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지 않은 점병 (호7:8-9)
본문
'뒤집지 않은 전병' 이라면 한 쪽은 심히 타고 다른 한 쪽은 아직 설익 어 서 먹을 수 없는 떡을 말합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 에 대하여 말하면서 '너희는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이러한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가 하는 그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 이것을 오늘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여 생각해 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그 나라는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내적으로 심히 썩 어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면 무얼 합니까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탐욕은 한이 없고 또 돈 을 벌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간교하여서 되와 말을 속이고 저울을 속이는 부정한 거래가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온갖 부정과 불법이 시작되었 습니다. 또한 빈부의 차이가 격심하여 화려한 상아 침상에 누워 술과 향락으 로 세월을 보내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겨우 짚신 한 컬레 값에 가난한 사람들의 인신이 매매되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다 식어 버렸고 바알신을 믿고 숭상하는 이상스런 열풍이 온 나라안에 만연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정치는 정치대로 갈팡 질팡하여 갈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애써 이루어 놓은 경제가 일시에 무너져 내릴 위기에 봉착하였 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가 바로 호세아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시대와 상황들을 눈여겨 볼 때에 그 옛날 북왕국 이스 라엘 때와 흡사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좀 성장하면서 우리에게 밀어 닥친 여러가지 현상들 중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괴이한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신을 매매하는 일, 잔인한 폭력, 무서운 마약 사범들, 가정 파괴범들, 그리고 나라의 자원과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재벌들의 향락과 방종, 또한 거기에 반발하는 극렬한 반항세력들. 그뿐 아 니라 사상적인 혼란과 십수년동안 계속되어온 사회의 혼란과 데모사태,.
이러한 현상들은 땀흘려 일하고 성실히 살아가려고 하는 다수의 국민 대중 을 너무나도 실망시키고 어렵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까 이러한 혼란은 정신적 혼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못한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끌어들일 것입니다.그들은 진리를 듣지않고,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딤후4:3-4) 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경 제 기적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 생활,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는 이 외형적인 혼란과 부패와 타락의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생활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신앙심을 저버리고 바알신 숭배와 우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일뿐 아니라 영적인간음 행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우연히 자신의 가정 생활에서 철저히 이것을 체험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장래와 운명에 대하여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 나라와 백성들 앞에 권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그나라의 형편을 마 치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뒤집지 않은 전병'은 설익어 못먹는 떡입니다. 이것은 덜 되었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았는데 다 된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일부 부유층 사람들의 낭비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지만 지나친 사 치와 과소비 풍조는 조금도 자제되지 않는 것같습니다. 또한 나라의 정치도 매우 미숙한 것 같습니다. 정치란 국민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며 정부를 믿 고 국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치는 지금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습니다. 정치가 설익은 정치가 되어서 그렇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뒤집지 아니한 전병과 같다면 그것은 설익어 먹을 수 없는 떡과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나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는 그런 모습, 겉으로는 편안하고 안전하고 잘 되는 것 같으나 안으로는 부패와 폭력과 타 락과 혼돈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어려움이런 것을보고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뫃았다.
예언자와 제사장 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잖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렘6:14-15)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익지 않은, 먹지 못할 떡입니다. 회개는 하는 것 같으나 진실한 회개가 아닌 것,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 같으나 상달될 수 없는 기도. 하나님은 그들이 '손을 펼때 눈을 가리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아니 하시겠다.'(사1:15)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겉은 그럴 듯하나 속은 아주 설익은, 뒤집지 않은 떡과 같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이 뒤집지 않은 떡은 한 쪽은 너무 익어 새까맣게 탔고 한 쪽은 익지 않아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라리 익지 않으려면 전체 가 익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사회상과 개 인의 신앙 상태가 모두 다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이것을은 오늘의 말로 한다 면 양극화 현상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 현상입니다. 부자는 너무 많고 가난한 사람은 너무 없습니다가. 잘하는 사람 은 너무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너무 못합니다. 사랑과 봉사의 실천자가 있는 가 하면 폭력.마약. 가정파괴범 같은 극악한 범죄자들이 있습니다. 고사리같 은 손으로 어린학교 학생들이 자연 보호를 위하여 휴지를 줍는데, 소위 대기 업을 경영하는 어른들은 몰래 어머어마한 폐수를 강에다 쏟아 버립니다.
사상적으로는 극우와 극좌가, 신앙생활에서는 열광주의와 냉소주의가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에도 여호와 신앙은 점점 식어가고 바알 종교에 대하여 사람들이 깊이 빠져서 그릇된 과열 현상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한 쪽은 설고 한쪽은 타버려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못쓰게 되고 마는 꼴입니다.
현대인들은 강한 자극을 주지 않고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나 강 력하고 뜨겁고 화끈한 체험들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일도 화끈하게 하고, 노는 것도 '미치게' 놀고, 죄도 엄청나게 짓고, 회개도 무지무지하게 하고, 그렇 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이제는 웬만한 자극이나 충격 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극화나 극단론이 생겨납니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극단적으로 나아가야만 무엇이 되도 되 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한쪽으로만 치우치고, 한편으로만 몰아 부칩니다. 이런 편중된 일들을 바로 잡으려면 한번쯤 뒤집는 일이 필요합니다. ' 뒤집는다'는 것은 혁명이나 의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의 관점과 시야를 설익은 쪽으로 돌리자는 것입니다. 골고루 익히고 균형을 유지하고 관점을 바꾸자는 말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가져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뒤집어야 합니다. 떡은 떡인데 이것을 뒤집지 않은데 문제 가 있습니다.
뒤집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회개를 의미합니다. 가치관의 전도입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설익어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먹을 수 없 게 된 것은 골고루 익히자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신앙도 한번 뒤집어져 야 하고, 사회와 국가도 구태의연한 당쟁이나 오랜 타성으로 움직이는, 그런 판에 박힌 쇼 같은 것은 이제 모두 집어치우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한쪽 은 너무 익어 꺼멓게 타고 있는데 한쪽은 설익어 그대로 있는 것, 그래서 결 국 이쪽도 저쪽도 다 못쓰게 되는 것은 낭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쓸모없는 낭비를 계속해야 하겠습니까 뒤집어지지 않 으면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잘 구워진 전병이 되려면 반드시 뒤집 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진다는 것은 꼭 한번만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도 꼭 한번 뒤집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철저한 율법주의 를 고수하던 사울이 뒤집어질 때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주의자 가 되었습니다.
그가 또다시 뒤집어 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아는 교회였습니다. 복음이 죄와 율법에서 자기들을 해방한 것 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뒤집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집혀진 그들 이 또 다시 뒤집어져야 한다고 했을 때에 그들은 심각한 이단에 빠졌습니다.
뒤집어지는 것의 목적은 구원을 얻는데 있습니다. 구원 얻지 못한 자가 뒤집 어지므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고 시인하는 데서 성취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일로써 뒤집어져야 합니다. 뒤집어지는 것은 예수로 인하여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전도됨을 의미합니다. 다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뒤집어지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 그 밖에 다른 경험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뒤집어져야 한다고 해서 다시 또 뒤집어지고 또 뒤집어지면 열광주의자 가 되거나 갈라디아 교인인들처럼 율법으로 되돌아 가는 복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뒤집은 전병은 아직 익지 않은 부분을 천천히 시간을 기다리면서 깊숙히 익혀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천히 익혀 나가는 것 그리고 시간을 두고 골고루 익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얼마나 뜨거우냐' 라는 문제보다는 '얼마나 고루 균 형있게 익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뜨거운 것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과열도 잘하고 흥분도 잘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디를 가 보아도 뜨겁지 않은 데가 없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열기가 대단한데 우리 자신은 어째서 완숙하지 못합니까 어째서 아직도 덜 익었습니까 어 째서 먹을 수 없는 떡으로 남아 있습니까 그것은 뜨겁지 않아서가 아니고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뒤집어 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쪽은 너무 뜨거워 타버렸고 한쪽은 아직도 익지 않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이 뒤집지 아니한 전병을 책망하시고 탄식하십니다. 그것은 먹 을 수 없는 떡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뒤집어 엎고 그리고 조용히 익을 때 를 기다립시다. 우리의 삶의 내면 깊숙히 열기가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골고 루 잘 익어 맛있고 볼품있게 구워진 전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책망듣지 말고 신앙과 은혜가 깊이 더 깊 이 스며든 원숙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권고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그 나라는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내적으로 심히 썩 어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면 무얼 합니까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탐욕은 한이 없고 또 돈 을 벌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간교하여서 되와 말을 속이고 저울을 속이는 부정한 거래가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온갖 부정과 불법이 시작되었 습니다. 또한 빈부의 차이가 격심하여 화려한 상아 침상에 누워 술과 향락으 로 세월을 보내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겨우 짚신 한 컬레 값에 가난한 사람들의 인신이 매매되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다 식어 버렸고 바알신을 믿고 숭상하는 이상스런 열풍이 온 나라안에 만연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정치는 정치대로 갈팡 질팡하여 갈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애써 이루어 놓은 경제가 일시에 무너져 내릴 위기에 봉착하였 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가 바로 호세아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시대와 상황들을 눈여겨 볼 때에 그 옛날 북왕국 이스 라엘 때와 흡사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좀 성장하면서 우리에게 밀어 닥친 여러가지 현상들 중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괴이한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신을 매매하는 일, 잔인한 폭력, 무서운 마약 사범들, 가정 파괴범들, 그리고 나라의 자원과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재벌들의 향락과 방종, 또한 거기에 반발하는 극렬한 반항세력들. 그뿐 아 니라 사상적인 혼란과 십수년동안 계속되어온 사회의 혼란과 데모사태,.
이러한 현상들은 땀흘려 일하고 성실히 살아가려고 하는 다수의 국민 대중 을 너무나도 실망시키고 어렵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까 이러한 혼란은 정신적 혼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못한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끌어들일 것입니다.그들은 진리를 듣지않고,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딤후4:3-4) 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경 제 기적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 생활,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는 이 외형적인 혼란과 부패와 타락의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생활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신앙심을 저버리고 바알신 숭배와 우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일뿐 아니라 영적인간음 행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우연히 자신의 가정 생활에서 철저히 이것을 체험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장래와 운명에 대하여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 나라와 백성들 앞에 권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그나라의 형편을 마 치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뒤집지 않은 전병'은 설익어 못먹는 떡입니다. 이것은 덜 되었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았는데 다 된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일부 부유층 사람들의 낭비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지만 지나친 사 치와 과소비 풍조는 조금도 자제되지 않는 것같습니다. 또한 나라의 정치도 매우 미숙한 것 같습니다. 정치란 국민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며 정부를 믿 고 국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치는 지금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습니다. 정치가 설익은 정치가 되어서 그렇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뒤집지 아니한 전병과 같다면 그것은 설익어 먹을 수 없는 떡과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나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는 그런 모습, 겉으로는 편안하고 안전하고 잘 되는 것 같으나 안으로는 부패와 폭력과 타 락과 혼돈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어려움이런 것을보고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뫃았다.
예언자와 제사장 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잖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렘6:14-15)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익지 않은, 먹지 못할 떡입니다. 회개는 하는 것 같으나 진실한 회개가 아닌 것,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 같으나 상달될 수 없는 기도. 하나님은 그들이 '손을 펼때 눈을 가리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아니 하시겠다.'(사1:15)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겉은 그럴 듯하나 속은 아주 설익은, 뒤집지 않은 떡과 같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이 뒤집지 않은 떡은 한 쪽은 너무 익어 새까맣게 탔고 한 쪽은 익지 않아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라리 익지 않으려면 전체 가 익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사회상과 개 인의 신앙 상태가 모두 다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이것을은 오늘의 말로 한다 면 양극화 현상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 현상입니다. 부자는 너무 많고 가난한 사람은 너무 없습니다가. 잘하는 사람 은 너무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너무 못합니다. 사랑과 봉사의 실천자가 있는 가 하면 폭력.마약. 가정파괴범 같은 극악한 범죄자들이 있습니다. 고사리같 은 손으로 어린학교 학생들이 자연 보호를 위하여 휴지를 줍는데, 소위 대기 업을 경영하는 어른들은 몰래 어머어마한 폐수를 강에다 쏟아 버립니다.
사상적으로는 극우와 극좌가, 신앙생활에서는 열광주의와 냉소주의가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에도 여호와 신앙은 점점 식어가고 바알 종교에 대하여 사람들이 깊이 빠져서 그릇된 과열 현상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한 쪽은 설고 한쪽은 타버려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못쓰게 되고 마는 꼴입니다.
현대인들은 강한 자극을 주지 않고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나 강 력하고 뜨겁고 화끈한 체험들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일도 화끈하게 하고, 노는 것도 '미치게' 놀고, 죄도 엄청나게 짓고, 회개도 무지무지하게 하고, 그렇 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이제는 웬만한 자극이나 충격 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극화나 극단론이 생겨납니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극단적으로 나아가야만 무엇이 되도 되 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한쪽으로만 치우치고, 한편으로만 몰아 부칩니다. 이런 편중된 일들을 바로 잡으려면 한번쯤 뒤집는 일이 필요합니다. ' 뒤집는다'는 것은 혁명이나 의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의 관점과 시야를 설익은 쪽으로 돌리자는 것입니다. 골고루 익히고 균형을 유지하고 관점을 바꾸자는 말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가져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뒤집어야 합니다. 떡은 떡인데 이것을 뒤집지 않은데 문제 가 있습니다.
뒤집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회개를 의미합니다. 가치관의 전도입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설익어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먹을 수 없 게 된 것은 골고루 익히자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신앙도 한번 뒤집어져 야 하고, 사회와 국가도 구태의연한 당쟁이나 오랜 타성으로 움직이는, 그런 판에 박힌 쇼 같은 것은 이제 모두 집어치우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한쪽 은 너무 익어 꺼멓게 타고 있는데 한쪽은 설익어 그대로 있는 것, 그래서 결 국 이쪽도 저쪽도 다 못쓰게 되는 것은 낭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쓸모없는 낭비를 계속해야 하겠습니까 뒤집어지지 않 으면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잘 구워진 전병이 되려면 반드시 뒤집 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진다는 것은 꼭 한번만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도 꼭 한번 뒤집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철저한 율법주의 를 고수하던 사울이 뒤집어질 때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주의자 가 되었습니다.
그가 또다시 뒤집어 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아는 교회였습니다. 복음이 죄와 율법에서 자기들을 해방한 것 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뒤집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집혀진 그들 이 또 다시 뒤집어져야 한다고 했을 때에 그들은 심각한 이단에 빠졌습니다.
뒤집어지는 것의 목적은 구원을 얻는데 있습니다. 구원 얻지 못한 자가 뒤집 어지므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고 시인하는 데서 성취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일로써 뒤집어져야 합니다. 뒤집어지는 것은 예수로 인하여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전도됨을 의미합니다. 다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뒤집어지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지 그 밖에 다른 경험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뒤집어져야 한다고 해서 다시 또 뒤집어지고 또 뒤집어지면 열광주의자 가 되거나 갈라디아 교인인들처럼 율법으로 되돌아 가는 복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뒤집은 전병은 아직 익지 않은 부분을 천천히 시간을 기다리면서 깊숙히 익혀야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천히 익혀 나가는 것 그리고 시간을 두고 골고루 익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얼마나 뜨거우냐' 라는 문제보다는 '얼마나 고루 균 형있게 익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뜨거운 것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과열도 잘하고 흥분도 잘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디를 가 보아도 뜨겁지 않은 데가 없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열기가 대단한데 우리 자신은 어째서 완숙하지 못합니까 어째서 아직도 덜 익었습니까 어 째서 먹을 수 없는 떡으로 남아 있습니까 그것은 뜨겁지 않아서가 아니고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뒤집어 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쪽은 너무 뜨거워 타버렸고 한쪽은 아직도 익지 않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이 뒤집지 아니한 전병을 책망하시고 탄식하십니다. 그것은 먹 을 수 없는 떡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뒤집어 엎고 그리고 조용히 익을 때 를 기다립시다. 우리의 삶의 내면 깊숙히 열기가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골고 루 잘 익어 맛있고 볼품있게 구워진 전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책망듣지 말고 신앙과 은혜가 깊이 더 깊 이 스며든 원숙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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