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의 주인 (눅9:28-36)
본문
굉장한 시대에 우리가 산다. 첨단 과학 시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한다. 과거에는 수십년이 걸려도 계산 못할 것을 단 몇 초에 해결한다. 인류의 지식이 두배가 되는데 1900년이 걸렸다. 그 후에는 백년이 걸렸다. 이제는 두 달도 걸리지 않는다. 과연 엄청 난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성의 능력은 신비하기만 하다. 그러면 우리가 과거보다 더 많이 아는가 글쎄. 물질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모든 최첨단의 과학은 단지 오 감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발전시킨 것이다. 그것으로는 물질보다 더 근본적인 영의 세계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자연의 세계는 전자계기를 통 해 확장되지만 초자연의 세계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금지된 영역이다.
1. 초자연의 세계는 함께 존재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느날 새로운 세 계 곧 영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그들 앞 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는 별안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그의 전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위엄과 거룩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옷은 도저히 인간이 만들 수 없이 희고 찬란하였다. 주위의 모든 것도 다 변화된 상태였다. 그 눈부시게 찬란한 영광 속에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이 예수 와 함께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들은 여러 백년 전 죽은 모세와 엘리 아였다. 그들이 모세와 엘리아였는지 어떻게 아는가 아무도 자기를 소개 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있는 모든 사람들은 저절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예수에게 장차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황홀했다. 비몽사몽간에 소리 질렀다. "주여 우리가 이 상태 로 계속 여기 있는게 좋겠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제가 책임지고 초막을 셋을 짓겠습니다. 한 분이 하나씩 들어가시면 됩니다." 베드로에 대해서 말한 성경을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 르면서 하고 있었다." 상황판단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상태가 어떤 것인가 한 마디로 영적인 세계이다. 물질 세계에서는 별 볼일 없이 보이는 예수였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는 너무도 찬란했다. 엘리아와 모세도 보는 순간 알게 되었다. 아무 설명이 없어도 영의 세계 에서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누구도 거짓으로 속일 수 없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초자연의 세계이다. 이 세계가 현재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게 아니다. 우주선을 타고 한없 이 가야 나타나는게 아니다. 자연세계와 겹쳐서 있었다. 이들이 이 신비 한 경험을 하는 동안 산과 나무와 바위는 본대 모습대로 있었다. 만약 비 행기가 지나갔더라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시계를 차고 있었더라면 초침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연세계와 초자연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 놀라운 경험을 마치고 돌아갈 때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는 어디로 갔는가 없어졌는가 하늘나라로 올라갔는가 아니다.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엘리아도 모세도 그대로 살아있었고 예수의 찬란한 모 습도 그대로 있었다. 단지 자연적인 인간의 눈에 안보이고 경험이 안될뿐 이었다. 그들이 초자연을 보고 경혐했던 것은 특별한 은혜였다. 영적인 세계는 육적인 세계와 함께 있다. 손을 한 번 내저어보라. 자 연의 세계에서만 바람을 느끼면서 움직이는가 아니 영의 세계에서도 같 이 움직인다. 우리가 차를 몰고 달리면 자연세계의 길만 통과하고 초자연 의 세계는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역시 그 세계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던간에 두 세계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경은 초자연의 세계를 따로 말하지 않는다. 함께 말하고 있다. 야곱 의 가족이 행진할 때 또 다른 한 무리가 함께 걷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야곱의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였다.(창32:1) 한 진영은 자연이었고 또 다른 진영은 초자연이었다. 한쪽이 실제였던 것처럼 다른 쪽도 분명 영향력있는 실제였다. 어느날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 그는 경악했다. 자 기가 있는 사마리아 성을 적군이 몇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소리쳐 깨우자 스승은 말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왕하 6:16)그가 기도하자 사환도 영의 눈이 열린다. 그래서 온 산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찬게 보이게 되었다. 실제적인 군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사는 성경에 수없이 나타난다. 성경은 자연과 초자연을 가르 지 않는다. 성령님은 모두를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자연은 자연 의 원인이 된다. 거기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우주를 지배하신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귀신은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고 병들고 실패하 게 만든다. 또한 자연의 것들은 변하지만 영의 세계는 불변한다.
2. 영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 제자들은 구름 속에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 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왜 들으라고 하시는가 듣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무엇이 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 곧 택함 받은 자 가 되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 이 일을 위해서 예수는 초자연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로 들어오셨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해냈던가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초자연의 세계에서는 엄 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무서운 전투를 벌 리고 있었다.(계 12:7)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처 형 당할뿐이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인류의 죄가 사해지며 새로 운 생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짜 일은 영적세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다른 곳 에는 "저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마태 17:5)라 했다. 그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서 초자연과 연결되는 존재가 된다. 그의 말을 들음으 로서 영적세계의 질서를 알고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말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당시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그리스도의 계시가 종결되지 않았고 그의 대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저 감각적이고 육 체적인 차원에서 구세주가 되시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스도가 나라를 회 복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문제나 해결해 주실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을 들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된다. 또한 그것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는가 (고후5:17) 그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존재가 된 것을 믿는가 (요14:13)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와 내 영혼을 성전 삼은 것을 믿는 가 그래서 온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지혜와 능력이 있음을 믿는가 육신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라. 세상적인 모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다. 마치 그리스도 인간적인 모습이 그 의 전체 모습이 아닌 것과 같다. 참된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비치는 우리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찬란하다. 천사의 수종을 받고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눈으로 보라. 그의 말씀대로 보라. 불신자들이 잘 사는 것 같아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영의 눈으로 바라 보면 벌거벗은 거지에 불과하다. 마귀의 종된 상태일뿐이다. 멸망으로 달 려갈뿐이다. 그들의 잘됨을 부러워하지 말라. 들의 풀처럼 베이고 마를 것이다.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초자연의 세계에서 우리는 찬란한 존재이다.
3. 신자는 자연세상에서 초자연을 움직인다 자연은 초자연의 일부일뿐이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어떤 권세도 제국도 자연에서는 계속적으로 변한다. 모든 문제도 역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자연은 영원하다. 영적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다. 영원 하다. 여기의 가치와 축복은 영원한 것이다. 그것을 잡은 사람은 영원하다.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 사람은 자연세계에서도 능력있게 산다. 욥이 시험 당할 때를 생각해 보라. 그의 모든 재산은 강탈 당하고 사 라졌다. 자녀들도 십여명이 일시에 모두 죽었다. 온몸에는 악창이 나서 가렵고 쓰렸다. 아내도 그에게 저주를 하며 떠났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 은 자기를 이해 못하고 비난하고 있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자연세계는 욥에게 망함을 선고했다. 절망뿐이었다. 그는 홀로 망해간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너무도 고독했다. 하나님을 믿고서 이렇게 비참할 수가 있는 가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자연의 세계뿐이었다. 그는 영적인 세계를 몰랐다. 허다한 존재가 그를 보고 있음을 몰랐다. 하나님이 보시고 천사들이 보고 마귀와 그의 부하들이 보고 있었다. 그는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비록 그가 초자연의 원리를 몰랐어도 그든 초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렇다. 믿는자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믿음의 행동은 하늘을 움직인다. 한 사람의 죄인이 돌아오면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기뻐한다. 비록 물질 세상이지만 신자는 두 세계의 주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딤전 5:21) 아무도 안보는가 아니 하나님이 보고 천사가 본다. 허다한 영적존재들이 보고 있다. 스데 반이 순교할 때 초자연이 열렸다. 하나님 우편에 그리스도는 일어섰다. 자기 종의 순교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자의 행동은 하늘을 움직인다. 바울은 항상 이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양쪽 세계에서 동시에 주인공 역할을 한다. 우리가 또 다른 눈을 열기만 하면 다른 세계는 항상 우리 앞에 열린다. 그것은 믿음의 눈이요 영의 눈이다. 환상을 보라는게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보라는 것이다. 새 눈으로 보라. 이런 사람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한다. 베드로와 바울을 생각하라. 그 들은 감옥을 초월했다. 물질의 세계를 넘어섰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 의 능력 안에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 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4-10) 구약과 신약을 통털어 믿는자는 두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서 산다. 그의 말을 삶에 적용한다. 그의 말씀대로 초자연의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항상 보고 있다. 모든 악한 상 황 문제에 짓눌리지 말라. 이미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담당하셨다. 주와 함께 하는 자신의 모습을 늘 그리라.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다 바꾸고 새롭 게 하며 감옥도 풍랑도 지옥까지도 깨뜨리심을 항상 믿고 그리라.
1. 초자연의 세계는 함께 존재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느날 새로운 세 계 곧 영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그들 앞 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는 별안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그의 전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위엄과 거룩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의 옷은 도저히 인간이 만들 수 없이 희고 찬란하였다. 주위의 모든 것도 다 변화된 상태였다. 그 눈부시게 찬란한 영광 속에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이 예수 와 함께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들은 여러 백년 전 죽은 모세와 엘리 아였다. 그들이 모세와 엘리아였는지 어떻게 아는가 아무도 자기를 소개 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있는 모든 사람들은 저절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예수에게 장차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황홀했다. 비몽사몽간에 소리 질렀다. "주여 우리가 이 상태 로 계속 여기 있는게 좋겠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제가 책임지고 초막을 셋을 짓겠습니다. 한 분이 하나씩 들어가시면 됩니다." 베드로에 대해서 말한 성경을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 르면서 하고 있었다." 상황판단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상태가 어떤 것인가 한 마디로 영적인 세계이다. 물질 세계에서는 별 볼일 없이 보이는 예수였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는 너무도 찬란했다. 엘리아와 모세도 보는 순간 알게 되었다. 아무 설명이 없어도 영의 세계 에서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누구도 거짓으로 속일 수 없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초자연의 세계이다. 이 세계가 현재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게 아니다. 우주선을 타고 한없 이 가야 나타나는게 아니다. 자연세계와 겹쳐서 있었다. 이들이 이 신비 한 경험을 하는 동안 산과 나무와 바위는 본대 모습대로 있었다. 만약 비 행기가 지나갔더라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시계를 차고 있었더라면 초침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연세계와 초자연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 놀라운 경험을 마치고 돌아갈 때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는 어디로 갔는가 없어졌는가 하늘나라로 올라갔는가 아니다.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엘리아도 모세도 그대로 살아있었고 예수의 찬란한 모 습도 그대로 있었다. 단지 자연적인 인간의 눈에 안보이고 경험이 안될뿐 이었다. 그들이 초자연을 보고 경혐했던 것은 특별한 은혜였다. 영적인 세계는 육적인 세계와 함께 있다. 손을 한 번 내저어보라. 자 연의 세계에서만 바람을 느끼면서 움직이는가 아니 영의 세계에서도 같 이 움직인다. 우리가 차를 몰고 달리면 자연세계의 길만 통과하고 초자연 의 세계는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역시 그 세계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던간에 두 세계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경은 초자연의 세계를 따로 말하지 않는다. 함께 말하고 있다. 야곱 의 가족이 행진할 때 또 다른 한 무리가 함께 걷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야곱의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였다.(창32:1) 한 진영은 자연이었고 또 다른 진영은 초자연이었다. 한쪽이 실제였던 것처럼 다른 쪽도 분명 영향력있는 실제였다. 어느날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 그는 경악했다. 자 기가 있는 사마리아 성을 적군이 몇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소리쳐 깨우자 스승은 말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왕하 6:16)그가 기도하자 사환도 영의 눈이 열린다. 그래서 온 산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찬게 보이게 되었다. 실제적인 군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사는 성경에 수없이 나타난다. 성경은 자연과 초자연을 가르 지 않는다. 성령님은 모두를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자연은 자연 의 원인이 된다. 거기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우주를 지배하신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귀신은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고 병들고 실패하 게 만든다. 또한 자연의 것들은 변하지만 영의 세계는 불변한다.
2. 영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 제자들은 구름 속에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 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왜 들으라고 하시는가 듣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무엇이 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 곧 택함 받은 자 가 되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 이 일을 위해서 예수는 초자연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로 들어오셨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해냈던가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초자연의 세계에서는 엄 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무서운 전투를 벌 리고 있었다.(계 12:7)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처 형 당할뿐이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인류의 죄가 사해지며 새로 운 생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짜 일은 영적세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다른 곳 에는 "저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마태 17:5)라 했다. 그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서 초자연과 연결되는 존재가 된다. 그의 말을 들음으 로서 영적세계의 질서를 알고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말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당시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그리스도의 계시가 종결되지 않았고 그의 대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저 감각적이고 육 체적인 차원에서 구세주가 되시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스도가 나라를 회 복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문제나 해결해 주실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을 들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된다. 또한 그것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는가 (고후5:17) 그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존재가 된 것을 믿는가 (요14:13)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와 내 영혼을 성전 삼은 것을 믿는 가 그래서 온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지혜와 능력이 있음을 믿는가 육신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라. 세상적인 모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다. 마치 그리스도 인간적인 모습이 그 의 전체 모습이 아닌 것과 같다. 참된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비치는 우리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찬란하다. 천사의 수종을 받고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눈으로 보라. 그의 말씀대로 보라. 불신자들이 잘 사는 것 같아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영의 눈으로 바라 보면 벌거벗은 거지에 불과하다. 마귀의 종된 상태일뿐이다. 멸망으로 달 려갈뿐이다. 그들의 잘됨을 부러워하지 말라. 들의 풀처럼 베이고 마를 것이다.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초자연의 세계에서 우리는 찬란한 존재이다.
3. 신자는 자연세상에서 초자연을 움직인다 자연은 초자연의 일부일뿐이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어떤 권세도 제국도 자연에서는 계속적으로 변한다. 모든 문제도 역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자연은 영원하다. 영적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다. 영원 하다. 여기의 가치와 축복은 영원한 것이다. 그것을 잡은 사람은 영원하다.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 사람은 자연세계에서도 능력있게 산다. 욥이 시험 당할 때를 생각해 보라. 그의 모든 재산은 강탈 당하고 사 라졌다. 자녀들도 십여명이 일시에 모두 죽었다. 온몸에는 악창이 나서 가렵고 쓰렸다. 아내도 그에게 저주를 하며 떠났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 은 자기를 이해 못하고 비난하고 있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자연세계는 욥에게 망함을 선고했다. 절망뿐이었다. 그는 홀로 망해간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너무도 고독했다. 하나님을 믿고서 이렇게 비참할 수가 있는 가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자연의 세계뿐이었다. 그는 영적인 세계를 몰랐다. 허다한 존재가 그를 보고 있음을 몰랐다. 하나님이 보시고 천사들이 보고 마귀와 그의 부하들이 보고 있었다. 그는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비록 그가 초자연의 원리를 몰랐어도 그든 초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렇다. 믿는자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믿음의 행동은 하늘을 움직인다. 한 사람의 죄인이 돌아오면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기뻐한다. 비록 물질 세상이지만 신자는 두 세계의 주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딤전 5:21) 아무도 안보는가 아니 하나님이 보고 천사가 본다. 허다한 영적존재들이 보고 있다. 스데 반이 순교할 때 초자연이 열렸다. 하나님 우편에 그리스도는 일어섰다. 자기 종의 순교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자의 행동은 하늘을 움직인다. 바울은 항상 이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양쪽 세계에서 동시에 주인공 역할을 한다. 우리가 또 다른 눈을 열기만 하면 다른 세계는 항상 우리 앞에 열린다. 그것은 믿음의 눈이요 영의 눈이다. 환상을 보라는게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보라는 것이다. 새 눈으로 보라. 이런 사람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한다. 베드로와 바울을 생각하라. 그 들은 감옥을 초월했다. 물질의 세계를 넘어섰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 의 능력 안에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 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4-10) 구약과 신약을 통털어 믿는자는 두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서 산다. 그의 말을 삶에 적용한다. 그의 말씀대로 초자연의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항상 보고 있다. 모든 악한 상 황 문제에 짓눌리지 말라. 이미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담당하셨다. 주와 함께 하는 자신의 모습을 늘 그리라.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다 바꾸고 새롭 게 하며 감옥도 풍랑도 지옥까지도 깨뜨리심을 항상 믿고 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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