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10:13-15)
본문
‘눈이 오면 겨울인줄 알았고, 꽃이 피면 봄이 왔나보다 느꼈을 뿐입니다. 살면서도 왜 사는지 모르게 바빴고,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내 인생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서울의 성장하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집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은지가 얹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되었고 각 학교마다 개학을 했습니다.
다락방 전도를 하러 대학을 드나들면서 저는 많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저럴 때’가 벌써 십년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며 오늘 다시 제가 할 일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화살같이 빠른 세월, 물같이 바람같이 흘러가고 스쳐가 버리는 세월. 어떻게 살았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해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고 새롭게 인생에 대한 결심이 세워질 수 있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네 발에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특별하게 쓰셨던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의 발에서 신을 벗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를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실 때 신을 벗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와서 신을 벗게 했습니다.
맨 발바닥으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들어갈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맨발이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바울을 부르실 때도 예수님은 발에서 신을 벗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 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3-15)”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행7:33)”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친히 벗을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왜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 자는 노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여호수아, 바울 등을 부르시면서 각각 발에서 신을 벗을 것을 명하십니다.
이 명령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는 내 종이다. 네가 선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은 땅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지휘권을 쥔 통치권자 앞에서 졸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죄인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옮겨 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또 우리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조건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신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동시에 주인이십니다. 모든 신자의 약점은 그가 구원과 축복을 얻었다는 사실로 만족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종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데 있습니다.
둘째는 나는 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님이 대신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맡기는 완전한 의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밖에 나갈 때 신발을 신습니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습니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네맘대로 다녔던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어 내 대신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은 삶은 누가 주인 되어 살아온 인생입니까 여러분의 소유를 맡기지 못하고 여러분의 마음대로 휘둘렀던 여러분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래서 고통에 찌들어 버린 인생은 아닙니까 목자를 떠나 맘대로 다님으로 찢기고 상하여 고통 속에 눈물짓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 아닙니까 아버지를 버리고 먼 외국에 나가 허랑 방탕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탕자가 여러분 자신은 아닙니까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다섯 번 결혼하고도 만족함이 없어 나중에는 남편 아닌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냐” 말씀하셨습니다. 개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죄악과 저주의 신을 벗으라 명령하십니다. 네맘대로 살던 인생을 청산하고 나로 네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몰라 저주와 사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만 신을 벗을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맘대로 내뜻대로 고집하며 살아온 당신도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참된 안식을 얻으려면 이제는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신을 벗고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2.나로 너를 씻기게 하라
지나간 과거의 죄악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인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얼룩진 상처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하고 선행을 쌓는다 해도 과거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오늘 걸어가는 발걸음도 죄악의 길입니다.
아들이 못된 일만 일삼아 가슴에 못이 박힌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자기 가슴에 못을 박을 때마다 기둥에다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임종이 가까와 오자 기둥에 박힌 못을 보여 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가슴에 저렇게 많은 못을 박았단다. 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라도 제발 착하게 살아다오.” 유언하고 어머니는 눈을 감았습니다. 아들은 기둥에 박힌 못을 바라보면서 새삼 자신이 저질러온 죄악의 숫자에 놀랐습니다. 어머니로 하여금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시게 한 것이 너무 죄스러웠습니다. 아들은 바르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쁜 일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기둥에 못을 박으셨으니 자신은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못을 한 개씩 뽑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이 걸려 드디어 그 못을 다 뽑았습니다. 그러나 못은 뽑았으나 못자국은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과거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죄악은 사람의 힘으로는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입신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그의 죄를 보여 주었습니다. 얼마나 검었는지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시골집 아궁이 구둘장을 들춰보면 새까만 재가 가득 고여 있습니다. 그 재를 가지고 먹을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죄를 먹과 같이 검다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의 죄를 무엇으로 씻겠습니까 우리의 죄는 그 누구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씻기실 수 있고 씻기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리라(사 1:18)”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 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님은 친히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가 만류할 때에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만이 씻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하여야만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5-10)”
1.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
네 예수여 이 죄인이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2.많은 사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의지할 것 없는 이몸 위로 받기 원합
니다.
3.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 자국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만지
셨네 내 주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 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
정 없습니다.
4.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
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 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
해 바칩니다.
3.복음의 신을 신고 달려 나가라
신을 벗기시고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신발을 신겨 주셨습니다. 복음 전파의 책임입니다. 복음전파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예수님은 사셨고, 또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지상과제로 남기신 말씀이 복음전파였습니다.
지상과제, 필생의 사업. 그것을 아무에게나 맡기겠습니까 그것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천사는 할 수 없는 것,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죄악의 신발을 벗고, 그 발을 씻김 받은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 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2-15)”
바울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서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를 불러서 발에서 신을 벗기시고, 보혈로 씻겨 주시고, 복음의 신을 신겨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와 감격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바울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엡 6:15)”을 신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신발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두 명의 사원을 파송하여 시장조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조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이곳에는 신발을 신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곳 사람들은 아예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단 한 켤레의 신발도 팔 수 없습니다”는 뜻이었습니다.
두번째 사람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이곳에는 신발은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도 신발을 안 신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신발을 팔 수 있습니다. 엄청난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장소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관점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 직장, 학교는 아무도 예수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까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아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장소입니까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듣지도 못한 이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파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듣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전파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말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 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세상에서 어떤 발이 제일 아름다운 발이겠습니까 어떤 인생이 제일 성공적인 인생이겠습니까 성경은 죄가 씻기운 그대로의 발보다는 복음 전하느라 먼지 묻은 발이 아름답다 말합니다. 복음 때문에 찢기우고 상처받은 발이 낫다 합니다. 그 발이 참으로 아름답다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들이 그대로 죽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나 천국에 갑니다. 그가 어떤 죄악의 삶을 살았든지 그것에 관계없이 천국에 갑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 예수 믿고 내가 구원받았다. 당신도 예수 믿어야 천국갈 수 있다 한 마디 말하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제 생각은 예수 믿으면서 전도하지 않는 그 사람도 지옥 같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그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 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화가 납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 전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가장 악질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도 분명히 천국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는 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자의 축복은 복음전파자로서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 10:10)”
복음 전파자에게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복음 전파가 인생의 목표가 되지 못한 사람은 일반은총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하늘문을 열고 쏟아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 은총은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발에는 어떤 신이 신겨져 있습니까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용된 물질만 돈이다. 그 나머지는 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떠나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그것은 세상적인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배설물이요, 똥입니다.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산 인생만을 주님께서는 인정하고 축복하십니다.
더럽고 추한 세상을 살던 우리를 예수님은 부르셔서 발에 신을 벗기시고 당신의 보혈로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친히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우리를 씻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험한 고통을 당하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영생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희생으로 씻기신 발을 가지고 어떤 신을 신기를 원하십니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시렵니까 찢기고 상한 노예생활을 동경하며 애굽으로 돌이키시렵니까
오늘 어렵고 힘들어도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멸망할 세상과 비교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게될 영원한 본향 천국과 비교해 보십시오. 천국과 세상을 비교해 보면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 놓였습니다. 그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달려나가 마음껏 복음을 전하시십시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이 탄성이 주님의 입에서 터져 나올 수 있게 하십시오.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의 성장하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집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은지가 얹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되었고 각 학교마다 개학을 했습니다.
다락방 전도를 하러 대학을 드나들면서 저는 많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저럴 때’가 벌써 십년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며 오늘 다시 제가 할 일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화살같이 빠른 세월, 물같이 바람같이 흘러가고 스쳐가 버리는 세월. 어떻게 살았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해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고 새롭게 인생에 대한 결심이 세워질 수 있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네 발에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특별하게 쓰셨던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의 발에서 신을 벗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를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실 때 신을 벗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와서 신을 벗게 했습니다.
맨 발바닥으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들어갈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맨발이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바울을 부르실 때도 예수님은 발에서 신을 벗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 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3-15)”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행7:33)”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친히 벗을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왜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 자는 노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여호수아, 바울 등을 부르시면서 각각 발에서 신을 벗을 것을 명하십니다.
이 명령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는 내 종이다. 네가 선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은 땅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지휘권을 쥔 통치권자 앞에서 졸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죄인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옮겨 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또 우리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조건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신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동시에 주인이십니다. 모든 신자의 약점은 그가 구원과 축복을 얻었다는 사실로 만족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종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데 있습니다.
둘째는 나는 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님이 대신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맡기는 완전한 의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밖에 나갈 때 신발을 신습니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습니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네맘대로 다녔던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어 내 대신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은 삶은 누가 주인 되어 살아온 인생입니까 여러분의 소유를 맡기지 못하고 여러분의 마음대로 휘둘렀던 여러분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래서 고통에 찌들어 버린 인생은 아닙니까 목자를 떠나 맘대로 다님으로 찢기고 상하여 고통 속에 눈물짓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 아닙니까 아버지를 버리고 먼 외국에 나가 허랑 방탕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탕자가 여러분 자신은 아닙니까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다섯 번 결혼하고도 만족함이 없어 나중에는 남편 아닌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냐” 말씀하셨습니다. 개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죄악과 저주의 신을 벗으라 명령하십니다. 네맘대로 살던 인생을 청산하고 나로 네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몰라 저주와 사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만 신을 벗을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맘대로 내뜻대로 고집하며 살아온 당신도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참된 안식을 얻으려면 이제는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신을 벗고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2.나로 너를 씻기게 하라
지나간 과거의 죄악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인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얼룩진 상처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하고 선행을 쌓는다 해도 과거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오늘 걸어가는 발걸음도 죄악의 길입니다.
아들이 못된 일만 일삼아 가슴에 못이 박힌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자기 가슴에 못을 박을 때마다 기둥에다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임종이 가까와 오자 기둥에 박힌 못을 보여 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가슴에 저렇게 많은 못을 박았단다. 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라도 제발 착하게 살아다오.” 유언하고 어머니는 눈을 감았습니다. 아들은 기둥에 박힌 못을 바라보면서 새삼 자신이 저질러온 죄악의 숫자에 놀랐습니다. 어머니로 하여금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시게 한 것이 너무 죄스러웠습니다. 아들은 바르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쁜 일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기둥에 못을 박으셨으니 자신은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못을 한 개씩 뽑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이 걸려 드디어 그 못을 다 뽑았습니다. 그러나 못은 뽑았으나 못자국은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과거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죄악은 사람의 힘으로는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입신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그의 죄를 보여 주었습니다. 얼마나 검었는지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시골집 아궁이 구둘장을 들춰보면 새까만 재가 가득 고여 있습니다. 그 재를 가지고 먹을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죄를 먹과 같이 검다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의 죄를 무엇으로 씻겠습니까 우리의 죄는 그 누구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씻기실 수 있고 씻기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리라(사 1:18)”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 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님은 친히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가 만류할 때에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만이 씻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하여야만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5-10)”
1.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
네 예수여 이 죄인이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2.많은 사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의지할 것 없는 이몸 위로 받기 원합
니다.
3.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 자국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만지
셨네 내 주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 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
정 없습니다.
4.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
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 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
해 바칩니다.
3.복음의 신을 신고 달려 나가라
신을 벗기시고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신발을 신겨 주셨습니다. 복음 전파의 책임입니다. 복음전파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예수님은 사셨고, 또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지상과제로 남기신 말씀이 복음전파였습니다.
지상과제, 필생의 사업. 그것을 아무에게나 맡기겠습니까 그것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천사는 할 수 없는 것,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죄악의 신발을 벗고, 그 발을 씻김 받은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 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2-15)”
바울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서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를 불러서 발에서 신을 벗기시고, 보혈로 씻겨 주시고, 복음의 신을 신겨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와 감격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바울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엡 6:15)”을 신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신발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두 명의 사원을 파송하여 시장조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조사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이곳에는 신발을 신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곳 사람들은 아예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단 한 켤레의 신발도 팔 수 없습니다”는 뜻이었습니다.
두번째 사람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이곳에는 신발은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도 신발을 안 신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신발을 팔 수 있습니다. 엄청난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장소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관점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 직장, 학교는 아무도 예수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까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아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장소입니까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듣지도 못한 이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파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듣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전파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말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 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세상에서 어떤 발이 제일 아름다운 발이겠습니까 어떤 인생이 제일 성공적인 인생이겠습니까 성경은 죄가 씻기운 그대로의 발보다는 복음 전하느라 먼지 묻은 발이 아름답다 말합니다. 복음 때문에 찢기우고 상처받은 발이 낫다 합니다. 그 발이 참으로 아름답다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들이 그대로 죽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나 천국에 갑니다. 그가 어떤 죄악의 삶을 살았든지 그것에 관계없이 천국에 갑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 예수 믿고 내가 구원받았다. 당신도 예수 믿어야 천국갈 수 있다 한 마디 말하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제 생각은 예수 믿으면서 전도하지 않는 그 사람도 지옥 같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그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 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화가 납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 전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가장 악질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도 분명히 천국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는 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자의 축복은 복음전파자로서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 10:10)”
복음 전파자에게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복음 전파가 인생의 목표가 되지 못한 사람은 일반은총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하늘문을 열고 쏟아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 은총은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발에는 어떤 신이 신겨져 있습니까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용된 물질만 돈이다. 그 나머지는 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떠나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그것은 세상적인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배설물이요, 똥입니다.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산 인생만을 주님께서는 인정하고 축복하십니다.
더럽고 추한 세상을 살던 우리를 예수님은 부르셔서 발에 신을 벗기시고 당신의 보혈로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친히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우리를 씻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험한 고통을 당하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영생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희생으로 씻기신 발을 가지고 어떤 신을 신기를 원하십니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시렵니까 찢기고 상한 노예생활을 동경하며 애굽으로 돌이키시렵니까
오늘 어렵고 힘들어도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멸망할 세상과 비교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게될 영원한 본향 천국과 비교해 보십시오. 천국과 세상을 비교해 보면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 놓였습니다. 그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달려나가 마음껏 복음을 전하시십시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이 탄성이 주님의 입에서 터져 나올 수 있게 하십시오.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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