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없는 삶과 하나님의 은혜 (엡2:1-32)
본문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하며 어두움 속의 삶인가 하는 것과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은혜스럽고 행복하며 좋은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수 없는 삶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1)
본문에는 "살리셨다"는 말이 작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이 단어가 없는데, 내용상으로는 이 단어가 들어가야 번 역상 문맥이 통하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넣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없는 삶이란 죄와 허물로 죽은 삶이며 영적으로 죽은 삶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단어는 굉장히 강한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세가지 죽음이 나옵니다.
첫째는 영적인 죽음인데 이것은 영혼과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인데 이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며 "지옥에 간다"혹은 "영원히 죽는다"는 표현으로 쓰여진 것 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죽었던"이란 말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의미로 쓰여 진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거의 죽어간다거나 절망적인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전혀 없고 완전히 죽었다는 강한 의미를 내포한 단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주인에는 죄, 세상 풍속,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등 세 부류가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고 하는 것은 목표에서 떠난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또한 죄인 줄알면서도 끊지 않고 선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 도 죄입니다.
세상 풍속이 우리들의 주인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세상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풍속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사탄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이는 바 로 사탄마귀로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에 공 중의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환경을 아무리 개선해도 소용 이 없고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죄가 얼마나 무섭 고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4)
이 구절을 원문에서 찾아보면 "그러나 하나님은-" 이라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말씀은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악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고 어두움 속에 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들을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세상이 비록 어둡고 죄악의 지배흘 받는다고 할지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나 하나님" 은 이란 단어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살리셨고" 라는 것은 중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과거에는 죄악의 지배를 받았고 세상의 풍속을 좇았으며 공 중 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래서 인간적인 면에서 희망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인하여 우리들을 중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세상의 일들을 볼 때 어두움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계심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비관적으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맙시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고대 사본에 의한 것이 아니 고 후기 사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괄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살려주셨고 거듭나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하 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오른편이라는 말은 '귀하다,영광스럽 다,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오른 장중에 품어주신다는 것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품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서양에서는 초대 받았을 때 주인의 부인 오른편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6절 말씀은 우리들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께서 계신 그곳에, 영광스러운 곳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 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7)
성경에는 선다는 말과 앉는다는 말이 있는데, 선다는 말은 종으로 봉 사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앉는다는 말은 통 치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미국에서 대통령도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앉아서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3.결론
우리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과거에 죄와 허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완전히 이별 되었던 상태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가 명령하는 대 로, 세상 풍속이 시키는 대로, 공중의 권세잡은 사탄 마귀가 시키는 대로, 좇아다녔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길을 보여주셨고 살 려주셨으며 영광의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 고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1. 예수 없는 삶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1)
본문에는 "살리셨다"는 말이 작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을 보면 이 단어가 없는데, 내용상으로는 이 단어가 들어가야 번 역상 문맥이 통하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넣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없는 삶이란 죄와 허물로 죽은 삶이며 영적으로 죽은 삶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단어는 굉장히 강한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세가지 죽음이 나옵니다.
첫째는 영적인 죽음인데 이것은 영혼과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인데 이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며 "지옥에 간다"혹은 "영원히 죽는다"는 표현으로 쓰여진 것 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죽었던"이란 말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의미로 쓰여 진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거의 죽어간다거나 절망적인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전혀 없고 완전히 죽었다는 강한 의미를 내포한 단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주인에는 죄, 세상 풍속,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등 세 부류가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고 하는 것은 목표에서 떠난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또한 죄인 줄알면서도 끊지 않고 선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 도 죄입니다.
세상 풍속이 우리들의 주인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세상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풍속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사탄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이는 바 로 사탄마귀로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에 공 중의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환경을 아무리 개선해도 소용 이 없고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죄가 얼마나 무섭 고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4)
이 구절을 원문에서 찾아보면 "그러나 하나님은-" 이라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말씀은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악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고 어두움 속에 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있으시고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들을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세상이 비록 어둡고 죄악의 지배흘 받는다고 할지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나 하나님" 은 이란 단어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살리셨고" 라는 것은 중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과거에는 죄악의 지배를 받았고 세상의 풍속을 좇았으며 공 중 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래서 인간적인 면에서 희망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인하여 우리들을 중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세상의 일들을 볼 때 어두움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계심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비관적으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맙시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고대 사본에 의한 것이 아니 고 후기 사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괄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살려주셨고 거듭나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하 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오른편이라는 말은 '귀하다,영광스럽 다,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오른 장중에 품어주신다는 것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품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서양에서는 초대 받았을 때 주인의 부인 오른편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6절 말씀은 우리들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께서 계신 그곳에, 영광스러운 곳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 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7)
성경에는 선다는 말과 앉는다는 말이 있는데, 선다는 말은 종으로 봉 사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앉는다는 말은 통 치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미국에서 대통령도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앉아서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3.결론
우리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과거에 죄와 허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완전히 이별 되었던 상태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가 명령하는 대 로, 세상 풍속이 시키는 대로, 공중의 권세잡은 사탄 마귀가 시키는 대로, 좇아다녔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길을 보여주셨고 살 려주셨으며 영광의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 고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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