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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오늘날 우리에게 (마6:11)

본문

주기도문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부분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은 영의 양식이기도 하고 육의 양식이기도 하다.
이 일용할 양식이 인생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의 양식에 편증되어 있다.
육의 양식은 어느 부분에 편증됨 없이 고르게 취하고 구했으면 좋으련만 영 의 양식은 구하는 자 몇 없고 육의 양식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육이 다 망하는 것이다.
영의 양식에 치중하면 육의 양식에 부족함이 없다.
기도문에서는 영의 양식을 구하라 가르치고 있다.
육의 양식을 구하다 죽어간 사건을 성서적으로 살펴보자.
"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 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 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 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 에게 퍈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 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 (창세기 25:29-34)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파는 에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민 11:4-35 " 먹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메추라기 사건이 생긴다.
왜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셨는가
지금의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와 발전된 지금 이 시대를 살펴본다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마 14:16-21을 보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였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 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 니에 차게 거두 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 라. " (마태복음 14:16-21) 사람들은 빵 문제가 우선이다 먹어야 사니까 당연하다 하겠으나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우선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상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만나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영생을 이루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만나보다는 육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좋아하고 만나는 즐겨하 지 않는다.
사람은 세상의 지식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한다.
세상에서 오는 고생은 잘 견디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련이나 고생은 거 절한다. 어차피 고생을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부탁하신다.
기왕 고생하는 고생을 나와같이 멍에를 같이 하고 배우자 하신다.
그러나 예수와 멍에를 같이 하자는데 같이 아니라 혹 오히려 보이는 사람들에 게 배우고 예수의 능력을 인정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음으로 영육간에 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신 것은 육의 양식을 구하라 하신 것이 아 니요 영의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육의 양식은 노동이 따르지만 영의 양식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부지런하면 육의 양식은 얻을 수 있는데, 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셨겠는 가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 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 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 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 할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 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 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 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 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 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 (마태복음 6:25-34)
이 말씀을 기도문과 같은 시간에 가르치시면서 우리의 구할 양식은 육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임을 확실하게 가르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나와 농사를 짖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많은 백성을 만나로 먹이심을 볼 수 있다.
이 광야의 사건에서 영의 생명이 있으면 육의 양식은 문제가 되지 아니함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육의 양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신명기 8장을 보라.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음을 밝히신다.
우리들 속에 육체 속에 생명의 존재가 있어 그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 자 없 고, 육의 양식을 구하는 것을 안타까이 하시고 생명을 중히 여기시는 예수님 은 영의 양식을 구하라 영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신 것이다.
각자 속에 있는 영도 양식 없이는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가 양식이 있어야 사는 것과 같이 영도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죽게 되어 있다.
육체만 양식을 먹지 못하면 죽는 줄 알고 있는데 영도 양식을 먹지 못하면 우리들의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죽어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일용할 양식을 누구에게 구하라 하셨겠는가 각자 속에 있는 영은 우리들에게 구하라 하셨다.
우리가 양식이 어디에 있느냐 하겠으나 우리가 양식을 가지고 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 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 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 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 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쩨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 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 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으라" (요한복음 21:15-17) 베드로에게 명하셨지만 결국은 성서를 대하는 모든 자에게 명하신 것이다.
"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 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끝에 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 지게 하는 것과 또 물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 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36-43)
천국의 아들들이 있다.
천국의 아들들을 양이라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에게도 일깨워 주고 있다.
각자 속에 있는 양이 우리들에게 간청하고 있는데 인생들이 그 생명의 부르 짖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육신을 좇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 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 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의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 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5-11) 그리스도의 영이 " 마태복음 13장 " 의 말씀과 같이 각자 속에 생명의 예수 각자의 구원자가 육신 안에 함께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동거하면서 그에게 양식을 아니주므로 속의 생명이 죽어 가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과한 교 휸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 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라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 에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 (히브리서 6:1-6) 속의 생명이 죽은 것을 위의 말씀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를 죽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지만
첫째는 믿지 아 니한 까닭에 죽인 것이다.
이미 양의 제물로 삼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자들이 속에 있는 생 명을 죽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생명을 죽이고 있기에 그것에 대 하여서 이렇게 예수를 죽인 것은 믿음이 없는 연고라 하면서 회개에 합당하 게 하기 위함이였는데 그 백성들은 예수를 죽이고 회개치 않고 제자까지 다 주기고도 지금까지 회개치 않고 있다.
성령 받은 자들은 예수를 내가 죽였다 하여 회개하고 성령충만 충만 하였으 나 그들은 속 사람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였는가 먹였다 하면 히브리서 6:1-6 과 로마서 8:26을 왜 기록하셨을까 "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 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26)
로마서 3:10-18 이 말씀이 왜 필요하였겠는가 "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 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 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3:10-18) 성령은 충만히 받고 회개는 하였으나 초보를 버리지 못하고 무리들이 무리를 만들고 율법자가 율법으로 성전을 다스리다가 예수를 죽인 것과 같이 교리를 세워 교리에 합당치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과감히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 회개한 그들도 또한 현저히 예수 생명을 죽이고 살고 있다.
성령 받아 모인 그들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 지는 그들이 잘 알고 있다.
그 평가는 그들 각자가 하여 보라.
성령 받아 회개한 모든 자들은 이렇게 전하고(말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의 구주이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죽어 장사 되었지만 부활하여 우리를 구속하였으니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다고 믿으며 또한 믿으라고 전한다.
그러나 가르치신 기도에 있어 우리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뜻은 다르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들과 함께 육신 속에 천국의 아들이 존재함으로 때를 따 라 육체가 배 고플 때 속에 동거하는 양도 배가 고픔을 알고 먼저 그에게 양식을 대접하고 육의 양식을 먹자 그리하면 영육간에 양식이 된다.
"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 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 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 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 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르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 다 내 살을 먹고 내 패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 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 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요한복음 6:41-59)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매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생들의 고난을 감당하셨다.
감당함으로 모든 자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믿는 고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믿고 실천을 함으로써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그러므로 양을 먹이는 것이고 치는 것이다.
그 생명을 덧입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는가 왜 요한복음 10장에 양이 양의 문으로 들지 않고 담 넘어오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 하셨는가 예수님은 고통과 고난 그 모든 것을 감당하시고 그 기구를 유산으로 우리에 게 주고 가신 것이다.
"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 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 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34-39) 인생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구할 것은 육의 양식이 아니요 화평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받은 그 관-자기 십자가 자기가 지고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생활-을 감당하는 생활이 영생에 가는 길이다.
그 곤난 우리들의 고난을 예수의 고난과 견주어 보라.
나의 고난은 무시하고 그의 고난과 고통을 귀히 여기면 그 행위가 양식이 되 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각자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양식을 구할 것이 아니라 양식을 구하는 양이 자신과 같이 거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 기도의 가르침이다.
o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 드록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 "마태복음 13장" 육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천국의 아들들)과 우리 자신들이 거하고 둘 사이에 뱀이 거한다.
"창세기 3장" 육체를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
육체를 따라 태어나는 우리 내가 있는가 하면 또 태어날 그가 있는 것이다.
형과 아우이다.
육으로 태어나는 그는 형이고 거듭난 그가 동생인 것이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 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 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머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은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 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 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복음 19:23-30)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 먼저 될 자 많으니라 하셨다.
내적에서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면 뒤따라 태어나는 천국의 아들이 믿음에 따 라 태어나는 것이다.
나중에 믿음에 따라 태어나는 그가 천국으로 인도되는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생명을 덧입는 것이다.
그 생명이 덧입어져 사람이 만들어지면 만들어진 그 사람이 모든 만물의 영 장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 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상속자임을 하나님께서 계속 주장하심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스마엘도 자식이다.
그러나 상속자는 될 수가 없고 허리에서 태어나는 자 이삭이라야 상속자가 된다고 하셨듯 내적으로도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그 후 13년이 지난 다음에 아우 이삭이 태어난다.
이스마엘에게는 상속권이 없고 이삭에게는 있다.
육체를 따라 태어나는 우리는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과 같이 상속권이 없고 나중에 태어나는 그에게 상속권이 주어지는 사실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 주 신 것이다.
육체에 내재적인 뜻을 나타내셨는데, 우리들은 육체의 본능에 따라 육체의 본능의 종이 되어 말씀을 믿지 못하고 가인과 같이 아우를 죽이는 생활을 하 고 있다.
그러므로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였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 쌍태 에서와 야곱을 탄생한다.
야곱이 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는다.
결국은 아버지 이삭을 속임으로 장자에게 축복할 축복을 야곱에게 축복하므 로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두려워하여 외가집으로 피신한다.
피신 중 삼촌에게 열번이나 번역을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축복을 받은 야곱에게 재물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지혜 를 주사 많은 재물과 자녀들과 종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고향에 가는 도중에 야곱에게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므로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된다.
축복받은 그 축복에 대한 마지막 씨름이었다.
그 때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서는 우리를 가르키는 것이고 상징으로 기록하신 야곱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령의 존재는 옛 뱀이다.
" 하늘에서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 과 그이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 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이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 어 쫓기니라 " (요한계시록 12:7-9)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 속성이 가장 간사하다 하였고 지혜롭다고 하였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멋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 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7)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이 발꿈치를 상하 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되게 한다고 하셨다.
여자의 후손, 모든 자가 여자의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육체를 따라 우리들이 태어나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 하셨는데, 모든 육체가 죽기까지는 우리 각 육체 속에서 유혹하고 있다는 뜻이다.
" 흙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신 것과 뱀에게 흙을 먹고 배로 다 니라고 하신 것이다.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따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 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1-14)
끝까지 그 푯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우나 좌로 돌리면 부르심의 합당한 열매를 가지고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뱀이 종신토록 우리 안에 있어 육체의 흙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어떠한 죄를 졌기에 사함을 받아야 하는가
첫째는 있음도 알지 못하고 뱀의 종이 되어서 예수를 죽이듯 예수를 희롱하 듯 뱀의 지시에 따라 생명을 희롱한 것이다.
율법을 받은 자는 율법으로 예수를 희롱하였고, 성령은 받아 회개하였으나 성령을 받아 신명기 13:1-5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히브리서 6:1-6에서는 하늘의 모든 은사 비췸 천국의 맛까지 보고도 사단의 꾀임에 유혹되어 은사 집회 똔느 개인이나 성령을 따라 춤추며, 그 양, 생명, 아버지의 아들을 괴 롭게 하므로 죄를 진 것이다.
"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ㄷ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 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 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잔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 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신명기 13: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 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 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6:1-6) 교회는 교회대로 교회 교법에 따라 생명을 괴롭게 하므로 율법 받은 자나 성령 받은 자들이 교법으로 괴롭게 한 것이다.
이 교훈은 믿는 자들이 자신의 덧입을 생명에게 지은 죄에 대하여 기록하고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우리가 키워야 될 양을 돌보지 않고, 자신과 자신들의 자녀만을 키 우면서 키워서 덧입을 생명의 양은 키우지 못한 것이다.
키우지 못한 이유는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 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 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 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 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르 ㄹ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 서 그 제자는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 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요한복음 21:20-23) 타인의 문제, 타인의 신앙을 엿보거나 비판이나 비교하다가 그를 괴롭게 함 으로 키우지 못한 죄가 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은 양은 돌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생명에 관하여 열심히 봉사하다 가 그에에 죄를 진 것이다.
이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그들의 죄를 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은 죄를 사하오니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그러나 그 간청으로 인해 죄가 사하여 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들은 자기 십자가 자기가 지고 멍에를 같이하여 배우면서 속 생명, 아우를 키우는 것이다.
우리가 배울 것은 양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죄가 없어져 가는 것이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우리 죄를 사하였다하여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 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찌 아니하리라 육체 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거소가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 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 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 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 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라디아서 5:16-26)
육의 열매와 의의 열매가 있다.
그러나 율법자들이 율법은 있으나 완성되지 못하였고, 성령은 받았으나 열매 가 없듯이 우리가 율법이나 성령 세례로 열매가 오는 것은 아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을 통해 양(의)을 키우면 그 양이 장성하여 그 생명을 덧 입고 그 양이 율법과 성령의 인도하시는 인도하심을 바로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잉태되면 10 개월만에 태어나고 100일이 되어 눈을 마추고 1 년째 돌 이 되어서 엄마 아빠를 부르게 되면서 약 30 세 즈음 되면 부모의 공과 세상 의 이치를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들은 이와같이 무엇이나 더디다 다른 동물들은 이와같이 늦게 배우는 동 물은 없다.
왜 사람만이 늦을까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
육체 속에 탄생되는 생명의 잉태로 시작하여 그 생명(믿음)이 자라는 속도가 늦은 것이다.
영의 생명이 자라남이 그들이 자라나는 것과 같은 것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30 세 즈음 되어서 복음의 사역을 하셨다.
이삭도 13 세 즈음 자란 후에 양을 대신하여 제단에 올려 놓여짐으로 그 이 삭이 자라 부모의 믿음의 상속자가 된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에 그 상속자가 대적의 문을 얻는다.
우리들도 영생의 생명을 얻는데는 대적의 문(뱀)이 있다.
그러나 대적은 내적도 있거니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활에서도 대적이 있음 을 발견하기 바란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대적은 외적보다 내적 대적이 더하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내적인 대적을 해결하면 외적 대적은 없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서로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
우리들과 천국의 아들과 사랑이 이루어지면 대적과 유혹이 물러선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기록케 하신 것이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 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 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 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리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 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계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 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 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 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 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 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한복음 13:3-15)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의 공로로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가하다.
속 사람의 행위가 있고, 우리들 뱀의 종이 있는데 서로 서로 발을 씻어 깨끗 케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적 사랑은 부인하고 외적 사랑만 주장하니 내적 사람이 무산 되는 것이다.
기도를 가르치신 것은 내적으로 이루어지는 내막의 사정을 피력하여 가르치 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서로 서로 다툼도 많이 있다.
우리들이 아는 것은 세상 밖에 없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나라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아들은 천국으로 이끌고 우리는 세상으로 이끌고 있어 의견이 서로 맞지를 않는다.
우리가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으면 하늘이 아들은 죽은 자 이끌 고 가기는 쉽지만 우리들이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지 않고 뱀의 교훈에 따 라 행하므로 다툼이 생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 고백한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 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 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닜 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햇ㅇ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 하여 말하노라." (고린도전서 15:29-34)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다.
죽으면 그는 살고 우리를 이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아러한 신앙이나 믿음은 장성한 자들이나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말씀을 하실 적에 비사로만 말씀하셨다.
비사로만 말씀하신 것은 성서 창세기 일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장 끝까지 모든 기록이 사람들로서는 해석이 허락이 아니되고 오직 비사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연구한다 하여 해석할 수 없고 그 당시 사건들을 기록하신 것인데, 그 기록은 보이지 않는 영의 나라 영의 활동을 기록하면서 장차의 약속을 하시고 계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사하는데 있어서 서론과 같이 우리가 그에게 죄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하신다.
단, 서론에서 지적한 것을 행함으로 죄가 사하여 지는 것이다.
죄는 사함 받았다 하여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를 때 그 생명 체가 우리의 모양(사람)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서 정결하게 새 생명에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면서 육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천국 생활을 하다가 육체가 무너지면 저 하늘나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세상의 장막을 벗고 제 이의 장막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사랑의 결과이다.) "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힘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 하여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 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끈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 케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 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 찌라도 나의 삶으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 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 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멩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 니라." (에스겔 14:12-20)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시키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길 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우리들이 양식이 되시고 양식이 되어 주신 것이다.
또한 제물이 되어 주신 것이다.
믿고 행하면 구원에 이른다.
또는 예수와 같은 내가 너희 속에도 있다. 그와 함께(더불어) 서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우리는 천국의 아들을 키우는 일을 하고 마귀나 사단이 침입을 못하도록 지키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키우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천국의 아들이 자라는 내적 형태는 마가복음 4:26-29과 같다.
"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 렀음이니라." (마가복음 4:26-29)
추수 때가 되면 요한계시록 14장에 기록한 것 같이 곡식 걷는 자가 있따.
포도송이를 거두어 포도즙 틀에 넣고 틀을 누름과 같이 새 생명이 탄생된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타난 계시는 욥의 사건과 동일하다.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 놓은 사건과도 동일하다.
생명이 어느 정도 자라면 욥과 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o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늘의 아들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청은 우리들의 소원일 뿐 아니라 하늘의 아들들도 시험에 드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시험을 좋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은 반드시 누구에 게나 오는 것이다.
시험을 잘 이기는 자는 상급이 있다.
이 상급은 믿음의 성장 기능인 것이다.
예수님은 무슨 죄가 있어 마태복음 4장, 누가복음 4장에서와 같이 시험 받아 이기는 것을 기록케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나도 시험에 들었으나 내가 이긴 것과 같이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이기라고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시험은 누구나 다 오게 되어 있다.
시험 없이는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아담과 하와 같이 쫓겨나게 된다.
믿는 자이던 아니 믿는 자이던 시험은 다 받는 것이다.
모든 자에게 시험은 있으나 영생하기 위해 오는 시험이 있고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오는 시험도 있다.
어떠한 시험이 있떤 같에 시험을 이기면 세상의 출세도 영생의 상급도 있는 것이다.
시험은 필수이나 그 시험을 이기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영생으로 가는 영생을 이루는 시험에서 이기는 법은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면서 믿고 행하므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성경구절 첨가) 시험에서 지면 영생은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낫겠으나 그럴 수가 없는 것은 내가 한번 비췸을 받고는 도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성경구절 첨가)
그러므로 내 생명을 믿는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십자가만을 쥐면 그 쥐고 있는 현실은 영생의 길이다.
그 십자가에서 명철과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성경구절 첨가) 그 지혜와 명철은 영생하기에 합당한 지혜와 명철이지 세상에 사용하라는 지 혜와 명철이 아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우상을 많이 세웠다.
솔로몬의 지혜는 세상을 따라 나는 것이고, 십자가에서 나는 지혜와 명철은 생명의 길로 가는데에만 사용하라는 지혜와 명철이다.
"의" 역시 세상의 의가 있고 하늘의 의가 있다.
욥의 의는 세상에 있어 당대의 가장 귀한 의였다.
그러나 그 의는 하늘의 의가 아니므로 욥은 욥기 1장에서 보듯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2장에서 처까지 잃고 건강도 잃어 많은 수난을 겪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욥과 같이 많은 한탄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의 한탄은 모든 사람의 한탄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입술에 범죄하지 않고 그의 친구 셋과 다투는 것을 볼 수 있다.
욥의 말인 즉 "죄 지은 것이 없다"라고 변명하고 그 친구들은 "죄가 없이는 이러한 저주를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서로 다툰다.
그 친구들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였고 욥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뜻 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에게 지혜와 명철로 깨닫게 하시니 그는 첫마디 질문을 하여도 한 말도 대답지 못하겠다고 하였다.(성경구절 첨가) 욥의 고난이 끝이 나니 그에게는 시험 받기 전보다 재물은 배, 자녀는 더욱 아름다운 십 남매를 얻었다.
하나님에게 부족함 없이 잘하는 세상의 의인 욥도 시험을 받아 참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도 세상에 오셔서 많은 시련과 시험을 받아 부 활하여 만왕의 왕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육체의 죄를 십자가에 달려 저주함에 이르고 십자가 상에서 죽은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육체가 있고 육체를 따라 영의 형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천국(하늘나라)은 여기있다 저기있다 못하리니 너희 속에 있노라 말씀하셨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언약이 있는 것이다.
피의 언약으로 마음 속에서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우리 육체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우리가 우리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다스리게 하자" (창세기1:26절 중에서) 창조의 근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험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룟 유다는 시험에서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넘겨준다.
우리들도 예수를 넘겨주고 현재의 이권에 넘어가는 일들을 수 없이 이 시대 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문화권으로 말미암아 더욱 심각하다.
문화로 모든 육체의 안락을 맛 본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어리석다고 시험에서 믿는 자를 향하여 비웃고 있다.(요한계시록 18장)
그러므로 시험은 필수 조건이지만 빠지지 말고 내가 이긴 것 같이 너희도 이 기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권면의 말로 받아모든 히험을 극복하여 복 된 자들이 되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시험에 들어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였지만 그는 닭 우는 소리에 회개하므로 참 제자 사도가 된다.
-작은책-o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의 속에 심기워 있는 자신들(하나님의 아들들)이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그 요청은 하나님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죄인에게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22장" 대적의 문 그 대적이 악이다.
생명을 해하는 무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보냄을 받았으나, 세상의 악은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하루 속히 본향 천국으로 되돌아 갈 마음이 간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거 저런거 다 덮으시고 아버지의 뜻이 속히 이루어 졌음을 바 라는 단축의 말씀으로 다만이라 하신 것이다.
악은 세상이다. 이 세상은 악하게 지어져 있다.
이 악함 속에서만 생명 자라도록 되어 있다.
이 악함을 가시와 엉겅퀴로 말씀하고 계신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 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 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 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7-19)
가시와 엉겅퀴를 거두어 내어야 채소는 자란다.
채소는 영의 양식이다.
엉겅퀴와 채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찌 채소가 자라리요.
우리 속에 이미 악의 근원이 있다.
가시와 엉겅퀴이다.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는 것 같이 우리 지체 속에 악을 제거하여야 하나님 의 아들이 자라나게 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시켜야 될 의무가 있다.
즉 아담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가 채소를 가꾸어야 된다.
악을 물리치는 법은 로마서 6:1-4 에 나와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음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 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 니라" (로마서 6:1-4)
합하여 세례 받으면 모든 악은 물러간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 그 생명이 자라 행하게 된다.
예수님도 악에서 구원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장사되고 3 일만에 부 활하여 영체로 변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 같이 우리들도 합하여 세례 (죽으면) 받고 거듭나서 그 믿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행할 수 없으나 믿음은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처음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속에 악한 속에 있는데 우리들이 구원하여야 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한다.
그러나 성서를 대하는 자마다 하나님 또는 예수에게 우리를 구하여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이러한 유혹을 받지 말고 우리가 그를 먹이고 치고 키워서 그의 생명의 도움 을 받자.
생명만 있지 그는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가신 길을 가면 우리 악에서 그가 자라나게 되어 있다.
그가 자라서 장성하면 또한 그가 우리를 생명 가운데 있게 보존시킨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구원 받겠다고 온갖 생각과 행동으로 구원 받 자 하면서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을 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러한 행위가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같은 육체 속에 있는 생명을 도와주라 그렇게 하면 그는 그 보답으로 그 생 명과 함께 영원한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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