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빌3:7-16,시15:1-5)
본문
John Henry Newman이 바울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아아 천신만고 대담한 전우여! 그대가 사랑하던 노동의 지역으로부터 죄수로 쇠사슬에 매이어 봉사할 때 그대의 고난이 얼마나 심했으랴. 하늘이 준 쇠사슬에 매이어서 자유를 달라고 구하지 않았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통을 사랑하며, 형극의 길을 걸어간 바울이여! 우리는 이 시인과 같이 바울을 생각할 때는 사슬에 매어 끌려다니던 바울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은 종종 사슬에 매인 자기 자신을 사슬에 매인 사신 이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습니다. 지금 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에도 그는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어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기의 걸어온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기의 과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과거는 잊어버린다고 했고 미래는 내다본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화려했던 추억이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추했던 기억들이 현재의 나를 더 이상 추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하여 우리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생을 회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 1년동안 세계의 다사다난했던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일간 신문들이 지난 한해의 10대 뉴스를 기재하고 있으며, 세계에도 10대 뉴스가 있지만, 나의 일년간에 있어서도 10대 뉴스는 있을 것입니다. 그 10대 뉴스는 희소식일 수도 있으며 또는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의 일생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과거에 대하여는 잊어버린다 했고, 미래는 내다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과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과거는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고 미래는 너무 적게 내다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울사도가 여기의 13절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라고 한 것은 어떤 특수한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딤후 4:13절에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고 하였을 때 성경학자들은 바울사도도 잘 잊어버리는 습관이 잊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바울이 성령충만의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잊어버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젊은 시절에는 기억력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놀랍고 또한 신비에 속한 일이라고 합니다. 기억력은 사용하면 할 수록 좋아지지만 안쓰면 녹이 스는 기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박사는 30여개국어를 했다고 합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기억력은 언제 좋습니까 젊은 때일수록 좋은 것입니다. 감수성이 강할 때에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버드는 말하기를 좋은 기억력도 놀랍지만 망각하는 능력은 더욱 위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년기에 들어서면 인간에겐 또한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있습니다. 이 건망증은 기억력 못지않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기억력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 이적이라면 이 건망증도 이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어떤 때에 인간은 잊어버리기를 잘합니까 젊은 때가 아니고 늙어서입니다. 불행이 많이 닥쳐올 때, 슬픔이 생겨지는 때,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주셨습니다. 만일 사람이 일생의 고통스러운 일들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고통스러운 일들을 잊어버려서 그렇지 만일 다 기억한다면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그밖의 화재, 분실, 치욕, 모든 괴롬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발자크는 많은 망각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레데강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현실의 강이 아니고 신화 속의 강이다. 누구나 이 강을 건너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 망각의 강, 슬프고 외롭고 비천하게 했던 모든 사연을 백지로 화하게 하는 강. 결국 레데강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6:17에 보라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 고 하였고, 계 21:4에서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시인은 하루만의 위로 라고 하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가는 먼길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인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 한다. 온 생명은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줄기 속에 나도 또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핀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서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해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가는 먼길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도 잊어버려야 한다. 여기 시인이 말하는 그날이 오면 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는 없으나 이것을 죽는 날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죽음이 오는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는 날동안에도 우리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죽는 날을 위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서도 잊어버려야만 합니다. 노이로제 정신착란 등은 왜 생기게 됩니까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잠자는 시간을 주셨는데 잠자리에 들때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불면증에 걸렸다고 한다면 이것은 잊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1) 바울은 무엇을 잊어버렸습니까
1. 자기의 범죄를 잊어버렸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때에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일, 또한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에 가던 일,
2. 괴로왔던 일입니다. 바나바와 분리하던 일, 고린도에서 평민의 소동
3. 실패한 일입니다. 아덴에서 철학적 설교를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일,
4. 잘한 것, 승리와 성공적인 사건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 과거의 괴로운 추억들을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앞으로 뛰기 위해서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가기 위해 무거운 짐을 버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 위해 우리는 나 자신의 과거도 잊어버리는 동시에 타인의 지난날의 과거를 잊어버리는 일에도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은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잊어버리지 않고, 그냥 기억하고 과거를 캐낼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맺었다 하더라도 술한잔이면 다 푸는데 교인들은 사랑을 제일 많이 말하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주기도를 외우면서도 몇십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너 어디 두고 보자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형제가 지난날에 괴로왔던 일을 잊어버리자고 하는데 잊지않고 기억하자고 고집을 부려야 합니까 과감히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남편이 지난 1년 나에게 잘못한 점이 있다면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때로 아내가 나에게 섭섭하게 대했던 일이 있을지라도 잊어버리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의 잘못을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동포들의 잘못도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해에 또 열심히 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거운 부채와 같이 여러분의 생활에 무거운 짐으로 남게될 것입니다.
(2) 무엇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까 13-14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1. 앞에 있는 것-복음전파와 속죄 구령의 사업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천국건설이 우리앞에 놓인 사명입니다.
2. 푯대를 향하여-주님의 걸어가신 생애와 십자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갈 푯대입니다.
3. 부름의 상을 위하여-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의 구원만을 위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 사명이 있고 상급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6가지의 면류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 금, 썩지않는, 영광, 의, 자랑의 면류관이 그것입니다.)
화려한 지구상의 종말이 올 때 하늘의 영화롭고 찬란한 생명 강변의 새노래를 들으십니까
1. 우리가 계속해서 불화에 얽매여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결코 형통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과 불화하여서는 결코 형통하며, 성사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더 큰 하나님의 손이 나를 추격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추격하였으나 그는 다윗을 잡지 못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손이 사울을 잡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2. 앞에 있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이 한 곳에 집중이 되면 다른 곳에 방심되고 일을 그르칠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섭섭함과 원망으로 차 있으면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부당한 추억을 잊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간관계도 잊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희망을 향하여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약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젠가는 우리의 인생이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 보다 큰 꿈과 더 위대한 주님의 사명을 위해서 빈주먹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야 합니다.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고 큰 뜻으로 앞엣것을 향하여 집중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잊어버릴 수 있는 용기 와 높은 꿈의 집념 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하여 우리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생을 회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 1년동안 세계의 다사다난했던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일간 신문들이 지난 한해의 10대 뉴스를 기재하고 있으며, 세계에도 10대 뉴스가 있지만, 나의 일년간에 있어서도 10대 뉴스는 있을 것입니다. 그 10대 뉴스는 희소식일 수도 있으며 또는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의 일생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과거에 대하여는 잊어버린다 했고, 미래는 내다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과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과거는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고 미래는 너무 적게 내다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울사도가 여기의 13절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라고 한 것은 어떤 특수한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딤후 4:13절에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고 하였을 때 성경학자들은 바울사도도 잘 잊어버리는 습관이 잊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바울이 성령충만의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잊어버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젊은 시절에는 기억력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놀랍고 또한 신비에 속한 일이라고 합니다. 기억력은 사용하면 할 수록 좋아지지만 안쓰면 녹이 스는 기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박사는 30여개국어를 했다고 합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기억력은 언제 좋습니까 젊은 때일수록 좋은 것입니다. 감수성이 강할 때에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버드는 말하기를 좋은 기억력도 놀랍지만 망각하는 능력은 더욱 위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년기에 들어서면 인간에겐 또한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있습니다. 이 건망증은 기억력 못지않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기억력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 이적이라면 이 건망증도 이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어떤 때에 인간은 잊어버리기를 잘합니까 젊은 때가 아니고 늙어서입니다. 불행이 많이 닥쳐올 때, 슬픔이 생겨지는 때,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주셨습니다. 만일 사람이 일생의 고통스러운 일들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고통스러운 일들을 잊어버려서 그렇지 만일 다 기억한다면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그밖의 화재, 분실, 치욕, 모든 괴롬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발자크는 많은 망각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레데강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현실의 강이 아니고 신화 속의 강이다. 누구나 이 강을 건너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 망각의 강, 슬프고 외롭고 비천하게 했던 모든 사연을 백지로 화하게 하는 강. 결국 레데강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6:17에 보라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 고 하였고, 계 21:4에서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시인은 하루만의 위로 라고 하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가는 먼길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인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 한다. 온 생명은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줄기 속에 나도 또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핀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서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해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 한다. 오고가는 먼길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도 잊어버려야 한다. 여기 시인이 말하는 그날이 오면 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는 없으나 이것을 죽는 날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죽음이 오는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는 날동안에도 우리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죽는 날을 위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서도 잊어버려야만 합니다. 노이로제 정신착란 등은 왜 생기게 됩니까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잠자는 시간을 주셨는데 잠자리에 들때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불면증에 걸렸다고 한다면 이것은 잊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1) 바울은 무엇을 잊어버렸습니까
1. 자기의 범죄를 잊어버렸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때에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일, 또한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에 가던 일,
2. 괴로왔던 일입니다. 바나바와 분리하던 일, 고린도에서 평민의 소동
3. 실패한 일입니다. 아덴에서 철학적 설교를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일,
4. 잘한 것, 승리와 성공적인 사건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 과거의 괴로운 추억들을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앞으로 뛰기 위해서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가기 위해 무거운 짐을 버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 위해 우리는 나 자신의 과거도 잊어버리는 동시에 타인의 지난날의 과거를 잊어버리는 일에도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타인의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은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잊어버리지 않고, 그냥 기억하고 과거를 캐낼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맺었다 하더라도 술한잔이면 다 푸는데 교인들은 사랑을 제일 많이 말하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주기도를 외우면서도 몇십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너 어디 두고 보자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형제가 지난날에 괴로왔던 일을 잊어버리자고 하는데 잊지않고 기억하자고 고집을 부려야 합니까 과감히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남편이 지난 1년 나에게 잘못한 점이 있다면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때로 아내가 나에게 섭섭하게 대했던 일이 있을지라도 잊어버리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의 잘못을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동포들의 잘못도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해에 또 열심히 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거운 부채와 같이 여러분의 생활에 무거운 짐으로 남게될 것입니다.
(2) 무엇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까 13-14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1. 앞에 있는 것-복음전파와 속죄 구령의 사업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천국건설이 우리앞에 놓인 사명입니다.
2. 푯대를 향하여-주님의 걸어가신 생애와 십자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갈 푯대입니다.
3. 부름의 상을 위하여-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의 구원만을 위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 사명이 있고 상급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6가지의 면류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 금, 썩지않는, 영광, 의, 자랑의 면류관이 그것입니다.)
화려한 지구상의 종말이 올 때 하늘의 영화롭고 찬란한 생명 강변의 새노래를 들으십니까
1. 우리가 계속해서 불화에 얽매여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결코 형통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과 불화하여서는 결코 형통하며, 성사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더 큰 하나님의 손이 나를 추격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추격하였으나 그는 다윗을 잡지 못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손이 사울을 잡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2. 앞에 있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이 한 곳에 집중이 되면 다른 곳에 방심되고 일을 그르칠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섭섭함과 원망으로 차 있으면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부당한 추억을 잊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간관계도 잊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희망을 향하여 달려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약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젠가는 우리의 인생이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 보다 큰 꿈과 더 위대한 주님의 사명을 위해서 빈주먹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야 합니다.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고 큰 뜻으로 앞엣것을 향하여 집중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잊어버릴 수 있는 용기 와 높은 꿈의 집념 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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