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법 2 (요4:23-26)
본문
우리는 몇 주 전 부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고 그 것을 어떻게 수행해 가야 하는가, 교회의 사명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을 증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온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해 나가는 것이다. 그 첫번째 방법으로는 교회가 동동체로서 예배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하는 행위로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외에 어떻게 우리 다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해 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가운데 예수께서는 아주 중요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방식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에 해당되는 것을 우리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어떤 성격의 공동체가 되는가를 잘 드러냄으로써, 예수께서 생각해 놓으신 그 동동체를 잘 드러냄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공동체를 지배하는 원리, 그 공동체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섬김입니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이히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그의 공생애를 마쳐가실쯤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제자들 하면 우리가 두 종류의 제자들이 있는데 예수님이 특별히 세우신 12제자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중에는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가운데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의 많은 무리가 있죠 그 제자들 가운데 3사람이 왔는데 이 사람의 관계가 한 여인과 두 남자인데 이 두 남자는 여인의 아들들였습니다.
이 두 아들들의 이름이 야고보와 요한이고 아버지는 세베데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베데의 아들들의 어머니, 말이 복잡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처럼 여자들을 높이지 않았으므로 늘 누구의 엄마라고 이 여인이 예수를 잘 쫒아 다니던 여인인데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께 절을 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이 오실때까지만 해도 누구에게 경배를 한다, 예배를 드린다 했을때는 실제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해서 이렇게 절을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 대해서 지고한 존경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구했습니다. 여기까지 바라보면 이 여인이 아주 제대로된 신앙, 제대로된 종교를 가지고 있는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구하는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여인의 신앙이, 종교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구한 것은 주님, 주님의 나라에서 나의 이 두 아들들이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혀 주십시요 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여기에 이 여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왼편에 한 사람은 오른편에 하면 한국사람에게는 생각나는것이 있는데 옛날에 우의정, 좌의정 하는 것이죠, 바로 이 두아들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굉장히 종은 지위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는 간구입니다. 어머니니까 그냥 이해할 만 하죠.
그런데 그 정도는 생긱할 수 잇는데 사람을 망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의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나라에서도 최고가 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어머니로서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여인이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가르치는 것을 생각하는 바가 그 정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가지고 있는 생각을 교정해 주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여인의 생각일 뿐 아니라 이 여인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두 아들의 생각도 같아서 이 두 아들들의 생각도 바꿔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성경가운데서 이 잔 예기가 나올때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예기하는 것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여려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것을 기억하시죠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하나이다” 그것은 예수아니고 받아야 할 고난을 생각하시면서 주님 랄 수 있으면 그냥 이것이 내게서 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르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래서 이 잔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난을 받을 것인가를 시사해 주고 잇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희가 나의 받을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느냐, 나와 함께 영광에 있으려고 하느냐, 오른편, 외편에 그러려면 먼저 같이 고난에 동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할 수가 있겠느냐” 이 질문에 이 아들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가 이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도 어머니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적인 질서가 있고 똑같이 우리도 그 나라에서 좀 높이되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준 가운데 있죠.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해 나갈 때에도 이 세상에서 지배하는 동일한 원리들로서 일을 해 나갈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인이나 이 여인의 아들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나머지 제자들의 수준 또한 우리도 높은 사람,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들을 데리고 3년동안 교육을 시켰어요.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지만 변하질 않는 군요. ”생각이 바꿔져야 된다“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뭐라고 해도 안 변한단 말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 제자들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 예수께서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이렇게 표현해 주십니다. <본문25절->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하는가. 지배 받는 사람보다 남들을 지배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언제 잘 나타나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덜 그럴지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기의 자녀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잘 그러납니다. 이 아이 남들 한테서 뛰어나고 섬김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지 하는 것이 한국의 어머니들의 생각들입니다. 그걸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구합니다. 마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같이 그게 귀한 기도이고 또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교회에서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가르치는 정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것을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런 원리가 지배한한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원리가 지배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있어야 되는 것이 힘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힘이 든다든지 머리가 똑똑하다든지 돈이든지 권력이든지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움직일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알고 제자들도 알고 여기에 있는 오늘 우리들도 잘 압니다. 그것이 없으면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자-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합니까 사람들을 움직일려면 그런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서람들이 그 원리를 가지고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로 들어옵니다. 동일한 것이 있어야지만 움직입니다. 그러면 만일에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이도 세베데의 아들들의 어머니하고 동일한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가지고 교회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를 그대로 지배해나가죠. 그러면 일이 돼요일이 안돼는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게 있으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되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됩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지자배하는 원리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하고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강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중에서는 어떻게해야 된다는 말인가 너희 중에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한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핵심은 무엇입니까우리 중에서는 이 세상의 권력, 힘, 재력을 갖고 남들에게 힘을 부리고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남들을 섬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그도와 관련되어 있어서 남들을 서기며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런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드러나야 사람들이 아! 하나님 나라가 바로 저런 나라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는 나라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서로들끼리 섬기는 그런 나라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지고 나면 이 세상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은 거의 없어지게 되어 집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이의 교회가 하아님 나라를 증시하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원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섭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 섬긴다는 것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생각에서 부터 나타납니다. 머리속에서 그렇게 되어야지 가슴속에서 그렇게 안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다른 사람앞에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레 아니고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남들을 섬기며 살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끔 하는 공동체가 바로 이 공동체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때 남들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섬길려는 마음이 없으면 남들에게 마음이 안 열립니다. 말이 안 나와요. 그러나 섬길려는 마음이 있을때 우리가 먼저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맨 처음 남에게 가서 말 하는 것이 대개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누가 새로 왔는데 가서 한마다 하면 할 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안 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서 잘 나타나느냐 우리가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한인들이 모여서 교회를 해요
그런데 가끔 가다가 미국 사람이 와요 같이 예배하기 위해서 와요, 자 그러면 예배하러온 사람이니까 가서 이야기를 해 줘야 되잖아요. 한국 사람이 미국 교회에 갔을 때보다 미국 사람이 한국 교회에 왔을때 더 서먹서먹 할 거옝요 왜 그게 문화가 달라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살긴 살지만 미국 사람들처럼 말하지 못하거든요. 컴플랙스들이 있다는 겁니다. 괜히 가서 말에 실수는 하지 않을까, 귀찮으니까, 하는 거죠. 그런 다 이유가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런 다 이유가 있는 거지먼 그 배후에는 내가 눠하러 꿀리며 살어 이것이 바로 내 마음 가운데 섬길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내가 먼저 가서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건냈다가 저 사람이 퉁명스럽게 나오면 내가 어떻 게 할 것인가 그것 때문에 나아지질 않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레 섬기는 겁니다. 또, 어디서 섬깁니까 우리 손으로 섬깁니다. 여기서는 누가 뭘 해야 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동체란 말이지요.
그런데 알아서 열심히 가서 하사는 분이 있습니다. 그게 눈에 다 뜨입니다. 그럴때마다 마음속에서 참 감사하고 저런 분들이 교회 동동체안에 많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휴지가 있으면 없앤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들을 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배당 안에서만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원리가 우리의 삶의 원리여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으로 사는 이세상에서는 권력, 돈이 있는 사람들이 남들 섬깁니까 섬김을 받으면서 살아가죠. 내 것으로 섬김 받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것이 지금 예수께서 가르치는 것이예요. 삶 전체로 섬김의 삶을 실천하라, 그것은 내 발걸음으로도 나타납니다. 어디로 가느냐, 섬길려고 하는 일을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이것을 실현해 나가야지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중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 그 공동체에 나가니까 사람들이 서로 섬길려고 하는 구나 그렇게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놀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을 받는 것이예요. 다른 모든일이 다 잘 된다고 해도 이 일이 안 돼 버리변 우리는 사명을 다 못하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 이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 우리가 이 원리에 충실할거야 아니면 이 원리는 휘생시켜 버리고 일이 좀 되게 할거냐, 그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 딜레마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 중심보다 일 중심으로 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나도 안하면 문제가 안 생기는데 무언가 일을 열심히 할려면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일을 열심히 할려고 하는 마음은 좋은거죠.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의 생각의 모든것이 일 중심으로 종향이 되어 버려요 그러면 사람이 안 보입니다. 우리는 뭘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 겁니까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삽니다. 그러죠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서러 섬기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는데 막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우리가 정말 중요시 해야 될 사람들이 안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일을 열심히 하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 비재합니다. 우리는 중,고들학교때 학생회 일을 열심히 해 보면 그런 일이 잘 드러납니다. 열심히 하다가 사람들에게 이모 저모를 다 상처만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원리가 안 드러나는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일을 중심으로 하지 마세요. 이것은 사람들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그것을 중요하게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잘 될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손과 발을 여는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 공동체의 모습이 잘 드러나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빼지 못하고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좋은데 맨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얼마나 챙피했겠습니까. 세베데의 두 아들과 그 어머니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높아지길 원했을 때 분을 낸 나머지 열 제자도 얼마나 챙피했겠어요. 우리가 삼년 주님을 따라 다녔는데 우리가 겨우 이런가 그랬겠죠. 그래서 맨 처음에는 아! 그래서는 안되고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커다란 교훈이었을 겁니다. 루리가 서러 섬기는 삼ㅎ을 살아야 된다는 이 원리가 우리를 지배해야 된다 그런 마음속에 빠집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게 기록돼 있으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읽다보니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 그렇구나 우리도 제자들과 동일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구나 그게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아야 하는구나 이 세상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 사람들만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게 이 세상앞에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원리가 되는 거죠. 이 사람들이야 말로 이 세사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로 살아나간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 아니예요 그 이상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빛을 바라느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렇게 하긴 하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면 예스님의 말씀에 “너흔중에 그렁지 아니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크고자 하는데 크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면 내가 종이 되어 버리면 나중에는 커질 수 있지 읺을까. 이것을 거꾸로 이용해 먹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이게 결국은 어떤 결과를 나타내느냐 하면 예수께서 애써 고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우리 마음의 못된 성향이 그대로 잠존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가운데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원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그 마음은 아예 그 마음이 없어진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그것이 잠존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용해 먹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마음 가운데 이 원리를 마음속에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모든 이 세상적인 질서가 들어와서 판을 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워 볼 수 없고 “여기서도 이 세상에 있는 것과 똑 같네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죠. 대개 그런 요소를 아예 없애 버릴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언제나 우리가 이 세상이 있는 한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런 오해나 실망을 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이런 실망의 과정을 겪어 나갑니다. 그것을 잘 겪으셔야 합니다. 맨 처음 예수님을 처음 믿으면 별천지 같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제 아 좋다 좋다 하다가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어, 여기도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나이드신 분들이 합니다. 그 대 어떤 사람들은 싱앙을 아예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때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고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정말 성령이 가르쳐 주는대로 고칠려고 실천을 하고 계속 그렇해 해 나가야 합니다. 그 원리를 보면 그래서 혹시 여러분이 공동체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배워 나가다가 별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았을때 내가 먼저 일을 하겠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슷한 마음이 어디서 생길수 있느냐 하면 어떤 사림이 이것을 예수님에게 배우고서 나는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그런 공동체여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비쳐야 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매일 일하는 사람은 나 뿐 이거든요. 왜 매일 나만 이래야 되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안돌려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열심히 애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공동체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죠. 그리고 혹시 왜 나만 이렇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게 되거든 그 때 더욱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들은 언제나 생기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미묘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에 그 서로 섬긴다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드러나요, 교회가 무슨 일을 해 나갈때도 이 원리에 따라 해 나가야 합니다. 이 원리가 드러나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알아서들 그 원리가 드러나게끔 의견도 내고 그렇게 일도 제한하고 그렇게 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일해 나갈 때도 각자 그 원리에 따라 해 나간단 말입니다. 여기서는 누가 이렇게 하지고 해서 되는데가 아니니까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교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원리가 여기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아주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인데, 제가 전도사 역할을 아주 오래 했었습니다. 78-92년도 까지 전도사였어요. 왜 이렇게 전도사를 오래 했는가.
그런데 전도사님들은 뭐 하는 분들이냐 하면 목사님들 하고 같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원칙상 같은 일을 하시는 동역자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 하면, 직장에서 상사와 밑에 있는 사람같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이 속에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물론 목사님은 나이가 많으시고 전도사는 어리니까 자연스럽게 일이 됩니다 만은 만일에 우리 의식이 그런 원리에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와 밑에 있는 사람을 부리듯이 그렇게 해 나가면 그것은 일은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예를 통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관계, 즉 행정적이든 교육적이든 모든 일에 있어서 이 원리가 우리를 지배해야 합니다. 이 원리를 떠나는 한 우리는 “너희 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라는 예수님의 말씀하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너희 중에서도 이 세상에 권세를 부리는 것과 똑같으니” 그러면 우리는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말씀을 중요시 해야 합니다. 정말 “너희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저희 중에서는 모두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이 원리가 우리 가운데서 잘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원리에 충실히 하여서 우리의 삶 전체를 주 앞에 드리고 다른 사람과 성도들을 향하여서 우리의 가슴과 손과 발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가운데 예수께서는 아주 중요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방식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에 해당되는 것을 우리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어떤 성격의 공동체가 되는가를 잘 드러냄으로써, 예수께서 생각해 놓으신 그 동동체를 잘 드러냄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공동체를 지배하는 원리, 그 공동체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섬김입니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이히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그의 공생애를 마쳐가실쯤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제자들 하면 우리가 두 종류의 제자들이 있는데 예수님이 특별히 세우신 12제자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중에는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가운데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의 많은 무리가 있죠 그 제자들 가운데 3사람이 왔는데 이 사람의 관계가 한 여인과 두 남자인데 이 두 남자는 여인의 아들들였습니다.
이 두 아들들의 이름이 야고보와 요한이고 아버지는 세베데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세베데의 아들들의 어머니, 말이 복잡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처럼 여자들을 높이지 않았으므로 늘 누구의 엄마라고 이 여인이 예수를 잘 쫒아 다니던 여인인데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께 절을 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이 오실때까지만 해도 누구에게 경배를 한다, 예배를 드린다 했을때는 실제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해서 이렇게 절을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 대해서 지고한 존경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구했습니다. 여기까지 바라보면 이 여인이 아주 제대로된 신앙, 제대로된 종교를 가지고 있는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구하는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여인의 신앙이, 종교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구한 것은 주님, 주님의 나라에서 나의 이 두 아들들이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혀 주십시요 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여기에 이 여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왼편에 한 사람은 오른편에 하면 한국사람에게는 생각나는것이 있는데 옛날에 우의정, 좌의정 하는 것이죠, 바로 이 두아들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굉장히 종은 지위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는 간구입니다. 어머니니까 그냥 이해할 만 하죠.
그런데 그 정도는 생긱할 수 잇는데 사람을 망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의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나라에서도 최고가 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어머니로서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여인이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가르치는 것을 생각하는 바가 그 정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가지고 있는 생각을 교정해 주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여인의 생각일 뿐 아니라 이 여인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두 아들의 생각도 같아서 이 두 아들들의 생각도 바꿔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성경가운데서 이 잔 예기가 나올때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예기하는 것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여려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것을 기억하시죠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하나이다” 그것은 예수아니고 받아야 할 고난을 생각하시면서 주님 랄 수 있으면 그냥 이것이 내게서 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르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래서 이 잔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난을 받을 것인가를 시사해 주고 잇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희가 나의 받을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느냐, 나와 함께 영광에 있으려고 하느냐, 오른편, 외편에 그러려면 먼저 같이 고난에 동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할 수가 있겠느냐” 이 질문에 이 아들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가 이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도 어머니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적인 질서가 있고 똑같이 우리도 그 나라에서 좀 높이되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준 가운데 있죠.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해 나갈 때에도 이 세상에서 지배하는 동일한 원리들로서 일을 해 나갈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인이나 이 여인의 아들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나머지 제자들의 수준 또한 우리도 높은 사람,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들을 데리고 3년동안 교육을 시켰어요.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지만 변하질 않는 군요. ”생각이 바꿔져야 된다“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뭐라고 해도 안 변한단 말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 제자들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 예수께서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이렇게 표현해 주십니다. <본문25절->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하는가. 지배 받는 사람보다 남들을 지배하는 사람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언제 잘 나타나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덜 그럴지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기의 자녀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잘 그러납니다. 이 아이 남들 한테서 뛰어나고 섬김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지 하는 것이 한국의 어머니들의 생각들입니다. 그걸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구합니다. 마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같이 그게 귀한 기도이고 또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교회에서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가르치는 정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것을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런 원리가 지배한한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원리가 지배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있어야 되는 것이 힘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힘이 든다든지 머리가 똑똑하다든지 돈이든지 권력이든지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움직일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알고 제자들도 알고 여기에 있는 오늘 우리들도 잘 압니다. 그것이 없으면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자-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합니까 사람들을 움직일려면 그런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서람들이 그 원리를 가지고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로 들어옵니다. 동일한 것이 있어야지만 움직입니다. 그러면 만일에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이도 세베데의 아들들의 어머니하고 동일한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가지고 교회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를 그대로 지배해나가죠. 그러면 일이 돼요일이 안돼는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게 있으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되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됩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지자배하는 원리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하고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강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중에서는 어떻게해야 된다는 말인가 너희 중에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한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핵심은 무엇입니까우리 중에서는 이 세상의 권력, 힘, 재력을 갖고 남들에게 힘을 부리고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남들을 섬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그도와 관련되어 있어서 남들을 서기며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런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드러나야 사람들이 아! 하나님 나라가 바로 저런 나라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는 나라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서로들끼리 섬기는 그런 나라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지고 나면 이 세상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은 거의 없어지게 되어 집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이의 교회가 하아님 나라를 증시하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원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섭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 섬긴다는 것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생각에서 부터 나타납니다. 머리속에서 그렇게 되어야지 가슴속에서 그렇게 안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다른 사람앞에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레 아니고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남들을 섬기며 살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끔 하는 공동체가 바로 이 공동체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때 남들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섬길려는 마음이 없으면 남들에게 마음이 안 열립니다. 말이 안 나와요. 그러나 섬길려는 마음이 있을때 우리가 먼저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맨 처음 남에게 가서 말 하는 것이 대개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누가 새로 왔는데 가서 한마다 하면 할 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안 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서 잘 나타나느냐 우리가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한인들이 모여서 교회를 해요
그런데 가끔 가다가 미국 사람이 와요 같이 예배하기 위해서 와요, 자 그러면 예배하러온 사람이니까 가서 이야기를 해 줘야 되잖아요. 한국 사람이 미국 교회에 갔을 때보다 미국 사람이 한국 교회에 왔을때 더 서먹서먹 할 거옝요 왜 그게 문화가 달라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살긴 살지만 미국 사람들처럼 말하지 못하거든요. 컴플랙스들이 있다는 겁니다. 괜히 가서 말에 실수는 하지 않을까, 귀찮으니까, 하는 거죠. 그런 다 이유가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런 다 이유가 있는 거지먼 그 배후에는 내가 눠하러 꿀리며 살어 이것이 바로 내 마음 가운데 섬길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내가 먼저 가서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건냈다가 저 사람이 퉁명스럽게 나오면 내가 어떻 게 할 것인가 그것 때문에 나아지질 않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레 섬기는 겁니다. 또, 어디서 섬깁니까 우리 손으로 섬깁니다. 여기서는 누가 뭘 해야 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동체란 말이지요.
그런데 알아서 열심히 가서 하사는 분이 있습니다. 그게 눈에 다 뜨입니다. 그럴때마다 마음속에서 참 감사하고 저런 분들이 교회 동동체안에 많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휴지가 있으면 없앤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들을 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배당 안에서만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원리가 우리의 삶의 원리여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으로 사는 이세상에서는 권력, 돈이 있는 사람들이 남들 섬깁니까 섬김을 받으면서 살아가죠. 내 것으로 섬김 받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것이 지금 예수께서 가르치는 것이예요. 삶 전체로 섬김의 삶을 실천하라, 그것은 내 발걸음으로도 나타납니다. 어디로 가느냐, 섬길려고 하는 일을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이것을 실현해 나가야지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중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 그 공동체에 나가니까 사람들이 서로 섬길려고 하는 구나 그렇게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놀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을 받는 것이예요. 다른 모든일이 다 잘 된다고 해도 이 일이 안 돼 버리변 우리는 사명을 다 못하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 이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 우리가 이 원리에 충실할거야 아니면 이 원리는 휘생시켜 버리고 일이 좀 되게 할거냐, 그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 딜레마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 중심보다 일 중심으로 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나도 안하면 문제가 안 생기는데 무언가 일을 열심히 할려면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일을 열심히 할려고 하는 마음은 좋은거죠.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의 생각의 모든것이 일 중심으로 종향이 되어 버려요 그러면 사람이 안 보입니다. 우리는 뭘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 겁니까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삽니다. 그러죠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서러 섬기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는데 막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우리가 정말 중요시 해야 될 사람들이 안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일을 열심히 하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 비재합니다. 우리는 중,고들학교때 학생회 일을 열심히 해 보면 그런 일이 잘 드러납니다. 열심히 하다가 사람들에게 이모 저모를 다 상처만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원리가 안 드러나는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일을 중심으로 하지 마세요. 이것은 사람들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그것을 중요하게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잘 될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손과 발을 여는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 공동체의 모습이 잘 드러나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빼지 못하고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좋은데 맨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얼마나 챙피했겠습니까. 세베데의 두 아들과 그 어머니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높아지길 원했을 때 분을 낸 나머지 열 제자도 얼마나 챙피했겠어요. 우리가 삼년 주님을 따라 다녔는데 우리가 겨우 이런가 그랬겠죠. 그래서 맨 처음에는 아! 그래서는 안되고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커다란 교훈이었을 겁니다. 루리가 서러 섬기는 삼ㅎ을 살아야 된다는 이 원리가 우리를 지배해야 된다 그런 마음속에 빠집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게 기록돼 있으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읽다보니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 그렇구나 우리도 제자들과 동일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구나 그게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아야 하는구나 이 세상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 사람들만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게 이 세상앞에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원리가 되는 거죠. 이 사람들이야 말로 이 세사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로 살아나간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 아니예요 그 이상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빛을 바라느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렇게 하긴 하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면 예스님의 말씀에 “너흔중에 그렁지 아니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크고자 하는데 크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면 내가 종이 되어 버리면 나중에는 커질 수 있지 읺을까. 이것을 거꾸로 이용해 먹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이게 결국은 어떤 결과를 나타내느냐 하면 예수께서 애써 고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우리 마음의 못된 성향이 그대로 잠존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가운데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원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그 마음은 아예 그 마음이 없어진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그것이 잠존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용해 먹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마음 가운데 이 원리를 마음속에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모든 이 세상적인 질서가 들어와서 판을 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워 볼 수 없고 “여기서도 이 세상에 있는 것과 똑 같네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죠. 대개 그런 요소를 아예 없애 버릴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언제나 우리가 이 세상이 있는 한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런 오해나 실망을 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이런 실망의 과정을 겪어 나갑니다. 그것을 잘 겪으셔야 합니다. 맨 처음 예수님을 처음 믿으면 별천지 같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제 아 좋다 좋다 하다가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어, 여기도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나이드신 분들이 합니다. 그 대 어떤 사람들은 싱앙을 아예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때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고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정말 성령이 가르쳐 주는대로 고칠려고 실천을 하고 계속 그렇해 해 나가야 합니다. 그 원리를 보면 그래서 혹시 여러분이 공동체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배워 나가다가 별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았을때 내가 먼저 일을 하겠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슷한 마음이 어디서 생길수 있느냐 하면 어떤 사림이 이것을 예수님에게 배우고서 나는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그런 공동체여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비쳐야 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매일 일하는 사람은 나 뿐 이거든요. 왜 매일 나만 이래야 되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안돌려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열심히 애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공동체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죠. 그리고 혹시 왜 나만 이렇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게 되거든 그 때 더욱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들은 언제나 생기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미묘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에 그 서로 섬긴다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드러나요, 교회가 무슨 일을 해 나갈때도 이 원리에 따라 해 나가야 합니다. 이 원리가 드러나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알아서들 그 원리가 드러나게끔 의견도 내고 그렇게 일도 제한하고 그렇게 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일해 나갈 때도 각자 그 원리에 따라 해 나간단 말입니다. 여기서는 누가 이렇게 하지고 해서 되는데가 아니니까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교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원리가 여기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아주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인데, 제가 전도사 역할을 아주 오래 했었습니다. 78-92년도 까지 전도사였어요. 왜 이렇게 전도사를 오래 했는가.
그런데 전도사님들은 뭐 하는 분들이냐 하면 목사님들 하고 같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원칙상 같은 일을 하시는 동역자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 하면, 직장에서 상사와 밑에 있는 사람같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이 속에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물론 목사님은 나이가 많으시고 전도사는 어리니까 자연스럽게 일이 됩니다 만은 만일에 우리 의식이 그런 원리에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와 밑에 있는 사람을 부리듯이 그렇게 해 나가면 그것은 일은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예를 통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관계, 즉 행정적이든 교육적이든 모든 일에 있어서 이 원리가 우리를 지배해야 합니다. 이 원리를 떠나는 한 우리는 “너희 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라는 예수님의 말씀하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너희 중에서도 이 세상에 권세를 부리는 것과 똑같으니” 그러면 우리는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말씀을 중요시 해야 합니다. 정말 “너희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저희 중에서는 모두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이 원리가 우리 가운데서 잘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원리에 충실히 하여서 우리의 삶 전체를 주 앞에 드리고 다른 사람과 성도들을 향하여서 우리의 가슴과 손과 발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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