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인생1 (시23:1-6)
본문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 성도님들의 일생을 색깔로 표시한다면 어떤 색깔로 표시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자신을 불태워 죽었던 서울대학교의 한 여학생의 일기장에 5월에 고민하는 한 회색인간이라고 자신을 고백하고 회색인간으로서 더이상 살 수 없다고 결정하고 자살했던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혹시 회색이 아닙니까 아니면 5월의 우거진 수풀과 같은 푸른 인생을 알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이 시편 23편과 삼덕교회를 잊지 못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청소년 시대, 특히 20대에 가장 우울한 회색과 같은 삶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을 한탄하고 원망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저주하면서 교회는 오가고 했지만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상당한 오랜 기간을 보냈습니다. 깨끗하고 착하게 살았다고 늘 자부했지만 조용히 제자신에게로 돌아와 보면 자신을 향한 끝없는 저주와 정죄와 자신을 죄악시하는 또다른 제자신이 속에서 저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순간도 만족을 모르고 밝은 것보다는 어둠을,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적극적, 능동적이기보다는 비꼬고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닥쳐오는 갖가지 인생의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싸여 언제인가 부터 밤이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겨우 잠이 들어도 작은 소리에 금방 깨어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머리는 언제나 천근같이 쇳 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만큼이나 무거웠고 제 삶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기에 제자신도 아름답지 못한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위장 장애도 일으키는 정말 고통스러운 젊은날을 보냈습니다.
이러다가 뭔가 잘못된 나의 인생을 고쳐보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주님께 내 일평생을 바치고, 만약 신통한 것이 없으면 막연하게 교회에 오고 가는 성도의 생활을 그만두고 나 자신이 내 인생의 두목이 되어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신학교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신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고 학교에서의 많은 요구로 시간에 쫓기는 저의 신경은 더 날카로워지고 불면증은 심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그 인생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삼덕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해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각 가정을 심방해 보면 병들고 잘못되고 고뇌와 아픔을 가진 아름답지 못한 인생을 사는 성도들을 수 없이 만났습니다. 하나 같이 불면증에 심장 나쁘고 위장 나쁘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없고 한탄과 원망뿐이었습니다. 그 성도들의 모습에서 제자신을 보았고 상당한 갈등을 느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시점에서 마음에 작정하고 새벽기도회 때 시편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1편부터 읽고 묵상해 가다가 이 시편 23편까지 왔습니다. 시편 23편에 대한 책을 다 모아 보았더니 6권이었습니다. 시 23편을 한절 한절 읽고 거기에 관한책을 읽으며 몇 주일을 계속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시 23편이 나의 노래요, 신앙고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숨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게 아니라 눈뜨는 순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외는 것으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내 목자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부족함 가운데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당신이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오늘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가운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고 그런 곳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해받을까 염려 않겠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내 원수의 앞에서 잔칫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정녕 뒤따라 주실 것이니 이제 내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이렇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어리석을이 만큼 이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삶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며 회개도 하고 감사도 하며 오늘 하루의 내 삶은 지금 죽습니다고 생각하고 아침이면 나는 오늘 새롭게 태어났다고 자신을 고백하면서 몇 달을 보내고 나서 저도 알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는 평안과 담대한 마음이 생겼고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면증이 없어지고 자신을 향한 원망, 저주, 죄의식에서도 해방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편 23편 이것은 200자 되지 않는 짧은 시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 속에 놀라운 능력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찬송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우리가 푸른 인생, 생기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고백하고 이 말씀속에 계시는 목자를 나의 목자로 영접하고 믿고 따를 때에 우리의 삶 속에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시 23편은 양이 아침에 들판에 나가 풀을 뜯다가 잔잔한 시냇가에서 누워 쉬기도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기도 하며 하루의 삶을 살고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 양우리에 돌아오는 양의 하루의 삶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여기에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죄의 길에 빠져서 허덕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소생을 맛보는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많은 대적들 가운데서 이기기도 하며 이렇게 신앙의 삶을 살다가 생명이 끝나는 때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는 성도의 일평생의 삶이 이 시편 23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 23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인 사람도, 어떠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든 응답을 받고 대답을 듣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육신의 건강에 좋다고 하면 굼벵이든 개구리, 지렁이든 무엇이든 다 먹고 다 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지배하는 영을 위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영혼이 살아있지 않은 육신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인생에 변화가 없다면, 삶에 진정한 감격과 눈물이 없다고 하면 무언가 우리의 삶이 잘못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기능을 잘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능을 잘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이 짧은 한 절을 통해서 은혜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의 잔에는 물이 가득 차 있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족함 없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이 없어서, 어떤 이는 몸이 아파서,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고독하여 부족함을 느낍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부하나 영적으로 대단한 궁핍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인네들은 멀지않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부족을 느낍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는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 평안, 기쁨도 없습니다. 서로 없는 것 자랑해 보자고 하면 여기에서 2등 갈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며 밤새도록 없는 것을 자랑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왔던 수 많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인생의 잔이 텅 비었던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의 잔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많은 인생의 불구자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돈도 많이 모았지만 그 인생의 잔은 반밖에 차 있지 못해서 그는 뽕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자기의 빈 잔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청년도 예수님께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고 내 인생의 빈 잔을 채울 수 있습니까물었습니다. 지위가 높았던 바리새파 사람도, 니고데모도, 지식이 많던 율법학자도 주님께 찾아 왔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수가성의 남편없이 살았던 여인, 그러나 그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어
살아 보았던 그런 여인이며 그 현재도 한 남자와 살기는 살지만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 그래도 나는 목이 마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런 물을 저에게 주십시요. 주님께 자기의 인생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하여 고백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소금물과 같아서 그 물은 먹을 그때 뿐이고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우리 마음의 잔이 반쁨 밖에 차 있지 않기에 세상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타락해 가고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원자폭탄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 무엇이 그 마음속에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인생입니다. 인생의 잔이 비어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없이 빈 그릇을 갖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인생의 잔 그대로를 가지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으로든 그 빈 곳을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만약 밭에 아무것도 뿌리거나 심지 않고 빈 그대로 둔다면 그 밭에는 아무것도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지도 심지도 않은 잡초가 무성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빈 잔도 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빈 곳을 무엇으로든 채워야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의 빈 자리를 지금 무엇으로 채우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불평, 불만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할뜯으며 빈 곳을 채우려 하고 갖가지 인생의 질환, 질병으로 빈 잔을 채웁니다. 아니면 이혼을 하고 약을 먹어야 잡을 자고 술을 마시고 자살을 해서라도 빈 곳을 채우기를 원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탐욕으로 채우고, 분노로 채우고, 증오, 의심, 불신, 냉소, 죄의식으로 우리 자신을 채우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 세상의 문제이고 많은 복잡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텅 빈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밭에는 풍성한 곡식으로 가득 합니까 아니면 잡초가 무성합니까
오늘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내 잔이 넘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이 사람은 참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풍부하고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백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시편 23편을 다윗이 썼다고 하면 어디서 이 시를 썼을까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3년이나 피해 다니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그 자리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고백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원수의 나라 플레셋으로 들어갔는데 그 땅의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한 수색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안 다윗은 고국에 가도 죽고 원수의 나라에서도 잡히면 죽을 지경임을 알고 헌 누더기를 걸치고 성문에 기대어 미친 사람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그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그는 자신의 환경, 처지, 주위의 악조건들만 보며 탄식, 원망, 불평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의 목자이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이 시를 썼습니다. 삼상 30:4 말씀에 보면 다윗이 더 이상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닥친 여건이 얼마나 극심한 여려움이었기에 그랬을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만 들여다 보고 있지 않고 자기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다윗의 인생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노려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을 때 너무 창피해서 황급히 도암치느라 맨발로 옷도 제대로 못입고 도망치는 역경도 당했습니다. 그때도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한때 다윗은 큰 범죄를 했습니다.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 신하를 죽게 한 그 끔찍한 범죄로 인해 다윗은 죄의식 속에서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보냈으나 자기의 죄만 들여다 보고 한탄하는 자로 남지 않고 자기를 용서하고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많은 시편 학자들은 이 시편 23편을 다윗이 쓴 시라기 보다는 오히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여진 시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문체나 내용에 담겨진 사상을 봐서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사람은 이방 민족에게 압박과 핍박을 당하며 종살이를 하는 무명의 한 그리스도인으로 그의 신앙고백인지도 모릅니다. 그 기자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과부일지도 모르고, 육체는 병들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 마음 가운데 소망을 안고 사는 길가의 거지였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문둥이였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메고 다닌다는 고백을 봐서 죽음의 위협을 넘기는 그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3편의 기자와 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그 시를 진정 우러나는 마음으로 읽고 나의 시로 고백해 보십시다. 부족함 많고 없는 것이 많고 있어야 할 것이 많은 가운데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의 빈 잔이 이제 넘칩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해 봅니다. 지난 주간에는 삼덕교회에서 가장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며 제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외부적으로 판단한 그러한 가정 몇 군데를 심방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고백이 목사님! 괜찮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지탱해 갈 수 있을까 생각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그분의 첫번째 고백은 목사님! 욥의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감사해야 하는 가정을 찾아가면 오히려 그들은 감사가 없고 원망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인생의 잔이 너무 많이 비어 있는데도 그 빈잔을 하늘의 것으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믿음으로 채운 성도들은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입니다. 무엇인가 받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가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의 빈 잔에 하나님으로 부터 뭔가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난을 가진 성도는 복이 있습니다. 그 빈 곳에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의 신앙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 하나가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입니다. 저 하늘에는 2억 5000만개2억 5000만개의 별들이 떠 있는데 그 별들은 지구보다 작은 별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구보다 몇십, 몇백, 몇천배 되는 별들이 수억, 수백억개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 별을 창조하시고 그 별에 이름을 지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도 하나님은 적당하게 유지 시키셨습니다.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도 지구는 사막이 되고 조금만 태양과 멀어도 지구는 얼음덩이가 됩니다. 또 지구와 저 달과의 관계도 적당히 유지 하셔서 조금만 더 가깝든지 멀면 이 지구는 바닷물로 덮입니다.
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흙 한 줌을 가지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우글 거립니다. 이 놀라운 역사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고 제 고집대로 살았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담당시키셔서 우리를 구하시고
예수님은 대신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내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양이 어떤 양이냐, 어떠한 존재로 있느냐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착하냐 나쁘냐, 고집세냐 그렇지 않느냐, 건강하냐 병들었느냐에 따라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을 인도하는 목자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고 못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로 살았느냐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목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우리 같이 범죄하고 실수하고 얼룩지고 죄많은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새사람으로 풍성한 생명을 얻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십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그 말씀에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목자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떠한 어머니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냥 아들이 죽었습니다하는 것은 놀라운 차이를 느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 천지를 만드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
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요 그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성도는 심히 적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한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을 열번 바라봐야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잘못, 내 환경, 내 죄악을 들여다 보고 자신을 용서 못하고 절망 가운데서 괴로워하지 말고 이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떠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며 그 분이 나를 용서 하시고 나를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시고 그 분이 나를 원수의 앞에서 승리의 잔칫상을 베풀어 주시고 그 분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내가하는 일인칭 인생을 그만 살고 주님이, 그 분이.하는 삼인칭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는 여러움, 부족함, 죄많음, 실수함이 많지요. 그러나 우리 자신만 들여다 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가 누구인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아버지 집에는 없는 것이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곁을 떠나갔던 탕자는 내 아버지 집에는 풍족함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이 돼지우리 곁에서 주려 죽는구나
우리 인생의 목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용서와 자유와 평안과 삶의 기쁨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집에 풍족한 것이 많지만 이 세상에서 주려 죽는, 부족한 가운데서 그 부족을 세상 것으로 채우려다가 오히려 만족없는 불평, 불만 속에서 인생을 살다가 마치는 탕자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십니다. 바로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를 따라 인생을 살 때 여러분의 환경과 주위와 자신에게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없고 내 인생의 잔이 넘친다고 하는 고백을 하시는 은혜의 삶을 사시게 되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자신을 불태워 죽었던 서울대학교의 한 여학생의 일기장에 5월에 고민하는 한 회색인간이라고 자신을 고백하고 회색인간으로서 더이상 살 수 없다고 결정하고 자살했던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혹시 회색이 아닙니까 아니면 5월의 우거진 수풀과 같은 푸른 인생을 알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이 시편 23편과 삼덕교회를 잊지 못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청소년 시대, 특히 20대에 가장 우울한 회색과 같은 삶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을 한탄하고 원망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저주하면서 교회는 오가고 했지만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상당한 오랜 기간을 보냈습니다. 깨끗하고 착하게 살았다고 늘 자부했지만 조용히 제자신에게로 돌아와 보면 자신을 향한 끝없는 저주와 정죄와 자신을 죄악시하는 또다른 제자신이 속에서 저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순간도 만족을 모르고 밝은 것보다는 어둠을,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적극적, 능동적이기보다는 비꼬고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닥쳐오는 갖가지 인생의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싸여 언제인가 부터 밤이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겨우 잠이 들어도 작은 소리에 금방 깨어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머리는 언제나 천근같이 쇳 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만큼이나 무거웠고 제 삶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기에 제자신도 아름답지 못한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위장 장애도 일으키는 정말 고통스러운 젊은날을 보냈습니다.
이러다가 뭔가 잘못된 나의 인생을 고쳐보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주님께 내 일평생을 바치고, 만약 신통한 것이 없으면 막연하게 교회에 오고 가는 성도의 생활을 그만두고 나 자신이 내 인생의 두목이 되어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신학교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신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고 학교에서의 많은 요구로 시간에 쫓기는 저의 신경은 더 날카로워지고 불면증은 심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그 인생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삼덕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해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각 가정을 심방해 보면 병들고 잘못되고 고뇌와 아픔을 가진 아름답지 못한 인생을 사는 성도들을 수 없이 만났습니다. 하나 같이 불면증에 심장 나쁘고 위장 나쁘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없고 한탄과 원망뿐이었습니다. 그 성도들의 모습에서 제자신을 보았고 상당한 갈등을 느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시점에서 마음에 작정하고 새벽기도회 때 시편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1편부터 읽고 묵상해 가다가 이 시편 23편까지 왔습니다. 시편 23편에 대한 책을 다 모아 보았더니 6권이었습니다. 시 23편을 한절 한절 읽고 거기에 관한책을 읽으며 몇 주일을 계속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시 23편이 나의 노래요, 신앙고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숨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게 아니라 눈뜨는 순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외는 것으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내 목자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부족함 가운데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당신이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오늘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가운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고 그런 곳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해받을까 염려 않겠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내 원수의 앞에서 잔칫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정녕 뒤따라 주실 것이니 이제 내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이렇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어리석을이 만큼 이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삶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며 회개도 하고 감사도 하며 오늘 하루의 내 삶은 지금 죽습니다고 생각하고 아침이면 나는 오늘 새롭게 태어났다고 자신을 고백하면서 몇 달을 보내고 나서 저도 알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는 평안과 담대한 마음이 생겼고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면증이 없어지고 자신을 향한 원망, 저주, 죄의식에서도 해방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편 23편 이것은 200자 되지 않는 짧은 시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 속에 놀라운 능력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찬송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우리가 푸른 인생, 생기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고백하고 이 말씀속에 계시는 목자를 나의 목자로 영접하고 믿고 따를 때에 우리의 삶 속에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시 23편은 양이 아침에 들판에 나가 풀을 뜯다가 잔잔한 시냇가에서 누워 쉬기도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기도 하며 하루의 삶을 살고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 양우리에 돌아오는 양의 하루의 삶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여기에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죄의 길에 빠져서 허덕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소생을 맛보는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많은 대적들 가운데서 이기기도 하며 이렇게 신앙의 삶을 살다가 생명이 끝나는 때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는 성도의 일평생의 삶이 이 시편 23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 23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인 사람도, 어떠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든 응답을 받고 대답을 듣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육신의 건강에 좋다고 하면 굼벵이든 개구리, 지렁이든 무엇이든 다 먹고 다 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지배하는 영을 위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영혼이 살아있지 않은 육신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인생에 변화가 없다면, 삶에 진정한 감격과 눈물이 없다고 하면 무언가 우리의 삶이 잘못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기능을 잘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능을 잘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이 짧은 한 절을 통해서 은혜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의 잔에는 물이 가득 차 있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족함 없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이 없어서, 어떤 이는 몸이 아파서,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고독하여 부족함을 느낍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부하나 영적으로 대단한 궁핍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인네들은 멀지않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부족을 느낍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는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 평안, 기쁨도 없습니다. 서로 없는 것 자랑해 보자고 하면 여기에서 2등 갈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며 밤새도록 없는 것을 자랑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왔던 수 많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인생의 잔이 텅 비었던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의 잔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많은 인생의 불구자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돈도 많이 모았지만 그 인생의 잔은 반밖에 차 있지 못해서 그는 뽕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자기의 빈 잔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청년도 예수님께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고 내 인생의 빈 잔을 채울 수 있습니까물었습니다. 지위가 높았던 바리새파 사람도, 니고데모도, 지식이 많던 율법학자도 주님께 찾아 왔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수가성의 남편없이 살았던 여인, 그러나 그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어
살아 보았던 그런 여인이며 그 현재도 한 남자와 살기는 살지만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 그래도 나는 목이 마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런 물을 저에게 주십시요. 주님께 자기의 인생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하여 고백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소금물과 같아서 그 물은 먹을 그때 뿐이고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우리 마음의 잔이 반쁨 밖에 차 있지 않기에 세상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타락해 가고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원자폭탄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 무엇이 그 마음속에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인생입니다. 인생의 잔이 비어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없이 빈 그릇을 갖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인생의 잔 그대로를 가지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으로든 그 빈 곳을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만약 밭에 아무것도 뿌리거나 심지 않고 빈 그대로 둔다면 그 밭에는 아무것도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지도 심지도 않은 잡초가 무성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빈 잔도 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빈 곳을 무엇으로든 채워야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의 빈 자리를 지금 무엇으로 채우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불평, 불만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할뜯으며 빈 곳을 채우려 하고 갖가지 인생의 질환, 질병으로 빈 잔을 채웁니다. 아니면 이혼을 하고 약을 먹어야 잡을 자고 술을 마시고 자살을 해서라도 빈 곳을 채우기를 원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탐욕으로 채우고, 분노로 채우고, 증오, 의심, 불신, 냉소, 죄의식으로 우리 자신을 채우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 세상의 문제이고 많은 복잡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텅 빈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밭에는 풍성한 곡식으로 가득 합니까 아니면 잡초가 무성합니까
오늘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내 잔이 넘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이 사람은 참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풍부하고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백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시편 23편을 다윗이 썼다고 하면 어디서 이 시를 썼을까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3년이나 피해 다니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그 자리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고백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원수의 나라 플레셋으로 들어갔는데 그 땅의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한 수색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안 다윗은 고국에 가도 죽고 원수의 나라에서도 잡히면 죽을 지경임을 알고 헌 누더기를 걸치고 성문에 기대어 미친 사람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그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그는 자신의 환경, 처지, 주위의 악조건들만 보며 탄식, 원망, 불평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의 목자이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이 시를 썼습니다. 삼상 30:4 말씀에 보면 다윗이 더 이상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닥친 여건이 얼마나 극심한 여려움이었기에 그랬을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만 들여다 보고 있지 않고 자기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다윗의 인생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노려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을 때 너무 창피해서 황급히 도암치느라 맨발로 옷도 제대로 못입고 도망치는 역경도 당했습니다. 그때도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한때 다윗은 큰 범죄를 했습니다.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 신하를 죽게 한 그 끔찍한 범죄로 인해 다윗은 죄의식 속에서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보냈으나 자기의 죄만 들여다 보고 한탄하는 자로 남지 않고 자기를 용서하고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많은 시편 학자들은 이 시편 23편을 다윗이 쓴 시라기 보다는 오히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여진 시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문체나 내용에 담겨진 사상을 봐서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사람은 이방 민족에게 압박과 핍박을 당하며 종살이를 하는 무명의 한 그리스도인으로 그의 신앙고백인지도 모릅니다. 그 기자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과부일지도 모르고, 육체는 병들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 마음 가운데 소망을 안고 사는 길가의 거지였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문둥이였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메고 다닌다는 고백을 봐서 죽음의 위협을 넘기는 그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3편의 기자와 같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그 시를 진정 우러나는 마음으로 읽고 나의 시로 고백해 보십시다. 부족함 많고 없는 것이 많고 있어야 할 것이 많은 가운데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의 빈 잔이 이제 넘칩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해 봅니다. 지난 주간에는 삼덕교회에서 가장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며 제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외부적으로 판단한 그러한 가정 몇 군데를 심방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고백이 목사님! 괜찮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지탱해 갈 수 있을까 생각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그분의 첫번째 고백은 목사님! 욥의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감사해야 하는 가정을 찾아가면 오히려 그들은 감사가 없고 원망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인생의 잔이 너무 많이 비어 있는데도 그 빈잔을 하늘의 것으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믿음으로 채운 성도들은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입니다. 무엇인가 받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가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의 빈 잔에 하나님으로 부터 뭔가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난을 가진 성도는 복이 있습니다. 그 빈 곳에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의 신앙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 하나가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입니다. 저 하늘에는 2억 5000만개2억 5000만개의 별들이 떠 있는데 그 별들은 지구보다 작은 별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구보다 몇십, 몇백, 몇천배 되는 별들이 수억, 수백억개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 별을 창조하시고 그 별에 이름을 지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도 하나님은 적당하게 유지 시키셨습니다.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도 지구는 사막이 되고 조금만 태양과 멀어도 지구는 얼음덩이가 됩니다. 또 지구와 저 달과의 관계도 적당히 유지 하셔서 조금만 더 가깝든지 멀면 이 지구는 바닷물로 덮입니다.
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흙 한 줌을 가지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우글 거립니다. 이 놀라운 역사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고 제 고집대로 살았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담당시키셔서 우리를 구하시고
예수님은 대신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내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양이 어떤 양이냐, 어떠한 존재로 있느냐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착하냐 나쁘냐, 고집세냐 그렇지 않느냐, 건강하냐 병들었느냐에 따라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을 인도하는 목자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고 못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로 살았느냐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목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우리 같이 범죄하고 실수하고 얼룩지고 죄많은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새사람으로 풍성한 생명을 얻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십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그 말씀에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목자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떠한 어머니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냥 아들이 죽었습니다하는 것은 놀라운 차이를 느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 천지를 만드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
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요 그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성도는 심히 적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한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을 열번 바라봐야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잘못, 내 환경, 내 죄악을 들여다 보고 자신을 용서 못하고 절망 가운데서 괴로워하지 말고 이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떠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며 그 분이 나를 용서 하시고 나를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시고 그 분이 나를 원수의 앞에서 승리의 잔칫상을 베풀어 주시고 그 분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내가하는 일인칭 인생을 그만 살고 주님이, 그 분이.하는 삼인칭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는 여러움, 부족함, 죄많음, 실수함이 많지요. 그러나 우리 자신만 들여다 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가 누구인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아버지 집에는 없는 것이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곁을 떠나갔던 탕자는 내 아버지 집에는 풍족함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이 돼지우리 곁에서 주려 죽는구나
우리 인생의 목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용서와 자유와 평안과 삶의 기쁨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집에 풍족한 것이 많지만 이 세상에서 주려 죽는, 부족한 가운데서 그 부족을 세상 것으로 채우려다가 오히려 만족없는 불평, 불만 속에서 인생을 살다가 마치는 탕자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십니다. 바로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 목자를 따라 인생을 살 때 여러분의 환경과 주위와 자신에게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없고 내 인생의 잔이 넘친다고 하는 고백을 하시는 은혜의 삶을 사시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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