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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도 남길 수 없소 (출10:21-26)

본문

역사상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를 나타내는 웅변적인 대 사건입니다. 저들이 애굽에 머문지 430년이 되는 그 날에 이스라엘은 종되었던 애굽에서 기적의 해방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 축복의 역사에 참여한 자를 가리켜 장정만 60만 명 가량이라고 기술하면서, 그 무리를 ‘여호와의 군대’라고 표현하므로 그 수의 많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출12:37-41).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토(吐)한 그 네 번째의 거절과 주장입니다.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소’하는 말은 ‘발굽 하나라도 남길 수 없다’, ‘조금도 남길 수 없다’는 당시의 격언적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I. 애굽 바로왕의 회유책에 대한 강한 거부를 뜻합니다.
출애굽기 10장 24절에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로의 회유책은 벌써 네 번째였습니다. 바로 앞에 나타난 모세는 「내 백성을 내어보내라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출애굽의 명제를 제시했습니다(출5:1). 물론 애굽의 바로는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바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1 피(출7:14-25),
2 개구리(출8:1-15),
3 이(출8:16-19),
4 파리(출8:20-32), 5 악질(출9:1-7), 6 독종(출9:8-12), 7 우박(출9:13-35), 8 메뚜기(출10:1-20), ⑨ 흑암(출10:21-29), 10 장자의 죽음(출12:29, 30) 등의 재앙으로 바로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재앙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모세를 통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내어 놓으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출애굽의 명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때 바로는 모세에게 타협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가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출8:25).
그때 모세는 그것은 불가하다고 거절하였습니다(출8:26). 이것은 바로가 이스라엘을 붙들어보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두 번째는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8장 28절에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거절하기를 왕을 떠나 기도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출8:29).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 세 번째는 남정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0장 11절에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고 하면서 바로가 그들을 쫓아내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심판을 예고했을 때, 겁을 집어먹은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기를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자가 누구 누구뇨」라는 질문을 했을 때, 모세가 답하기를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출10:8, 9). 그때 바로는 남자 장정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과 부인들(가족들)과 재산들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붙잡아 놓기 위한 바로의 술책입니다. 이것이 오늘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쓰는 유혹 중에 하나입니다. 전부가 아닌 부분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물론 모세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네 번째는 우양만은 두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가 아홉 번째 흑암 재앙으로 두들겨 맞았을 때 제의한 술책입니다. 출애굽기 10장 24절에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끈덕진 사탄의 도전입니다. 이때 모세는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출10:25, 26).
우리는 여기서 바로 왕의 결사적인 유혹과 계책에 대하여 결정적인 거부의 답변을 하는 모세를 보게 됩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거절입니다. 결코 이럴까 저럴까 하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고 단호한 거부였습니다.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시종이 여일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결코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일에 추호의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신앙적 주장이었습니다.
Ⅱ. 하나님 여호와 예배를 위한 목적적 수단임을 답하는 말입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는 명백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6절에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중대한 대답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와 그의 백성이 왜 애굽에서 나가야하는가를 분명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예배) 것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출애굽의 결정적인 목적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결코 정치적이요, 사회적이요, 경제적임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코 정치적 해방 신학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길 구원 신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 섬기는(예배) 필수적인 수단이 양과 소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리의 소나, 양이라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 섬김(예배)에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양과 소들은 하나님 섬기는 제물로써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내용이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그 백성은 저처럼도 하나님 섬기는 제물에 대하여 중요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물이 없는 예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양과 소떼들 중에서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예배) 것인지, 아직까지 알지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모세는 그 전에 바로 왕 앞에서 이 사실을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출10:9). 사람뿐 아니고, 재물(牛, 羊)도 가지고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목적에는 재물(牛, 羊)이 수단으로 따라야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우양들 가운데 하나님께 구별되게 드려지는 제물은 지극히 적은 수입니다. 그 외는 모두 이스라엘 생존의 경제적 수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우양을 이스라엘이 하나님 섬기는 목적을 위한 경제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진리는 바로 전 성경에 충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일반계시, 곧 자연계시(자원)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김에 필요한 수단으로 주신 것입니다. 만물은 다 인생 것이요, 인생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 우주 존재의 대 질서요, 축복의 원리입니다(고전3:21-23).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10:31).
Ⅲ. 완전 구속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토한 말씀, 곧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소’하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위하여 계획한 모든 사람, 모든 재산은 완전히 다 애굽에서 나가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그리고 은이든, 금이든, 아니면 다른 보석이든 그리고 우양과 다른 생축이든,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가지고 나가야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바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役事) 앞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출12:32). 심지어 이스라엘은 고센 땅에서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까지 옷에 싸고, 어깨에 메었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은금 패물과 의복과 물품까지 구하여, 다 가지고 나왔다고 하였습니다(출12:34-36). 저들이 광야에서 하나님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모조리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한 마리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성경 표현은 이 세상에서 인류를 향한 당신의 구원을 완전히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완전 구속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완전 구속의 내용이 무엇일까
1. 전인(全人) 구원입니다-개인적 완전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전인(全人)으로 창조했습니다. 흙으로 육신을 만들었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영육(靈肉)의 존재로 지었습니다. 육신(肉身)이 없는 영(靈)만의 인간이거나 영(靈)이 없는 육(肉)만의 인간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창2:7).
아담은 먼저 그 영이 하나님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 육도 함께 죽었습니다. 영육이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먼저 죽은 영을 살렸습니다. 복음을 듣는 영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부활입니다(요5:24-25). 그 다음에 죽은 몸도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요5:28-29). 그래서 바울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살고, 죽은 몸도 다시 산다고 하였습니다(롬8:10-11).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양분하지 않으십니다. 전인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일부분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전인을 요구합니다. 전부를 요구합니다. 전체를 소유하시기 원하십니다. 일생 중 어느 한 때(부분)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전 시기, 전 생애를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한 곳도, 그 어느 부분도 남김없이 전인,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신 분입니다.
2. 전 교회(全敎會)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양 100마리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수입니다.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들에 99마리를 남겨두고, 그 잃은 한 마리를 찾도록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눅15:7).
예수의 본수(本數)가 상징적인 100이었다면, 한 마리 없는 99는 완전한 본래의 수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만 4천인이 예정의 본수로 상징되었습니다(계7:4, 14:1). 그 수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표현되었습니다(계7:9).
그러므로 주님은 전 시대, 전 교회를 다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 중에 한 마리도 애굽(세상)에 남겨둘 수가 없습니다. 모두를 구원하여 하늘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3. 그것은 궁극적 완전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로 39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은 10장 28절로 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남길 수가 없습니다. 애굽의 세상에 남겨두거나, 바로 같은 악마에게 빼앗길 수가 없습니다. 완전 구속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우리가 잠시 머물고 있는 세상은 영적으로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이라고도 합니다(계11:8). 큰 성들이요, 또 성 길들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바로는 사단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선민 구원의 역사적 현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후손을 가나안의 흉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요셉을 먼저 보내어 그 일을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창45:1-8). 때가 이를 때 애굽의 총리 요셉으로 하여금 야곱의 가족을 애굽에서 부양하게 하고, 430년 어간에 큰 민족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때가 이를 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바로로 하여금 선민을 학대하게 섭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 중에 모세를 세워 출애굽의 거사를 성취시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애굽 바로의 학대는 선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한 마리의 우양까지도 애굽에 남겨두지 않고, 당신이 받으실 영광의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현장이요, 무대입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한 생명도 잃거나, 놓치거나, 빼앗기거나, 버리지 않고, 완전히 구원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지구와 지구 가운데 인간의 역사가 혼전을 거듭함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나중 세상 끝에는 온 세상이 다 일어나 교회(성도)를 박해할 것입니다. 그것은 택자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의 섭리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택자는 한 사람도 남길 수 없습니다.-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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