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에게.고통을 (욥16:6-22)
본문
욥은 입을 열어 말을 하여도 근심이 풀리지 않았고 침묵해도 평안이 없었 습니다
(6) 그는 소유와 자녀를 잃고
(7) 육신은 파리해져 가며(8) 혼란에 빠 졌습니다.(12,13). 더구나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이 그를 조롱하여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10-11). 이것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과 재 물의 손해 보다도 더욱 그의 마음을 괴롭힌 것입니다. 그는 결국 굵은 베옷 을 입고 티끌 가운데 앉아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욥은 하나님의 손에 죽게 되더라도 땅에 흘린 자신의 피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리라는 것입니다 (18). 또한 그는 이처럼 간절한 기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을 가려줄 하늘에 계신 증인이 계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와 같 이 욥은 극한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갖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의아해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거든 하물며 하나님은 더욱 그러하시지 않겠느냐'(마7:11)는 말씀처 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버림이라'(요10:17)고 하셨던 말씀과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한 말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욥의 고난은 죄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인류를 위해 고난 받으심을 예 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경건한 성도들에게 때때로 다가오는 환난과 고통의 의미를 살펴보되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시켜 보 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랑하시는 자에게 어떤 고통 을 주시고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 있을까요 욥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교 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곤욕을 겪게 하십니다.
욥은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 중 무엇보다도 먼저 다른 사람에게서 받고 있는 곤욕을 들었습니다.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10절)하고 토로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있었다기보다 자기를 찾아와서 공박을 벌인 세 친구, 곧 엘리바 스와 빌닷과 소발의 과격한 소행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야바 집 뜰에서 바리새인들과 군병들로부터 겪어야 했던 참담 한 수모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때 군병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 고 야비하게 뺨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그러하셨듯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곤욕을 겪게 하십니다. 물론 이러한 일의 산술적인 대답을 끌어내기는 어렵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숭고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있는 하나님의 의도는 남의 허물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까닭없이 곤욕을 겪는다고 하여 함부로 원 망하지 말고 심사 숙고의 자세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육신의 고통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욥이 받은 것 중 드러난 고통은 육신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는 그 때 온몸이 악창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육신의 고통이 얼마나 극 심했던지 그는 주께서 '그 살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 없이 내 허리를 뚫 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13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선량 한 사람이 쓰라린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의례히 선악의 대가에 대하여 회의심이 듭니다. 하지만 이때도 역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옆구리가 창에 찔려 물 과 피를 다 쏟으셨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도 때로는 온갖 모양의 육신의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런 고통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커다란 깨달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고통이 사라질 때문만 아니라 육신의 고통이 임하는 때에도 그 의미를 생각하 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명예가 짓밟히게 하십니다.
욥은 그의 명예가 짓밟혔습니다.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15절)라고 한탄합니다. 구약 시대에 있어 (뿔)은 대개 힘과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뿔을 더럽혔다는 것은 자기 영예가 여지없이 땅에 처박히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더러 많은 사람들에게서 선망을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 사이에 그 영예가 곤두박질해 버리는 경우를 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 본체가 하나님과 다름없었던 분이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 린 일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사랑하는 자에게 명예가 짓밟히는 고통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를 그처럼 낮추어야만 다시 하늘까지 높이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고히 믿음으로써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개신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을 강조하는 데는 큰 성과를 거두어 왔 으나 '고통의 싹에서 복음의 수확을 거두는' 일에는 이제까지 거의 황무지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당하는 일, 육신에 고통이 주어지는 일, 명 예가 무참히 짓밟히는 일 등은 겉으로는 분명히 저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 지만 그 안에서 캐낼 수 있는 복음들은 앞에서 들은 그대로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통이라고 무조건 싫어하지 말고 거기에 어떤 영적 보화가 숨겨져 있는가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6) 그는 소유와 자녀를 잃고
(7) 육신은 파리해져 가며(8) 혼란에 빠 졌습니다.(12,13). 더구나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이 그를 조롱하여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10-11). 이것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과 재 물의 손해 보다도 더욱 그의 마음을 괴롭힌 것입니다. 그는 결국 굵은 베옷 을 입고 티끌 가운데 앉아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욥은 하나님의 손에 죽게 되더라도 땅에 흘린 자신의 피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리라는 것입니다 (18). 또한 그는 이처럼 간절한 기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을 가려줄 하늘에 계신 증인이 계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와 같 이 욥은 극한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갖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의아해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거든 하물며 하나님은 더욱 그러하시지 않겠느냐'(마7:11)는 말씀처 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버림이라'(요10:17)고 하셨던 말씀과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한 말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욥의 고난은 죄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인류를 위해 고난 받으심을 예 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경건한 성도들에게 때때로 다가오는 환난과 고통의 의미를 살펴보되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시켜 보 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랑하시는 자에게 어떤 고통 을 주시고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 있을까요 욥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교 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곤욕을 겪게 하십니다.
욥은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 중 무엇보다도 먼저 다른 사람에게서 받고 있는 곤욕을 들었습니다.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10절)하고 토로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있었다기보다 자기를 찾아와서 공박을 벌인 세 친구, 곧 엘리바 스와 빌닷과 소발의 과격한 소행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야바 집 뜰에서 바리새인들과 군병들로부터 겪어야 했던 참담 한 수모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때 군병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 고 야비하게 뺨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그러하셨듯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곤욕을 겪게 하십니다. 물론 이러한 일의 산술적인 대답을 끌어내기는 어렵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숭고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있는 하나님의 의도는 남의 허물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까닭없이 곤욕을 겪는다고 하여 함부로 원 망하지 말고 심사 숙고의 자세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육신의 고통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욥이 받은 것 중 드러난 고통은 육신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는 그 때 온몸이 악창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육신의 고통이 얼마나 극 심했던지 그는 주께서 '그 살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 없이 내 허리를 뚫 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13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선량 한 사람이 쓰라린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의례히 선악의 대가에 대하여 회의심이 듭니다. 하지만 이때도 역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옆구리가 창에 찔려 물 과 피를 다 쏟으셨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도 때로는 온갖 모양의 육신의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런 고통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커다란 깨달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고통이 사라질 때문만 아니라 육신의 고통이 임하는 때에도 그 의미를 생각하 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명예가 짓밟히게 하십니다.
욥은 그의 명예가 짓밟혔습니다.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15절)라고 한탄합니다. 구약 시대에 있어 (뿔)은 대개 힘과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뿔을 더럽혔다는 것은 자기 영예가 여지없이 땅에 처박히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더러 많은 사람들에게서 선망을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 사이에 그 영예가 곤두박질해 버리는 경우를 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 본체가 하나님과 다름없었던 분이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 린 일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사랑하는 자에게 명예가 짓밟히는 고통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를 그처럼 낮추어야만 다시 하늘까지 높이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고히 믿음으로써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개신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을 강조하는 데는 큰 성과를 거두어 왔 으나 '고통의 싹에서 복음의 수확을 거두는' 일에는 이제까지 거의 황무지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당하는 일, 육신에 고통이 주어지는 일, 명 예가 무참히 짓밟히는 일 등은 겉으로는 분명히 저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 지만 그 안에서 캐낼 수 있는 복음들은 앞에서 들은 그대로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통이라고 무조건 싫어하지 말고 거기에 어떤 영적 보화가 숨겨져 있는가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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