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고난 중에도 인내한 욥 (욥2:1-13)
본문
욥의 경건을 시기하고 욥의 신앙을 꺾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 했던 사단의 칫번째 시험이 욥의 놀라운 신앙 고백으로 실패하자(1장), 사단은 다시 욥의 신체를 손댐으로써 욥의 신앙을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욥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신앙 정조를 저버리지 않았다(10절). 한편 이즈음 본서의 내용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욥의 세 친구가 욥의 재난을 위로하고 조문하기 위해 욥을 찾아온다(11-13절). 실로 각종 시험을 넉넉히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참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다.
1. 사단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머물 수밖에 없다.
욥을 넘어뜨리려 했던 사단의 첫번째 도전이 실패하게 되자 사단은 재차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읍의 신체에 극심한 악창이 돋게 한다. 사단은 욥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재난이 닥치지 읺았기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단은 하나넘께 재차 욥에 대한 시험을 요구하고, 하나님은 욥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단의 두번쌔 시힘을 허락하셨다. 이에 사단은 가망이 없는 치명적인 피부병으로 경건한 욥을 다시 내리쳤다. 당시 욥에게 내려진 피부병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 염증과 부스럼(7-8절), 종기들로 인한 구더기 발생(7:5), 악몽(7:14), 뼈가 수시는 고통(30:17), 피부가 검어지고 벗겨지는 현상(30:30) 등의 중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욥의 생명은 결코 손상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단은 단지 욥의 생명을 손상시킬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사단이 비록 각종 미혹과 파피 활동을 전개하지만 그 모든 활동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이 세상 역사의 모든 방향은 오직 하나넘 한 분만이 주장하고 계신다(롬 11:36). 모든 피조물 심지어 사단까지 그분의 다스림에 머물 뿐이다.
2. 사단은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미혹한다.
욥은 한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지도자였고, 신앙적으로는 세상의 소금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의 찌꺼기처럼 천시받고, 자신의 성읍의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극심한 피부병과 싸우며 고통스럽게 투병 생활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절박한 상황에서 욥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한 위로와 주위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하지만 욥에게는 그러한 위로 대신에 가장 가까운 아내로부터의 저주스러운 권면이 주어졌다. 욥의 아내는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축으라는 말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개촉하였다. 실로 사악하고 불경스럽기만한 충고했던 읍의 아내는 바로 남편을 타락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그 옛날 아담을 타락 시켰던 하와의 경우처럼(창 3:1-7), 읍에게 가장 가까운 아내를 통하여 읍의 신앙 의지를 꺾어보려 시도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사단은 때로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람,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를 미촉하고 우리의 믿음을 변절시키고자 심히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깨어 있지 않고서는 우리의 믿음은 어느 순간엔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사단은 참신앙 앞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다.
극심한 악창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감래하기 힘든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욥에게 그의 이퀴가 전한 저주의 권면(9절)은 그를 더욱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욥은 결코 감정적으로 그같은 상황에 대처하지 않았다. 욥은 감정을 절제하고 관대한 대답으로 아내의 말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지적하고, 자신은 오직 복과 화를 주관하시는 하나넘의 뜻에 건적으로 따를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10절). 이처럼 욥은 비록 자신이 아무려 절망적인 상황 아래 있었지만 그 환경으로 인해서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한편 이같이 절대적인 신앙의 사람 욥에게 사단은 더 이상 침범하지 못했다. 사단은 참신앙의 소유자 앞에서 그만 퇴패해 가고 만 것이다. 실로 사단의 악한 궤계를 물리치는 한 방법은 믿음의 방패롤 든든히 준비하는 것임을 엊지 말자(엡 6:16).
욥을 참소하던 사단이 실패하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참소하고 있다. 마귀는 성도가 무엇인가 얻고 챙길만한 이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참소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그것을 치기만하면 당장에라도 하나님을 욕하면서 신앙을 저버릴 것이라고 사단은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만일 우리의 신앙이 그러하다면 그 신앙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의 조그만한 시험 앞에서도 넘어지고 마는 신앙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은 환난 때에 더욱 빛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면, 순수한 욥의 신앙으로 회복하자!
1. 사단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머물 수밖에 없다.
욥을 넘어뜨리려 했던 사단의 첫번째 도전이 실패하게 되자 사단은 재차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읍의 신체에 극심한 악창이 돋게 한다. 사단은 욥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재난이 닥치지 읺았기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단은 하나넘께 재차 욥에 대한 시험을 요구하고, 하나님은 욥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단의 두번쌔 시힘을 허락하셨다. 이에 사단은 가망이 없는 치명적인 피부병으로 경건한 욥을 다시 내리쳤다. 당시 욥에게 내려진 피부병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 염증과 부스럼(7-8절), 종기들로 인한 구더기 발생(7:5), 악몽(7:14), 뼈가 수시는 고통(30:17), 피부가 검어지고 벗겨지는 현상(30:30) 등의 중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욥의 생명은 결코 손상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단은 단지 욥의 생명을 손상시킬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사단이 비록 각종 미혹과 파피 활동을 전개하지만 그 모든 활동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이 세상 역사의 모든 방향은 오직 하나넘 한 분만이 주장하고 계신다(롬 11:36). 모든 피조물 심지어 사단까지 그분의 다스림에 머물 뿐이다.
2. 사단은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미혹한다.
욥은 한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지도자였고, 신앙적으로는 세상의 소금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의 찌꺼기처럼 천시받고, 자신의 성읍의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극심한 피부병과 싸우며 고통스럽게 투병 생활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절박한 상황에서 욥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한 위로와 주위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하지만 욥에게는 그러한 위로 대신에 가장 가까운 아내로부터의 저주스러운 권면이 주어졌다. 욥의 아내는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축으라는 말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개촉하였다. 실로 사악하고 불경스럽기만한 충고했던 읍의 아내는 바로 남편을 타락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그 옛날 아담을 타락 시켰던 하와의 경우처럼(창 3:1-7), 읍에게 가장 가까운 아내를 통하여 읍의 신앙 의지를 꺾어보려 시도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사단은 때로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람,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를 미촉하고 우리의 믿음을 변절시키고자 심히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깨어 있지 않고서는 우리의 믿음은 어느 순간엔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사단은 참신앙 앞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다.
극심한 악창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감래하기 힘든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욥에게 그의 이퀴가 전한 저주의 권면(9절)은 그를 더욱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욥은 결코 감정적으로 그같은 상황에 대처하지 않았다. 욥은 감정을 절제하고 관대한 대답으로 아내의 말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지적하고, 자신은 오직 복과 화를 주관하시는 하나넘의 뜻에 건적으로 따를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10절). 이처럼 욥은 비록 자신이 아무려 절망적인 상황 아래 있었지만 그 환경으로 인해서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한편 이같이 절대적인 신앙의 사람 욥에게 사단은 더 이상 침범하지 못했다. 사단은 참신앙의 소유자 앞에서 그만 퇴패해 가고 만 것이다. 실로 사단의 악한 궤계를 물리치는 한 방법은 믿음의 방패롤 든든히 준비하는 것임을 엊지 말자(엡 6:16).
욥을 참소하던 사단이 실패하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참소하고 있다. 마귀는 성도가 무엇인가 얻고 챙길만한 이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참소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그것을 치기만하면 당장에라도 하나님을 욕하면서 신앙을 저버릴 것이라고 사단은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만일 우리의 신앙이 그러하다면 그 신앙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의 조그만한 시험 앞에서도 넘어지고 마는 신앙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은 환난 때에 더욱 빛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면, 순수한 욥의 신앙으로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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