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일이 없는 사람 (창37:19-23)
본문
일이 안 되는 사람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본문에 나오는 요셉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얼른 보기에 정말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요셉은 본래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37:3 보면 아버지 야곱(족장)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각별히 아꼈고, 특별히 그에게만 채색옷(귀족의 자제나 왕자들이 입는 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의 미움을 사서 하루 아침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인신매매를 당한 겁니다. 애굽 왕의 시위대장(수경사, 수방사 같은 부대 대장) 보디발의 집에 끌려가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부잣집 귀염둥이가 갑자기 천한 노예(당시엔 연장, 물건 취급을 당하던 존재)로 전락합니다. 청천 벽력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고달픈 세월을 잘 견뎠고 불행 중 다행으로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젠 시름을 잊고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엉뚱한 일이 벌어집니다. 착실하고 잘 생긴 게 죄는 아닐텐데, 그게 탈이 됩니다. 주인 마님이 요셉에게 반한 나머지 자꾸 유혹을 합니다. 하루는 집안에 단 둘이 있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옥신각신하다 요셉은 하는 수 없이 옷을 벗어 던진 채 도망을 합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고 했나요 그 여인은 악을 품고 요셉을 모함합니다. 적반하장 격으로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옷이 증거 아닌 증거물이 되고 맙니다. 격분한 보디발은 요셉을 당장 감옥에 가둡니다. 당시 법으로는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범하다 붙잡히면 즉결 처형입니다. 평소에 워낙 착실했기에 그쯤 해결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살 맛이 안날 겁니다. 이럴 때는 “여호와 하나님, 정말 계십니까 계시다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 짓다가 고통을 당했다면 할 말이 없겠는데 . 이런 경우는 잘못을 커녕 오히려 의를 지키려다가 고통과 수치를 당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하나님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단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 오시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해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아니면 혹시 지금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누구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경우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자칫 잘못하면 신앙이 흔들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생 살맛도 나지 않고, 자포자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저 구경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니고 인생 만사(큰 일에서 작은 일까지), 인류 역사,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을 주관하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이것이 우리의 기본 신앙입니다. 예수님도 증거해 주셨습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미련한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어두운 눈으로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고 일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참 신앙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이 그 정도까지 성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줄 아는 신앙! 이런 신앙만 갖춘다면 어떤 일을 만나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에게 닥쳐오는 일마다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신앙이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기록 어디를 봐도 그렇게 일이 안되고 꼬이는 상황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승리했고 애굽의 총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더 나아가 애굽과 당시 주변국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역경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굳센 신앙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요셉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피차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고통-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요셉에게 닥치는 일들은 한결같이 꼬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도 어려울 것 같이 일이 안됐습니다. 그가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감옥살이 하고는 영 딴판이기 때문에 . 지금이야 인권이 어떻고 말하지만, 그때야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당시 그는 노예 신분에다 죄수니까 짐승보다 나을 게 없을 정도입니다. 20절. ‘옥’은 사방이 둘러싸인 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도망칠 수도 없는 밀폐 장소입니다. 시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가기 막히는 상황입니다. 노예로 팔려온 것도 기가 막힌데, 이번엔 김옥살이니 . 얼른 생각하면 인되도 이렇게 안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들 겁니다. 그러나 이런 극한 상황에서 요셉에 보여준 모습은
[2] 요셉의 신앙-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회고해 보면 원망스러운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텐데 . 하나님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아버지 야곱은 왜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내서 노예로 팔리게 했단 말인가 형들은 왜 자기를 미워하고 노예로 팔았던가 노예 상인들은 왜 하필 보디발의 집에 팔았던가 그 아내는 왜 자기를 그렇게 모함하고 해쳤단 말인가 보디발 그는 자기 아내 하나 단속 못하고, 판단도 못한 채 나를 감옥에 넣었던가 . 원망할 대상과 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원망, 증오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성경 구절을 통해 임시 받을 수 있습니다. 시105:19 “ .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그 말씀은 요셉이 일찍이 받은 계시(창37:5-11 곡식단이 절하는 꿈, 해.달.별이 절하는 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계획)을 이루는 한 과정으로 여긴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의 한 과정으로 해석하는 신앙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기막힌 상황에서도 인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욥이 극한 시련을 끝까지 이길 수 있었던 비결도 이와 동일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욥1:21 “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날ㄹ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으시고, 신령한 지혜를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줄 아는 신령한 안목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요셉의 형통-결국 그는 참 기쁨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23절 보면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형통이라고 말하면 ‘일이 잘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이 표현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부잣집 아들이 노예가 되고, 그것도 부족해서 수치스런 죄수가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형통’입니까
그런데 분명히 성경은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과연 형통입니까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본 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 형통입니다. 1 인간의 눈으로 본 형통: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일이 되는 게 형통입니다. 대개 외형적, 물질적인 것에 집중됩니다. 돈이 잘 벌린다든지, 나보다 앞서 출세한다든지, . 물론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만 보고 형통이다 아니다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셉은 정말 불통도 최악 불통입니다.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눈으로 본 형통: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형통은 좀 다릅니다. 외형적으로 잘 되고 못 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잘 되고 못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 계획이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통이란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 (물론 현실적으로 외형적으로 일이 잘 되면서 하나님의 계획으로 진행된다면 금상첨화이죠. 그러나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게 우리인생의 현실인 것입니다.) 거꾸로 아무리 현실적으로 일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딴 길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것은 불통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방향이 맞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혹은 인생의 큰 그림이 잘 그려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형통입니다. 3 요셉의 형통:그의 현실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억울하고 기가 막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큰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리켜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39:2,3,21,23) 하나님이 그의 생애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인생의 운전사는 하나님! 인생의 PD고 하나님!
i) 노예로 팔린 것:시105:16-17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에 종으로 팔렸도다”
ii)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 한 것:왜 하필이면 시위대장의 집인가 시위대장은 왕의 츤근입니다. 요셉 자신도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를 향해 한 걸음씩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특히 그가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총리 인턴쉽 course one! 요즘으로 말하면 경영대학원 과정을 밟게 하신 겁니다. 철부지를 애굽의 총리 시킬 수 없쟎아요
iii) 감옥에 들어간 것:요셉이 하나님 앞에, 보디발에게 의롭고 정열하게 살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깁니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상하고 원망스럽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도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 겁니다. 마침 그 감옥은 어떤 곳입니까 20절.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라“ 범털들의 감옥! 정치범, 고위직에 있다 괘씸죄로 들어 온 사람들, . 그러니까 죄수이긴 하지만 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애굽의 정계 거물급들 하고 한데 섞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옥(교도소장)에게 신임을 얻어 총무가됩니다. 그래서 죄수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을 관리하고 봉사합니다. 총리 인턴쉽 course two! 요즘으로 말하면 행정대학원 과정을 밟게 하신 겁니다. 더욱이 결정적인 것은 그곳에서 술맡은 관원장을 만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애굽 왕의 수석 비서관 출신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언제 죽을지 아니면 혹시 왕이 사면해 줄지 . 그러던 어느 날 떡맡은 관원장 출신 죄수와 나란히 꿈을 꿉니다. 불길해서 고민하는데 요셉이 시원하게 해몽해 주었고, 그 해석대로 출소합니다. 그후 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애굽 오아 바로가 꿈을 꾸고 고민하는데 술맡은 관원장이 제보해서 요셉에 그 꿈을 해석한 결과 일약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발탁됩니다. 그래서 치리자, 구원자의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순간 순간 모순되고, 이해가 안되는 일들을 하나 하나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이 연출하신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중간 중간에는 일이 안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잘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지금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무조건 일이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고,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해 주시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 따라서 내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만한 신앙인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요셉처럼 믿음으로 산다면, 성실하게 산다면, 정결하게 산다면 여전히 내 인생은 형통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위로 받으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 퍼즐(그림) 맞추기-아직 완성하기 전까지는 엉성하고 아름답지 못합니다. 다 맞추어지고난 후에야 비로소 멋진 그림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도 .! 부디 우리 인생의 완성될 미래를 바라보면서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형통한 사람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형들의 미움을 사서 하루 아침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인신매매를 당한 겁니다. 애굽 왕의 시위대장(수경사, 수방사 같은 부대 대장) 보디발의 집에 끌려가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부잣집 귀염둥이가 갑자기 천한 노예(당시엔 연장, 물건 취급을 당하던 존재)로 전락합니다. 청천 벽력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고달픈 세월을 잘 견뎠고 불행 중 다행으로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젠 시름을 잊고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엉뚱한 일이 벌어집니다. 착실하고 잘 생긴 게 죄는 아닐텐데, 그게 탈이 됩니다. 주인 마님이 요셉에게 반한 나머지 자꾸 유혹을 합니다. 하루는 집안에 단 둘이 있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옥신각신하다 요셉은 하는 수 없이 옷을 벗어 던진 채 도망을 합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고 했나요 그 여인은 악을 품고 요셉을 모함합니다. 적반하장 격으로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옷이 증거 아닌 증거물이 되고 맙니다. 격분한 보디발은 요셉을 당장 감옥에 가둡니다. 당시 법으로는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범하다 붙잡히면 즉결 처형입니다. 평소에 워낙 착실했기에 그쯤 해결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살 맛이 안날 겁니다. 이럴 때는 “여호와 하나님, 정말 계십니까 계시다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 짓다가 고통을 당했다면 할 말이 없겠는데 . 이런 경우는 잘못을 커녕 오히려 의를 지키려다가 고통과 수치를 당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하나님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단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 오시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해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아니면 혹시 지금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누구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경우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자칫 잘못하면 신앙이 흔들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생 살맛도 나지 않고, 자포자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저 구경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니고 인생 만사(큰 일에서 작은 일까지), 인류 역사,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을 주관하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이것이 우리의 기본 신앙입니다. 예수님도 증거해 주셨습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미련한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어두운 눈으로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고 일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참 신앙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이 그 정도까지 성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줄 아는 신앙! 이런 신앙만 갖춘다면 어떤 일을 만나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에게 닥쳐오는 일마다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신앙이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기록 어디를 봐도 그렇게 일이 안되고 꼬이는 상황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승리했고 애굽의 총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더 나아가 애굽과 당시 주변국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역경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굳센 신앙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요셉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피차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고통-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요셉에게 닥치는 일들은 한결같이 꼬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도 어려울 것 같이 일이 안됐습니다. 그가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감옥살이 하고는 영 딴판이기 때문에 . 지금이야 인권이 어떻고 말하지만, 그때야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당시 그는 노예 신분에다 죄수니까 짐승보다 나을 게 없을 정도입니다. 20절. ‘옥’은 사방이 둘러싸인 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도망칠 수도 없는 밀폐 장소입니다. 시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가기 막히는 상황입니다. 노예로 팔려온 것도 기가 막힌데, 이번엔 김옥살이니 . 얼른 생각하면 인되도 이렇게 안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들 겁니다. 그러나 이런 극한 상황에서 요셉에 보여준 모습은
[2] 요셉의 신앙-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회고해 보면 원망스러운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텐데 . 하나님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아버지 야곱은 왜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내서 노예로 팔리게 했단 말인가 형들은 왜 자기를 미워하고 노예로 팔았던가 노예 상인들은 왜 하필 보디발의 집에 팔았던가 그 아내는 왜 자기를 그렇게 모함하고 해쳤단 말인가 보디발 그는 자기 아내 하나 단속 못하고, 판단도 못한 채 나를 감옥에 넣었던가 . 원망할 대상과 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원망, 증오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성경 구절을 통해 임시 받을 수 있습니다. 시105:19 “ .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그 말씀은 요셉이 일찍이 받은 계시(창37:5-11 곡식단이 절하는 꿈, 해.달.별이 절하는 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계획)을 이루는 한 과정으로 여긴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의 한 과정으로 해석하는 신앙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기막힌 상황에서도 인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욥이 극한 시련을 끝까지 이길 수 있었던 비결도 이와 동일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욥1:21 “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날ㄹ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으시고, 신령한 지혜를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줄 아는 신령한 안목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요셉의 형통-결국 그는 참 기쁨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23절 보면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형통이라고 말하면 ‘일이 잘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이 표현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부잣집 아들이 노예가 되고, 그것도 부족해서 수치스런 죄수가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형통’입니까
그런데 분명히 성경은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과연 형통입니까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본 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 형통입니다. 1 인간의 눈으로 본 형통: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일이 되는 게 형통입니다. 대개 외형적, 물질적인 것에 집중됩니다. 돈이 잘 벌린다든지, 나보다 앞서 출세한다든지, . 물론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만 보고 형통이다 아니다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셉은 정말 불통도 최악 불통입니다.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눈으로 본 형통: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형통은 좀 다릅니다. 외형적으로 잘 되고 못 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잘 되고 못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 계획이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통이란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 (물론 현실적으로 외형적으로 일이 잘 되면서 하나님의 계획으로 진행된다면 금상첨화이죠. 그러나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게 우리인생의 현실인 것입니다.) 거꾸로 아무리 현실적으로 일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딴 길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것은 불통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방향이 맞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혹은 인생의 큰 그림이 잘 그려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형통입니다. 3 요셉의 형통:그의 현실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억울하고 기가 막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큰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리켜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39:2,3,21,23) 하나님이 그의 생애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인생의 운전사는 하나님! 인생의 PD고 하나님!
i) 노예로 팔린 것:시105:16-17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에 종으로 팔렸도다”
ii)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 한 것:왜 하필이면 시위대장의 집인가 시위대장은 왕의 츤근입니다. 요셉 자신도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를 향해 한 걸음씩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특히 그가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총리 인턴쉽 course one! 요즘으로 말하면 경영대학원 과정을 밟게 하신 겁니다. 철부지를 애굽의 총리 시킬 수 없쟎아요
iii) 감옥에 들어간 것:요셉이 하나님 앞에, 보디발에게 의롭고 정열하게 살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깁니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상하고 원망스럽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도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 겁니다. 마침 그 감옥은 어떤 곳입니까 20절.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라“ 범털들의 감옥! 정치범, 고위직에 있다 괘씸죄로 들어 온 사람들, . 그러니까 죄수이긴 하지만 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애굽의 정계 거물급들 하고 한데 섞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옥(교도소장)에게 신임을 얻어 총무가됩니다. 그래서 죄수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을 관리하고 봉사합니다. 총리 인턴쉽 course two! 요즘으로 말하면 행정대학원 과정을 밟게 하신 겁니다. 더욱이 결정적인 것은 그곳에서 술맡은 관원장을 만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애굽 왕의 수석 비서관 출신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언제 죽을지 아니면 혹시 왕이 사면해 줄지 . 그러던 어느 날 떡맡은 관원장 출신 죄수와 나란히 꿈을 꿉니다. 불길해서 고민하는데 요셉이 시원하게 해몽해 주었고, 그 해석대로 출소합니다. 그후 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애굽 오아 바로가 꿈을 꾸고 고민하는데 술맡은 관원장이 제보해서 요셉에 그 꿈을 해석한 결과 일약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발탁됩니다. 그래서 치리자, 구원자의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순간 순간 모순되고, 이해가 안되는 일들을 하나 하나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이 연출하신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중간 중간에는 일이 안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잘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지금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무조건 일이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고,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해 주시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 따라서 내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만한 신앙인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요셉처럼 믿음으로 산다면, 성실하게 산다면, 정결하게 산다면 여전히 내 인생은 형통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위로 받으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 퍼즐(그림) 맞추기-아직 완성하기 전까지는 엉성하고 아름답지 못합니다. 다 맞추어지고난 후에야 비로소 멋진 그림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도 .! 부디 우리 인생의 완성될 미래를 바라보면서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형통한 사람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