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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할 강 (창31:12-29)

본문

1. 야곱같은 인생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우리집 사람이 첫애를 낳으려고 분만실에 들어갈 때의 일입니다. 분만실에 들어가는 여자들의 태도를 보면 그 여자들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 해산의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무의식중에 할말 안 할말이 다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들어가면서 부터 고래고래 남편 욕을 해덴답니다. 또 어떤 여자는 삶을 저주 하기까지 한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예수 믿는 분들은 얼마나 더 열심이 기도하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제가 아는 간호사로부터 들은적이 있습니다. 분만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즉 해산한다는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체험인것입니다. 여자들 중에 이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예쁜 애기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까지 이르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죽음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죽음이 눈 앞에 놓여 있다면 어느 사람이 어떤 사람이 진지해 지지 않겠습니 까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면 어찌 사람이 심각해지지 않으며 결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참 병원 전도를 다닌 후에 병상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대체로 세 가지의 유형을 드러 낸다고 합니다.
첫째는 부인하는 것입니다. 죽음 자체를 받아 들이지 않고 그것이 꿈이거나 우연이거나 잘못 진단되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두번째 단계는 그 죽음의 원인을 타인에게 증가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때문에 누구누구의 실수로 또 의사들의 무성의와 가족들의 무관심 때문에 내가 이릏게 처절하게 죽음으로 가는 것이라고 타인에 대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그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인데 지나온 인생을 회고 하면서 잘못도 뉘우치고 잘못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주변의 신변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누구나 이 죽음과 결단의 시간에 이르러야 할 때가 옵니다. 그래서 나이든 어른들은 이 결단의 시간을 맞이하기가 싫어서 “내가 잠자는듯이 자다가 눈을 감는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면서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불안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한것처럼 누구라도 분만실에 들어가는 여자 처럼 수술실에 들어가는 환자처럼 하나님과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 벌거벗겨진 모습으로 서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결단의 시간에 올바른 결단을 내리시므로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며 인생의 궁극적인 소망이 무엇인지 늘 되돌아보므로 육신을 위하여 부요케 될 뿐 아니라 영혼에 대하여 부요함을 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먼저 축원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한번은 건너야할 강
야곱은 어릴때 부터 어머니의 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쌍둥이를 낳아 에서와 야곱 중에 뒤에 나오면서 형의 발굼치를 잡은 야곱을 눈여겨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리브가가 믿음으로 이삭과 결혼한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믿음의 어머니요 신앙의 어머니요 말씀의 어머니로서 야곱을 범상하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있는 아이인줄로 믿고 어릴 때 부터 믿음으로 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가 받을 수 있는 축복의 기도를 야곱이 받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에서가 칼을 빼어 들고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멀리 외갓댁인 삼촌 라반의 집으로 먼 길을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가 떠날적에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며 잠을 잘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서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안수의 축복이 야곱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야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그의 세월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자기의힘대로 자기의 지혜대로 자기의 꾀대로 열심히만하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형을 속여야 했던 야곱은 삼촌에게서 속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라헬과 레아와 그들에게 딸린 여종들까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되고 죽도록 고생한 뒤에 그는 삼촌의 집을 야밤도주해 나옵니다. 도망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형편을 행각해보십시오. 뒤에서는 삼촌이 죽이겠다고 추격해오고 앞에서는 형이 그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섰을 때에 야곱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시시각각 거미줄 처럼 제어들어오는 그 운명의 시간을 회피할 길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삶이 어렵고 풀리지 않아 양 사방에서 제어들어 오고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야곱처럼 결단의 사간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피해다닌다고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빠져 나올 수 없는 곤경의 자리고 빠져들어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십년간이나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마도로스였습니다. 십년동안이나 아무탈 없이 자기 생활에 만족하던 그분에게 어느날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불연듯 찾아왔습니다. 기관실에서 책임을 맡고 있던 그분이 어느날 엔진을 고치다가 무릎을 다쳤습니다. 통증을 참으며 몇일간을 계속해서 일하다가 열대양의 무더운 날씨에 그만 뼈속이 시리는 골수염이 생기고 만것입니다. 가까운 항구의 병원으로 찾아간다고 삼일이나 더 가야만하는 그위기 상황 속에서 그저 낫겠거니 하다가 기절을 하고만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미국의 조그마한 항구의 이접해 있는 병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챠트를 들고온 간호사의 손에는 골수염으로 인하여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마난다는 진단이 내려져있었습니다.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아왔던 자신의 다리가 잘린다는 것은 결국 그의 파산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다. 그때부터 그는 신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에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기억해내고 그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다리를 자르지만 않게해주십시오. 한번만 딱 한번만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간절은 기도밖에는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의사는 그 다리가 놀랍게도 치유되고 있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밤마다 병상에서 부르짖는 이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누구나 결단의 때는 있는 법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부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도우심을 받으면 그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날이 궂은 날이면 신경통으로 남아있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목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분은 제가 너무나도 친하게 지내는 선배 목사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데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차지도 더웁지도 않았고 영적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님은 그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입에서 뱉어내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련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속에 있다면 여러분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과 시름해야합니다. 육신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고 영적으로 거듭나야합니다. 영혼이 새로워지지않으면 범사도 강건함도 저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결단케하시는 사건을 받아들이십시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는 다고, 사람들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고민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습니까 모두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을 앞에 두고 뒤에서 목덜미를 잡는 삼촌 라반의 추격과 앞에서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형 에서의 정면적인 대적을 피해보려고 인간의 잔꾀로 양떼를 세 떼로 나누어 앞서 보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있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뿌리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날밤 얍복 강 가에 홀로 나와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 밤을 겪고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야곱과 같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그 끝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할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우심과 해결하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이 강은 저주냐 축복이냐
이쯤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나는 저주받은 사람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91편
1,2절에 보면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다 하리니“
이렇게 기도한 다음에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91편
3,4절에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일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내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두려움을 느꼈던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밖에는 피할 길이 없고 도와주실 분이 없다고 뜨겁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붙드셔서 평안케 하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얍복강은 저주를 앞에 둔 고난의 강이요, 침륜의 강이요, 고통의 강이요, 죽음의 강입니다. 그러나 이 강을 만났을 때 엎드려 기도하며, 엎드려 울부짖으며, 엎드려 하나님을 부르면 이 강은 하나님을 만나는 강이요, 이강은 거듭나느 강이요, 이 강은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 강이요, 이 강은 축복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고난의 강이 있습니까 침륜의 강이 있습니까 두려움의 강이 있습니까 양사방에서 오는 올무의 강이 있습니까 꿇어 엎드려 울부짖어 하나님을 찾읍시다. 예수의 이름을 붙들고 예수의 공로 의지하여 주님을 부릅시다. 그러면 그 강이 영생을 주는 강이요 영원을 얻는 강이요 성령을 받는 강이요 영생의 축복을 받는 강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받는 모든 성도들 머리위에 하나님의 이 놀라운 언약의 말씀의 능력이 들어가시기를 주 에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첫쩨. 사람으로 할 도리는 최선을 다해놓고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의탁하러 가야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도리를 다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앞서 보내고 양떼를 세떼롤 나누어 앞서 보내어 그 형 에서가 양떼를 보고 마음이 풀어지고 그의 조카들을 보고 재수씨들을 보고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나도록 준비한 다음에 기도하러 갔던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가서 도리를 다한 다음에 하나님이 결과를 책임 지도록 의탁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최선을 다해놓고 결과에 맡기시는 이 삶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둘째, 밤이 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이올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결판을 보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과부의 심정으로, 억울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수의 이름으로 호소해야 합니다. 나는 공로없고 나는 잘한것 없지만 내 안에 게신 예수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에게 축복하시도록 에수의 이름과 그 권세로 나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들으실때까지 내 마음에 평안이 올 때 까지 응답되었다는 뜨거운 확신이 올 때 까지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마음에 확신부터 주시도록 구체적으로 응답해주실때까지 줄기차게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가 풍부하시고, 인애가 풍성하시며, 아들을 보내신 그 사랑에 호소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독생자를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눈물로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하시는 하나님을 어김없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4.하나님과의 싸움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야곱이 하나님과 밤이 세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둑논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는 순간입니다. 껍질을 깨는 아픔이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돌라가는 순간인 것입니다. 시편 62편 8정을 보십시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라 그앞에 너희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리시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다시한번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명철과 우리의 지식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십니다.
그러므로 얍복강은 나를 내려 놓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단의 장소가 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온전히 하나님을 믿어 나를 내려놓고 결단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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