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신앙인 고넬로 (행10:1-2)
본문
한국교회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성장이 둔화되어 침체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70년대와 80년대의 급격한 성장에 비하여 내린 비교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교회의 성장둔화와 침체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경제위기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90년 후반은 한국교회의 또 다른 환란의 어려운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적인 한파로 인하여 각 기업이 도산에 도산을 거듭하여 한국 경제자체가 무너지는 아픔을 앓아야 했지만, 교회적으로는 사회적인 영향으로 성도들이 경영하는 기업이 도산을 당하거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태출에 인한 실업률이 갈수록 증가하여 교회의 운영을 긴축재정으로 하여 불필요한 부교역자의 수를 각 교회는 줄어야 했었던, 교역자들도 어려운 시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실업률로 인한 삶의 회의와 방황이 날로 높아지면서 교회출석률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엎친데 곂친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풍전등화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던져 셨는가 라는 질문도 많이 제기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환란의 어려움을 통하여 교회는 정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것같이 보였던 성도들도 사업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이상 성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넘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들의 신앙이 하나님 자체를 잡은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잡은 것이기에 세상의 소망이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진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자체만 잡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건이라고 부릅니다. 경건이라는 뜻은 “신앙이 돈독함”을 뜻하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유세베스”입니다. 경건한 신앙은 신앙이 돈독하기에 분명히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환란의 풍파가 일어나도 세상이 천지개벽되어도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는 신앙.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소유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중에 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이름은 고넬로입니다. 그는 경건한 신앙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또한 그 경건한 인물이 어떠한 열매를 맺고 살았는가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하여 “경건한 신앙인 고넬로”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 다 함께 은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과연 고넬로는 어떻게 신앙을 하였기에 성경에 경건하다고 즉 신앙이 돈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본 론
1. 온 집안을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든 자였다.(행10:2 상반절)
1) 본문설명
먼저 1절을 보니까 고넬료의 신분에 대하여 밝혀두고 있는데,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이 위치한 곳으로써 이 도시에서는 신약시대에 와서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의 항구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족들, 헬라인, 유대인, 로마인들이 섞여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다른 종족들간에 충돌이 일어 날 수 밖에 없었기에 이를 위하여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는데, 특히 “이달리야라 하는 군대”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달리야 군대외에도 아구사도군대도 있었다고 역사가 요셉푸스는 말합니다.
어쨌던 이러한 이방인 군대의 백부장으로서 유대 사람들을 총괄하여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고넬로 백부장이 세워졌음을 그의 신분과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인인 고넬로 백부장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의 신앙에 대해서는 기록했는데 아주 열심있는 자로 “온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케” 만들었다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 믿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아마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어 회당에도 참석도 하는 하나님을 찾는 경건한 사람(Good-fearer)이었습니다.
고넬료. 그는 자신만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 신앙을 갖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만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2)성경적연결
딤전5: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가족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특히 만일 자기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자이며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엇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과의 회복도 동일선에서 이루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아니하면 사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온전치 못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가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옆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짐과 함께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먼저 가족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었습니다. 온전한 십자가의 성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참으로 어려움이 있을 줄 압니다. 그 어려움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너무나 확실한 나머지 그 확실한 하나님을 온 집으로 더불어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경건함이 거짓이 아니라 참된 진실되었음이 가족구원을 통하여 증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신실함이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온 가족을 믿게 하여 그의 신앙이 신실하다는 사실을 증거한 온전한 성도였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증거를 가진 온전한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3)적 용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집안에서 자신이 먼저 복음을 받아 들린 자라면 우리가 처음 받은바 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형용할 것이 없어서 이웃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벅찬 기쁨과 감격과 환희를 누구에게 먼저 전하여야 합니까 먼저 사랑하는 가족. 핏줄들입니다. 특별히 가족중에 처음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끊임없는 눈물과 기도로 가정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중에는 저의 부친이 처음 교회에 나갔습니다. 많은 환란과 연단의 통하여 사업의 실패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저의 부친이 교회에 나갈 당시에 아무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 처음 교회에 나가면서 그 받은 바 그 뜨거운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철저히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구원의 은혜를 온 가족들을 위해 그 열정을 뿜어내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열열한 열정과 뜨거움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열매로 맺어져 처음에는 본인이 그 다음은 큰 누님이 그 다음은 작은 누님이 마지막으로 모친께서 교회에 나가게 되어 지금은 온 가족이 구원이 이루지게 된 것입니다. 온 가족이 구원을 얻기 까지 무려 20여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여전히 아직도 연약한 신앙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 가정 처럼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혼자 믿는 다고 괴로워 하거나 근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그 구원을 향한 열심으로 인하여 낙심과 한숨과 아쉬움이 훗날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짐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믿고 확신하셔서 오늘도 열심히 씨를 뿌리되 뭇시로 주안에서 기도와 간구를 아뢰어서 여러분의 기도와 열심히 주께서 기억한 바되어 온 집안이 구원의 열매로 아름답게 꽃피는 그날이 속히 올 줄 믿습니다.
2. 많이 구제하는 자이다.(행10:2 중반절)
1) 본문설명
고넬료는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은혜로 무엇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2절 중반절에 “많이 구제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고넬료가 왜 구체적으로 경건을 하다는 증거로 구제를 하였는가에 대하여 의문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도 있고, 인내도 있고, 여러 가지 경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데 본문은 이런 것보다 구제쪽으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본문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가 주어지는 데 이 고넬료라는 이름은 B.C. 1세기에 1만명의 노예를 해방시킨 유명한 장군 퍼블리우스 코넬리우스 술라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당시 남자의 흔한 이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그때 해방되었던 노예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술가 장군 가문의 후손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전자의 견해를 따르면 그 노예의 후손으로써 노예들이 가졌던 과거의 비애와 눈물과 회한을 기억하여 고통과 어려운 자들에게 힘이 되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자애심으로 구체적으로 선한 행동을 구제쪽으로 나타내었을 것입니다. 특히 구제는 누구나 조금씩은 하는 것이지만 사실 자신이 지난날 어려웠던 상황이나 여건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현실에서 기인하고 있어서 사람마다 조금씩 깊이와 높이, 수준이 다름니다. 눈물의 빵을 먹어 본 자 만이 그 빵의 의미와 가치를 알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넬료는 특별히 많은 구제를 통하여 당시의 어려운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선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구제를 통하여 경건의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마6:2-4에 보면 구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잘 정리해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구제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넬료의 구제는 이 말씀과 연관하여 보면 어떴습니까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의 구제가 주님의 말씀대로 엄밀한 중에 행한 구제로 하나님께 기억되는, 상달되었던 선한 구제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선한 손길을 백성들에게 미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한 행동을 할 때에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보다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하여 선한 행동을 먼저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증거가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그 원리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어떤 것, 예를 들어 어떤 성경적 원리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면 다른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합리화시키는 것보다는 그 본문에 가지고 있는 윈리를 먼저 우선적으로 충실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구제의 경우를 보더라도 먼저 사람에게 인정받기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구제가 우선이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어떻게 적용시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제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분명히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명확하고 확실히 지시하여 기록되어 있음으로 더 이상 이 부분에 + 알파로 작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참된 구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적 용
이제 얼마되지 않아 연말연시가 다가올 것입니다. 거리에는 구세군들이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로 비롯하여 각종 자선단체들이 이웃의 따뜻한 손길을 베풀자는 캠페인을 벌릴 것입니다. 각 교회는 텔레비젼이나라디오에 우리가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헌금을 바쳤습니다. 귀하게 써 주세요 라고 방송국에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은 과연 교회가 방송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알려야 되는가 곧 교회의 덕차원으로 말임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을 선택하셔서 구제하시겠습니까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상달된 구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응답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구제의 원리와 방법과도 일치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구제 방법과 함께 그 예로써 고넬료를 구제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에게 상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전자를 선택하여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하시면 하나님께서 기억되고 갚으셔서 사람들에게 까지도 인정을 받을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고넬료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구제의 귀감으로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전도사님이 신학부 다닐 때 그 전도사님은 마산문창교회 안수 집사님이었습니다. 문창교회가 목요일마다 밥상공동체를 운영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점심을 매 주일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경남에서는 문창교회가 처음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후 몇 달이 지난 후에 경남일보 즉 지방신문에 앞 표지에 보니 헤드라인 뉴스부분에 문창교회의 구제부분이 크게 사진으로 싣고 소개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메스콤에 알리지도 아니했는데 어디서 소식을 들은지는 모르지만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간 것입니다. 그 동네에서만 자그마하게 시작한 그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는 그 교회를 들어 써셨서 경남의 많은 교회들이 구제를 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 여러분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상달되는 구제를 선택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 하나님의 역사로 통한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덕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항상 기도하는 자이다.(행10:2-4)
1)본문 설명
자! 이러한 고넬료의 선한 행동이나 열매가 경건한 자신으로 인한 결실이라 우리가 생각하면 참으로 그 경건은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러면 과연 고넬료는 어떻게 하여 이러한 열매를 맺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2절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하여 하나님께 기억되어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임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히브리어로는 “테필라”, 헬라어로는 “프로슈케”입니다. 기도는 근본적으로 생활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신자들이 취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한 형태로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교제입니다. 이 교제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데, 그 예로 살전 5:17절에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형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고넬료는 그 요구 앞에 순종하여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를 함에 있어서 당시 그가 처해 있는 상황으로 보아서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 기도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의 “제9시쯤되어” 이런 것을 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데 그 시간은 저녁분향을 드리는 시간으로 유대인의 기도시간입니다.
자. 이렇게 고넬료는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하나님과 교제를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구제와 경건에 더욱 힘쓸 수 있었고, 더 많은 구제도 하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그의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응답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경건은 인간의 어떠한 선행적인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즉 기도의 응답을 통한 경건의 모습으로 영적인 사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이러한 기도에 의한 영적인 삶에서 열매가 맺힌 대표적인 모델은 아마 우리 예수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그가 직접 행함으로써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사복음서에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혼자서 가시고, 산에서 기도하고, 밤 새워 철야로 기도하셨고, 생의 마지막 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혈을 기울여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기도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큰 일을 하시기 전에도 밤새워 기도를 했지만, 하루일과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였던 것을 봅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기도로 시작한 예수님은 매일의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더불어 가는 곳마다 착한일과 메시야 사역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온전히 그 사역을 담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윗도 시편 108편 2절에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렸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시57편 8절에도 “내 영광이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매일의 삶을 기도로서 항상 아뢰었던 다윗 그도 역시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선지자 중에는 특히 다니엘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던 기도의 삶을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 어려운 시험과 역경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항상 있음으로 그 나라 왕까지도 그를 인정하여 그를 높은 자리를 두어 포로된 나라에서 귀하게 높임을 받았던 인물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3) 적 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군사가 전쟁중에 총을 가지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 전쟁에서 이기려는 어려석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영적인 군사인 우리들을 항상 바쁘게 만들어 기도를 쉬거나, 나태하거나, 적당하게 하여 무기력한 당나라 군대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의 전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어려울 때만 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오늘의 성도의 연약한 모습이고 현실입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자신의 영적 무기력함과 무능력을 탈피하여 능력있는 성도가 되고 싶은 사람이 계십니까 혹시 내가 10년이 넘게 교회에 다녀도 영적인 열매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내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적으로 뜨겁게 확실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그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을 만날 때까지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여러분의 영적인 무능력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가 없는 것에서 영적인 열매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각속에 있는 하나님이 눈앞에 보이고 느껴질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여 그 분의 지시함속에서 많은 구제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건의 모든 시작은 기도로 시작하여 그분의 응답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이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있기를 소원드립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경건하십니까 그러면 그 경건의 증거가 있습니까 그 경건을 소유하고 있으면 반드시 소유한 것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한나님을 경외케 하였고, 또한 많은 구제를 어려운 자들을 위하여 하였고, 이 모든 것을 위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그의 경건의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증거가 여러분의 증거로 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특히 경제위기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90년 후반은 한국교회의 또 다른 환란의 어려운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적인 한파로 인하여 각 기업이 도산에 도산을 거듭하여 한국 경제자체가 무너지는 아픔을 앓아야 했지만, 교회적으로는 사회적인 영향으로 성도들이 경영하는 기업이 도산을 당하거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태출에 인한 실업률이 갈수록 증가하여 교회의 운영을 긴축재정으로 하여 불필요한 부교역자의 수를 각 교회는 줄어야 했었던, 교역자들도 어려운 시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실업률로 인한 삶의 회의와 방황이 날로 높아지면서 교회출석률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엎친데 곂친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풍전등화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던져 셨는가 라는 질문도 많이 제기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환란의 어려움을 통하여 교회는 정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것같이 보였던 성도들도 사업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이상 성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넘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들의 신앙이 하나님 자체를 잡은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잡은 것이기에 세상의 소망이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진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자체만 잡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건이라고 부릅니다. 경건이라는 뜻은 “신앙이 돈독함”을 뜻하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유세베스”입니다. 경건한 신앙은 신앙이 돈독하기에 분명히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환란의 풍파가 일어나도 세상이 천지개벽되어도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는 신앙.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소유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중에 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이름은 고넬로입니다. 그는 경건한 신앙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또한 그 경건한 인물이 어떠한 열매를 맺고 살았는가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하여 “경건한 신앙인 고넬로”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 다 함께 은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과연 고넬로는 어떻게 신앙을 하였기에 성경에 경건하다고 즉 신앙이 돈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본 론
1. 온 집안을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든 자였다.(행10:2 상반절)
1) 본문설명
먼저 1절을 보니까 고넬료의 신분에 대하여 밝혀두고 있는데,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이 위치한 곳으로써 이 도시에서는 신약시대에 와서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의 항구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족들, 헬라인, 유대인, 로마인들이 섞여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다른 종족들간에 충돌이 일어 날 수 밖에 없었기에 이를 위하여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는데, 특히 “이달리야라 하는 군대”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달리야 군대외에도 아구사도군대도 있었다고 역사가 요셉푸스는 말합니다.
어쨌던 이러한 이방인 군대의 백부장으로서 유대 사람들을 총괄하여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고넬로 백부장이 세워졌음을 그의 신분과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인인 고넬로 백부장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의 신앙에 대해서는 기록했는데 아주 열심있는 자로 “온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케” 만들었다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 믿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아마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어 회당에도 참석도 하는 하나님을 찾는 경건한 사람(Good-fearer)이었습니다.
고넬료. 그는 자신만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 신앙을 갖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만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2)성경적연결
딤전5: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가족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특히 만일 자기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자이며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엇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과의 회복도 동일선에서 이루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아니하면 사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온전치 못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가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옆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짐과 함께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먼저 가족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었습니다. 온전한 십자가의 성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참으로 어려움이 있을 줄 압니다. 그 어려움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너무나 확실한 나머지 그 확실한 하나님을 온 집으로 더불어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경건함이 거짓이 아니라 참된 진실되었음이 가족구원을 통하여 증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신실함이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온 가족을 믿게 하여 그의 신앙이 신실하다는 사실을 증거한 온전한 성도였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증거를 가진 온전한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3)적 용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집안에서 자신이 먼저 복음을 받아 들린 자라면 우리가 처음 받은바 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형용할 것이 없어서 이웃에게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벅찬 기쁨과 감격과 환희를 누구에게 먼저 전하여야 합니까 먼저 사랑하는 가족. 핏줄들입니다. 특별히 가족중에 처음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끊임없는 눈물과 기도로 가정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중에는 저의 부친이 처음 교회에 나갔습니다. 많은 환란과 연단의 통하여 사업의 실패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저의 부친이 교회에 나갈 당시에 아무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 처음 교회에 나가면서 그 받은 바 그 뜨거운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철저히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구원의 은혜를 온 가족들을 위해 그 열정을 뿜어내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열열한 열정과 뜨거움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열매로 맺어져 처음에는 본인이 그 다음은 큰 누님이 그 다음은 작은 누님이 마지막으로 모친께서 교회에 나가게 되어 지금은 온 가족이 구원이 이루지게 된 것입니다. 온 가족이 구원을 얻기 까지 무려 20여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여전히 아직도 연약한 신앙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 가정 처럼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혼자 믿는 다고 괴로워 하거나 근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그 구원을 향한 열심으로 인하여 낙심과 한숨과 아쉬움이 훗날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짐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믿고 확신하셔서 오늘도 열심히 씨를 뿌리되 뭇시로 주안에서 기도와 간구를 아뢰어서 여러분의 기도와 열심히 주께서 기억한 바되어 온 집안이 구원의 열매로 아름답게 꽃피는 그날이 속히 올 줄 믿습니다.
2. 많이 구제하는 자이다.(행10:2 중반절)
1) 본문설명
고넬료는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은혜로 무엇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2절 중반절에 “많이 구제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고넬료가 왜 구체적으로 경건을 하다는 증거로 구제를 하였는가에 대하여 의문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도 있고, 인내도 있고, 여러 가지 경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데 본문은 이런 것보다 구제쪽으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본문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가 주어지는 데 이 고넬료라는 이름은 B.C. 1세기에 1만명의 노예를 해방시킨 유명한 장군 퍼블리우스 코넬리우스 술라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당시 남자의 흔한 이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그때 해방되었던 노예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술가 장군 가문의 후손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전자의 견해를 따르면 그 노예의 후손으로써 노예들이 가졌던 과거의 비애와 눈물과 회한을 기억하여 고통과 어려운 자들에게 힘이 되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자애심으로 구체적으로 선한 행동을 구제쪽으로 나타내었을 것입니다. 특히 구제는 누구나 조금씩은 하는 것이지만 사실 자신이 지난날 어려웠던 상황이나 여건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현실에서 기인하고 있어서 사람마다 조금씩 깊이와 높이, 수준이 다름니다. 눈물의 빵을 먹어 본 자 만이 그 빵의 의미와 가치를 알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넬료는 특별히 많은 구제를 통하여 당시의 어려운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선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구제를 통하여 경건의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마6:2-4에 보면 구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잘 정리해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구제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넬료의 구제는 이 말씀과 연관하여 보면 어떴습니까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의 구제가 주님의 말씀대로 엄밀한 중에 행한 구제로 하나님께 기억되는, 상달되었던 선한 구제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선한 손길을 백성들에게 미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한 행동을 할 때에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보다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하여 선한 행동을 먼저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증거가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그 원리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어떤 것, 예를 들어 어떤 성경적 원리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면 다른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합리화시키는 것보다는 그 본문에 가지고 있는 윈리를 먼저 우선적으로 충실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구제의 경우를 보더라도 먼저 사람에게 인정받기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구제가 우선이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어떻게 적용시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제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분명히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명확하고 확실히 지시하여 기록되어 있음으로 더 이상 이 부분에 + 알파로 작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참된 구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적 용
이제 얼마되지 않아 연말연시가 다가올 것입니다. 거리에는 구세군들이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로 비롯하여 각종 자선단체들이 이웃의 따뜻한 손길을 베풀자는 캠페인을 벌릴 것입니다. 각 교회는 텔레비젼이나라디오에 우리가 불우이웃을 위한 구제헌금을 바쳤습니다. 귀하게 써 주세요 라고 방송국에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은 과연 교회가 방송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알려야 되는가 곧 교회의 덕차원으로 말임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을 선택하셔서 구제하시겠습니까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상달된 구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응답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구제의 원리와 방법과도 일치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구제 방법과 함께 그 예로써 고넬료를 구제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에게 상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전자를 선택하여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하시면 하나님께서 기억되고 갚으셔서 사람들에게 까지도 인정을 받을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고넬료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구제의 귀감으로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전도사님이 신학부 다닐 때 그 전도사님은 마산문창교회 안수 집사님이었습니다. 문창교회가 목요일마다 밥상공동체를 운영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점심을 매 주일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경남에서는 문창교회가 처음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후 몇 달이 지난 후에 경남일보 즉 지방신문에 앞 표지에 보니 헤드라인 뉴스부분에 문창교회의 구제부분이 크게 사진으로 싣고 소개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메스콤에 알리지도 아니했는데 어디서 소식을 들은지는 모르지만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간 것입니다. 그 동네에서만 자그마하게 시작한 그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는 그 교회를 들어 써셨서 경남의 많은 교회들이 구제를 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 여러분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상달되는 구제를 선택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 하나님의 역사로 통한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덕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항상 기도하는 자이다.(행10:2-4)
1)본문 설명
자! 이러한 고넬료의 선한 행동이나 열매가 경건한 자신으로 인한 결실이라 우리가 생각하면 참으로 그 경건은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러면 과연 고넬료는 어떻게 하여 이러한 열매를 맺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2절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하여 하나님께 기억되어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임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히브리어로는 “테필라”, 헬라어로는 “프로슈케”입니다. 기도는 근본적으로 생활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신자들이 취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한 형태로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교제입니다. 이 교제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데, 그 예로 살전 5:17절에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형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고넬료는 그 요구 앞에 순종하여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를 함에 있어서 당시 그가 처해 있는 상황으로 보아서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 기도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의 “제9시쯤되어” 이런 것을 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데 그 시간은 저녁분향을 드리는 시간으로 유대인의 기도시간입니다.
자. 이렇게 고넬료는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하나님과 교제를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구제와 경건에 더욱 힘쓸 수 있었고, 더 많은 구제도 하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그의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응답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경건은 인간의 어떠한 선행적인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즉 기도의 응답을 통한 경건의 모습으로 영적인 사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이러한 기도에 의한 영적인 삶에서 열매가 맺힌 대표적인 모델은 아마 우리 예수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그가 직접 행함으로써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사복음서에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혼자서 가시고, 산에서 기도하고, 밤 새워 철야로 기도하셨고, 생의 마지막 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혈을 기울여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기도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큰 일을 하시기 전에도 밤새워 기도를 했지만, 하루일과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였던 것을 봅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기도로 시작한 예수님은 매일의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더불어 가는 곳마다 착한일과 메시야 사역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온전히 그 사역을 담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윗도 시편 108편 2절에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렸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시57편 8절에도 “내 영광이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매일의 삶을 기도로서 항상 아뢰었던 다윗 그도 역시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선지자 중에는 특히 다니엘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던 기도의 삶을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 어려운 시험과 역경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항상 있음으로 그 나라 왕까지도 그를 인정하여 그를 높은 자리를 두어 포로된 나라에서 귀하게 높임을 받았던 인물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3) 적 용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군사가 전쟁중에 총을 가지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 전쟁에서 이기려는 어려석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영적인 군사인 우리들을 항상 바쁘게 만들어 기도를 쉬거나, 나태하거나, 적당하게 하여 무기력한 당나라 군대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의 전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어려울 때만 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오늘의 성도의 연약한 모습이고 현실입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자신의 영적 무기력함과 무능력을 탈피하여 능력있는 성도가 되고 싶은 사람이 계십니까 혹시 내가 10년이 넘게 교회에 다녀도 영적인 열매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내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적으로 뜨겁게 확실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그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을 만날 때까지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여러분의 영적인 무능력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가 없는 것에서 영적인 열매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각속에 있는 하나님이 눈앞에 보이고 느껴질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여 그 분의 지시함속에서 많은 구제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건의 모든 시작은 기도로 시작하여 그분의 응답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이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있기를 소원드립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경건하십니까 그러면 그 경건의 증거가 있습니까 그 경건을 소유하고 있으면 반드시 소유한 것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한나님을 경외케 하였고, 또한 많은 구제를 어려운 자들을 위하여 하였고, 이 모든 것을 위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그의 경건의 증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증거가 여러분의 증거로 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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