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어떻게 지키시렵니까? (마2:1-12)
본문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처음 맞이했던 성탄절처럼 새롭고 거룩함을 느낍니다. 벌써부터 TV에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기쁘다 구주 오셨네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어" 등 성탄절의 찬송들이 들 려 오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노래를 이처럼 많이 들었다면 실증이 났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찬송은 아무리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인 우찌무라 간조 선생 은 "하나님은 감정에 사로잡힌 사상가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혼 자 흐느껴 울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실천가로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예수를 보내신 실천 기념일입니다."라고 성탄절을 설명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여러 부 류의 사람들이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이들이 보여준 모습과 반응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성탄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⑴.동방의 박사들 본문에서 말하는 동방의 박사들은 박사라고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아마 바벨론이나 파사에 살면서 별을 보고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거나 아니면 점성술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평소에 늘 별을 관측하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고 큰 별이 나타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별을 따라서 먼 길을 고생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2천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했던 때이 기에 지금처럼 빠르고 좋은 비행기나 아늑하고 쿳숀이 좋은 자동차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대를 타고 머나먼 사막 길을 걸어서 별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하려고 찾아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오기까지는 엄청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오 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높은 산도 있었을 것이고 거친 광야도 있었을 것 이며 강과 바다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도의 위험이 있었을 것이고 맹수의 위협 이 있어서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 께 경배하려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냥 온 것이 아니고 귀중한 황금과 유 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찾으려고 애쓰고 고생한 끝에 찾던 분을 만난 그들의 기쁨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찾고 고대하던 그분 예수님이 말구유에 계시는 것을 본 그들은 황송하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랐 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마련한 예물을 드리는 그들은 아마도 모든 감정이 북받쳤 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던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다림과 사모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싶어서 간절히 기다리는 것 같 이 주님의 오심을 반가이 맞이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⑵.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고 유대 나라는 헤롯이 분봉 왕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원래 에돔 사람이었는데 후에 유대 왕 이 되어 37 년간 왕 노릇 하다가 여리고에서 죽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권을 보존하기 위해 서 친자식까지 죽인 잔인 무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정권 수호에 혈안이 되어 있는 헤롯 왕은 유대의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밖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헤롯 왕에게 자신이 아닌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대단 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을 새로 태어난 왕인 아기 예수를 죽여 버리려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 한지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헤 롯을 추종하던 추종 세력들이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소동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벌인 소동은 새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워하고 경계하고 죽이기로 생각하는 소동 이였습니다. 헤롯은 자기 외에 왕이 태어났다고 했을 때 얼마나 살기가 등등했겠습니까 누구를 위한 소동입니까 자신의 정권 보존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소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되면 교회들마다 소동을 칩니다. 야단법석입니다. 성탄 트리를 만들고 선 물을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어야지 예수를 죽이고 예수의 마음을 아프 게 하는 소동이라면 헤롯이 벌린 소동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들같이 소동하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안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소동이 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기 위한 소동이 났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도대 체 어떤 내용의 성탄절일까 오늘의 성탄절을 색깔로 표현해 보면 흰색 크리스마스:눈 내린 들판처럼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성탄절을 의미합니다.
검은색 크리스마스:흑심의 욕망을 채우려고 지키는 어두운 크리스마스를 의미합니다.
분홍색 크리스마스:도색의 음탕한 밤으로 먹고 마시며 죄짓는 크리스마스를 의미 합니다.
노란색 크리스마스:본문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처럼 귀중한 것을 바치기보다는 노 랭이처럼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인색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를 의미합니다.
회색 크리스마스:술 취한 무리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크리스마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성탄절은 어떤 색깔의 성탄절이겠습니까 혹 우리는 동방 박사들 처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귀중한 것을 바치지 못하고 노랭이처럼 인색하게 크리스 마스를 보내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⑶.대 제사장과 서기관들 예수님 탄생 당시 예루살렘이 있던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일찍이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나실 곳을 척척 알아맞히면서도 정작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찾아와 경배하 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지식으로는 잘 알면서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못했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박사들은 별을 보고 그 별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떠났고 그리스도를 찾아서 경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 사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즉시 집에 가서 모든 가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 지 않으면 그 진주는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를 아는 지식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나의 주로 믿어야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주로 믿으면서 성탄절을 뜻깊게 지켜야 합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 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예수를 책에서 배운 역사의 인물이 아닌 바로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성탄절 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⑷.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목자들은 복음을 듣고 사모하였습니다.(15절) 천사들의 찬송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때 목자 들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주님이 직접 복음을 전했어도 믿지 않았 습니다. 목자들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믿어진 것입니다.(엡2:8)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자 들은 보기를 사모하여 즉시로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들의 특징은 기회가 있 을 때에 지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목자들은 빨리 가서 주님을 보았습니다.(16절) 복음을 듣고 이들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보는데 그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양들을 지키는 것보다 아 기 예수님을 먼저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6절에는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적 태도는 신앙을 인생의 한 악세사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예배나 드리고, 돈이 남으면 감사나 하고, 자녀의 시험이 눈앞에 닥치면 기도하고, 다 죽게 되어서야 주님께 이 몸을 드리겠다고 하지들 않습니까
목자들은 보고들은 것을 전하였습니다.(17절)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이들은 받은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기이히 여기는 자도 있었고 (18절) 은혜를 받았던 마리아는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19절) 복음을 듣고 다 믿고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은혜 받은 자만 기뻐하 고 감사하고 삶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야 어찌하던 은혜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그 일에서 보람을 찾고, 열심을 냅니다.
목자들은 찬양으로 주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절)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대의 감사는 찬양인 것입니다. 찬양은 곡조 달린 기도요,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요, 피조물의 의무 인 것입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22:3) 양을 치던 순진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은 "빨리"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기다렸던 처라 빨리 뛰어갔습니다. 마음이 없는 발걸음은 느린 것입니다. 빨리 달려가는 마음, 주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를 사랑하는 마음, 경배하고 싶은 마음,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 은 빨리 예수님을 향해 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며 기쁘게 해 드리려고 뛰어 갔습니다. 생일에는 주인공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기보다는 축하를 해야 할 우리가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금년 성탄 절은 날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탄절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예수를 보내신 실천 기념일입니다."라고 성탄절을 설명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여러 부 류의 사람들이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이들이 보여준 모습과 반응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성탄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⑴.동방의 박사들 본문에서 말하는 동방의 박사들은 박사라고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아마 바벨론이나 파사에 살면서 별을 보고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거나 아니면 점성술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평소에 늘 별을 관측하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고 큰 별이 나타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별을 따라서 먼 길을 고생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2천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했던 때이 기에 지금처럼 빠르고 좋은 비행기나 아늑하고 쿳숀이 좋은 자동차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대를 타고 머나먼 사막 길을 걸어서 별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하려고 찾아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오기까지는 엄청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오 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높은 산도 있었을 것이고 거친 광야도 있었을 것 이며 강과 바다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도의 위험이 있었을 것이고 맹수의 위협 이 있어서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 께 경배하려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냥 온 것이 아니고 귀중한 황금과 유 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찾으려고 애쓰고 고생한 끝에 찾던 분을 만난 그들의 기쁨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찾고 고대하던 그분 예수님이 말구유에 계시는 것을 본 그들은 황송하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랐 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마련한 예물을 드리는 그들은 아마도 모든 감정이 북받쳤 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던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다림과 사모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싶어서 간절히 기다리는 것 같 이 주님의 오심을 반가이 맞이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⑵.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고 유대 나라는 헤롯이 분봉 왕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원래 에돔 사람이었는데 후에 유대 왕 이 되어 37 년간 왕 노릇 하다가 여리고에서 죽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권을 보존하기 위해 서 친자식까지 죽인 잔인 무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정권 수호에 혈안이 되어 있는 헤롯 왕은 유대의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밖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헤롯 왕에게 자신이 아닌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대단 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을 새로 태어난 왕인 아기 예수를 죽여 버리려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 한지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헤 롯을 추종하던 추종 세력들이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소동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벌인 소동은 새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워하고 경계하고 죽이기로 생각하는 소동 이였습니다. 헤롯은 자기 외에 왕이 태어났다고 했을 때 얼마나 살기가 등등했겠습니까 누구를 위한 소동입니까 자신의 정권 보존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소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되면 교회들마다 소동을 칩니다. 야단법석입니다. 성탄 트리를 만들고 선 물을 교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어야지 예수를 죽이고 예수의 마음을 아프 게 하는 소동이라면 헤롯이 벌린 소동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들같이 소동하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안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소동이 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기 위한 소동이 났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도대 체 어떤 내용의 성탄절일까 오늘의 성탄절을 색깔로 표현해 보면 흰색 크리스마스:눈 내린 들판처럼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성탄절을 의미합니다.
검은색 크리스마스:흑심의 욕망을 채우려고 지키는 어두운 크리스마스를 의미합니다.
분홍색 크리스마스:도색의 음탕한 밤으로 먹고 마시며 죄짓는 크리스마스를 의미 합니다.
노란색 크리스마스:본문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처럼 귀중한 것을 바치기보다는 노 랭이처럼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인색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를 의미합니다.
회색 크리스마스:술 취한 무리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크리스마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성탄절은 어떤 색깔의 성탄절이겠습니까 혹 우리는 동방 박사들 처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귀중한 것을 바치지 못하고 노랭이처럼 인색하게 크리스 마스를 보내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⑶.대 제사장과 서기관들 예수님 탄생 당시 예루살렘이 있던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일찍이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나실 곳을 척척 알아맞히면서도 정작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찾아와 경배하 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지식으로는 잘 알면서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못했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박사들은 별을 보고 그 별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떠났고 그리스도를 찾아서 경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따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 사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즉시 집에 가서 모든 가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 지 않으면 그 진주는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를 아는 지식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나의 주로 믿어야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주로 믿으면서 성탄절을 뜻깊게 지켜야 합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 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예수를 책에서 배운 역사의 인물이 아닌 바로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성탄절 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⑷.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목자들은 복음을 듣고 사모하였습니다.(15절) 천사들의 찬송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때 목자 들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주님이 직접 복음을 전했어도 믿지 않았 습니다. 목자들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에 믿어진 것입니다.(엡2:8)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자 들은 보기를 사모하여 즉시로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들의 특징은 기회가 있 을 때에 지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목자들은 빨리 가서 주님을 보았습니다.(16절) 복음을 듣고 이들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보는데 그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양들을 지키는 것보다 아 기 예수님을 먼저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16절에는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적 태도는 신앙을 인생의 한 악세사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예배나 드리고, 돈이 남으면 감사나 하고, 자녀의 시험이 눈앞에 닥치면 기도하고, 다 죽게 되어서야 주님께 이 몸을 드리겠다고 하지들 않습니까
목자들은 보고들은 것을 전하였습니다.(17절)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이들은 받은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기이히 여기는 자도 있었고 (18절) 은혜를 받았던 마리아는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19절) 복음을 듣고 다 믿고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은혜 받은 자만 기뻐하 고 감사하고 삶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야 어찌하던 은혜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그 일에서 보람을 찾고, 열심을 냅니다.
목자들은 찬양으로 주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절)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대의 감사는 찬양인 것입니다. 찬양은 곡조 달린 기도요,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요, 피조물의 의무 인 것입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22:3) 양을 치던 순진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은 "빨리"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기다렸던 처라 빨리 뛰어갔습니다. 마음이 없는 발걸음은 느린 것입니다. 빨리 달려가는 마음, 주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를 사랑하는 마음, 경배하고 싶은 마음,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 은 빨리 예수님을 향해 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며 기쁘게 해 드리려고 뛰어 갔습니다. 생일에는 주인공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기보다는 축하를 해야 할 우리가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사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금년 성탄 절은 날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탄절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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