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1% 정신 (눅15:1-7)
본문
유대인들로부터 소외받는 죄인들과 세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닌가”하고 비난했습니다. 그 당시 죄인들은 사회가 낙인찍어 놓았기 때문에 이 말이 합당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정신을 당신들이 생각하는 정신과 다른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양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목자에게 양 일백마리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마리를 잃고 그 한 마리를 찾아가는 그 1%의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은 1% 정신입니다. 아흔아홉이라는 거대한 집단, 거대한 규모의 유대인들이 아니고 그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그 1%에 대해 생각한 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예수의 1% 정신, 그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1. 1%에 대한 애착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1%의 애착의 대상은 구원을 받게 되어 있는 예수를 필요로 하는 그 한 영혼을 말합니다. 예수의 1%의 정신은 구원의 정신입니다. 이 구원에 1%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예수님은 거기에 애착을 가지시고 아흔아홉이라는 엄청난 숫자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고 낙인찍어 도외시했던 거기에 하나님이 구원의 1%라는 자의정신을 불어넣고 “내 정신은 이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한 영혼에 대해 애착을 가진 것이 교회의 정신이라면 오늘날 교회는 이 정신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가 교회의 관심일 때만 하나님이 그 교회를 자기 교회로 인정할 줄 믿습니다.
2. 1%를 위한 희생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목자는 자신을 던지는데 그 희생은 하나의 가치 때문입니다.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 1%의 정신이 바로 기독교 정신입니다. 우리는 과연 한 영혼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 1%를 위해 하늘영광을 다 버리고 희생하는 그 희생, 그것은 참 아픔과 고통을 말합니다. 영혼 하나를 건지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희생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기에 아흔아홉을 들에 두고 막대한 손해를 입습니다. 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앓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고뇌는 한 영혼에 대한 애착과 그를위해서 바치고자 하는 희생의 아픔입니다.
3. 1%로 인한 환희입니다.
예수님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하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것이 1%의 환희입니다. 아흔아홉이 어디갔든,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든,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의 1%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그 1% 기쁨을 체험해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 한사람을 구원하고 그 구원에 대해 얼마나 환희 가운데 사시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는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서 잔치를 벌이는 환희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작은 위로 속에서 하늘같은 기쁨을 맛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있는 조그마한 그 하나의 입에서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고 눈물겨워 하실 만큼 환희를 느끼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성령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올 때 우리는 그 양의 기분을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좋아하며 목자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고마워합니다. 세 번째는 눈물 흘리며 죄송해 합니다. 과연 이 세가지 중 어느 마음이 가장 고귀한 마음 같습니까 저는 세 번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죄송함 가운데 감사가 들어있고, 그 감사속에 기쁨과 사랑이 들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죄송함 가운데 참 감사가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송하다는 마음은 없고 자기가 잘났다는 교만함만 있는 사람은 참신자가 아닙니다. 고마워하고 죄송해하는 그 마음이 주님의 1%의 애착과 희생과 환희에 대한 보답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1%에 대한 애착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1%의 애착의 대상은 구원을 받게 되어 있는 예수를 필요로 하는 그 한 영혼을 말합니다. 예수의 1%의 정신은 구원의 정신입니다. 이 구원에 1%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예수님은 거기에 애착을 가지시고 아흔아홉이라는 엄청난 숫자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고 낙인찍어 도외시했던 거기에 하나님이 구원의 1%라는 자의정신을 불어넣고 “내 정신은 이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한 영혼에 대해 애착을 가진 것이 교회의 정신이라면 오늘날 교회는 이 정신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가 교회의 관심일 때만 하나님이 그 교회를 자기 교회로 인정할 줄 믿습니다.
2. 1%를 위한 희생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목자는 자신을 던지는데 그 희생은 하나의 가치 때문입니다.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 1%의 정신이 바로 기독교 정신입니다. 우리는 과연 한 영혼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 1%를 위해 하늘영광을 다 버리고 희생하는 그 희생, 그것은 참 아픔과 고통을 말합니다. 영혼 하나를 건지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희생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기에 아흔아홉을 들에 두고 막대한 손해를 입습니다. 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앓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고뇌는 한 영혼에 대한 애착과 그를위해서 바치고자 하는 희생의 아픔입니다.
3. 1%로 인한 환희입니다.
예수님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하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것이 1%의 환희입니다. 아흔아홉이 어디갔든,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든,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의 1%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그 1% 기쁨을 체험해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 한사람을 구원하고 그 구원에 대해 얼마나 환희 가운데 사시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는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서 잔치를 벌이는 환희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작은 위로 속에서 하늘같은 기쁨을 맛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있는 조그마한 그 하나의 입에서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고 눈물겨워 하실 만큼 환희를 느끼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성령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올 때 우리는 그 양의 기분을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좋아하며 목자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고마워합니다. 세 번째는 눈물 흘리며 죄송해 합니다. 과연 이 세가지 중 어느 마음이 가장 고귀한 마음 같습니까 저는 세 번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죄송함 가운데 감사가 들어있고, 그 감사속에 기쁨과 사랑이 들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죄송함 가운데 참 감사가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송하다는 마음은 없고 자기가 잘났다는 교만함만 있는 사람은 참신자가 아닙니다. 고마워하고 죄송해하는 그 마음이 주님의 1%의 애착과 희생과 환희에 대한 보답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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