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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서 (눅5:1-11)

본문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 생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처음 인간 이담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잃은 인간은 동시에 모든 춝복, 모든 능력도 함께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물속에서 물고기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생명과 능력을 동시에 잃어버리고 맙니다. 새는 공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동물원에 갇힌 맹수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능력은 저절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생명과 능력을 주시고자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넘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으므로 그가 주시는 넘치는 능력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생명과 능력을 주시고자 이 시간도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가 만난 주님을 우리도 만나기를 원하고, 베드로가 얻었던 생명과 능력을 우리도 얻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마다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자존심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눅10:27) 이 말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나를 전폭적으로 희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먼저 사랑하고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나를 크게 사랑하는 길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나에 대한 사랑이 가장 뒤에 나오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마16:26) 하나님은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영원하며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길은 지상 최고의 위치로 우리를 높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행하십니다. 우리를 끝없이 낮추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여기에서 가장 극한 갈등을 보이게 됩니다. 뭔가하면 내가 낮아지기를 원치 않으며 그렇게 낮추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의 길과 크고도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을 통해 진리의 교훈을 깨달으시고 주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시키십니다.
베드로는 어려서부터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로 자랐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갈릴리 바다에 나가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물을 당길 때마다 ‘또 실패구나’ 하면서 한숨만 낚아올릴 뿐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물을 내릴 힘도 용기도 없습니다. 뭍으로 나와 동료들과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 가운데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서서 말씀을 전하기가 불편하셨든지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 오셔서 그 배에서 무리를 향해 말씀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내심으로는 거절하고 싶었으나 뭔가 알지 못하는 권위 앞에 그는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지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시고 배에서 무리를 행하여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배의 주인인 베드로는 가장 가까이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베드로의 가슴에 큰 변화의 회오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진정으로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고기를 잡고 못 잡고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인생 문제를 해결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자. 베드로는 지금껏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단의 모든 권세를 꺾으실 만왕의 왕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하셨습니다. 말씀 자체는 감사하게 받았지만 이 명령은 순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고기 잡는 일에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어부로서 고기잡이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패했어도 ‘예수님, 그래도 당신보다는 제가 낫습니다.’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분명히 실패는 했는데 인정하기는 너무나 싫은 것입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지금 상태가 아닙니까 베드로는 순종합니다.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5:5-6)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 실패를 통해 부끄러움을 들춰내기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 실패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실패를 인정하면, 연약함을 고백하면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실패하면 능력의 주님이 승리로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벌써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어느날 저의 설교가 은혜가 안된다며 다른 교회를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붙잡자니 제가 너무 초라했고 비참했습니다. 두말없이 보내드렸습니다. 그 일이 제게는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당신의 신앙이 병들었으니까 그렇다. 다른 사람은 다 은혜를 받는데 왜 당신만 은혜를 못 받느냐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의 결과 자체는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가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때인 줄로 믿습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가 참다운 용기가 될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서울대학교를 지원한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자타 공히 누가 봐도 그 친구는 서울대학교에 갈만한 실력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모든 친구들이 다 만류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고집하여 서울대학교에 지원을 했습니다. 결과는 뻔히 예상했던 것처럼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에게서는 실패에 대한 좌절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몰래 그 친구가 비밀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왕 대학 시험을 쳐서 떨어질 바에야 서울대학교 시험봐서 떨어졌다고 해야 체면이라도 설 거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한 단면인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얼마 전에 끝난 아틀랜타 올림픽의 농구 경기를 보면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한 선수가 머리를 박박깎았는데 대머리는 아닌 듯 싶었습니다. 한참 생각하고난 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분명히 저 선수는 머리가 다 빠져가는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대머리는 되기 싫었습니다. 머리카락이 길면 잘 빠집니다. 머리를 박박 깎아서 표피 밖으로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으면 살속에 있어서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상은 대머리 형상입니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머리를 박박 깎아서 대머리 형상이 되어 있어도 그래도 나는 대머리가 아니다 하는 그 선수의 태도가 우스꽝스러워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만큼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는 능력의 주님을 붙잡게 되는 출발점이 됩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을 만드십니다.
베드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이러 이러한 죄를 지었지 하면서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앞에 서니까 자동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가 확실히 죄인입니다. 내가 죄임임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찌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느냐”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자기의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시킨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와에게 물으셨습니다. “하와야,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하와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당신이 만든 뱀이 와서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자신이 죄인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만큼 사람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자존심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죄인으로 서는 일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는 것입니다.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에게 죄의 기원과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독교는 죄를 지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죄인임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일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 입장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3.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과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일과 내가 실패했음을 고백하는 일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1 내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생명의 주님을 붙잡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생명되신 주님을 붙잡게 됩니다. 죄의 문제를 송두리째 해결하신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됩니다. 사단의 권세를 생명의 부활로 꺾으신 왕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는 선지자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입니다.
2 나의 실패를 인정할 때 능력의 주님을 붙잡게 됩니다.
내가 실패했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일이 왜 또 중요합니까 나의 연약함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나의 무력함 때문에 또 실패할 것을 압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능력되신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전지하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한 그 시간에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릴 때 그곳에 물고기가 없었다 할지라도 있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기가 두려우십니까 주님은 책망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그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용서하고 죄와 심판의 사슬에서 풀어 자유케 하시기 위해 죄인이라는 당신의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세리와 창기가 죄인이지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 서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를 배척하는 가장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실패를 인정하는 일이 왜 또 중요합니까 인정하지 않는 한은 자기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내 능력과 내 방법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생명과 능력의 주님을 붙들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 발 아래 엎드려 나를 떠나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일생을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에 베드로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좇고 따라간 베드로는 본인이 생명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혼을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의 어부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1에는 그 날의 설교를 통해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을 제자로 주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4:4에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을 통해 오천명의 영혼을 건졌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방전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죄인된 자신을 건지신 주님이 다른 영혼도 건지기를 원하는 주님의 소원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인정하고 성령받고난 뒤에 베드로의 삶은 얼마나 능력이 있었습니까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4:19-20)
2 내일 죽게 될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잠자는 사람이 되었습니다.(행12:1-17)
3 다른 사람이 자신을 구원자로 착각할까봐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아 달라고 자청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를 떠나소서 말한 것은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닙니다. 자신을 죄인과 실패자라고 인정한 베드로가 생명과 능력의 주님을 그냥 떠나라고 말할 리가 만무합니다. 베드로의 말 뜻은 생명의 주님,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부탁한 것입니다. 실패한 나를 능력의 주님, 나로 승리케 하옵소서 부탁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죄인된 나를 건지시는 생명의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연약하고 무능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오늘 당신은 주님 앞에서 성공자입니까 실패자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바른 고백이 나오고 바른 주의 은혜가 있어 생명과 능력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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