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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할 것과 두려워 않을 것 (시31:19,마10: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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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오후 5시에 금강산 관광을 위해서 우리 나라에서 큰 배가 북한으로 가게 됩니다. 19일 새벽 6시에는 북한 땅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6.25사변이 일어난 지 50여 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한을 떠난 실향민들이 50여 년동안 북한 하늘을 바라보고 북한 땅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고 휴전선 판문점에서 그렇게도 울고 그 많은 명절, 그 많은 세월을 그 곳 한 곳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 얼마나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가족들, 부모 형제들이 있는 그 땅을 얼마나 간절하고 애절하게 바라던 우리 동포들이 이제 북한으로 드디어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하는 분들도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햇볕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북한과의 이런 만남이 꿈엔들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까 얼마나 기도하고 바라던 일이었습니까 또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과 같아서 자꾸 다녀야 넓혀지는 거예요. 스포츠로도 다니고, 예술인들도 다니고, 경제인들도 다니고, 정치인들도 다니고, 또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로 북한을 지원하면서 많은 지도자들도 다니고 있습니다. 동, 서독이 통일이 된 것도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닙니다. 스포츠로도 다니고, 자꾸 다니다가 나중에는 동, 서독이 고속도로를 닦아서 건설을 하면서 또 다니게 되고 그 다음 많은 배가 동, 서독을 다니면서 나중에는 또 비행기까지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통일이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녀서 만나야 되고 손을 잡아야 되고 그러다 보면 우리의 간절한 이 소원이 어느 한 순간에 이렇게 주어질 수 있는 그 날이 무르익는 곡식처럼 때가 되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지금 이것을 보고 있고 온 세계가 이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는데 막상 또 앞에 놓고 보니 별로 이렇게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통일의 노래'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까. 이 노래는 누가 불러도 히트곡이라고 한답니다. 아이가 부르든 어른이 부르든 남쪽에서 부르든 북쪽에서 부르든 누가 불러도 명곡이고 누가 불러도 이 노래는 감동을 주는, 아무리 좋은 국립합창단의 노래도 이 곡 같이 감동을 주는 곡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통일입니다. 통일을 위해서 이제 배가 가는 것입니다. 또 실향민들은 지금 대체로 한 40여 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일 천만 이산 가족이라고 하지만 내려와서 이미 돌아가신 분도 너무 많고, 세월이 50년이에요. 장년으로 오신 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시고 어린아이들도 이미 장성하고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들, 낳은 손자, 손녀, 아들, 딸들까지 하니까 많지 본인들은 지금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어른들은 얼마나 고향을 사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고향을 떠날 때 어린아이로 떠났고 엄마와 헤어진 자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고 싶은 거지요. 또, 결혼하고 일년도 안 되어서 오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인보고 "여보, 내가 금방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고 애 하나 데리고 첫 아이 안고 아버지가 다시 오려고 하는데 그만 막혀 버린 거예요. 그래서 못 가신 분들도 많이 있고 아기도 없이 신혼에 헤어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결혼 안하고 이곳에 그냥 계십니다.
제가 우리 나라 작가 가운데 '해촌'이라고 하는 화백으로 유명하신 장로님이 계신데 지금 80이 다 되어 가는 어른이 아직도 부인을 그리면서 혼자 여기 사십니다. 떠나올 때 그 약속을 내가 어떻게 어길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까지 혼자 계시는 목사님도 여러분 계시고 여러 지도자들 가운데도 혼자 계시면서 50여 년을 그 사랑, 그 약속, 그 아내를 생각하면서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향이 어찌 그냥 잊어질 수 있는 겁니까 베토벤도 말하기를 "고향이여 아름다운 땅이여! 내가 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본 그 나라는 나의 눈앞에 떠올라 항상 아름답고 선명히 보여온다. 내가 그 곳을 떠나온 그날의 그 모습 그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 떠났으면 스무 살로 고향은 남아 있고 두 살에 떠났으면 두 살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고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마다 고향이 있지 않습니까 고향 산천, 어디가도 비교할 수 없는 고향에 갖고 있는 그 산천은 내 안에 산천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고향 음식, 고향 사투리, 고향 과일 다 독특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은 평양 냉면, 함흥 냉면 먹으면서 고향 생각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남한에 있는 사람은 왜 먹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은 냉면 국물 그냥 치켜들면서 벌컥 벌컥 고향 맛 생각하면서 먹는 거예요. 우리는 왜 그 물을 먹는지 모릅니다. 저도, 제 고향 김치는 독특합니다. 고향 물고기는 한강, 임진강 물고기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고향에서 가을이 되면 시장에서 갈치를 사다가 햇무우를 넣어서 지져서 먹으면 어디에 가도 그 맛이 없습니다. 그건 독특한 맛이에요. 전국에 갈치를 먹어도 그런 맛이 없어요.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이 공기와도 영향이 있고 끓이는 물하고도 영향이 있고 그 곡식이 큰 토양과도 다르다고 합니다. 다 다릅니다. 목포에 가면 유명한 홍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분들은 잔치를 할 때 소 잡고 돼지 잡는게 잔치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홍어 몇 마리냐 하는 것이 잔치 잘하는 기준입니다. 그 홍어는 바로 흑산도 홍어입니다. 전국 어디서 나오는 홍어도 이 흑산도 홍어 맛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흑산도 홍어는 언제 잡느냐, 평상시에 잡는게 아닙니다. 홍어는 밑에 있기 때문에 파도가 막 칠 때, 물이 막 움직일 때, 물을 타고서 홍어가 올라오면 그때 가서 낚시를 해서 잡는 것이 바로 흑산도 홍어입니다. 그래서 파도가 워낙 심할 때 그 홍어를 잡으러 가기 때문에 흑산도에는 많은 남자들이 돌아가시고 거기에 가면 전국에서 그 지역에 과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거 잡다 그만 죽는 거예요. 파도가 너무 심해요. 그래도 그 흑산도 앞에 있는 홍어의 맛은 전국에서 가장 최고의 맛이에요. 그래서 한 일주일, 열흘동안 항아리 속에 넣어서 썩힌 다음에 그걸 먹으면 코가 찢어지는 것 같고 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그 맛! 다른데 있는 분은 모릅니다. 왜 저걸 먹느냐 그러지만 거기 있는 분은 바로 그 맛으로 그걸 먹는 거예요. 고향은 다 귀한 것입니다. 소중한 것입니다.
총신대 총장으로 계시는 김 박사님은 미국에서 목회를 잘 하시다가 오셨습니다. 저는 그 어른을 참 존경하는데 그래서 "왜 미국에 큰 교회를 두시고 이리 오셨나" 그러니까 "과일도 익으면 뿌리로 떨어지는데 해외에서 오래 있다가 나이 많아서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내 고향 땅 고국에 와서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냐" 하는 거예요. '수구초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죽을 때 그 머리를 고향 언덕을 향하여 돌린다'는 말입니다. 여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강남에서 온 새들은 앉아도 남쪽을 향하여 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고기도 고향 냄새를 맡고 연어가 수 천리, 수 만리를 몇 년을 지내다가 그 냄새를 맡고 고향을 찾아온다 그러잖아요. 자기 고향만이 갖고 있는 그 맛입니다. 미국에 있는 유명한 대통령들이 대통령을 지내고 다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카터가 어디 가 있습니까 레이건이 어디 가 있습니까 고향에 가 있는 겁니다. 20세기 최고의 지도자인 윈스턴 처칠도 "나를 고향에 묻어달라" 그랬습니다. "내 고향 교회에, 내가 다녔던 교회 마당에 묻어달라" 그랬어요. 지금 총리께서도 며칠 전에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내 고향 땅에 재를 뿌리고 반은 여기에 묻어라" 그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향이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편안한 고향, 가고 싶은 고향, 보고 싶은 고향, 고향 음식, 고향 땅 밟고 고향 흙까지 가져다가 기르고, 고향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자기의 것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인간의 고향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내가 부모로부터 이 땅에 온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지 우리의 참 고향은 다 하늘에서 온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하늘에서 오셨고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보내신 거예요. 하나님이 한 생명, 한 생명을 이 땅에 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성경에도 자세히 비유가 나오지 않아요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안돼요. 어디를 헤매어도 쓸쓸하고 되는게 없어요. 너무너무 모든 일이 안되고 부끄럽고 고난 당하다가 어떻게 이 아들이 해결합니까 '아버지에게로 간다'는 거예요. 어느 아버지에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떤 분이에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모든 인간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와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신 거예요. 우리는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품안에 안길 때, 우리 인간은 참으로 자유를 누리고 평안을 누리고 풍요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아버지께로부터 받듯이 우리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을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경외한다'라는 말은 '두려워한다'라는 말이에요. '하나님 잘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 두려워한다라는 말이에요. 히브리말로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외하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워 할 자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는 높으시고 영원하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가장 위대하신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이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랄 때 아버지가 같이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를 낳으신 부모님은 떠나고 하늘 아버지 한 분만 잘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면 아무 것도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왜 이렇게 두려움이 많습니까 현대인들이 왜 이렇게 불안이 많습니까 염려하는 것이 많습니까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두려운 것이 많습니다. 예수 믿고 다른게 뭐예요 두려움이 없어요. 불안함이 없어져요. 어떤 우리 교인이 그런 이야기를 합디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아이가 아파트 밖에 나가면 떨어지지 싶어서 꼭 따라 나가고 유치원엘 가도 마음을 못 놓아서 유치원까지 갔다가 올 때 또 데려오고 음식 먹을 때는 불안해서 몇 년을 숟가락을 늘 끓여서 먹이고 독이 있지 싶어서 소독하고, 불안하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믿고 보니까 그런 염려와 불안이 다 없어지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길러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다른 불안과 염려가 전혀 없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인간이 복되게 살아가는 길이 무어냐 한 분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이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긴장하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운 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분은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우리 애들이 텔레비젼을 보다가 내가 벨을 딱 누르면 어느 순간에 한 놈은 끄고 한 놈은 문 열고 자기 방으로 후닥닥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애들 보면 내가 오는 줄을 안대요. 아이들이 나를 겁을 내는 거에요. 아버지 겁나는 거예요. 내가 아이들을 참 사랑하는데도, 나에 대해서 자유로운데도 나를 두려워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뭔가 느낌이 있대요. 발걸음, 벨 누르는 하나 하나가 '나'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 명이 동시에 제 위치로 다다닥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요. 오늘 현대인들이 왜 자기 위치를 모르고 왜 이렇게 타락해 있습니까 아버지도 죽이고 어머니도 죽이고 개 보다 더 타락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두려운 자가 없어서 그래요. 제 멋대로에요. 제 위치가 없어요. 할 짓, 못할 짓, 막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위치로 돌아가는 길은, 보람되고 힘있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길이 뭐예요 이 우주라고 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세계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 넓은 땅에서 하나님이 늘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보고 계시다' 이 하나가 우리들 모든 삶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도덕수준을 높이고 마음은 담대하게 하고 힘있게 하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잘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현대인들은 바뀌어졌어요.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헛된 걸 두려워합니다.
잠언 29장 25절에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로마서 3장 18절은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것이 안 두렵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없고, 사람을 자꾸 무서워하고, 높은 사람 무서워하고,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없습니다. 사는 것이 자꾸 걱정스럽고 염려되는 사람 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두려움이 너무 많지요. 지위가 높을수록 두려움이 많고 재산이 많을 수록 두려움이 많습니다. 정말 돈이 많으면 걱정이 되어서 지나칠 정도로 염려합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신당동의 부자도 수 천억을 갖고 살았지만 머리가 길어서 여기까지 내려와도 이발을 못했어요. 왜 이발소에 가면 혹시 죽을까봐. 친척들도 하나도 못 믿어서 자식들도 가까이 못 오게 했어요. 부인도 가까이 못 오게 했어요. 미국에도 이런 예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재산이 있을수록 의지하면 더 불안하고 지식이 있을수록 현대인은 더 불안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 불안합니다. 나를 지켜주는 벨트가 많으면 많을 수록, 안전벨트, 에어백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은 더욱 불안해지는 거예요. 한 분을 떠나면 불안해져요. 한 분이 없으면 염려가 되는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 얼마나 무서운게 많은 지요. 밤이 그렇게 무섭고요. 웬 귀신이 늘 뒤에 따라오는 것 같고, 늘 가다가도 돌아보고, 무서워요. 무서운게 많아요. 짐승이 왜 그렇게 무섭습니까. 무서워요. 또 무서운게 밤에 잠을 자다가 화장실에 갈 때 무서워서 못 가요. 그래서 소변은 요강이라는 걸 방안에 하나 갖다 놓고 처리하는데, 큰 일을 할 때는 방안에서 안되니까 제가 이제 어머니를 깨웁니다. "어머니요 어머니요 나 마려워요" 그러면 어머니가 데리고 나갑니다. 혼자는 겁나서 못나갑니다. 그리고는 또 어머니가 가까이 오면 안되니까 "어머니요 거기 앉으이소 나 저기 가서 눌랍니더" 하고는 계속 어머니보고 묻는 거예요. "어머니 거기 있지요" 불안하니까, 자꾸 불안하니까요. "그래 내 여기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또 "어머니 있지요" 어머니가 없으면 일이 안돼요.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다 불안합니다. 이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에서 벗어나는 길이 뭡니까 이 세상엔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가야 해요. 하나님 믿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유대인이 오늘날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잘 살고, 모든 면으로 성공하는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유대인의 비밀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민족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잘 안 불러요. 두려워서 안 불러요. 요사이 가스펠 송, 복음성가에 너무 할렐루야를 많이 부르는데 유대인들이 보면 깜짝 놀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라는 이름을, '엘로힘'이라는 이 글자를 안 써요. 꼭 써야 될 때에는 목욕을 합니다. 붓을 반드시 씻어서 그리고 쓴단 말예요. 하나님이 두렵다는 거예요. 우리는 성경을 자기 마음에 들기만 하면 막 밑줄 치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밑줄을 치질 않아요. 왜 성경에다 어떻게 밑줄을 치냐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정말 두려워 안 하는 민족이에요. 아랍에 대해서 두려워 안 해요. 전쟁을 두려워 안 해요. 세계 어디를 가도 두려워 안 하는 민족은 유대인이에요.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니까. 다른 것은 안 두려워해요. 그래서 유대인이 모든 일에 승리하고 큰 일을 하고 앞장서고 최고로 잘 사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을 확실하게 두려워하면, 그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참 자유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오늘 본문에 말씀하셨어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계셔요. 하물며 우리 인간,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는 제일 높은 자 한 분을 두려워합니다. 전능하신 자 한 분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힘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 말씀이에요. 잠언 13장 13절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롯의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어요. 역대하 36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며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선지자를 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므로 만회할 수 없도록 저들이 바벨론으로 붙들려 가서 고난을 당한 거예요.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되고,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읽고 듣는 거예요. 시편 107편 10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쇠사슬에 매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 사망, 그늘, 쇠사슬, 흑암, 이런 모든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송아지와 같이 인생의 참 자유와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날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날 가운데 하나님의 날이 있어요. 무슨 날이에요 안식일이에요. 주의 날이에요. 출애굽기 20장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 날은 노동하지 말고 이사야서에 보면 "오락을 즐기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반대입니다. 이 날에 오락을 즐겨요. 모든 오락이 전부 주일에 몰려 있어요. 그래 가지고요. 이 날 춤추고, 이 날 즐기고, 이 날 먹고 마시고, 이 날 죄 짓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하라 그랬어요. '금방 주일이구나' 이러면 안돼요. 며칠 전부터 '아 주일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주일을 준비하여 이 날을 잘 지키므로 여러분이 만대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것을 귀히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세 가지가 있어요.
1) 십의 일조, 물질 가운데 십일조는 내 것이라는 거예요.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만 가지 은혜에 대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감사예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우리로 경험하게 하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만남이 십일조를 통하여 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십일조를 안 하면 도적이라' 그랬어요.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훔쳐서 사는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류역사에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잘 지켜서, 날 도 하나님의 날이 있지만 물질도 하나님의 것이 있는 거예요. 십일조를 지키는 개인이나 민족은 다 복을 받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십일조를 어떻게 관리해요 정부가 관리합니다. 기업을 철저하게 관리해서 귤 농사를 지어도 십일조는 반드시 하도록 기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귤이 위에서 주욱 내려와도 열 개 가운데 하나는 밑으로 빠져서 포장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정부가 관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우리가 더 풍요로움과 오늘 시편에 말씀한데로 더 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위해 쌓아 놓은 창고가 너무 많아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고의 복을 못 받는 분이 많아요. 두려워하지 않고 막 살아가니까요.
록펠러는 열살 때 신문 배달원으로 한 주일 동안 일해서 1달러 50센트를 어머니에게 가져왔어요. 어머니께서 "얘야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이후에 일생동안 십일조를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렇게 나중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헌금제도를 어머니가 내게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살아가는 토대를 하나님께 둘 것인가, 나 자신에게 둘 것인가를 가르치신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교회 운영하려고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중심하여 삶을 살아가느냐, 나를 중심 하여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이냐 이것이 바로 물질에서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록펠러는 순종하여 복을 받았어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는 미국의 정유산업을 다 점령하였고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서 록펠러는 세계 인류역사의 최고의 부자가 되게 하신거에요. 그의 손자들까지도 잘 믿는 축복을 받아 누리고, 손자들까지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그 전통, 십일조를 지켜나가는 것을 우리가 보면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내가 벌었다고 내가 번 것이 아니고 내 맘대로 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버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지혜로운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 성전, 하나님의 것이에요. 성물들, 이 안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것, 하나님의 것이에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것이에요. 누구도 여러분을 해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에요. 마이크 하나도 교회 안에 일단 가지고 들어오면 하나님의 것이에요. 우리는 거룩하게 다루어야해요.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가 거룩하게 생각해야해요. 이 집이 다른 집보다 작다 할지라도 이 집은 집의 어떤 규모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으로 알고 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집에 나오는 건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는 하나님의 것이에요. 오늘 드리는 이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감격하고 감사하는 거예요.
3) 주의 종도 하나님의 것이에요. '종'이라 그러니까 사람의 종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제가 농촌 목회를 할 때 어려운 가정, 농번기에 너무 교인들이 바쁘니까 모를 심어주고 벼도 베어주고 풀도 뽑아주고 같이 열심히 땀 흘려 하니까요. 나중에는 '왜 안 오느냐' 그러고요. 또 어떤 집은 '그 집은 가면서 왜 우리 집은 안 오느냐' 그러고 나를 완전히 일군으로 생각해요. 주의 종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그 집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지, 그 집의 품꾼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종은 아무리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가 알고 순종하고 따를 때에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4) 하나님의 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두렵게 생각해야해요. 하나님의 일은 적은 일이라도 큰 일이에요. 적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그랬어요. 한 달란트도 귀하게 생각하고 일해야해요. 직분이 귀한 직분이 있고 천한 직분이 있는게 아니에요.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진 직분은 다 귀한 줄로 믿습니다. 내 마음에 안 맞는다고 봉사하다가 사표 내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두려움으로 섬겨야해요. 직분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시인과 인정이에요. 또 주의 일을 할 때는 인간적으로 해서도 안되고 세상 경험으로 일을 해서도 안되고 허영이나 욕심으로 해서도 안되고 교만이나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해서도 안돼요. 그런 일과는 달라요. 믿음으로 해야 되고 성령님으로 해야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봉사해야 되고 인내함으로 봉사해야 되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참아야 되고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주의 일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와 같이 끝까지 주의 일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내년에 미국에 카터 대통령이 있는 교회에서 와 달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가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카터 대통령이 교사하는 걸 관광하려고 오는 교인들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청년 때에 교사하던 걸 대통령 때도 하고 지나서도 하고 오늘날까지 한다는 거예요. 계속 감당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나 성가대 연말까지만 하고 안 할래' 안 하면 자기만 손해예요. '나 구역장 안 할래'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에요. '이 생명 있는 한, 하나님이 건강 주시는 한, 은혜 주시는 한 내가 이 일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겠다'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준비하신 창고가 얼마나 큰지요. 오늘 현대인들은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잘못된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생, 나의 생명 다 하는 그 날까지 전능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그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날을 귀히 여기고 그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가 주신 이 직분을 귀히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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