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주는 교훈 (시119:65-72)
본문
어떤이는 인간사를 "고해같은 세상"이라 표현했다.인간이 살아가는 생애에 환난의 파도가 쉬지않고 밀려와 살아가는 불안하며 공포속에 몰아넣어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사람마다 겪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고통없이 지나는 사람은 없다.
어떤이에게는 질병이란 고통이 닥쳐와서 괴롭게 하기도 한다.질병 때문에 온 가족이 불안해하며 많은 재산도 탕진 되어야 하고 불치의 병 앞에는 건강한 가족까지 사색이 되게 만든다.
경제적 빈곤의 고통,먹지 않으면 죽기에 돈이 억지로 벌어지지 않는다.어려운 형편에 채무는 눈사람 불어나듯 늘어나고 채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독촉을 받을때의 고통스런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괴로움이다.
굶주려 본 사람만이 배고픈 설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믿을만한 사람에게 배신 또는 무시당하는 고통은 말할수 없이 큰 것이다.
예수 믿는 일 때문에 일제의 탄압속에서 당한 고통,공산당의 악날한 박해는 기독교의 무서운 고통이었다.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 탄압적 수모도 우리 민족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수모였지만,1950년 6.25김일성의 남침으로 이땅을 짓 밟아 놓은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어제는 44년째를 맞는 그 아픔의 날이다.
시편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행하였으나 고난당한것이 유익하였다고 고백한다.
1.고난당하기전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다고 고백한다.안일무사하게 생활하다보니 정상적 생활이 아니다.비정상적인 생활로 그릇 행하였다는 것이다.
1)교만한 생활이다.
불의하게 살아도 사기하고 도적질하고 이웃을 해치면서 재산을 증식하여 번영하는 안일한 생활을 하다보니 교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된다.지식때문에 권력 떄문에 재물 때문에 출세일변도를 달리는 사람들 안하무인격으로 교만이 그의 목걸이가 되다보니 하나님도 그의 앞에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거만은 넘어짐의 선봉이나라"(잠16:18)
무지한자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고 기고만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 밖에 되어진다.
2)불신앙으로 살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하느니라"(시14:1)결국,무신론자가 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리아"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사랑의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그러나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불신앙으로 살게 된다.
3)불법으로 살게된다.
불법이 죄이다.인류에게는 양심속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이스라엘에게는 성문화된 계명을 주셨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율법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길의 빛이시니이다.
이같은 생명의 하나님의 법을 저버리고 불법하게 사는 자들에게는 못할이 없다.노아시대의 사람들,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불법한 자들이라 했다.
불법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것이 고난당하기 전에 그릇 행한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수 있다.
2,고난이 주는 교훈
시편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꺠닫게 되는 유익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고난은 결코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절망의 함정이 아니라 소나기 후에 햇빛이 나듯 밤의 가시껍질 속에 밤 알갱이와 같은 것이다.
예수임의 십자가의 고통후에 부활의 승리가 있는 것이다.인생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한 짐승과 같다 하셨다.고난이 괴로울 것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1)자신의 약함을 깨닫는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있으면 안될 것이 없고 권력만 있으면 못할것이 없다 생각하며 지식만 있으면 무엇이나 다 해낼수 있을 줄 알고 교만한대로 교만하였다도 불치의 병이나 감당할수 없는 사건 앞에서는 인간의 한계선을 느끼게 되고 무력한 자신을 고백할수 밖에 없다.
이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게 된다.
바울은 아시아 선교에서 환난을 당하는데 얼마나 심했든지 살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생각할수 밖에 없게 되었을때 깨닫는 것은 연약한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심으로 깨달았다.인간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을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니 교만한 자를 돌이겨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교훈의 방법이 고난이라는 것이다.
2)겸손하게 만드는 방법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를 찾아 해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도상에서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보게 되었다.예수님의 밝은 빛 앞에서 무릅을 꿇게 되었다.거기서 그 밝은 빛 앞에서 자기를 발견할때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깨달아 그는 겸손한 자가 되어 사울이 바울이 되어 "내가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아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그토록 교만하여 세계는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보려고 기고만장 할때 연합군을 통하여 패전하고 독일은 전범자였음을 고뱍하며 구라파 피해국에 보상할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알본은 아직까지도 겸손할줄 모르고 경제대국은 이루고 또 다시 침략의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이다.깨달아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3)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게 된다.
요 9장의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난자를 놓고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이니까"
예수님의 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남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생각하는 고난이나 불행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 것이다.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발견하고 그를 만나기만 하면 행복 할것이다.
욥42:5 "내가 주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이스라엘이 애굽 바로의 잔인한 압제와 가증한 고통중에서 벗어날수 없으나 하나님꼐서 모세를 통하여 크신 권능으로 이끌어내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임을 역역히 보게 된다.
다니엘에 바벨론 메데파사,헬라,로마로 국권이 이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하나님은 인류역사속에 현존하셔서 통치하심을 목격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임하심은 곧 하나님의 임재 얼룩진 역사는 우리민족사에서 잊을수 없는 것이다.우리 민족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이 민족을
8.15의 해벙을 주시고 북쪽의 남침 때는 U.N을 보내사 보호해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선하신 뜻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뜻을 깨달았다.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소모가 소 사는 자에게
말씀의 약속대로 인생의 삶의 길이 평탄할 것이며 그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이 형통할 것이다.
3)소망중에 승리의 삶을 살아 갈수 있게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되기에 환난은 소망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바울이욥이 에디슨,베어토벤이 그러했다.
어떤이에게는 질병이란 고통이 닥쳐와서 괴롭게 하기도 한다.질병 때문에 온 가족이 불안해하며 많은 재산도 탕진 되어야 하고 불치의 병 앞에는 건강한 가족까지 사색이 되게 만든다.
경제적 빈곤의 고통,먹지 않으면 죽기에 돈이 억지로 벌어지지 않는다.어려운 형편에 채무는 눈사람 불어나듯 늘어나고 채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독촉을 받을때의 고통스런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괴로움이다.
굶주려 본 사람만이 배고픈 설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믿을만한 사람에게 배신 또는 무시당하는 고통은 말할수 없이 큰 것이다.
예수 믿는 일 때문에 일제의 탄압속에서 당한 고통,공산당의 악날한 박해는 기독교의 무서운 고통이었다.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 탄압적 수모도 우리 민족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수모였지만,1950년 6.25김일성의 남침으로 이땅을 짓 밟아 놓은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어제는 44년째를 맞는 그 아픔의 날이다.
시편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행하였으나 고난당한것이 유익하였다고 고백한다.
1.고난당하기전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다고 고백한다.안일무사하게 생활하다보니 정상적 생활이 아니다.비정상적인 생활로 그릇 행하였다는 것이다.
1)교만한 생활이다.
불의하게 살아도 사기하고 도적질하고 이웃을 해치면서 재산을 증식하여 번영하는 안일한 생활을 하다보니 교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된다.지식때문에 권력 떄문에 재물 때문에 출세일변도를 달리는 사람들 안하무인격으로 교만이 그의 목걸이가 되다보니 하나님도 그의 앞에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거만은 넘어짐의 선봉이나라"(잠16:18)
무지한자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고 기고만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 밖에 되어진다.
2)불신앙으로 살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하느니라"(시14:1)결국,무신론자가 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리아"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사랑의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그러나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불신앙으로 살게 된다.
3)불법으로 살게된다.
불법이 죄이다.인류에게는 양심속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이스라엘에게는 성문화된 계명을 주셨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율법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길의 빛이시니이다.
이같은 생명의 하나님의 법을 저버리고 불법하게 사는 자들에게는 못할이 없다.노아시대의 사람들,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불법한 자들이라 했다.
불법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것이 고난당하기 전에 그릇 행한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수 있다.
2,고난이 주는 교훈
시편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꺠닫게 되는 유익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고난은 결코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절망의 함정이 아니라 소나기 후에 햇빛이 나듯 밤의 가시껍질 속에 밤 알갱이와 같은 것이다.
예수임의 십자가의 고통후에 부활의 승리가 있는 것이다.인생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한 짐승과 같다 하셨다.고난이 괴로울 것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1)자신의 약함을 깨닫는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있으면 안될 것이 없고 권력만 있으면 못할것이 없다 생각하며 지식만 있으면 무엇이나 다 해낼수 있을 줄 알고 교만한대로 교만하였다도 불치의 병이나 감당할수 없는 사건 앞에서는 인간의 한계선을 느끼게 되고 무력한 자신을 고백할수 밖에 없다.
이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게 된다.
바울은 아시아 선교에서 환난을 당하는데 얼마나 심했든지 살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생각할수 밖에 없게 되었을때 깨닫는 것은 연약한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심으로 깨달았다.인간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을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니 교만한 자를 돌이겨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교훈의 방법이 고난이라는 것이다.
2)겸손하게 만드는 방법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를 찾아 해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도상에서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보게 되었다.예수님의 밝은 빛 앞에서 무릅을 꿇게 되었다.거기서 그 밝은 빛 앞에서 자기를 발견할때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깨달아 그는 겸손한 자가 되어 사울이 바울이 되어 "내가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아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그토록 교만하여 세계는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보려고 기고만장 할때 연합군을 통하여 패전하고 독일은 전범자였음을 고뱍하며 구라파 피해국에 보상할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알본은 아직까지도 겸손할줄 모르고 경제대국은 이루고 또 다시 침략의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이다.깨달아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3)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게 된다.
요 9장의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난자를 놓고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이니까"
예수님의 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남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생각하는 고난이나 불행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 것이다.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발견하고 그를 만나기만 하면 행복 할것이다.
욥42:5 "내가 주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이스라엘이 애굽 바로의 잔인한 압제와 가증한 고통중에서 벗어날수 없으나 하나님꼐서 모세를 통하여 크신 권능으로 이끌어내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임을 역역히 보게 된다.
다니엘에 바벨론 메데파사,헬라,로마로 국권이 이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하나님은 인류역사속에 현존하셔서 통치하심을 목격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임하심은 곧 하나님의 임재 얼룩진 역사는 우리민족사에서 잊을수 없는 것이다.우리 민족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이 민족을
8.15의 해벙을 주시고 북쪽의 남침 때는 U.N을 보내사 보호해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선하신 뜻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뜻을 깨달았다.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소모가 소 사는 자에게
말씀의 약속대로 인생의 삶의 길이 평탄할 것이며 그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이 형통할 것이다.
3)소망중에 승리의 삶을 살아 갈수 있게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되기에 환난은 소망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바울이욥이 에디슨,베어토벤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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