곳들도 있었다. 늪지대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사해바다와 달리 소금기가 그냥 있었다. 이것은 사해의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바로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 때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거부한 결과는 그냥 그대로였다.
가장 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강 언덕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년 내내 잎이 푸른 과일나무가 늘어서서 쉬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다달이 새로운 열매를 맺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약효가 있어서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인기가 있었다.
3. 이 생수는 바로 성령이시다.
기독교가 지나간 곳마다 새로운 변화가 발생했다.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용기를 얻고 도전하여 삶을 변화시켰다. 사해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사해와 다른 점은 일단 그 물이 지나가도록 길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해는 아예 출구를 봉쇄해 버렸다.
받은 만큼 남에게도 주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만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결국 사해처럼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생수에 적셔지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고 만다. 소금처럼 짠 사람이 단물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비록 사해는 받기만 하고 보내지는 않는 자기만 아는 웅덩이였지만 무엇을 받아드리는 가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있었고, 성령의 생수는 소금을 단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곳,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받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무지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늪이요, 연못이다. 이들은 남을 도우려고도 않는다. 오직 자기만 있을 뿐이다.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가 제단을 돌아 흘러내렸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성령의 역사가 유럽을 통하여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아시아로 건너왔다. 성령의 생수가 가는 곳마다, 흘러가는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 시켰다. 쓸모 없는 사람이 변하여 단물을 내는 사람이되었다.
나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변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변해야 하고 우리 가정이 변해야 한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도록 자신을 낮추자. 그리고 받은 만큼 남에게도 돌려주자.
그런데 이 생수의 가격이 보통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름값과 맞먹는 실정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생수도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하에서 뽑아올린 즉시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세균에 의해 오염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영원한 생수가 있다. 오염의 염려가 없다. 가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무료다. 어떤 생수인가
1. 큰 강을 이루었다(1-5).
그것은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였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문지방이란 문틀을 말한다. 이 물은 줄기를 이루어 제단의 오른쪽을 지나서부터 계속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흐르던 이 물줄기가 바깥 동문의 오른쪽에서 또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물줄기에서 1천자(300M)되는 곳의 깊이를 재어보니 사람의 발목까지 잠기고 있었다. 2천자 되는 곳은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3천자가 되는 지점의 깊이는 사람의 허리에까지 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4천자 되는 지점의 깊이는 헤엄을 쳐야지만 될 정도로 깊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아주 미미하게 시작이 되었다. 그야말로 미약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는 세계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세를 확장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물줄기가 한국강산을 삼키고 있다. 홍수가 되어 수마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복음으로 강산을 뒤덮고 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고 힘이다. 강물이 대지를 적시고 잠구듯이 복음도 앞으로 뻗어간다.
그런데 강물은 반드시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른다는 점이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복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곳으로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높은 곳으로는 흐를 수가 없다. 반드시 낮은 곳이어야 한다. 내가 낮아지고 복음을 사모하면 주님은 나를 잠그어 주신다.
2. 생명을 공급하였다(6-12).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변화가 일어났다. 강 언덕에는 수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이었다.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사해바다에 까지 이르렀다. 사해바다는 모든 물을 받기만 하고 밖으로 보내지를 못해서 소금이 되는 곳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소금농도가 짖은 바다가 사해다.
그런데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가 들어가니까 소금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물이 변하니까 생명이 살기 시작하였다. 물고기가 살게되니 자연히 물고기를 잡으려는 어부들이 모여들었다. 황폐한 산업의 부흥이 왔다는 말이다. 다른 바다와 비교해서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바다로 변하였다. 그러나 생수가 흘러 들어가지 못하는 곳들도 있었다. 늪지대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사해바다와 달리 소금기가 그냥 있었다. 이것은 사해의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바로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 때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거부한 결과는 그냥 그대로였다.
가장 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강 언덕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년 내내 잎이 푸른 과일나무가 늘어서서 쉬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다달이 새로운 열매를 맺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약효가 있어서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인기가 있었다.
3. 이 생수는 바로 성령이시다.
기독교가 지나간 곳마다 새로운 변화가 발생했다.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용기를 얻고 도전하여 삶을 변화시켰다. 사해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사해와 다른 점은 일단 그 물이 지나가도록 길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해는 아예 출구를 봉쇄해 버렸다.
받은 만큼 남에게도 주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만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결국 사해처럼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생수에 적셔지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고 만다. 소금처럼 짠 사람이 단물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비록 사해는 받기만 하고 보내지는 않는 자기만 아는 웅덩이였지만 무엇을 받아드리는 가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있었고, 성령의 생수는 소금을 단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곳,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받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무지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늪이요, 연못이다. 이들은 남을 도우려고도 않는다. 오직 자기만 있을 뿐이다.
성전에서 솟아난 생수가 제단을 돌아 흘러내렸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성령의 역사가 유럽을 통하여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아시아로 건너왔다. 성령의 생수가 가는 곳마다, 흘러가는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 시켰다. 쓸모 없는 사람이 변하여 단물을 내는 사람이되었다.
나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변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변해야 하고 우리 가정이 변해야 한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도록 자신을 낮추자. 그리고 받은 만큼 남에게도 돌려주자.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