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증표-복음의 선포 (갈1:6-10)
본문
오늘은 우리가 종려주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면 종려나무라는 나무가 있어요. 예수께서 따져보면 오늘에 해당하는 날 예루살렘 성전으로 입성 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적이 많죠. 유대인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 많이 들어가요. 그러나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예수께서 의미를 부여하시고 거기에 참여를 하시기 위해서 들어 가십니다. 어떤 식으로 들어 가시는가 하면 어린 나귀를 하나 준비해라. 제자들한테 어린 나귀를 하나 끌로 끌고 오라고 하고 예수께서 그 나귀에 앉으셔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을 하십니다. 아주 독특하단 말이죠. 제자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스가랴서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우리한테 오실 때는 그는 아주 겸손하셔서 나귀에 타셨음이니라. 그런 예언이 있는데 그 예언을 이뤄주시기 위해서 이 나귀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입성했다고 합니다. 그럴때 아까 그 종려나무가 왜 나오는가 하면,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이 이 나무를 흔들면서 아 !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라고 하면서 환영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종려주인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하는 말은 이제 하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구원하실 분을 보내신다 그런 것을 구약 성경에서 배운 사람들이 아 ! 예수님이 그런 분으로 오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호산나 하는 말은 우리를 이제 구원해 주옵소서 하는 겁니다. 이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이제 우리를 구원해 주옵소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말하는 백성들의 마음하고 예수님의 마음하고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예수님이 왕으로 입하시면 정말 영광의 왕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크다란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모든 로마의 압제를 재배해 버리고 그런 정치적인 메시야로서 오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줄 알았어요. 그래서 환영한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혁명을 일으켜서 왕으로 옥립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시거든요. 이제 이번주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마지막 한 주간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무슨 왕이 이르느냐, 무슨 메시야가 그러느냐, 나중에 이 사람들의 기대가 변해가니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렇게 말한 사람들의 말이 변해가지고서 목요일쯤 되어서는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그런단 말이예요. 그 민중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합니다. 왜 자기들의 기대하고 예수가 안 맞거든요.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오면 이것을 도와 주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내 기도에 맞게 안해주거든요. 그러면 내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게 아주 커다란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내 기대에 맞게 바꿔놓는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때는 예수님이 기대에 안 맞으면 예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 기대에 안 맞으면 예수님을 자기 기대에 맞게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맞는 예수님을 만들어 버려요. 우리에게 좋은 예수님, 한국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많아요. 우리한테 좋은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바꿔 버립니다. 아 ! 용서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그래 하나님의 일이야. 그렇게 바꿔 버리는 거예요. 그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네 안 맞는다고 해서 예수님으로 부터 도망 가서도 안 되겠고, 마음에 안 맞는다고 예수님을 바꿔 놓을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을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고난을 받으신 주간이라는 말이죠. 목요일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니다. 그리고서 금요일날 무덤속에 있어셨어요. 토요일날 무덤속에 있었고, 토요일은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안식후 첫 날 그러니까 주일날이죠. 그러니까 다음주일날 예수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세요. 그래서 그것을 부활주일, 우리가 다음 주일을 부활주일로 기쁨의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주일의 기쁨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나가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잘 보여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대게 이번주간을 잘 거룩하게 지켜 볼려고 너력합니다. 좋은 노력입니다. 이번주에는 우리가 평소에 안하던 성경도 열심히 보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그것은 나쁜게 아니고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 주간에 고난주간 특별 기도회를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때 새벽기도회에 못나오신 분들 이런때는 이런 때는 나와 보시는게 좋죠. 특별히 목요일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하신날. 금요일날, 토요일날, 예수님이 무덤속에 있으신날 잘 생각을 하시고 열심히 주님 앞에서 성실히 살아가야 되겠다. 이번주간만은 내가 정말 금식이라도 하면서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게 좋아요.
그런데 그것이 가끔 가다가 사람들을 타락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이다. 우리가 이번주간을 잘 지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 사람들을 타락 시킵니다. 어떻게 타락 시키느냐,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면, 정상적인 경우에는 이번주간에 잘하고 그런 마음을 계속해서 평생을 그렇게 살 마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주님이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나 그러면 그러면 내가 이제 나의 삶을 어떻게 고난을 받으면 살 것인가, 주님을 위해 살것인가, 그렇게 되잖아요. 그걸 위해서 주님께서 교회력을 설정하시고 그렇게 생각하겠끔 하는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느냐면, 고난주간만 열심히 삽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말짱 도루묵이고 헛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주간을 잘 지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주간이예요. 우리 경우에는 결국 3주가 그럴텐데요. 원래는 다음주일날 우리가 성찬을 해야 되는데, 다음주일날 안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주일날 이 광길 목사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실텐데 성찬을 해버리면 말씀하실 시간이 줄어드니까 성찬을 그 다음, 다음 주간쯤 할까 합니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하려면 우리가 보통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몇주간을 성실히 지내야 하는데 그 몇주간을 주님 앞에서 정말 주님의 말씀을 잘 받을 마음으로 지낸다고 할 때 바지지 말아야 할 유혹이 뭐냐면 이 주간만 내가 신실하게 지내겠다. 그런거예요. 그 다음에는 내 마음대로 산다. 이게 아주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언제냐면 교회가 아주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 금요일 그 때를 기점으로 해서 세기를 며칠을 센느냐 하면 거꾸로 뒤로 40일 셌어요. 옛날 교회가 그 40일 동안, 1년 중에서 그 40일은 주님 앞에서 아주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좀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그렇게 했어요.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의도는 그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때도 그렇게 살자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면 그 때만 열심히 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교회는 그 때는 고기도 안 먹습니다. 주님이 고난을 받았는데 내가 고기 먹으면서 음식 좋은 것 차려 먹으면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사순절 전에는 다른 다른 사람 생각하지 않고 떵떵 거리면서 산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 의미가 있겠어요. 없어요 그래서 마음속에 이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이 이 한 주간 동안 고난 받으신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번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그 전체가 고난이었습니다. 왜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처럼 이렇게 살 필요가 없어요.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세요. 그 분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산다는 자체가 고난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살아갈때 제일 어땠을 때 고난스럽습니까 신체적으로 고난스러운 것은 견딜 수 있어요. 제일 고난스러운 것은 저 사람이 도무지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때, 고난스럽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사람들을 사랑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는 의도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셰상에 예수님이 살아갈때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얼마나 고난스럽겠어요. 그것이 영혼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그 평생을 그렇게 고난스럽게 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이예요. 그래서 이번 주일을 고난주간이라 했을 때 우리가 이번 주간만 거룩하게 지내려고 하는 환상에서 깨십시요.
그런데 이번 주간을 거룩하게 지내는 일로 부터 시작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다른지는 아시겠지요. 여태까지는 못했으니까 이번 주간을 거룩하게 지내는 일로 부터 시작하셔서 주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에 무엇이 중요한가 하면 여러분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교인된 의무를 다해 나가는 것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습니까 그래서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한가지 이야기해 드릴께요. 제가 국민학교 때 들은 애기가 있어요. 여러번 한 이야기입니다만은 어떤 사람이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그러죠. 어떤 친구가 가는데 징검다리가 있어요. 징검다리를 밟고 가는데 징검다리 하나가 없어요. 뜰만 하거든요 그래서 뛰어갔어요. 또 가는데 이번에는 징검다리가 한 수십개가 없어요. 한 다섯개쯤 없다고 합시다. 도무지 뛰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막 웁니다. 울고 있는데 저쪽에 천사가 나타났어요. 아니 여기는 없어가지고 왜 나를 못가게 합니까 천사가 물어봅니다. “너 이 징검다리가 뭔줄아냐 이 징검다리가 네가 주일날 예배당에 참석한 회수이다” 한 번은 가다가 빠졌어요. 그것은 뛰어갈 수가 있어요. 다섯주일 빠졌어요. 못간단 말이예요. 그 이야기가 애들한테 아! 내가 주일날 빠지지 않고 가야되겠다는 마음을 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아주 나쁜 이야기입니다. 왜 나쁜 이야기냐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되는 것이, 내가 노력하므로써 하나님나라 백성되요 여러분이 주일날 이렇게 참석했기 때문에 “너 착하다 그래서 내가 너 하나님나라 백성 삼아줄께”그럽니까 그게 아니예요. 복음은 그게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뭘 해서 구원 얻는게 아닙니다. 복음은 인간은 어떤 상황가운데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잘못한 다음부터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한다는게 아니고 뭘 하면 하는데 하는 것이 전부다 하나님께 반대되는 일만 한다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만 해 나가죠. 우리 스스로만 일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뭘 해도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노력해 가지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가르쳐주고 그 율법을 지키라고 해도 그 율법을 하나님이 요구하는 철두철미한 수준에서 다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 교회들이 어떻게 했느냐면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잘 안 될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자.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우리의 원죄가 없어진다. 그렇게 해보자. 그것은 옳은 생각은 아닙니다. 옛날 교회가 그렇게 잘못 생각한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누구의 책임이예요. 거기까지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줬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내 책임이라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하느냐. 하나님 앞에서 구원 받을 만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예요. 그렇게 가르치면 여러분이 좀 열심히 살 것 같죠.
그런데 그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하나는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수준에 못 가는 거예요. 우리 것으로 가지고서는 성경이 뭐라고 하냐면 우리가 행하는 의는 다 떨어진 누더기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핸하는 나쁜것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좋게 해주는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표준에 비춰보면 다 떨어진 누더기 같다고 합니다. 그것 가지고 구원 얻겠어요 그것가지고 아무리 쌓아봤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거예요.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게 절망해야 합니다. 안되는 거예요. 물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안되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한 번 읽어서 구원을 얻습니까 아니예요. 성경 읽어서 구원얻는 것 아니예요. 주일날 예배 참석해서 구원 얻는 거예요 아니예요. 주일날 예배참석 한다고, 예배당에 가서 헌금 한다고 구원 얻는 것 아니예요. 인간이 행하는 어떤것으로서는 구원얻는 것이 한가지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여기에서 철두철미 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복음이 들어오는 거예요. 예수께서 너 할 수 없지 내가 다 해줬다. 이제 낭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그게 복음으로 들리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복음으로 들릴리가 없어요. 예수님이 뭔데 그렇게 된단 말이예요.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해서 다 이뤄줬다. 그 말씀하심을 붙밪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물속에 빠진 사람이 뭐라도 붙잡고 싶겠죠. 그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다 이루어주었다. 그러면 그것을 붙잡아야 되잖아요. 복음은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어줬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못하는데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예요. 구원은 하나님이 혼자 하는 겁니다. 내가 그 일에 협동한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단독적으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다음에 하나님 !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 들이는 것이지요. 붙잡는 그 자체가 의롭습니까 그것 의로운 것 아니예요. 그것은 마치 뭐 같으냐면 예수님이 나는 안되니까 그냥 날 받아 주십시요.그리고 나를 예수님한테 던져 넣는 거예요. 예수님께 기대는 거예요. 그게 믿음입니다.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전혀 안되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시뵤시요. 예수님이 해 주시면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지십시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믿는 것이고 복음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오늘 마씀드리는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회입니다. 교회가 진짜 교회인가 아닌가를 판결하는 구분이 뭔가 하는 것이 종교개혁시대 때 그것이 심각한 문제였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복음을 진짜로 선포해 주는가, 아니면 이 복은을 가리우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진짜 교회인가 아닌가가 판가름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계속 사시면 호산교회 교인이셔야 하지만 혹시 이사를 한다면 어떤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 곳에 가서 교인이 됩니까 아니예요 진짜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지요. 그럼 진짜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중에 하나를 배워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그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가 아닌가
그런데 복음의 내용은 뭐예요.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 오직 하나님만 하신다. 그렇죠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게 아주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인간이 뭔가 좀 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굉장하긴 하죠.
그런데 인간도 뭔가 뭔가 되고 뭐좀 해야지.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구원해 주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게 우리들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기독교회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그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가느냐 그거예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면 그냥 예수님께 기대서 살아가는 겁니다. 예수님께 나는 안되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요.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요. 예수님이 다 해줬다고 그러는데, 만일에 그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나오면 그것은 곤란 합니다. “예수님이 다 해줬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나는 마음대로 살면 되겠네요. 내 멋대로 살면 되겠네요” 그런 반응이 나오겠끔 되어 있어요. 사람들의 심리가 바울이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네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네가 율법 지켜서 구원 얻는것 아니란다.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루어주셨다. 그것만 믿어라”고 했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요 그럼 나는 아무것도 손씻고 가만 있어면 되겠네요. 나는 내 멋대로 살면 되겠네요”그렇게 이야기한 사람도 있어요. “은혜가 더하게 하려고 우리가 죄에 거하겠느냐” 바울은 말하기를 “그럴 수 없느니라” 그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그런 마음이 아예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그 이야기가 들려 오는데 그럼 나느 내 마음대로 살겠네요. 그렇게 해서 마음이 오겠습니까 정상작인 마음이 어떻게 와야돼요. 그래요 내가 여태까지 노력했는데 그것으로 안되는데 하나님 !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해서 살겠지요 그래서 감사하기 때문에 예수님 ! 예수님은 날 그렇게 구원해 주셨는데 예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데요. 그래서 그것을 찾아 보려고 성경 열심히 보는거예요. 성경 백 번 읽는다고 구원어어요 아니예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백 번 일고 천 번 읽기를 원해요. 예수님의 뜻을 알고 싶으니까 그게 좋은 거예요. 그 사람한테. 그게 우리에게 있어져야 되는 겁니다. 내가 이것 읽는다고 해서 구원 얻는 것 아니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읽게끔 되어있단 말이예요.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 참석한다고 해서 구원얻는 것 아닙니다. 그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주일날 참석 안한다고 징검다리 하나가 비는 것 아니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러면 아 ! 주일날 예배 다 빠져도 되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감사한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돼요. 그래야 그게 예수님 믿는 사람의 마음이예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셨다/ 그 사실이 생각할수록 정말 놀라운거예요. 나는 애써도 안되는데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 그게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되겠어요. 하나님 ! 감사합니다. 감사하니까 뭘 좀 해야 될까요. 우리가 사람한테 조그만 은혜를 받아도 어떻게 해 드릴까요 이렇게 하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내가 한 것은 손톱만큼도 없는데,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 밖에 없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동이 가만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복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돼요.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워야 돼요. 억지로 예수믿는 사람의 의무는 이겁니다. 이겁니다. 이겁니다해서 그게 되는게 아니고 내 마음속에서 아 !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군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면서 그게 되어야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사는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게 우리 속에서 되어질 것인가 그게 문제입니다. 그게 되게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깨닫고 또 우리가 그럼 예수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하나님 앞에서 그 뜻을 좀 더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모임을 자주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렇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복음은 정말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바울이 여기 갈라디아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 이야기를 가리우거나 아니 그래도 네가 뭐 좀 해야돼. 네가 아무것도 안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어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내가 해서 얻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할 일은 아 ! 하나님이 다 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서 사는 거예요. 예수님 앞에 그것을 받아 들이고 예수님을 붙잡고 가는 거예요. 그것(복음)을 다르게 가르치면 그 사람에게 저주가 있으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가 좋은 말만 해야 될 사람이 저주가 있을지어다라고 한 것은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이 복음의 복음된 것을 가리우는 일이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하게끔 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거예요. 내가 감사하니까 하는 거예요. 내가 해서 구원 받아요 내가 주인날 예베 참석해서 구원 받아요 아니예요.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안할 수 없어서하는 거예요. 바라기는 우리가 이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도록, 우리가 이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서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그 은혜속에서 감사해서 사는 삶을 우리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스가랴서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우리한테 오실 때는 그는 아주 겸손하셔서 나귀에 타셨음이니라. 그런 예언이 있는데 그 예언을 이뤄주시기 위해서 이 나귀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입성했다고 합니다. 그럴때 아까 그 종려나무가 왜 나오는가 하면,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이 이 나무를 흔들면서 아 !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라고 하면서 환영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종려주인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하는 말은 이제 하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구원하실 분을 보내신다 그런 것을 구약 성경에서 배운 사람들이 아 ! 예수님이 그런 분으로 오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호산나 하는 말은 우리를 이제 구원해 주옵소서 하는 겁니다. 이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이제 우리를 구원해 주옵소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말하는 백성들의 마음하고 예수님의 마음하고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이제 예수님이 왕으로 입하시면 정말 영광의 왕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크다란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모든 로마의 압제를 재배해 버리고 그런 정치적인 메시야로서 오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줄 알았어요. 그래서 환영한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혁명을 일으켜서 왕으로 옥립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시거든요. 이제 이번주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마지막 한 주간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무슨 왕이 이르느냐, 무슨 메시야가 그러느냐, 나중에 이 사람들의 기대가 변해가니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렇게 말한 사람들의 말이 변해가지고서 목요일쯤 되어서는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그런단 말이예요. 그 민중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합니다. 왜 자기들의 기대하고 예수가 안 맞거든요.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오면 이것을 도와 주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내 기도에 맞게 안해주거든요. 그러면 내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게 아주 커다란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내 기대에 맞게 바꿔놓는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때는 예수님이 기대에 안 맞으면 예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 기대에 안 맞으면 예수님을 자기 기대에 맞게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맞는 예수님을 만들어 버려요. 우리에게 좋은 예수님, 한국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많아요. 우리한테 좋은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바꿔 버립니다. 아 ! 용서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그래 하나님의 일이야. 그렇게 바꿔 버리는 거예요. 그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네 안 맞는다고 해서 예수님으로 부터 도망 가서도 안 되겠고, 마음에 안 맞는다고 예수님을 바꿔 놓을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을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고난을 받으신 주간이라는 말이죠. 목요일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니다. 그리고서 금요일날 무덤속에 있어셨어요. 토요일날 무덤속에 있었고, 토요일은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안식후 첫 날 그러니까 주일날이죠. 그러니까 다음주일날 예수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세요. 그래서 그것을 부활주일, 우리가 다음 주일을 부활주일로 기쁨의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주일의 기쁨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나가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잘 보여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대게 이번주간을 잘 거룩하게 지켜 볼려고 너력합니다. 좋은 노력입니다. 이번주에는 우리가 평소에 안하던 성경도 열심히 보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그것은 나쁜게 아니고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 주간에 고난주간 특별 기도회를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때 새벽기도회에 못나오신 분들 이런때는 이런 때는 나와 보시는게 좋죠. 특별히 목요일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하신날. 금요일날, 토요일날, 예수님이 무덤속에 있으신날 잘 생각을 하시고 열심히 주님 앞에서 성실히 살아가야 되겠다. 이번주간만은 내가 정말 금식이라도 하면서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게 좋아요.
그런데 그것이 가끔 가다가 사람들을 타락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이다. 우리가 이번주간을 잘 지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 사람들을 타락 시킵니다. 어떻게 타락 시키느냐,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면, 정상적인 경우에는 이번주간에 잘하고 그런 마음을 계속해서 평생을 그렇게 살 마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주님이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나 그러면 그러면 내가 이제 나의 삶을 어떻게 고난을 받으면 살 것인가, 주님을 위해 살것인가, 그렇게 되잖아요. 그걸 위해서 주님께서 교회력을 설정하시고 그렇게 생각하겠끔 하는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느냐면, 고난주간만 열심히 삽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말짱 도루묵이고 헛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주간을 잘 지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주간이예요. 우리 경우에는 결국 3주가 그럴텐데요. 원래는 다음주일날 우리가 성찬을 해야 되는데, 다음주일날 안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주일날 이 광길 목사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실텐데 성찬을 해버리면 말씀하실 시간이 줄어드니까 성찬을 그 다음, 다음 주간쯤 할까 합니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하려면 우리가 보통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몇주간을 성실히 지내야 하는데 그 몇주간을 주님 앞에서 정말 주님의 말씀을 잘 받을 마음으로 지낸다고 할 때 바지지 말아야 할 유혹이 뭐냐면 이 주간만 내가 신실하게 지내겠다. 그런거예요. 그 다음에는 내 마음대로 산다. 이게 아주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언제냐면 교회가 아주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 금요일 그 때를 기점으로 해서 세기를 며칠을 센느냐 하면 거꾸로 뒤로 40일 셌어요. 옛날 교회가 그 40일 동안, 1년 중에서 그 40일은 주님 앞에서 아주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좀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그렇게 했어요.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의도는 그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때도 그렇게 살자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면 그 때만 열심히 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교회는 그 때는 고기도 안 먹습니다. 주님이 고난을 받았는데 내가 고기 먹으면서 음식 좋은 것 차려 먹으면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사순절 전에는 다른 다른 사람 생각하지 않고 떵떵 거리면서 산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 의미가 있겠어요. 없어요 그래서 마음속에 이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이 이 한 주간 동안 고난 받으신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번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그 전체가 고난이었습니다. 왜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처럼 이렇게 살 필요가 없어요.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세요. 그 분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산다는 자체가 고난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살아갈때 제일 어땠을 때 고난스럽습니까 신체적으로 고난스러운 것은 견딜 수 있어요. 제일 고난스러운 것은 저 사람이 도무지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때, 고난스럽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사람들을 사랑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는 의도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셰상에 예수님이 살아갈때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얼마나 고난스럽겠어요. 그것이 영혼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그 평생을 그렇게 고난스럽게 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이예요. 그래서 이번 주일을 고난주간이라 했을 때 우리가 이번 주간만 거룩하게 지내려고 하는 환상에서 깨십시요.
그런데 이번 주간을 거룩하게 지내는 일로 부터 시작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다른지는 아시겠지요. 여태까지는 못했으니까 이번 주간을 거룩하게 지내는 일로 부터 시작하셔서 주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에 무엇이 중요한가 하면 여러분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교인된 의무를 다해 나가는 것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습니까 그래서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한가지 이야기해 드릴께요. 제가 국민학교 때 들은 애기가 있어요. 여러번 한 이야기입니다만은 어떤 사람이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그러죠. 어떤 친구가 가는데 징검다리가 있어요. 징검다리를 밟고 가는데 징검다리 하나가 없어요. 뜰만 하거든요 그래서 뛰어갔어요. 또 가는데 이번에는 징검다리가 한 수십개가 없어요. 한 다섯개쯤 없다고 합시다. 도무지 뛰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막 웁니다. 울고 있는데 저쪽에 천사가 나타났어요. 아니 여기는 없어가지고 왜 나를 못가게 합니까 천사가 물어봅니다. “너 이 징검다리가 뭔줄아냐 이 징검다리가 네가 주일날 예배당에 참석한 회수이다” 한 번은 가다가 빠졌어요. 그것은 뛰어갈 수가 있어요. 다섯주일 빠졌어요. 못간단 말이예요. 그 이야기가 애들한테 아! 내가 주일날 빠지지 않고 가야되겠다는 마음을 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아주 나쁜 이야기입니다. 왜 나쁜 이야기냐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되는 것이, 내가 노력하므로써 하나님나라 백성되요 여러분이 주일날 이렇게 참석했기 때문에 “너 착하다 그래서 내가 너 하나님나라 백성 삼아줄께”그럽니까 그게 아니예요. 복음은 그게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뭘 해서 구원 얻는게 아닙니다. 복음은 인간은 어떤 상황가운데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잘못한 다음부터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한다는게 아니고 뭘 하면 하는데 하는 것이 전부다 하나님께 반대되는 일만 한다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만 해 나가죠. 우리 스스로만 일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뭘 해도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노력해 가지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가르쳐주고 그 율법을 지키라고 해도 그 율법을 하나님이 요구하는 철두철미한 수준에서 다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 교회들이 어떻게 했느냐면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잘 안 될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자.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우리의 원죄가 없어진다. 그렇게 해보자. 그것은 옳은 생각은 아닙니다. 옛날 교회가 그렇게 잘못 생각한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누구의 책임이예요. 거기까지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줬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내 책임이라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하느냐. 하나님 앞에서 구원 받을 만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예요. 그렇게 가르치면 여러분이 좀 열심히 살 것 같죠.
그런데 그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하나는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수준에 못 가는 거예요. 우리 것으로 가지고서는 성경이 뭐라고 하냐면 우리가 행하는 의는 다 떨어진 누더기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핸하는 나쁜것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좋게 해주는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표준에 비춰보면 다 떨어진 누더기 같다고 합니다. 그것 가지고 구원 얻겠어요 그것가지고 아무리 쌓아봤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거예요.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게 절망해야 합니다. 안되는 거예요. 물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안되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한 번 읽어서 구원을 얻습니까 아니예요. 성경 읽어서 구원얻는 것 아니예요. 주일날 예배 참석해서 구원 얻는 거예요 아니예요. 주일날 예배참석 한다고, 예배당에 가서 헌금 한다고 구원 얻는 것 아니예요. 인간이 행하는 어떤것으로서는 구원얻는 것이 한가지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여기에서 철두철미 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복음이 들어오는 거예요. 예수께서 너 할 수 없지 내가 다 해줬다. 이제 낭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그게 복음으로 들리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복음으로 들릴리가 없어요. 예수님이 뭔데 그렇게 된단 말이예요.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해서 다 이뤄줬다. 그 말씀하심을 붙밪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물속에 빠진 사람이 뭐라도 붙잡고 싶겠죠. 그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다 이루어주었다. 그러면 그것을 붙잡아야 되잖아요. 복음은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어줬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못하는데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예요. 구원은 하나님이 혼자 하는 겁니다. 내가 그 일에 협동한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단독적으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다음에 하나님 !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 들이는 것이지요. 붙잡는 그 자체가 의롭습니까 그것 의로운 것 아니예요. 그것은 마치 뭐 같으냐면 예수님이 나는 안되니까 그냥 날 받아 주십시요.그리고 나를 예수님한테 던져 넣는 거예요. 예수님께 기대는 거예요. 그게 믿음입니다.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전혀 안되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시뵤시요. 예수님이 해 주시면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지십시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믿는 것이고 복음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오늘 마씀드리는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회입니다. 교회가 진짜 교회인가 아닌가를 판결하는 구분이 뭔가 하는 것이 종교개혁시대 때 그것이 심각한 문제였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복음을 진짜로 선포해 주는가, 아니면 이 복은을 가리우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진짜 교회인가 아닌가가 판가름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계속 사시면 호산교회 교인이셔야 하지만 혹시 이사를 한다면 어떤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 곳에 가서 교인이 됩니까 아니예요 진짜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지요. 그럼 진짜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중에 하나를 배워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그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가 아닌가
그런데 복음의 내용은 뭐예요.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 오직 하나님만 하신다. 그렇죠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게 아주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인간이 뭔가 좀 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굉장하긴 하죠.
그런데 인간도 뭔가 뭔가 되고 뭐좀 해야지.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구원해 주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게 우리들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기독교회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그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가느냐 그거예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면 그냥 예수님께 기대서 살아가는 겁니다. 예수님께 나는 안되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요.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요. 예수님이 다 해줬다고 그러는데, 만일에 그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나오면 그것은 곤란 합니다. “예수님이 다 해줬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나는 마음대로 살면 되겠네요. 내 멋대로 살면 되겠네요” 그런 반응이 나오겠끔 되어 있어요. 사람들의 심리가 바울이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네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네가 율법 지켜서 구원 얻는것 아니란다.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루어주셨다. 그것만 믿어라”고 했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요 그럼 나는 아무것도 손씻고 가만 있어면 되겠네요. 나는 내 멋대로 살면 되겠네요”그렇게 이야기한 사람도 있어요. “은혜가 더하게 하려고 우리가 죄에 거하겠느냐” 바울은 말하기를 “그럴 수 없느니라” 그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그런 마음이 아예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그 이야기가 들려 오는데 그럼 나느 내 마음대로 살겠네요. 그렇게 해서 마음이 오겠습니까 정상작인 마음이 어떻게 와야돼요. 그래요 내가 여태까지 노력했는데 그것으로 안되는데 하나님 !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해서 살겠지요 그래서 감사하기 때문에 예수님 ! 예수님은 날 그렇게 구원해 주셨는데 예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데요. 그래서 그것을 찾아 보려고 성경 열심히 보는거예요. 성경 백 번 읽는다고 구원어어요 아니예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백 번 일고 천 번 읽기를 원해요. 예수님의 뜻을 알고 싶으니까 그게 좋은 거예요. 그 사람한테. 그게 우리에게 있어져야 되는 겁니다. 내가 이것 읽는다고 해서 구원 얻는 것 아니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읽게끔 되어있단 말이예요.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 참석한다고 해서 구원얻는 것 아닙니다. 그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주일날 참석 안한다고 징검다리 하나가 비는 것 아니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러면 아 ! 주일날 예배 다 빠져도 되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감사한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돼요. 그래야 그게 예수님 믿는 사람의 마음이예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셨다/ 그 사실이 생각할수록 정말 놀라운거예요. 나는 애써도 안되는데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 그게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되겠어요. 하나님 ! 감사합니다. 감사하니까 뭘 좀 해야 될까요. 우리가 사람한테 조그만 은혜를 받아도 어떻게 해 드릴까요 이렇게 하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내가 한 것은 손톱만큼도 없는데,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 밖에 없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동이 가만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복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돼요.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워야 돼요. 억지로 예수믿는 사람의 의무는 이겁니다. 이겁니다. 이겁니다해서 그게 되는게 아니고 내 마음속에서 아 !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군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면서 그게 되어야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사는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게 우리 속에서 되어질 것인가 그게 문제입니다. 그게 되게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깨닫고 또 우리가 그럼 예수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하나님 앞에서 그 뜻을 좀 더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모임을 자주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렇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복음은 정말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바울이 여기 갈라디아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 이야기를 가리우거나 아니 그래도 네가 뭐 좀 해야돼. 네가 아무것도 안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어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내가 해서 얻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할 일은 아 ! 하나님이 다 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서 사는 거예요. 예수님 앞에 그것을 받아 들이고 예수님을 붙잡고 가는 거예요. 그것(복음)을 다르게 가르치면 그 사람에게 저주가 있으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가 좋은 말만 해야 될 사람이 저주가 있을지어다라고 한 것은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이 복음의 복음된 것을 가리우는 일이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하게끔 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거예요. 내가 감사하니까 하는 거예요. 내가 해서 구원 받아요 내가 주인날 예베 참석해서 구원 받아요 아니예요.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안할 수 없어서하는 거예요. 바라기는 우리가 이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도록, 우리가 이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서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그 은혜속에서 감사해서 사는 삶을 우리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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