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의 제자들과의 고별 (행21:1-6)
본문
본서를 기록한 누가는 바울의 일행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헤어지는 것을 1절에 서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별이라는 말을 쓸 때에 헬라어로 `아포스 파스텐타스'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 말은 이별의 격한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얼마나 헤어지기를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찢어놓는다는 의미로서 이별의 잔인함을 나타내고 억지로 친 구와 갈라서야 하는 경우를 나타냅니다. 이런 고통스런 감정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일행은 복음 전도의 사역의 확산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장로들과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이와같은 모습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모든 요소들도 때로는 포기하는 결단이 요구됨을 보여 줍니다(마6:33). <본론>
1.두로에 상륙한 바울의 일행 바울은 밀레도에서 3차 전도 여행을 결산하고 곧장 예루살렘으로의 귀로를 채촉합니다. 바울의 일행이 탄 배는 고스, 로도, 바다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베니게행 배로 수리아의 두로에 잠시 상륙합니다
(1). 고스는 밀레도 남쪽 68Km 거리에 있는 비옥한 작은 섬으로 밀을 위시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이곳은 유명한 의학자 히포 크라테스의 고장으로서 큰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로도는 섬으로서 항구입니다. 에게 해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매일 태양빛이 밝게 비쳐
B.C280년에 태양신상이 건립되 기도 했는데 지진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바다라는 리기야 해안의 중요한 항구인데 아 폴로의 유명한 신탁소가 있었습니다. 이상의 항로는 이 부근을 매일 수백척의 배들 이 다녔던 전형적인 코스라고 합니다. 바울은 바다라에서 배를 갈아타고 두로를 향 했습니다. 이것은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배보다 빠른 것인데 바울 일행은 순풍으 로 항해한 것입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감행한 바울의 노정 은 순조로왔습니다.
2.예루살렘 방문을 만류하는 제자들 두로는 항해사와 무역업자로 유명하였던 베니게 최남부의 중요도시입니다. 원래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았던 작은 섬이었습니다. 두로는 암석이 많아서 포위되는 경 우도 방어하기가 용이하였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정복되지 않다가 알렉산더 대왕 때 에 포위되었고 알렉산더는 육지에서 두로까지 길이가 800m 폭 60m 가량 되는 방파제 를 건설하여 두로를 압박하여 그 곳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두로는 본토의 해 안과 연결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두로는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철학과 시의 본고장이었습니다. 오늘날 두로는 술(Sur)이라는 작은 읍에 불과합니다. 바울의 일행은 두로에 상륙하여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서 서기서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주로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과(행11:19) 또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에 의해 일찍이 복음이 전파되어 신앙을 갖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두로에 있는 제자들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만류했습니다. 성령께서 두로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 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 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자였기 때 문입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뜨거운 사랑에서 바울의 수난의 길을 만류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3.바닷가에서의 고별기도 바울의 일행이 떠날 때에 두로의 제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처자들을 데리고 나와 바울의 일행을 성문 밖까지 전송하고 바닷가에서 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바울 의 일행과 작별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바울의 오랜 친구가 아니었지만 불과 이레를 함께 하는 동안 서로의 동질성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동질성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로서 굳게 연결되어있는 한형제의식을 말합니다. 비록 짧은 7일 동안이었으나 수난 도상에서도 두로의 교회를 굳게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종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비록 기간이 짧을지라 도 교회를 견고케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고무시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은 성령님에 메인 사람이었습니다. 멀로 험난한 항해와 여행길이었으나, 그 길 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었기에 기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명의 길에는 작은 인간적인 정리와 인정도 뒤로하고 오직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 송아지를 놓고서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암소와같이 묵묵히 죽음이 기다 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라가는 바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얼마나 헤어지기를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찢어놓는다는 의미로서 이별의 잔인함을 나타내고 억지로 친 구와 갈라서야 하는 경우를 나타냅니다. 이런 고통스런 감정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일행은 복음 전도의 사역의 확산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장로들과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이와같은 모습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모든 요소들도 때로는 포기하는 결단이 요구됨을 보여 줍니다(마6:33). <본론>
1.두로에 상륙한 바울의 일행 바울은 밀레도에서 3차 전도 여행을 결산하고 곧장 예루살렘으로의 귀로를 채촉합니다. 바울의 일행이 탄 배는 고스, 로도, 바다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베니게행 배로 수리아의 두로에 잠시 상륙합니다
(1). 고스는 밀레도 남쪽 68Km 거리에 있는 비옥한 작은 섬으로 밀을 위시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이곳은 유명한 의학자 히포 크라테스의 고장으로서 큰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로도는 섬으로서 항구입니다. 에게 해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매일 태양빛이 밝게 비쳐
B.C280년에 태양신상이 건립되 기도 했는데 지진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바다라는 리기야 해안의 중요한 항구인데 아 폴로의 유명한 신탁소가 있었습니다. 이상의 항로는 이 부근을 매일 수백척의 배들 이 다녔던 전형적인 코스라고 합니다. 바울은 바다라에서 배를 갈아타고 두로를 향 했습니다. 이것은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배보다 빠른 것인데 바울 일행은 순풍으 로 항해한 것입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감행한 바울의 노정 은 순조로왔습니다.
2.예루살렘 방문을 만류하는 제자들 두로는 항해사와 무역업자로 유명하였던 베니게 최남부의 중요도시입니다. 원래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았던 작은 섬이었습니다. 두로는 암석이 많아서 포위되는 경 우도 방어하기가 용이하였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정복되지 않다가 알렉산더 대왕 때 에 포위되었고 알렉산더는 육지에서 두로까지 길이가 800m 폭 60m 가량 되는 방파제 를 건설하여 두로를 압박하여 그 곳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두로는 본토의 해 안과 연결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두로는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철학과 시의 본고장이었습니다. 오늘날 두로는 술(Sur)이라는 작은 읍에 불과합니다. 바울의 일행은 두로에 상륙하여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서 서기서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주로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과(행11:19) 또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에 의해 일찍이 복음이 전파되어 신앙을 갖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두로에 있는 제자들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만류했습니다. 성령께서 두로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 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 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자였기 때 문입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뜨거운 사랑에서 바울의 수난의 길을 만류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3.바닷가에서의 고별기도 바울의 일행이 떠날 때에 두로의 제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처자들을 데리고 나와 바울의 일행을 성문 밖까지 전송하고 바닷가에서 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바울 의 일행과 작별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바울의 오랜 친구가 아니었지만 불과 이레를 함께 하는 동안 서로의 동질성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동질성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로서 굳게 연결되어있는 한형제의식을 말합니다. 비록 짧은 7일 동안이었으나 수난 도상에서도 두로의 교회를 굳게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종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비록 기간이 짧을지라 도 교회를 견고케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고무시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은 성령님에 메인 사람이었습니다. 멀로 험난한 항해와 여행길이었으나, 그 길 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었기에 기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명의 길에는 작은 인간적인 정리와 인정도 뒤로하고 오직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 송아지를 놓고서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암소와같이 묵묵히 죽음이 기다 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라가는 바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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