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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암1:1-2)

본문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국 이후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남, 북 할 것 없이 우리가 이스라엘로 부르기는 하지만, 남쪽은 유다라고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 때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우리는 1-2절 말씀을 통하여 아모스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만 그의 개인적인 내력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그는 1절에 나타난 대로, 드고아 지방의 목자 중 한 사람입니다. 드고아는 베들레헴 남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은둔지역과 같은 그런 작은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를 본문은 목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7장 (암7: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암7: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그는 본래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목자였습니다. 선지자 족속의 출신도 아닙니다. 그는 직업이 단지 목자일 뿐이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양떼를 따랐다고 하는 말씀을 보면 그는 양들의 주인이기 보다는 남의 양을 치는 사람으로 가난한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천한 농부요, 목자인 아모스를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은 볼 때에 우리들은 그들이 다 대단한 가문이나, 훌륭한 학문을 한 사람, 부자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비천한 가운데 있었던 다윗이나, 아브라함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도 형제도 멸시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 사무엘까지도 알아 보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하나님 눈에 발견되어 하나님의 손에 잡힌 바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그의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는 우상을 만드는 가문에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그는 우상 만드는 도시에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다가 갈 아주 평범한 필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중심을 보셨습니다. 또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다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가 그의 양떼를 돌 볼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떼를 돌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셨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귀한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오로지 그 크신 하나님께만 돌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암1:1).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받은 말씀이라 아모스는 그가 살던 유다 땅을 떠나서 이스라엘의 벧엘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의 직장,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멧세지를 전하러 이스라엘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얼마나 어려운 명령인지 모릅니다. 그가 전해야 하는 멧세지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너무 죄가 많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멀지 않아 심판하실 것이다” 라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자기의 직장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아모스라는 이름의 뜻은 본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증거해야하는 설교자들의 짐입니다. 설교자에게는 이 짐이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듣기 좋은 복과 평강을 빌어주는 것은 듣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고, 하는 사람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라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심판과 저주와 재앙의 멧세지를 전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무리들에게 진노하시는데 하나님의 종라면 어떻게 당장에 좋은 말만을 해서 그들로 안심하도록 하고 기쁘게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사람이 설교자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해서 쫓아내어도 그가 참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해야하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런 부담으로 예언자로 보내심을 받아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미래에 될 일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를 통하여 하는 말씀을 백성들은 들어야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미래의 일을 보이십니다.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받은 말씀이라 묵시는 계시나 같은 말인데, 뚜껑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미래에 대해 하실 일과 그 계획을 열어서 하나님의 사람 아모스에게 보이십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다 미리 보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대비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로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백성들은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멧세지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다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7장에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앞으로 될 일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선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언자는 미래를 아는 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이는 미래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어디에서 일어난다는 점 하는 사람들 같이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복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주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미래를 미리 보이시는데 그래서 선견자라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그가 본 것을 말하게 합니다. (암1:2)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습니다. 6절에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9절, 11절에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은 아모스의 말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적인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 누구가 말했다는 것은 힘이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은 전능이요, 전지입니다.
셋째로, 이 말씀은 백성들이 들어야했습니다. (암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신앙생활의 자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에 있습니다. 설교자들에게는 여러분의 예배드리는 자세가 다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교회에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그 앉는 자리부터 다르고, 말씀을 듣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만일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혀서 그가 거듭나고, 그의 삶이 변화되면 제일먼저 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입니다. 주님을 주로 모신 사람의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눈 부터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속에 죄가 들어가고, 문제가 생기고, 침체에 빠지게 되면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이 그분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2세때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번영하는 때입니다. 아주 살기가 편하고 좋은 때입니다. 이 때에 사람들은 죄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도덕적으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잊기 시작합니다. 타성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종교생활이 무력해지고, 무의미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는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멸망의 징조가 가까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보내어서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두가지 진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기근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우리들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큰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멸망은 영적인 기갈입니다. 말씀이 없는 시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때, 하나님에 대하여 찾지 않는 영적인 기근의 때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말년에는 400년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많이 보냈으나, 그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듣기 싫은 하나님의 말씀, 안 들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드리기 싫은 예배, 안드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패망인줄을 늦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형편이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에도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합니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듣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까지, 아니 임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습니까 우리의 물질의 부요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지만, 이것을 음란하게 섬기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이 나라가 타락하며, 얼마나 이 나라에 있는 교회가 부패했습니까 얼마나 이 나라의 신자들이 더러워졌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합니다. 아니면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지 모릅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부요할 때 부터, 강건이 있을 때부터 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면 안됩니다. 아모스 말씀에는 이방나라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말씀 부터 기록했습니다. 이방이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는 것을 말씀할 때에 이스라엘은 마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기 위해서 이방의 죄 부터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어려움은 이방에게 있습니까 오늘 우리나라의 이 어려움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게 있는 죄악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시지는 않습니다. 그 원인이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징계하시지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교회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늘에 우리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게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가야합니다. 무신론, 유물주의, 쾌락주의, 안일주의를 회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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