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아야할 삶의 기초 (잠4:1-9,요17:1-8)
본문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5월에는 어린이 날을 비롯하여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이 있습니다만, 이런 가정의 날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정의 기초가 되는 알이 바로 어버이 날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십계명에 포함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이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주어진 가장 기초적인 계명입니다. 노예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인 한 민족을 질서있는 사회로 이끌어가는 가장 기초적인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옛날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여전히 필요한 윤리적 계명입니다. 이런 십계명 가운데 부모 공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공경은 우리의 삶을 올바로 세워가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이미 오늘날에는 필요없는 계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들이 사실상 십계명을 열심히 가르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십계명 을 폐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화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은 우리로 보다 완벽하게 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오늘도 우리가 중요하게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항목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항목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의 첫번째 항목입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제일 첫 항목이 부모 공경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십계명에 대한 보완이라고 본다면, 제일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항목을 십계명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 사랑과는 달리 부모 공경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 사랑은 계명이 아니어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행하지만, 부모 공경은 강조하지 않으면 잘 이행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효"에 대하여 강조해 왔기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새삼스 러운 것은 아닙니다. 효를 하나의 신앙으로 생각해서 길 도자를 붙일 정도면, 부모에 대한 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이 없는 서양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더구나 실용주의와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같은 사회에서는 부모 공경은 그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우리도 점차 우리가 간직해 온 효도에 대한 전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붕괴 우리 사회는 과거의 전통사회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찾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효도가 신앙화 되었던 전통사회가 무너지면서 효도도 하나의 낡은 윤리항목으로 전락되게 된 것입니다. 과거전통사회에 있어서 윤리 도덕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그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윤리 도덕은 권장 사항으로 전락하고 성문화된 법만이 이 사회를 지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닐 수 있었지만, 오늘의 사회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전통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은, 이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것입니다. 산업화된 사회 에서 중요한 가치는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지식과 능률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자식을 키울 때 과거 전통사회에서 가르치던 삼강오륜(三綱五倫) 대신에 지식을 보다 많이 주입시키고, 능률적인 인간으로 교육을 시켜 산업사회에서 기능적인 인간으로 출세를 시키는데 온 힘을 다 기울입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효도가 사라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부모를 찾아 뵙고, 아무리 집이 좁아도 부모를 모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었던 것이 전통사회의 불문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바쁜 생활 때문에부모를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고, 핵가족 시대라는 핑게로 부모를 모시지 않는 일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아닌 것처럼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요시하던 효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성장을 서둘러 온 결과로 오늘 우리가 얻은것이 무엇입니까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권위가 붕괴되어 버렸고, 윤리와 도덕이 없는 파렴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계속터지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상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가 지난 30년동안 경제 성장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큰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같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대학에 들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마침내 우리의 교육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자식들을 대학에 들여 보내 교육시킨 결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 자식들에 의해 부모들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마침내 그 자식이 장성하였을 때는 부모는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버린바 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 아닐까요 대학 입시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의 전통적가치를 모두 붕괴시키고 말았습니다. 자식의 대학 입시를 위해서 부모는 완전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자식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시키면 한짐을 덜려니 생각하였던 부모들에게 결혼이라는 또 다른 짐이 지워집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 결혼시키면 이제는 다 끝났는가 싶으면 그 자식의 자식까지 보아주고 뒷치닥거리 하느라 또 다시 얽매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늙어져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할 때에는 그들의 천덕구러기가 되어 서름받고 버림받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대학 입시라는 이 제도를 없애버리든지 무슨 수를 써야지 이 괴물에 의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부패하고 파렴치한 사회가 되어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정신적 가치관의 회복 오늘 우리의 부패한 사회를 바로 잡는 길은 근본적으로 가치관을바꾸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능적인 인간, 능률적인 인간을 최고의가치로 생각하는 경제 성장 위주의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회, 부모가 다시 그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 되돌려 놔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대학입시제도를 바꾼다고 해 도 근본적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새 정부가 아무리 과거를 청산하는 개혁작업을 성역없이 행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고,우리가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그 개혁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바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 공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받아드리는 새로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한 가정의 문제요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요 민족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부모공경을 포함시킨 것은 바로 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거룩한백성의 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가정이복을 받을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을 받는다는 말은 그 사회의 질서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어떻게 사회 안정과 직결되느냐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옛날과 같이 신앙화 되어야 합니다. "효도"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여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 경외처럼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고르반을 통해 부모 공경을 사실상 폐지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 잘못을 지적하셨 습니다.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부모 공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결 국 이 말씀은 하나님 경외가 중요한만큼 부모 공경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된 신앙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만큼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받들기를 힘써야만 바른 신앙의 생활임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부모가 늙고 쇠약하여지거나 망령이 들어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될 때 모시기가 참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공경하고 잘 돌보아 드리는 일이야말로 바른 효도일 것입니다. 욥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만 그를 경외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실 때도 그를 경외함에 변함이 없었던 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능력이 없어 자식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을 때에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진정한효도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는 부모 공경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것만을 충족시켜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모시고 잘 해드리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만이 공경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 아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모에게 주신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4:1-2)고 하였습니다. 이 지혜자는 자기도 아버지에게서 그런 교훈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아들들에게 그의 교훈을 기억하라고 가르치고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자는 이런 부모의 교훈을 잊지아니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내려가는 것을 대단히 중요 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모든 가정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 내려가는 것을 그들의 제일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떤 재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신앙전통을 물려주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것을 전수하며 실천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조상의 신앙을 전수받고 그것을 자손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중요한 목적이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복종하고 그것을 실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경외와 더불어 부모 공경이 어떠한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진정한 부모 공경의 길은 그 부모의 신앙을 전수하고 그의 도덕 적 교훈을 충실하게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부모를 그냥 잘 모시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효도가 될 수 없습니다. 효가 도가 되려면 거기에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 앞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 없는 부모 공경은 반쪽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부모 공경이 이루어지려면 부모가 신앙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자녀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면서 그 가르침을 주신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녀들에게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는 대신에 지식과 능률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부모 공경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시급히 돌이켜 내 자 식 대학에 보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철저한 신앙심과 도덕성을 심어준다면 그 어떤 부모보다도 성공한 부모이며, 공경받는 부모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오늘 우리를 살리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꼭 지키지 아니하면 안되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인식하면서, 부모 공경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부모공경이야 말로 하나님 경외와 직결되며 그 인격 완성의 중요한 덕목임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부모 공경을 통하여 오늘 타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힘쓰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옛날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여전히 필요한 윤리적 계명입니다. 이런 십계명 가운데 부모 공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공경은 우리의 삶을 올바로 세워가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이미 오늘날에는 필요없는 계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들이 사실상 십계명을 열심히 가르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십계명 을 폐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화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은 우리로 보다 완벽하게 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오늘도 우리가 중요하게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항목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항목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의 첫번째 항목입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제일 첫 항목이 부모 공경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십계명에 대한 보완이라고 본다면, 제일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항목을 십계명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 사랑과는 달리 부모 공경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 사랑은 계명이 아니어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행하지만, 부모 공경은 강조하지 않으면 잘 이행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효"에 대하여 강조해 왔기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새삼스 러운 것은 아닙니다. 효를 하나의 신앙으로 생각해서 길 도자를 붙일 정도면, 부모에 대한 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이 없는 서양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더구나 실용주의와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같은 사회에서는 부모 공경은 그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우리도 점차 우리가 간직해 온 효도에 대한 전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붕괴 우리 사회는 과거의 전통사회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찾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효도가 신앙화 되었던 전통사회가 무너지면서 효도도 하나의 낡은 윤리항목으로 전락되게 된 것입니다. 과거전통사회에 있어서 윤리 도덕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그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윤리 도덕은 권장 사항으로 전락하고 성문화된 법만이 이 사회를 지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닐 수 있었지만, 오늘의 사회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전통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은, 이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것입니다. 산업화된 사회 에서 중요한 가치는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지식과 능률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자식을 키울 때 과거 전통사회에서 가르치던 삼강오륜(三綱五倫) 대신에 지식을 보다 많이 주입시키고, 능률적인 인간으로 교육을 시켜 산업사회에서 기능적인 인간으로 출세를 시키는데 온 힘을 다 기울입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효도가 사라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부모를 찾아 뵙고, 아무리 집이 좁아도 부모를 모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었던 것이 전통사회의 불문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바쁜 생활 때문에부모를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고, 핵가족 시대라는 핑게로 부모를 모시지 않는 일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아닌 것처럼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요시하던 효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성장을 서둘러 온 결과로 오늘 우리가 얻은것이 무엇입니까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권위가 붕괴되어 버렸고, 윤리와 도덕이 없는 파렴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계속터지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상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가 지난 30년동안 경제 성장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큰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같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대학에 들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마침내 우리의 교육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자식들을 대학에 들여 보내 교육시킨 결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 자식들에 의해 부모들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마침내 그 자식이 장성하였을 때는 부모는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버린바 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 아닐까요 대학 입시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의 전통적가치를 모두 붕괴시키고 말았습니다. 자식의 대학 입시를 위해서 부모는 완전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자식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시키면 한짐을 덜려니 생각하였던 부모들에게 결혼이라는 또 다른 짐이 지워집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 결혼시키면 이제는 다 끝났는가 싶으면 그 자식의 자식까지 보아주고 뒷치닥거리 하느라 또 다시 얽매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늙어져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할 때에는 그들의 천덕구러기가 되어 서름받고 버림받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대학 입시라는 이 제도를 없애버리든지 무슨 수를 써야지 이 괴물에 의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부패하고 파렴치한 사회가 되어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정신적 가치관의 회복 오늘 우리의 부패한 사회를 바로 잡는 길은 근본적으로 가치관을바꾸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능적인 인간, 능률적인 인간을 최고의가치로 생각하는 경제 성장 위주의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회, 부모가 다시 그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 되돌려 놔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대학입시제도를 바꾼다고 해 도 근본적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새 정부가 아무리 과거를 청산하는 개혁작업을 성역없이 행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고,우리가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그 개혁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바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 공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받아드리는 새로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한 가정의 문제요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요 민족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부모공경을 포함시킨 것은 바로 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거룩한백성의 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가정이복을 받을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을 받는다는 말은 그 사회의 질서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어떻게 사회 안정과 직결되느냐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옛날과 같이 신앙화 되어야 합니다. "효도"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여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 경외처럼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고르반을 통해 부모 공경을 사실상 폐지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 잘못을 지적하셨 습니다.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부모 공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결 국 이 말씀은 하나님 경외가 중요한만큼 부모 공경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된 신앙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만큼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받들기를 힘써야만 바른 신앙의 생활임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부모가 늙고 쇠약하여지거나 망령이 들어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될 때 모시기가 참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공경하고 잘 돌보아 드리는 일이야말로 바른 효도일 것입니다. 욥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만 그를 경외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실 때도 그를 경외함에 변함이 없었던 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능력이 없어 자식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을 때에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진정한효도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는 부모 공경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것만을 충족시켜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모시고 잘 해드리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만이 공경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 아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모에게 주신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4:1-2)고 하였습니다. 이 지혜자는 자기도 아버지에게서 그런 교훈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아들들에게 그의 교훈을 기억하라고 가르치고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자는 이런 부모의 교훈을 잊지아니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내려가는 것을 대단히 중요 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모든 가정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 내려가는 것을 그들의 제일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떤 재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신앙전통을 물려주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것을 전수하며 실천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조상의 신앙을 전수받고 그것을 자손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중요한 목적이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복종하고 그것을 실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경외와 더불어 부모 공경이 어떠한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진정한 부모 공경의 길은 그 부모의 신앙을 전수하고 그의 도덕 적 교훈을 충실하게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부모를 그냥 잘 모시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효도가 될 수 없습니다. 효가 도가 되려면 거기에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 앞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 없는 부모 공경은 반쪽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부모 공경이 이루어지려면 부모가 신앙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자녀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면서 그 가르침을 주신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녀들에게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는 대신에 지식과 능률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부모 공경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시급히 돌이켜 내 자 식 대학에 보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철저한 신앙심과 도덕성을 심어준다면 그 어떤 부모보다도 성공한 부모이며, 공경받는 부모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오늘 우리를 살리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꼭 지키지 아니하면 안되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인식하면서, 부모 공경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부모공경이야 말로 하나님 경외와 직결되며 그 인격 완성의 중요한 덕목임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부모 공경을 통하여 오늘 타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힘쓰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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